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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우리는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까? (합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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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까? (합 3:2)

모든 설교자가 그렇겠지만 설교가 기도하는 가운데 준비하고, 설교를 하기 전에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여, 능력을 주옵소서. 말씀을 잘 증거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설교의 원고에서 보혈의 능력을 뿌려주셔서 이 설교가 복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듣는 자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져서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회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영을 위해서 기도하고, 설교하는 목사를 위해서도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부흥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시대는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어느 시절보다도 부흥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부흥을 달라는 끌어오르는 간절한 기도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 오늘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육신의 풍요로움, 육신의 안락함, 물질의 풍요로움. 이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목마름을 무관심하게 만들어버리고, 나태하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잠들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영적인 위기라고 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을 갈망하고 부흥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 오늘 이 시대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위기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부흥을 향한 목마름이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가장 큰 위기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왜 그토록 부흥을 갈망해야 하는가를 말씀드림으로 우리 모두 부흥을 진심으로 갈망하고, 진정한 부흥을 우리에게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정말 하나님 앞에 부르짖음으로 부흥을 경험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부흥이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부흥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왜 우리는 그토록 부흥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까? 부흥이란 한 마디로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회복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7:5-6에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고 합니다. 생기가 들어가서 살리는 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을 죽어가는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마치 불이 꺼져가려고 가물가물하고 있을 때 다시 기름을 부어서 활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바람만 불면 꺼져버릴 수 있는 그 불에 기름을 부을 때 확 다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꺼져가는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기름이 부어져서 우리의 믿음과 영이 확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이란 교회와 성도 개개인이 생명력을 잃고 시들어서 능력을 상실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기고 소생시키시고 생기를 불어넣어주시고, 능력을 다시 주셔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로 하여금 저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사역이 바로 부흥인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해서 부흥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강력하게 보내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험케 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이 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1-4에 보면 백이십명의 서옫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열흘만에 오순절에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는데 강한 바람같이 불의 혀같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그토록 간절하게 부흥을 갈망하고 간구하고 사모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가 부흥을 갈망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는 주의 일을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내에 나타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나타내 주셔서 부흥을 경험하게 해달라고...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너무나 간절하게 이스라엘 공동체의 부흥을 갈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왜 하박국 선지자가 왜 이토록 부흥을 갈망했는지를 깨달아서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하박국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바국이 되어야 합니다. “주여,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정말 이곳에 하나님을 나타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그토록 부흥을 갈망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에게 부흥이 임할 때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우리의 믿음이 좋은 믿음으로, 강건한 믿음으로, 확신에 찬 믿음으로 회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문제 중에 중요한 문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문제요, 저와 여러분의 개개인의 문제입니다. 교인들이 예수를 믿기는 믿으나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불가지론자와 같은 모습으로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모습을 나타낼 때가 많습니다.
입으로는 믿으나 행위로는 믿지 않는 모습을 나타낼 때가 많습니다. 명목상의 크리스챤이 이 땅에 너무나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말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현대 크리스챤들에게도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경험하므로 영적인 사실들이 우리모두에게 실재로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어떤 이유를 붙일 수도 없습니다.

내 맘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경험되어지고, 알게 되어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풍성해지고 충만해 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영적인 것에 대해서 수백번, 수천번 들었으나 귀로 머리로 들었지, 가슴으로 듣고 깨닫지못했던 것이 부흥이 임하면 그것이 나의 말씀으로 확실하게 깨어쳐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흥이 임할 때 우리의 믿음이 확고해 집니다. 우리의 믿음이 분명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많이 깨달아지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믿음이 확고해지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갈수록 살기좋은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말세가 될수록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떨어지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확신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왜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 확고한 믿음, 하나님을 바로 알고, 정말 우리의 믿음이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로 믿기 위해서 부흥을 갈망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 부흥이 우리에게 임할 때 성도 개개인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확실히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회심은 우리 일생의 전환점이 되는 너무나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구원받은 성도이면서도 자신이 구원받았음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게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부흥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깁니다.

그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고,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마음으로는 믿어도 입으로는 시인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 일어나는 가장 큰 문제는 구원의 기쁨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51:12에서 “주여, 내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즐거움이 있습니까? 교회를 다니면서 여러분에게는 어떤 즐거움이 충만합니까? 오늘 우리가 교회를 다녀도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면 그 속에 구원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목사님, 기도했더니 이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이게 되었습니다. 저게 좋게 되었습니다.’ 이정도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시고, 그분으로 통하여 내가 의로워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놀라운 감격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더라는 겁니다.

현대 교회 안에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명목상의 크리스챤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희미한, 구원을 받았음에도 확신이 없고, 회심의 경험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부흥이 성령으로 임하실 때 그 사람은 회심을 경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심을 믿고,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내가 확실히 믿습니다라는 확신이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겁니다.

내가 오늘 죽어도 내일 아침 천국에서 눈을 뜰 것을 확실히 믿게 되는 겁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부인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목사님의 아내가 되어 목사님을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이 언제 회심을 경험했느냐? 목사 사모가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어느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말씀이 가슴에 확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은 1721년 18살 때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분이 디모데전서 1:17을 읽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사로잡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각이,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감각이 그의 영혼 속으로 쓰며 들어왔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은혜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파묻히고 싶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경험하고 너무나 너무나 좋아서...

