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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이력서 (빌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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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를 써 보셨습니까? 세상에서는 자신을 알리거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자기 이력서입니다. 전혀 모르는 그 사람을 평가하고 알기 위해서 이력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김동길 교수가 쓴 「링컨에게 배운다」라는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만도 링컨 숭배자의 수가 2백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막연하게 그를 추앙하는 사람은 물론 수천만이 되겠지만 구체적으로 그의 생애를 관심 있게 공부하며 그에 관한 서적이나 유품, 기념품 등을 재력이 미치는데 까지 수집코자 힘쓰는 이른바 팬의 수가 2백만 명은 되리라는 짐작이다.

많은 미국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최대의 꿈은 장차 링컨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살아서 인기를 얻는 직업이라는 것이 가수, 배우, 운동선수 따위고 일반 민중에까지도 투표권이 부여된 오늘날의 민주정치에서 민중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정치인이 간혹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이건 그 인기가 10년, 20년 유지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한 사람이 살고 간지 백년이 넘었는데도 그를 흠모하는 사람의 수가 아직 그렇게 많고 그 존경의 열도가 좀처럼 식어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란 결코 일시적인 조작이나 연극으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아닐듯하다" 그리고 이어서 한사람의 생애를 백년동안이나 쑤시고 파고 깎아도 여전히 훌륭한 사람이라면 확실히 그 사람에게는 무엇인가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도 뛰어난 링컨의 생애는 어떠했을까요? 1831년 23세에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1832년 24세 주의회 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 1833년 25세 사업실패로 큰 빛을 지게 되었고 17년만에 그 빚을 갚았습니다. 1838년 30세 의회 의장직에 나섰다가 낙선했습니다. 1840년 32세 대통령 선거위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 1844년 36세 하원의원 공천에서 탈락했습니다. 1855년 47세 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했습니다. 1856년 48세 부통령에 도전했다가 낙선했습니다. 1858년 50세 상원의원에 출마했다가 또 낙선했습니다. 1860년 52세 대통령에 당선했습니다.

링컨의 삶은 실패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의 링컨의 이력서는 전혀 달랐습니다.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중 피격을 당하여 사망을 하였으나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재임기간이 5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이처럼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4-6절에 사도 바울의 이력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이며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고 율법으로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이력에 대하여 설명을 마친 다음 사도바울은 대단히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7-9절 上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라고 한다면 참으로 자랑할만하고 뽐내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자신의 이력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이력이 예수님을 알아 가는데 또는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새로운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예수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의 이력서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의 이력서가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이력서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이력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이력서, 신앙의 이력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가르쳐준 나의 이력서는 어떠해야 할까요?

1. 미래적이어야 합니다.

다음주에 투표를 하여 장로로 피택된 사람은 내년 2월중 노회에서 실시하는 장로고시를 보아야 합니다. 이때 서류를 제출하게 되는데 반드시 이력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력서에 반드시 기록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 세례를 받았고, 언제 서리집사가 되었으며, 언제 안수집사가 되었고, 언제 장로로 피택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고 직위가 무엇이고 어떤 학교 출신인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학교를 졸업했으며 지금은 어떤곳 어떤 위치에 있는것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자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의 기준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사도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오직 자신은 예수 안에 있으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으니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앞을 향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3-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난 우리의 이력서는 미래적이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과거에 얽매여 산다는 것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과거의 죄에 매여 사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용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를 자꾸 들추며 사는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박수웅 장로님이 쓴「영원한 청년 박수웅의 자기경영」이라는 책을 보면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교적인 엄격함 속에서 살았던 박수웅 장로님이 예수님을 알게 된 후 어떻게 미래적인 이력서를 쓰며 살았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수웅 장로님은 예수님을 믿고 난 뒤 철저하게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박수웅 장로님은 전주고를 졸업하고 전남대 의과 대학을 수석졸업을 했습니다.

의대를 다닐 때 주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월요일마다 시험을 치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월요일마다 가장 어려운 과목을 시험쳐서 한 과목만 낙제해도 전 과목을 낙제 시키는 체제였기에 제일 어려운 과목 시험을 앞둔 주일날 공부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당시 의대 친구들은 주일만 되면 새벽부터 속옷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아 하루종일 공부만 했습니다.

그런데 박수웅 장로님은 아침 7시만 되면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 봉사를 시작으로 주일낮 예배와 대학부예배를 드렸고 찬양대 연습까지 마치고 나면 CCC에 가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와서 저녁예배를 드리고 하숙집에 오면 밤10시는 족히 되었습니다. 함께 하숙하는 친구들은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사느냐고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박수웅 장로님은 주일밤 10시에 하숙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4시에 눈을 떠서 시험이 있는 오전 8시까지 시험 범위를 한번 읽는 것으로 공부를 끝냈습니다.

이때 박수웅 장로님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그래서 한번만 읽어도 잘 기억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면서 이렇게 공부했는데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수웅 장로님이 이 책 말미에 "미래의 이력서"라는 제목으로 앞으로 있게될 미래에 대한 자신의 이력서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저는 이 이력서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내용이 전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노후를 얼마나 멋지게 설계하고 즐길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해 보고자 하는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미래의 나의 이력서를 써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우리의 이력서는 미래적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입니다. 이제는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영적이어야 합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좆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것은 하나님 중심적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것은 말씀 중심적인 것입니다. 말씀 중심적이라는 말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최초의 인간이었습니다. 아담의 거처는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불순종으로 이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하기 위하여 헛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먹음직스럽고, 보암직 스럽고, 탐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단의 유혹을 따라간 결과 모든 좋은 것을 잃어버리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쓸모 없는 것들만 소유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잘 믿고 산다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하나님 보다 자기 중심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력서는 영적이어야 합니다. 박수웅 장로님의 미래의 이력서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직장일 줄이고 복음 사역에 집중하다. 앞으로 사역에 대비 캘리포니아 신학교 등록하다. 가정사역, 평신도사역 발전하다. 내적 치유 그리스도 대사 학교 운영하다. 전세계로 사역범위 넓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우리의 이력서는 육신 적이고 썩어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영적이어야 합니다. 어느 날 장자의 제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오늘밖에 나갔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가는데 가족 그리고 모든 시시한 살림까지 다 마차에 싣고 가면서 자기 마누라는 잃어버리고 그냥 갔습니다" 제자는 자기 이야기에 스승인 장자가 놀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장자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가는데 마누라와 자녀 그리고 모든 살림을 마차에 다 싣고 가는데 자기는 빠뜨리고 가더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부터라도 미래의 나의 이력서를 기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보다 미래적이고 영적인 이력서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믿음의 이력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력서에 안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미래의 영적 이력서 믿음의 이력서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화려하고 멋지지는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나의 이력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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