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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봉사의 일 (엡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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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일 (엡 4:12)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도소국제연맹 총무로 있는 론 닉켈은 50개국의 교도소를 시찰한 바 있는데, 그 중 최고로 열악한 교도소는 잠비아의 한 교도소였다고 합니다. 너무 좁아 누울 자리가 없어 교대로 자야하고 화장실 시설도 없었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옥과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론 닉켈은 그런 견딜 수 없는 참혹한 곳에 수감된 죄수들은 악만 남아서 날마다 싸우고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곳을 방문했을 때 죄수들은 노래를 들려주겠다면서 80명의 죄수가 4부 합창으로 찬송가를 여러 곡을 불렀습니다. 닉켈 씨는 '이런 환경 속에서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찬송을 부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이들을 이처럼 하나 되게 하는 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그 때 죄수들은 닉켈 씨를 한 감방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감방 벽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인처럼 검은 예수님이었는데 얼굴과 손이 모진 노동에 시달린 험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예수님 상을 그린 죄수는 종신형을 받고 그 방에 수감되어 있다가 얼마 전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죄수 한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는 죄를 지었으니 고생을 해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찬양한 합창단 80명은 모두 교도소 목사님 덕분으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하였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세우신 목적에 대해서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라고 합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 봉사의 일
온전케하며(프로스 톤 카타르티스몬)는 외과 의학에서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할 때(마 4:21), 또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다고 할 때(갈 6:1) 사용되었습니다. 즉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적을 실현하며 성도들이 온전케 되도록 회복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모든 지체들은 동일한 머리를 가지는 동일한 몸에 속합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의 머리와 하나의 몸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괴롭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모든 언행은 교회의 몸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엡 4:5, 6) 하나되어 성도를 온전케 하는 봉사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살전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죄악을 이기기 위하여 믿음이 온전해져야 합니다. 중생한 자라 할지라도 범죄의 가능성이 있어 잘못하면 실족하여 범죄하기 쉬운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했으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라고 했습니다.
죄악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죄의 씨가 마음속에 심기워지면 그 뿌리를 뽑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다면 죄가 우리의 마음에 침범하지 못하며 또 죄가 우리의 마음을 엿본다 할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을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가 가져야 할 장비 중에서 방패에 비유했으며(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방패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의 전신을 보호하는 무기이듯이 영적 전쟁을 하는 십자가의 군사들도 믿음으로 무장할 때에 세상과 사탄을 무찌르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 군사에게 믿음이 없다면 도저히 죄악을 이길 수도 없으며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영생도 보전할 수 없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신앙으로 모든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믿음으로 무장하여 죄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환난 중에 요동치 않기 위하여 믿음이 온전해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집을 세우는 비유를 말씀하셨는데(마 7:24-27),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고 비가 오면 무너지되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고 비가와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그의 신성을 믿음으로 고백한 베드로를 향하여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반석'은 베드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가리킨 것입니다. 반석과 같은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반석과 같은 믿음의 교회는 창수처럼 핍박이 일어나고 태풍 같은 환난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보고 들었는데 하늘에 수많은 흰옷 입은 무리들이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노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계 7:9-13). 이때 하늘의 한 장로가 말하기를 이들은 환난 중에 온 자들로 어린양의 피로 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곧 천국에는 환난과 핍박에서 승리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굳게 잡아야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했고 다니엘은 사자 우리에서도 승리했으며, 폴리캅은 화형까지도 믿음으로 감수했습니다. 또한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는 죽을 때 외친 말이 '그대들은 나를 위해 타협하거나 놓이기를 구하지 말라. 나는 밀알이 되고 짐승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내 육신은 짐승의 뱃속에 무덤으로 화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굳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만 소유한다면 불이나 짐승의 이빨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주께서는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목숨을 도로 찾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0:39).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믿음이 온전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었을 때 싸워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시험에 들기 전에 방지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한번 시험에 들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그 어려움은 자기 자신만 겪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의 성도들이 같이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마 26:41). 이렇게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시험에 들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없을 때 다들 제 갈 길로 갔습니다.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믿음이 있고 성령이 함께 했을 때 세상에 대하여 담대했으며 사탄도 그들을 시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행 2:1-47).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직 믿음을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봉사의 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말은 교회를 건물로 비유했던 표현과 관련 됩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영적 성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에 대하여 먼저 '터'로서의 사도와 선지자를 말합입니다. 사도와 선지자는 모두 가르치는 직책을 맡은 자들로서 영적 성전은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 위에 세워집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부르시고 선택하셨으며 그의 이름으로 가르치도록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따라서 '터'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교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모퉁이돌로서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모퉁이돌이 건물의 구조를 지탱하고 결합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성전'의 구조가 함께 결합하고 또한 이루어져 갑니다.

