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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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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바라보는 삶 (히 12:1-2)

  “어떻게 평생 예수님만 바라보냐? 그런 초라하고 한심한 삶을 살아서 되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이 가장 위대한 삶, 능력 있는 삶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옵니다. 왜 우리는 교회에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능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는 아침, 저녁에 자기 마음대로 드나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 한 사람도, 한 발걸음도 여기에 올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큰 은혜를 주셔야 만이, 큰 축복을 받은 자만이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주의 성전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 벌어서, 나중에 성공해서 예수 잘 믿겠다. 교회에 나가겠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을 잘 사는 것과 아주 연관이 있는 줄 압니다. 잘 살아도 잘 믿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잘 믿던 교인도 잘 살면 교회를 떠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믿는 사람이 잘 살아서 교회에 나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잘 살 수 있지만 잘 살아서 믿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것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아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도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택하여 주시며,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시며 메시야이십니다. 여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2차 대전에 완전히 망했지 않습니까? 연합군의 수 백 대의 비행기가 와서 독일을 완전히 초토화시켰습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모두 죽으며, 완전히 온 나라가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제가 들어보면 새벽에도 교회가 넘치고 낮에도 줄을 서서 교회에 나오며, 열심히 주님 앞에 나와서 울부짖고 기도하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세계의 강 중에는 템즈강, 나일강, 아마존, 세계 강들이 무수히 많지만 바로 1960년대부터 라인강의 기적이 일어나 그 모든 저주, 전쟁에 폐허를 뚫고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강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강의 기적입니다. 언제부터입니까? 1970년대부터입니다. 우리는 독일처럼 분단되어 있고 독일처럼 똑같이 전쟁을 치르며, 똑같이 폐허가 되고 독일은 우리보다 5년 전에 폐허가 됐지만 우리는 1950년부터 53년까지 폐허가 됐습니다. 온 나라가 울음바다가 되고 고아들로, 과부들로, 전쟁의 폐허로 가득 찼던 이 나라가 주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주님께 울부짖었습니다. 동네마다 새벽종이 울렸습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부르짖으므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온 세계가 놀랄 일입니다. 지하자원도 없고 여러 가지 아무것도 없는 폐허된 나라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나쁘게 보면 안 됩니다. 기적을 이루는 민족인데, 이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는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독일이나 우리는 지금 2천 년 대에 와서 영적으로 너무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기적을 바라보나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고 혼란과 분열과 온 사회가 지금 신음하며 고통을 당하는 이 어려운 절망의 시기, 정신적으로 심히 방황하고 고통당하는 이 시대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창조자입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하늘에는 태양과 달과 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하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계신 센터, 왕궁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계신 보좌가 있고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우리는 기적을 만들어 내던 그때와 같이 단순하게 믿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행복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부유합니다. 우리는 가난할 때가 한 번도 없습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위로부터 창조함을 받았으며, 위에 계신 전능하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지 않습니까? 광야의 훈련입니다. 40년을 훈련받았습니다. 여러분! 교인은 훈련을 받아야 교인입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다녀도 믿음의 훈련이 안 된 사람은 능력이 없습니다. 집에 수영장이 있어도 연습을 안 한 사람은 물에 빠집니다. 집에 피아노가 있어도 연습을 하지 않은 사람은 피아노를 칠 줄 모릅니다. 열심히 축구를 연습을 해야 축구선수가 되고, 글러브를 끼고 계속 방망이를 휘둘러야 야구선수가 됩니다. 계속 해야 됩니다.

