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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마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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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장 13절)

우리를 넘어 뜨리는 우상, 유혹과 욕망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쉼없이 기도해야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는 대표적 무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음에 욕망이 있는 곳에 유혹이 있다

유혹의 뒤에는 항상 우리를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는 마귀의 흉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담 부부에게 욕망의 눈을 뜨게 한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기록한 것을 보십시오.

탐욕이 있는 곳에 유혹은 쉽게 침투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탐욕을 심어주고 난 다음에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마귀가 이끄는 대로 남편에게도 주매 아담도 그것을 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똑같은 수단을 예수님께 사용했을 때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나아지려는 욕망도 탐욕도 없으므로 유혹이 예수님을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서 11절을 보면, 마귀가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을 육신의 정욕을 가지고서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해서 구복을 채우는데 사용하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권능을 사용해서 자기 구복을 채울 욕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단호하게 마귀의 유혹을 거절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마귀는 안목의 정욕을 가지고 또다시 유혹을 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라! 기적을 행해서 사뿐히 땅위에 뛰어 내리면 수많은 사람이 너를 보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대가로 명예와 지위를 얻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명예를 얻으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도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서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말하기를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천하 부귀영화 공명을 얻겠다는 탐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유혹 역시 효과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마음속에 탐욕이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유혹이 다가와도 예수님은 요지부동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마음의 보좌를 점령하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9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유혹할 때 즐겨쓰는 네 마디 말이 있습니다. 첫째 말은 “이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인데 유혹의 첫 걸음을 사소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딱 한 번인데 뭘 주저하느냐. 한번만 죄를 짓고 그 다음에는 안 지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번 죄를 짓고 나면 “너 한번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별도리 없다”며 두 번 세 번 자꾸 끌려 다닙니다. 셋째는 “너는 아직 젊어” 이렇게 말하면서 유혹을 끊기로 결단하려는 마음을 미루도록 합니다. “아직 젊은데 뭘 유혹을 끊고서 세상을 등지고 살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말에 넘어가 젊은 시절을 허송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넷째는 “누구나 이렇게 사는데 너라고 해서 뭐가 특별하냐? 너도 일반 사람과 같이 보통으로 살아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 뒤에는 항상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면 그때부터 파멸이 시작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2. 욕망이란 우상

욕망이라는 우상을 우리 마음속에 세워 놓으면 그 우상에 절하고 유혹에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인물도 잘나고 키도 크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아말렉을 쳐서 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보내어서 사울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을 쳐들어와서 멸망시키려던 아말렉을 기억하노니 사울은 가서 아말렉을 쳐서 아각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과 모든 짐승을 다 멸하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아말렉을 친 후 그 아각 왕을 사로잡고 소유물도 다 멸하지 않고 그중에 좋은 것은 남겼습니다.

사무엘상 15장 9절을 보면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에게 탐욕이 들어와서 탐욕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 변명했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야훼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삼상 15:15)

사무엘이 “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아각과 살찐 짐승을 살려왔냐”고 하자 사울은 백성들이 좋은 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끌고 왔다고 변명합니다. 일단 욕심이 생겨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 행동을 타당화하기 위해서 사울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엄중하게 심판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사무엘이 이르되 야훼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사울을 버려서 다시 왕이 되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탐욕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이 끄는 대로 욕심을 따라 행하게 되고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탐욕의 우상에 무릎을 꿇고 탐욕이 시키는 대로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의 일선에 세워 칼에 맞아 죽게 하였습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다윗의 집안에는 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친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켜 맨발로 보좌에서 쫓겨나는 비극이 생겼고, 형제들끼리 싸워서 죽이는 비극이 그 가정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유혹을 우상으로 삼아서 유혹에 넘어지게 한 다음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권력과 돈을 사랑해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 될 줄 알았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겠다고 하자 화가 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서 권력과 돈을 얻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음에 권력이나 돈을 탐욕하던 가룟 유다였기 때문에 그 틈을 타서 마귀가 그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준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14절로 16절에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 삼십이란 그때 종의 몸값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보좌를 점령하면 사기, 협박, 불법, 폭력, 부도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 범죄로 말미암아 일생이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이란 다시 말하면 유혹입니다.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만 유혹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도 유혹에 떨어졌습니다. 사울 왕도 유혹에 떨어졌습니다. 다윗 왕도 유혹에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도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에 넘어지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 중에서 매일같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3.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시험 즉, 유혹에 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기로 마음속에 결심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기로 마음에 작정하면 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10장 12절은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야훼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마음에 결정을 해야 유혹이 달라붙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떡, 명예, 부귀영화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탐욕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탐욕이 예수 그리스도를 끌고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나를 거룩하게 하신 것을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항상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모습 즉 나의 새로운 신분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을 바라보십시오. 새사람을 믿으십시오. 새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탐욕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갈아입는 일을 매일같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기에서 옛사람이 죽은 것을 생각하고 새사람이 된 것을 항상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꿈꾸고 새사람이 된 것을 믿고 매일같이 입으로 이것을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새로워져야 되고, 자화상이 새로워져야 되고, 믿음이 새로워져야 되고, 말이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복하므로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여러 형태의 유혹을 만날 때 우리는 유혹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인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고깃덩어리를 바라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우리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항상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시편 1편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말아야 되고 죄인이 가는 길에 서지 말아야 되고 오만한 자가 앉는 자리에 앉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꾀를 피하고 길을 피하고 자리를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유혹 속에 들어 앉아서 유혹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해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유혹이 되는 친구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서로 권고합니다. 서로 격려합니다. 서로 위로합니다. 서로 힘을 더하여 줍니다. 그래서 서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죄의 친구를 만나면 자꾸 유혹합니다. 자꾸 죄를 짓게 합니다. 친구와 함께 뒤로 물러가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려면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됩니다. 유혹이 되는 친구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유혹이 들지 않게 주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로 41절에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유혹이 다가오거든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강도를 만나면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치는 것처럼 우리는 유혹을 만나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는 말씀처럼 유혹에 들지 않게 기도하십시오. 부르짖고 대적하면 유혹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유혹이 바로 마귀의 촉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유혹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지위를 주겠다. 명예를 주겠다. 권세를 주겠다. 돈을 주겠다. 영화를 주겠다. 쾌락을 주겠다”고 온갖 달콤한 약속을 다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그러나 일단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때부터 무서운 지배자가 되어 우리를 사정없이 죄악으로 끌고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일단 유혹의 욕심에 넘어지면 그 결과는 돈도 명예도 건강도 가정도 짓밟혀 죽음의 고통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보고 매일같이 시험 즉 유혹에 빠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유혹을 당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마귀가 항상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우리가 사는 환경 속에 24시간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유혹의 무서운 배후를 알고 항상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중심으로 서서 유혹을 대적하고 유혹에서 이겨나도록 늘 기도하여 승리하는 주님의 백성이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는 유혹을 당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우리 옛사람을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새롭게 된 나를 생각하고 나를 꿈꾸고 시인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유혹을 이기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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