모퉁이돌은 기둥을 떠받들고 집을 견고하게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만일 집에 모퉁이돌이 없다면 그 집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모퉁이돌은 건물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기둥 밑에 묵묵히 자기 직분을 감당하는 것으로 자족해 합니다.

모퉁잇돌은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집의 모서리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벽과 벽을 연결하며 서로 밀착되도록 역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모퉁이돌의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성전의 모퉁이돌이요 주춧돌입니다. 그는 교회의 뿌리요 근본이요 시작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를 산 돌이라고 합니다.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천대받은 그가 하나님께는 높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말구유에서 탄생하셔서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수고하셨으며, 종국에는 죄인들을 위해 그의 온 몸을 내어주셨건만 사람들은 그를 미천하게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켜 그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으며 생명의 주로 세우셨습니다(행 2:24, 28).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에게만 생명이 있고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건축자의 버린 돌이 생명의 돌이 된 것입니다.

  건축을 짓기 위해서는 목재이든, 석재이든, 철재이든, 그리고 그 밖의 어느 것이든 그것들이 서로 잘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건물의 생명은 연결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모퉁이돌은 벽과 벽을 하나로 굳게 연결해 주며 이는 모든 자재들을 연결케 하는 중심이요 근원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성전의 자재인 성도와 성도를 잇는 역할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동과 서, 남과 북이 연결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성전은 지어져 갑니다.

또한 건축 재료로서의 성도를 말씀합니다. 한 채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여러 자재가 잘 혼합되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집을 짓는 데는 신령한 자재가 있어야 합니다. 곧 성도들이 기둥도 되고 벽도 되고 해서 집의 각 부분을 담당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모여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건물을 짓는 데는 철근, 나무 등 재료가 필요하듯이 '영적 성전'에서는 성도 각 개인이 재료가 됩니다. 어떤 성도는 '철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성도는 '나무'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재료들은 모퉁이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하여 온전한 성전을 이루어 갑니다.

그리고 상주하시는 이로서의 하나님과 성령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듯이 영적 성전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영적 성전은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인격자를 중심해서 구성된 유기체적 성격을 가지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점차로 지어져 가는 특징을 갖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봉사의 일을 잘 감당 합시다.

  일하며 섬시는 봉사의 일

봉사(디아코니아)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롬 12:7)하신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하며 섬기는 봉사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고 구원받았습니다. 충실한 청지기는 주인의 소원과 뜻에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선교사의 4대손인 스티브 린튼 박사는 최근 자기의 삶을 나귀의 삶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선교사의 삶은 주인이 실어주는 짐을 싣고, 주인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그 짐을 그 곳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나귀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티브 린튼 박사는 지난 수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사랑의 구호품을 싣고 북한으로 가서 그 곳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나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스티브가 오늘 날 하나님이 쓰시는 충실한 나귀로 만들어지는 데는 10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895년 4월, 스티브의 외고조부인 유진벨 목사 부부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들 부부는 평생을 목포, 광주 지역에서 선교하다가 한국에 묻혔습니다. 벨 선교사 부부의 딸인 사로트는 윌리암 린튼 선교사와 결혼하여 일생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들 2세대 선교사 부부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스티브의 부친인 휴 린튼이었습니다. 스티브의 어머니 로이스는 순천 기독 결핵 재활원의 원장으로 평생 결핵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로이스는 최근에 호암상을 수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코 선교사가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나라에 가서 일 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고 따른 것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 질그릇일 뿐입니다."(예화뱅크ㅡ 봉사의 사람 스티브 린튼 박사)

조지 뮐러에게 어떤 사람이 그의 봉사의 비결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죽었던 날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는 그의 얼굴을 거의 마루에 닿을 정도로 낮게 굽혔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조지 뮐러라는 내 자신에게 죽고 또 나의 의견과 선택과 취미와 내 뜻에 죽고, 내 형제나 친구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의 찬성과 비난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찬성과 비난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는 나는 다만, 내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만을 받도록 배워 왔습니다"라고 첨부해 말하였습니다.
봉사는 자기를 죽임으로써만 됩니다.
성도를 온전케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일하며 섬기는 봉사의 일을 하며 1907년 처럼 다시 부흥하는 일에 동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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