교인은 믿음의 훈련을 계속 거쳐야 됩니다. 믿음의 훈련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는 분은 위, 하늘에 계시다는 겁니다. 위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위에 계신 분을 믿는 것이 신앙의 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그 훈련을 받았습니다. 매일마다 만나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위로부터 만나가 내려옵니다. 누가 우리를 먹여주시느냐를 경험합니다. 병들었을 때 어디를 찾아갑니까?  치료가 위로부터 내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디로부터 승리하게 합니까? 위로부터 승리하게 하십니다. 언제나 위를 바라보는 훈련을 40년을 거쳤습니다. 계속 위기가 와도 위를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야 합니까? 어디를 갈까요? 어디로 이사할까요? 어디 가서 어떻게 할까요?” 위로부터 구름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위를 보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위에서부터 사인을 내릴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에서 가라고 하면 가고, 하라고 하면 하고, 위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결정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따라갈 때 승리하고, 그를 믿고 나아갈 때 모든 일에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그 훈련을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훈련된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에게 사인을 해 주십니다. 오늘은 무슨 날입니까? 위의 날입니다. 주의 날입니다. 땅의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무슨 뉴스를 듣습니까? 위의 뉴스를 듣는 겁니다. 땅의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뉴스, 위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겁니다. 위에 계신 분을 믿으며, 위에 계신 분을 사랑하며, 위의 계신 분의 은혜를 받으려고 교회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위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위에 속한 자는 위로부터 항상 은혜가 주어집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많이 받아봅니다. 절망과 환란 중에 있는 성도들의 편지를 읽다가 많이 웁니다. 어제도 많이 울었습니다. 전국에서도 도와달라는 편지가 많이 옵니다. 그 중에 목사님 사모님들의 편지도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안 쓰고, 그런 문장은 사모님들이 표현을 잘 합니다. 사모님 들만 애절하게 표현을 하면 제가 울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설득을 당합니다. 편지는 여자가 잘 씁니다. 저도 결혼할 때 집사람 편지에 녹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비가 와요.” 이런 말을 너무 잘하는 겁니다. 읽다가 그만 마음이 흔들리는 겁니다. 어제도 어떤 어머니가 편지를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렇게 어렵게 살았습니다. 우리 남편이 저를 버리고 가고, 저는 애들하고 사는데 애가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렇게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1등급 아이가 갑자기 난폭해 졌습니다. 저를 버리고 집을 나간 남편이 지난 7월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애가 고3인데 그래도 아버지를 기대한 겁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사랑 하나도 못 받고 죽으니까 아이의 성격이 거칠어졌습니다. 칼을 휘두르고 공부를 안 합니다.” 그런 것을 읽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안 됐는지 많이 울었습니다. 이 애가 몸부림을 치는 겁니다. 왜 우리가 세상을 보면 안 되느냐 하면 세상을 보면 너무 좌절이, 낙심이, 상처가 많고 세상은 너무 우리를 향하여 아픔을 주는 일이 많습니다. 믿었던 분에게 상처를 받고, 세상은 불안하고 무섭습니다. 살수록 우리가 믿을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은 우리가 어려울 때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또 한 청년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미시간 주립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인데, “목사님! 저는 명성교회를 어려서부터 다녔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 졸업하고 미국유학 가려고 그랬는데, 어머니가 편찮으셔 어머니 뒷바라지 하느라고 유학을 못 갔습니다. 몇 년 동안 아버지도 실직하고, 밤에는 야근하고 너무 힘이 들었지만 계속 일했습니다. 그리고 유학가려고 7년 동안 돈을 모았는데 주님이 감동을 주셨습니다.” 이 학생은 항상 집의 온 식구가 아프고, 형제들, 형님식구 결혼한 온 식구들이 다 한집에, 방 두 칸에 오글거리니 너무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외곽에 아파트, 서울 비해서 1/4, 1/5 싸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파트 분양을 받았답니다. 주님이 자꾸 “너, 그 돈을 가지고 해라.” 그러더랍니다. “유학 가지 말고” 그런 감동이 오더랍니다.  그래서 이 분이 아파트 분양을 받아서 부모님을 그리 모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어머니가 저한테 기도도 여러 번 받았지만, 완전히 우울증에 걸려 정신이 혼란해 10여년을 방황을 하는 겁니다. 이유가 집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너무 이 집, 저 집, 이사 다니며 어려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가니 “이게 내 집이냐, 진짜 내 집이냐?”고 하며, 가구를 들여 놓고 하나하나 살림살이를 갖다 놓으니 심봉사와 같이 눈을 뜨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말끔히 치료가 되는 겁니다.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이게 내 집이냐”고 하며, 수도꼭지를 틀면서 기쁨이 살아나고, 전깃불을 켜면서 방안에 왔다 갔다, 청소하면서 신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의 병이 치료가 된 겁니다. 회복 되는 과정을 쭉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학을 놓쳤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또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감동을 주시더랍니다. “너는 가라. 너가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돕겠다. 낙심하지 마라. 돕겠다.” 그래서 회사에 사표를 냈답니다. 사표를 냈더니 회사에서 너무 잘하니까 절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창세기 12장 1절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라는 이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갔는데 회사에서 그렇게 반대하는 겁니다. 그런데 뭐라고 그러던 상무님이 그러더랍니다. 부르더니만 “나는 너 같은 사람 처음 봤다. 너는 정말 너무 좋은 친구다. 너가 유학 다녀올 때까지, 대학원 마칠 때까지 2년 동안 내가 너 생활비 다 대주겠다.” 그러더랍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래서 “목사님! 저는 유학은 돈으로만 되는 줄 알았는데, 돈으로 부모님 해 드리니까 어머니도 낫고 집안도 살며, 저의 유학길도 열리고 회사도 잘 되며, 이것을 가지고 땅 짚고 헤엄치고, 누이 놓고 매부 좋고, 다 좋게 되었습니다.”라는 겁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이렇게 되었습니까? 주를 바라본 겁니다. 이 학생이 주님을 바라본 겁니다. 아프고 절망적이며, 가정, 방안에서, 마당에서 자고 이렇게 해도 늘 주님을 바라본 겁니다. 계속 주님을 바라본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우리의 길, 생명, 구원, 선한 목자가 되셔서 항상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찬송하는 것이 참 좋은 겁니다. 꼭 설교만 듣고 이렇게 해야 이게 표준 교과서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라마다 예배 순서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예배시간에 일어나서 찬송하는 것, 이것 수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제가 전 세계 좋은 나라들 많이 보면, 예배드릴 때 찬송 같이 부르고, 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너무 좋은 찬양입니다.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즐겁게 박수도 하면서.

