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회개의 은혜 (시 51:1-19)

  • 잡초 잡초
  • 529
  • 0

첨부 1


회개의 은혜 (시 51:1-19)

요즘 우리사회는 학력을 위조한 사건으로 떠들썩 하고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령 교수님들 음악 미술등의 예술인들 방송연예인들 심지어는 사찰의 스님이나 교회의 목사님까지 포함하여 가짜학력으로 인한 휴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위조된 학력으로 대학교수를 하고 국제비엔날레책임자까지 맡았던 한 사람은 검찰의 특별조사를 받으면서 인생의 엄청난 시련과 수치를 당하는 모습을 접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뉴스를 보면서 그동안 거짓학력으로 취업을 하여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두려웠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솔직하게 자기의 거짓을 고백하고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향해 정죄의 돌팔매를 던지는 사람보다 대부분 격려하고 인정하여 줍니다.어떤 유명 가수는 자기 학력을 중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함으로 팬들로부처 오히려 더욱 격려과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숨긴 죄로 인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죄를 안짓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육체를 갖고 있고 또 유혹 앞에 약하고 유혹 앞에 넘어져 죄를 짓고 마는 한계가 있습니다. 죄성이 우리의 본능이기 때문에 인간이면 누구든지 죄의 유혹을 받을때에 이겨야 하지만 강한 죄의 본능 앞엣 범죄하고 실수하는 삶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시간에 자기를 부인하라는 메시지를 들었지만 현실의 삶에서 여전히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범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다윗도 그랬습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중에 구약의 다윗처럼 영성이 빼어난 사람도 사실 드뭅니다.한마디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사실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탁월한 영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유혹 앞에 다윗은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을 하게됩니다.

사무엘하서 11장에 보면 다윗이 어떻게 간음죄를 짓는가 역사가 소개됩니다.어느날 다윗은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게 되었습니다. 옥상을 거닐던 다윗의 눈에 한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이 들어왔는데 너무 아름다워보였습니다. 다윗은 신하를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오게 합니다. 그는 우리아라고 하는 사람의 아내인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동침을 하고 여자를 돌려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여인이 사람을 다윗에게 보내어 “내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다윗왕은 이 소식을 전해듣자 자기의 이 죄를 무마시킬 방법을 찾았습니다.그래서 전장에 나가있던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려들려 자기에게로 오게 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집에 돌아가 발을 씻고 휴가를 갖으라“는 일종의 지금으로 말하면 군대의 특별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충성스러웠던 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군사들과 함께 막사에서 잠을 잔 것입니다.

다음날 다윗에게 우리아의 소식이 보고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불러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 합니다. 우리아가 대답합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 군인들이 야영에 있고 군사들이 모두 바깥뜰에 있는데 어찌 내가 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처와 더불어 잠을 잘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다시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기 위해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음날도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다윗은 우리아가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자 다시 그를 전쟁터에 내보냅니다. 그때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보냅니다. 그 편지에는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터의 제일 선봉에 서게 하고 그로 죽게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죽게 되고 결국 장사지낸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악하고 못된 죄를 지었습니까 ?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던 사람입니다.그러나 그도 연약한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죄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다윗의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때 자기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51편은 바로 다윗의 회개의 시입니다. 다윗은 회개의 은혜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지금 회개가 요구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시간 저와 여러분들 삶에 회개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회개의 은혜가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1. 회개의 은혜가 임하면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여러분 죄를 인정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1-4절에 보면 “내 죄” “나의 죄악” “나의 죄과” “내가 범죄와 악을 행하였다”는 것을 거듭 시인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먼저 죄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윗은 회개하기 이전에 간음죄를 범하고 난 뒤에 시인하지 않고 은폐하였습니다. 밧세바와 간음하고 나서 죄를 은폐하려고 남편 우리아를 불러 잠을 자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안되자 자기의 죄를 은폐하려고 우리아를 죽임으로써 완전 범죄를 꾀하였습니다.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를 지적하자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시인하였습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는 죄를 숨기고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수는 없고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의 양심을 속일 수 없습니다. 만약에 속이려고 할때에 다윗처럼 자꾸 거짓말하고 더 범죄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짓었을 경우에 그 죄에서 자유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길은 유일합니다.바로 죄를 시인하고 죄에서 돌아서는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인의 타이밍이 중요합니다.다윗의 경우에 죄를 시인했지만 좀 타이밍이 길었습니다. 빨리 즉시 하지 못하고 끌다가 나단선지자의 지적이 있는 후에 했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그 마음에 많은 기회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루다가 결국은 나중에 시인했습니다. 물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낳지만 죄의 고백과 회개의 타이밍을 늦츨 수록 자신에게는 손해입니다. 항상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은 지금 당장 시인하라는 것입니다.마귀는 그 시간을 늦추라고 하고 우리의 죄성은 시간을 끌기를 원합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어거스틴은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졌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를 이 정욕에서 건져주세요’라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마음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건져주지 마소서“라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는지 모릅니다.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지금 죄속에 있는 분이라면 당장 시인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유혹을 느끼고 그것이 죄라고 생각되면 요셉처럼 당장 그곳에서 떨려 나와야 합니다. 당장 끊어야 합니다. 단칼에 끊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죄를 이기고 죄로부터 돌아서는 길입니다.

