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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배를 가졌으니 (고후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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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를 가졌으니 (고후 4:7~10)

1947년 5월 사해 서쪽 여리고 남방 1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쿰란 동굴(Wadi Qumran)에서 보물이 발견되었습니다.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절벽에 위치한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두려움 때문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동굴 속으로 돌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년은 굴 안에서 십여 개의 큼직한 항아리들을 발견하였는데 그 속에는 양피지에 글이 쓰여진 두루 마리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의 첫 발견입니다. 사해문서는 기원전 2세기경에 베껴진 성경 사본으로서 이사야서, 시편 등이 들어 있는 획기적인 성경연구 사료입니다. 그 후 고고학자들은 이 근방의 자연동굴 2백개 이상을 파 헤쳐 두루마리들을 발견해 내었습니다. 두루마리를 처음 발견한 소년은 골동품상에 한 개당 4만원씩 받고 팔면서 횡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대학교는 이 보물을 골동품상으로부터 한 개에 25만 달러씩 주고 다시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항아리는 값싼 토기였지만 그 안에 보물이 담겨져 있었기에 엄청난 가치를 발휘한 것입니다.

우리도 질그릇 같이 약하지만 가치는 겉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고 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로 좌우됩니다.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져 있을 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으면서도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성도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9절 이하에서 선언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지 자로다." 이토록 바울이 자신 만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바울은 질그릇처럼 보잘 것 없는 자신도 하나님께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주셨기에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노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도 자신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해도 그 속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져 있음을 깨달으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 보배가 능력이 됨도 말합니다. 바울은 그 보배가 갖은 어려움에서 자신을 건져주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연약하나 우리 속에 담겨진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건짐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삶은,


첫째로 싸이지 아니하며

25세의 '데이비드 칼(David Carr)' 은 미국의 유명한 럭비선수입니다. 그는 사랑의 마음으로 집 없는 사람과 불쌍한 사람들에게 마실 커피와 음식을 나눠주려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거리는 며칠 전에 폭력배들이 사람을 강에 던져 죽인 곳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그에게 갑자기 차 한대가 다가오더니 '저 녀석도 강으로 집어 던져!' 라고 외칩니다. 데이비드는 두려워 '하나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달려오던 두 명의 폭력배가 갑자기 부들부들 떨며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폭력배들은 청년을 만나 말합니다. "네 곁에 있던 몸집이 크고 눈이 부시도록 얼굴이 빛나던 사람이 누구냐? 나는 그렇게 큰 사람을 처음 봤다". 데이비드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악한세력들에게 둘려 싸이지 아니하도록 선한 일을 하던 데이비드를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여기의 '우겨쌈을 당한다' 는 원어는 '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르다' 의 뜻입니다. 즉 환난과 고통으로 압박 당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 '싸이지 아니하며' 라는 말은 막다른 골목이나 궁지에 몰린다 해도 좌절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죄와 마귀와 병과 가난과 죽음이 우리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염려와 근심, 불안과 초조, 절망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를 멸하시고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질병을 속하시고 저주와 가난을 밟으시며 승리하셨습니다. 즉 우리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사면초가이고 우겨 싸인 것 같이 보여도 싸이지 않음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 사방으로 환란을 당했노라고 고린도후서 7장 5절에 말합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그러나 사방으로 우겨 싸이는 위기를 당했지만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시며 위로하셨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혹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했습니까? 사면초가의 상황이십니까?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의지하십시오. 그리하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한다 할지라도 결코 싸이지 아니하는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낙심하지 아니하며

한 소년의 학교 생활기록부에 '빈궁한 가정환경과 병약한 몸이므로 수업이 어려움' 이라고 씌어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젖을 빨 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세 살을 넘기기 힘든 아이라고 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고무공장을 운영하다가 부도가 나서 도피 중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채소 가게를 운영하며 힘겹게 네 아들을 키웠습니다. 소년은 어려운 살림을 돕기 위해 성냥팔이가 되어 거리를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답답한 환경 속에서도 소년은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타고난 풍부한 상상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이 소년은 훗날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입니다. 그러므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살아가는 사람은 답답한 일을 당한다 해도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보배이신 주님이 함께 하심을 언제나 믿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에서 '답답한 일' 은 꽉 막혀 길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낙심이란 희망이 없는 절망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답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해결해 보려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은 문제들로 인해 답답해합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고 답답해합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살았는데도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답답합니다. 진심을 이야기했는데 통하지 않을 때가 있어 답답해합니다. 수고를 했는데도 결말이 좋지 않아 답답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져다주는 답답함은 더 큽니다. 때로는 답답함으로 인해 낙심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답답한 일을 만났을 때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낙심치 아니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실 때 답답한 일들이 해결되어 힘을 더하여 주시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미국의 가수인 롤랜드 헤이즈(Roland Hayes)는 신앙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흑인 가수이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독일의 베를린에서 콘써트를 가졌을 때 일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거의 백인들이었습니다. 막이 오르고 헤이즈가 노래를 시작하려고 할 때 "흑인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노래를 집어치우라!" 며 누군가가 소리칩니다. 이어 상스러운 욕질을 하면서 백인들은 침을 뱉으며 방석을 던집니다. 충격을 받은 헤이즈는 좌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돌아서 나가려는데 눈앞에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대인들이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하고 온갖 곤욕을 받을 때 아무 말도 아니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헤이즈의 마음속에 생각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저렇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셔도 뒤로 물러가지 않으시는데, 왜 내가 뒤로 물러가야 되는가". 그는 청중 앞에 다시 나가 눈물을 흘리며 서있었습니다. 그러자 소란스럽던 청중들이 조용해집니다. 그때 헤이즈는 흑인영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감동합니다.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헤이즈는 그 날 대성공을 거두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었습니다. 핍박과 환난 중에도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가 넘치니 버린 바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함은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핍박을 받으시며 친히 우리의 위로와 기쁨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바울은 복음 전파 사역 중에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바울은 복음 때문에 핍박을 당하며 버림받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버린바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버린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기에 버린바 되지 않는 것입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해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게 됩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됩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됩니다. 부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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