1.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괴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 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 많은 나의 참 친구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 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 까지 

2. 예수 사랑 참 좋은 예수 사랑 예수 사랑 참 좋은 예수사랑
  세상에서 제일 가는 금으로 유혹해도 예수님만 사랑하겠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명예를 준다해도 예수님만 따라가겠네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 복음송 - 나의 참 친구♬)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믿고 사랑하며, 세상 편에 속하여 우리의 모든 것이 세상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실패합니다. 모든 아픔이 세상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루도 믿을 수 없어서 끊임없이 뉴스를 봐야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절대로 속이지 않습니다. 영원한 나의 친구 되는 줄로 믿습니다. 믿을 수 있는 친구, 참 친구는 위의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나라의 제일 큰 재벌 회장이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세상에서는 자기를 건져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살했습니다. 또 작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재벌 딸도 미국에서 자살했습니다. 천하에 없는 것 없이 다 있어도, 얼마 안 있으면 그 재산 수조 원 다 물려받을 텐데, 무엇 때문입니까? 다 있지만 외로움, 괴로움, 이 세상 믿을 수 없지 않습니까? 저도 늘 집에서 책도 많이 읽지만, 한번만 불나면 다 태워지고, 옆집에서 불나도 다 없어지지 않습니까? 매일매일 얼마나 그런 일이 많습니까? 불이 안 나도 교통사고 하나만 있어도 집에 못 들어오지 않습니까? 다 버려야 되지 않습니까? 암 하나만 걸려도 다 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순간에 무너지는 세상, 우리가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뛰어갈 때 이 얼마나 도박입니까? 2천년 동안 개인이나 민족이나 어느 누구나 예수를 따라가서 실망하고 실패하고 버림받은 사람은 지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바라보아 승리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 복음송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집에서도 혼자 부르시면 참 좋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만 알고, 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세상인데 많이 알아야지?” 하는데 아닙니다. 많이 알기는 알아도 예수 모르고 알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한 분만 확실하게 아는 것, 대단한 일입니다. LA에서 TV광고가 나왔는데 안경점 광고가 나왔습니다. 이게 전 세계 히트를 쳤습니다. 누가 가서 여러 가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다 모른다는 겁니다. “나는 안경 밖에 몰라요.” 선전을 그렇게 합니다. “나는 안경밖에 몰라요.” 그런데 전 미국에 이게 광고대상을 받고 대단했습니다. 안경집 주인이 안경만 알아야지 시장 다 알고 그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안경만 잘 팔면 되지, 무엇을 그렇게 알아가지고 말이 많냐 말입니까? 여러분! 예수만 알면 안경집처럼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만 아는 것, 이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지식을 모아도 이것을 따를 수가 없고, 모든 능력을 모아도 이것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영적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창조주를 알고, 내 구원의 주님을 알아야 인간은 능력이 있는 겁니다. 