우리가 범죄하는 경우 환경을 바꾸어야 할때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것이 죄의 환경이라고 한다면 빨리 환경을 바꾸고 돌아서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간음죄를 짓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 속에서 왜 죄가 찾아오고 그 죄 앞에 굴복하는지 아십니까? 죄에 넘어갈 환경에 있으면서 죄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청춘남여가 한밤에 둘이 한방에 있으면서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보십시오. “주님 저희가 간음죄를 범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불타오르는 충동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의 문제이기 이전에 빨리 그 환경을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이나 밧세바나 왜 범죄했습니까? 너무 한가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유혹하고 간음할 때 그는 낮시간인데도 낮잠을 즐기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갖았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도 그렇습니다. 대낮에 목욕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한가하게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상적이니 삶의 한가함들이 마귀에게 죄에게 틈을 주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그 시간에 다윗이 전쟁에 나가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면 그런 범죄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밧세바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룩한 일에 바빠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사람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옛사람이 있습니다.
정욕의 본능이 있고 육체의 소육이 있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거룩을 위하여 기도하고 거룩한 일에 자기를 쳐서 복종하면서 드려지시는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새사람의 습관으로 나를 드려야 합니다.

혹시 범죄하였습니까?
다윗처럼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시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정욕으로 인해서 범죄하였습니까? 내가 욕심으로 인해서 실패했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시인할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 중심과 삶을 감찰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솔직하게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시인하는 사람을 인정하십니다.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회개의 은혜는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모든 죄가 용서받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용서로 인한 진정한 회복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1절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2절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죄가 지워지고 죄가 제하여 달라고 용서를 구합니다.
여기 지워달라는 말 제하여 달라는 말은 용서를 하되 흔적도 없이 깨끗이 용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 2절에 ‘씻으시며’‘제하소서’라는 용어들은 세탁용어입니다.

우리가 더러운 빨래를 빨 때 세제와 비누를 이용하여 세탁합니다. 아무리 더럽고 상한 빨래도 세제를 이용하여 빨면 깨끗이 씻시고 모든 더러움들이 제거됩니다. 여러분 아무리 좋은 옷 비싼옷이면 무엇합니까? 결코 아무리 좋아도 더러운 옷은 입지 않습니다. 깨끗이 빨아 깨끗한 옷을 우리가 입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억할 것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어도 죄로 더러워진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교회 속에서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했던 사람들은 정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을 기억하여 보십시오.그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습니까? 실력때문이었나요 능력때문이었나요 아닙니다. 그는 이새의 8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외적으로 보면 능력으로 보면 그의 형들이 더 낳았습니다. 그는 단지 소년이었고 목동에 불과하였습니다. 만약에 학력과 지식으로 본다면 더유명한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힘으로 본다면 더 좋은 체력으로 큰 힘을 갖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외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사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삼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왜 일까요? 그가 정결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먼저 찾으시고 쓰는 사람은 능력과 실력의 사람이기 이전에 먼저 그 심령이 삶이 정결한 사람을찾습니다.

다윗은 비록 범죄했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는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그길만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되 죄의 댓가를 치루게하십니다. 가령 다윗의 경우에 회개를 통해서 다윗은 용서를 받았지만 다윗의 죄의 결과로 낳은 아기는 하나님께서 7일만에 죽게 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범죄로 인해서 생긴 가족의 상처가 고통이 되게 합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어미가 다른 누이인 다말과 간음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다윗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시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죄악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하시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는 하나님의 대속의 은총입니다.
1절에서 ‘인자’라는 말은 ‘성실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변치 않는 사랑,나의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성실하게 나를 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은 우리의 배신에도 계속됩니다. 우리의 변심과 죄악의 범죄 속에서도 계속됩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의 인자를 알았습니다. 믿었습니다. 그 인자하신 하나님을 알기에 믿기에 그는 그인자에 근거하여 용서를 구합니다. “인자하신 하나님 나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넉넉한 자지를 가지신 아버지 하나님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자하신 아버지 그 인자하심을 믿음 확신하고 우리의 잘못 우리의 죄악를 용서하여 주심을 믿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7절에서는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은 근거 하여 용서를 구합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합니다.
우슬초는 스펀지와 비슷한 식물입니다. 본래 속죄의 제물을 잡아 그것으로 피를 뿌리고자 할때에 사용되어집니다. 그리고 우슬초는 뿌려진 피가 응고되어 지우려고 할때에 잘 지워지지 않을때 그때 응고된 피를 지울때에 우슬초를 사용합니다. 우슬초를 사용하면 응고되어 잘 지워지지 않던 피가 깨끗이 지워진다고 합니다.
주님의 보혈은 우슬초와 같습니다. 우리가 더럽고 추해도 주님의 보혈은 정결하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눈보다 더 정결하게 우슬초와 같은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여 줄 것을 다윗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1장 18절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은 용서입니다. 복음은 무조건 용서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의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흥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시기만 하면 다시는 이것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스스로를 올무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매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면 이런 저런 좋은 일들을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교회에도 나가고 십일조도 드리고 이것 거것을 하겠습니다.”

저의 친척가운데 어떤 분이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딸과 같이 설날 부모님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둘째 딸이 안전띠를 하지 않아서 차에서 튕겨저 나갔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가 차안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리창이 깨어지고 도로 위에 아이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깨우니까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길로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1주일이상 의식이 없는 응급상황이 진행이 되엇습니다. 본인은 다쳤지만 그것은 아프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못한때 오직 그 딸이 고침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다도 합니다. “이 아이만 고쳐주시면 제가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생활을 잘하겠습니다” 그리고 몇 달만에 아이는 수술하고 무사하게 퇴원하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약간의 휴유증이 잇지만 건강하게 잘 생활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을 향하여 딸만 살려주시면 하나님 뜻대로 하겠다던 그 다짐은 간데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 초심이 그 마음이 너무 잘 변하고 변질됩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심을 믿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실까요?
즉시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고 내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믿음으로 구할때에 즉시로 용서하여 주심닙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용서하십니까?
값없이 용서하여 주십니다. 우리죄를 값없이 씻어주십니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능력이 있어서 잘나서 용서하여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로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용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용서하여 주십니까?
완전히 용서하여 주십니다. 한번 죄를 용서하여 주시면 그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고 완전히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용서하여 주신 그 죄로 인하여 다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줄 믿습니다. 미쁘신 하나님께서 용서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삶에 자유함들이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3. 회개의 은혜는 회복하는 것입니다.

11절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고 살면 우리가 어떤 손해가 있습니까?
구약에는 성령이 떠나가고 신약은 성령이 소멸됩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구원의 기쁨이 사라지고 고통이 찾아옵니다. 육체적으로 괴롭습니다. 심리적으로 괴롭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나서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괴로움만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8절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게 즐겁고 기쁜소리를 들려주시사 주께서 꺽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기 다윗은 주께서 내뼈를 꺽으신 것처럼 괴롭다고 고백합니다.

시편32편 3절-4절에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죄문제 죄책감이 찾아오면 우리의 영혼은 어둠의 감옥보다 더 깊은 감옥에 빠지게 됩니다. 그 영혼은 기쁨이 없고 찬송이 없고 마음을 사막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생명력이 없는 시체같은 모습입니다.

인생은 마치 운전자가 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전자가 기어를 전진에 놓고 전방을 향해 운전을 하면 차는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운전자가 기어를 후진에 놓고 후진하면 차는 뒤로 갑니다. 앞으로 갈 것인가 뒤로 갈 것인가? 그것은 기어를 어디에 놓는가 차이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기어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전진에 놓으면 인생은 전진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후진에 놓으면 인생은 후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인생을 살아갑니다. 과거에 매인 인생은 차를 후진하는 것같이 인생을 뒤로 후퇴하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마음을 놓고 원망과 증오로 살아갑니다. 과거의 상처에 마음을 놓고 분노로 살아갑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곱씹으면서 상처받은 감정으로 오늘을 어제에 맞추면서 살아갑니다.그러면 회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기를 소원하십니다. 어떻게 과거를 잊습니까? 어떻게 상처를 잊습니까? 어떻게 아픔과 잘못을 잊을 수 있습니까?
새물이 들어오면 헌물은 물러갑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상처가 있는 곳에 새살이 차면 흔적은 지워집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회복이 잇습니다.

여러분 회복되면 어떤 삶이 있을까요?
첫째 주를 찬송하면서 전파합니다.
15절 “내 입이 주를 찬송하며 전파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죄악으로 침체에 빠지면 온전한 찬송 할 수 없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회복되면 찬송하면서 주님을 증거하고 전파는 삶을 살게됩니다 .죄에서 회복없는 찬송과 삶은 기쁨이 없습니다.

둘째 바른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19절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예배드리면 많은 수의 예배를 드려도 주님이 기뻐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주님이 그 제사 그 예배를 기뻐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예배를 기뻐받으십니다.
결국 다윗은 회개를 통해 자시 찬송의 삶으로 증거의 삶으로 회복되었습니다.다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로 회복되었습니다. 비록 그는 범죄하였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는 연약하여 실수하엿지만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주님의 사람으로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되어 승리의 모습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십니까? 삶이 답답하십니까? 마치 감옥처럼 어두움에 거하면서 어둔 인생의 밤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혹 있습니까? 회개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청소하지 않는 집이 더려운 것처럼 회개하지 않은 나의 마음 나의 영혼의 집도 먼지가 쌓이고 더러워집니다. 답답하고 기쁨이 없고 의미없는 무감각한 삶이 되고 맙니다. 회개만이 내가 사는 길이요 회복되는 길입니다.
내마음을 열고 미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회개의 간구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찬송과 증거의 삶으로 회복되고 예배의 기쁨이 회복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