  공산주의 보십시오. 공산주의는 지상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서 유물주의 사상을 택했습니다. 물질 편을 갔습니다. 물질이 있고, 물질이 있는 곳에 다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질 이외의 정신적인 것 다 버렸습니다. 도덕, 윤리, 철학, 지식 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무식하게 만든 겁니다. 학교,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종교,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기도가 뭐 필요 하냐, 오직 유물주의입니다. 공산주의도 마지막 칼 마르크스나 레닌의 사상은 근로자, 노동자 편에만 서 이 사람들이 지상의 낙원을 건설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지상에 지옥을 만든 겁니다. 우리 인간은 도덕적인 피조물, 영적인 피조물입니다. 문화와 예술과 가정과 인격과 삶을 다 귀히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이 모든 것이 삽니다.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곳에는 모든 것이 불이 꺼집니다. 예수님은 어떤 어두움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나는 빛이다.”라고 그랬습니다. 어두운 내 영혼까지 비추어, 내 마음의 어두움도 다 몰아낼 수 있는 능력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남편을 잘 만나도 부인의 마음의 어둡습니다. 부모님이 훌륭하셔도 자녀의 마음은 어둡습니다. 내 안을 환하게 밝혀주실 생명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만을 바라보는 겁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생활을 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그리고 하란을 떠나서 예루살렘, 이스라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 부리는 가신들, 집의 군인만 318명입니다. 다섯 식구가 살아도 1500명의 가족이, 식구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소떼, 양떼가 너무 많아 그것을 거느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조카하고 헤어지게 됐습니다. “조카야! 너 좋은 곳으로 가라.” 그러니까 조카는 소돔 쪽으로 갔습니다. 소돔은 어떤 곳입니까? 요단 강물이 흘러와서 비옥한 땅입니다. 잘사는 곳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일어나고 잘 사는 곳, 세상적으로 아름다운 곳에는 죄악도 풍성합니다.

모든 마귀 사탄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겉만 보고 그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느 쪽을 택했습니까? 아이성 쪽을 택했습니다. 벧엘 쪽, 예루살렘 쪽으로, 나중에는 헤브론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보면 제일 못 쓰는 땅이 아이성 쪽이요, 벧엘 쪽이고, 여리고 위에 예루살렘 쪽으로 올라가는 땅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푸른 들을 본 것이 아니라, 푸른 하나님을 바라 본겁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봤습니다. 땅의 부유함을 본 것이 아니라 하늘의 부유함을 봤습니다. 롯은 죄악이 관영한 곳을 봤지만 아브라함은 거룩한, 영적으로 신령한 곳을 바라 보았습니다. 롯에게 다 양보하고 이쪽을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손만대의 복을 받았습니다. 무슨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 너 가지고 가라.” 우리 성도는 항상 그런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좋아도 좋고 안 좋아도 좋고, 빼앗겨도 좋고 사기당해도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해 봐야 얼마 안 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시니까 그것은 금방 보충이 됩니다. 살이 찢어져도 새로운 세포가 나와서 금방 싸 메어질 테니까 우리는 아픔에 대해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는 곳에 항상 부유함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조그만한 것 가지고 싸웁니다. 조그마한 것 가지고 살인하고 가정이 헤어지고 파괴되는 것, 조그마한 이유 때문입니다. 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원수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생명 걸고 싸우고, 그렇게 좋아서 가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집에서 TV보면 되는데 무엇 하러 거기까지 갑니까? 골프 치러 해외로 가는 사람이 수십만입니다. 무엇 때문에 거기에 갑니까? 저는 온천을 안 갑니다. 집에서 물 데우면 다 온천인데 무엇 때문에 갑니까? 예수 계신 곳이 온천입니다. 예수 계신 곳이 골프장입니다. 예수 계신 곳이 낙원인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한사람은 육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신앙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한사람은 아래 것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세상 것을 보았습니다. 한사람은 위의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위에 계신 분이 버리면 안 된다, 위에 계신 분이 함께 하시면 된다고 보았습니다. 항상 영적인 눈을 떴습니다. 한사람은 앞에 것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잘 사는 데만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잘 믿는데 맞추었습니다. 잘 믿는데 맞추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영적으로 가는 길이 승리하는 길인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아브라함과 롯과 같이 우리의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롯의 길로 가는 사람은 지진이 일어나서 불의 심판을 받아 다 삼켰습니다. 우주에 블랙홀이 있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블랙홀은 태양 에너지의 4백 만 배 되는 거대한 힘이 있어서 별이고 무엇이고 간에 다 빨아들인 답니다. 오늘 이 세상은 블랙홀입니다. 죄악의 블랙홀입니다. 그래서 모두 길을 잃고 망하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권력도, 어마어마한 재물도, 인생도 다 삼키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죄악의 블랙홀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머리 털 하나 상함이 없이 항상 위로부터의 구원, 위로부터의 도움에 날마다 기적 속에 살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을 무시하고 세상을 사랑하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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