조지 휘필드 목사님은 1735년 21살 때 사순절 기간동안 가장 간소한 음식을 먹고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침내 어느날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 때 그 수간에 그는 애통하는 영이 나에게서 떠나가고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노라고 고백하게 되었고, 얼마동안은 어디에 가던지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을 경험하는 역사가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1783년 35살 때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1783년 5월 24일 9시 15분에 그는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목사의 아들로서 이미 오래전에 선교사로 미국에 갔다 오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후인 35살의 나이에 어느 교회 모임에 참석했다가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들어갔을 때 어떤 분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습니다. 9시 15분 즘 되었을 때 그가 계속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때 이상하게 그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자신을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그의 가슴속에 확 일어났습니다. 그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죄가 모두 씻어졌고 내가 의롭게 되고, 사망의 법에서 내가 해방되었다는 확신이 너무나 강력하게 그의 가슴에 파고 들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1738년 5월 24일 9시 15분 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날부터 웨슬레는 달라졌습니다. 88세에 하늘나라 가기까지 매일 새벽4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말을 타고 온 영국을 돌아다니며 4만번 이상의 설교를 하고 18세기 부흥의 기초를 낳았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흥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믿게 되고, 내가 구원받았음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부흥이 임할 때 구원의 확신이 경험되어지는 겁니다.우리에게 구원의 즐거움이 넘치게 되는 겁니다. 그 때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보다 더 중요한 구원의 갈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 내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심을 믿게 하시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확신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복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껏 교회와서도 내 육신의 삶을 좀 더 낫게 해보려는 기도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셋째, 부흥이 임할 때 우리는 죄를 회개하게 되고, 자복하게 되고, 죄와 싸우는 성화의 삶을 비로소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우리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사야 6:5에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역사적으로 굉장한 어려움이 다가오던 그 때 청년 이사야가 성전에 엎드렸을 때 하나님의 부흥이 그곳에 찾아왔습니다.

부흥이 뭡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이 부흥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이 스랍으로 날개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의 광채가 이사야에게 비춰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사야에게 임했습니다. 그 때 부흥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그에게 임했을 때 이사야에게 나타난 가정 첫 번째 행동은 이러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소이다.’ 나는 너무나 추하고 더루운 자식입니다. 하나님 나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하며 하나님의 영광앞에 고꾸라졌습니다.

여러분 이사야가 무슨 도적입니까? 강도짓을 했습니까? 사기를 쳤습니까? 그 당시에 어떤 사람보다도 경건하게 살고, 말씀대로 살았던 이사야입니다만 하나님의 영광이 그를 비추고 하나님의 부흥이 그에게 임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앞에 이사야는 자신의 너무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토하고 고백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주시고 씻어주시고,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부흥이 임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따라합시다.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회복되어집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살지 못합니까? 부부가 부부로서 살지만 어떤 부부는 전혀 생명적인 관계가 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너무 많습니다. 법률적인 부부입니다만 부부로서의 아름다운 사랑과 생명적인 교제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크리스챤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지 못하면 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로막아서 우리는 너무나 건조하고 너무나 답답하고, 너무나 괴롭고 은혜가 없는 그런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며 하나님과 나를 가로막던 죄가 보여 그 죄를 자복하도록, 그 죄를 토해내도록 역사하는 겁니다. 죄가 자복되어질 때, 죄가 토해질 때 그 때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리웠던 죄가 이제는 씻어질 때 비로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 때부터 영육간의 축복이 쏟아지는 겁니다.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죄를 토해낼 때 비로서 내 심령의 변화, 내 삶의 변화, 내 인격의 변화가 오게 되는 겁니다. 저는 며칠전 어떤 책을 보면서 은혜로운 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피터 드렉커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과 다른 사람들이 내 안에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너무나 귀한 말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흥이 임할 때 죄를 회개하고,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거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 때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삶으로 변화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할 뿐이지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제는 이것에 종지부를 찍으십시오. 부흥을 갈망하고, 부흥이 내게 임함으로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게하여 주시옵소서. 부흥을 통해서 우리에게 회복되어진다는겁니다.


넷째, 부흥이 임할 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오만여 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얼마나 무기력합니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도처에 부정과 부패가 난무하고, 너무나 무기력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잠자는 교회요, 생명력을 상실하고 세속화되어가고 있는 교회, 마귀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교회,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

교회가 회복되지 못하면, 교회가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면 교회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부흥을 통해서 비로소 교회가 교회다워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바로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나라와 민족이 삽니다. 그런데 축복의 통로인 교회가 지리멸멸하고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병들어 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하박국처럼 하나님 앞에 부흥을 달라고 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섯째, 부흥이 임하면 세상이 변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갑니다.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그 땅에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부흥은 영적인 축복일 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육의 축복도, 땅의 축복도 함께 가져온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흥이 임하면 악한 영들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도망가게 됩니다. 마귀의 세력이 그 땅에서 물러가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콜로라도의 스프링스 시티에 케더 헤븐 목사님이 들어가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성령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도시는 정말 마귀의 도시오, 악의 도시오, 마귀의 도시오, 동성연애의 도시오,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흥이 그 교회를 통하여 일어났을 때 그곳의 모든 악의 세력이 물려가게 된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스프링스 시티 안에는 세계적인 기독교 단체가 하나씩, 둘씩 들어와 이제는 기독교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원래 그 땅은 무당들이 판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새 생명 교회 성도들이 매일 그 무당 집을 찾아가 집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이 가정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이 물러가게 하옵소서.” 몇 달이 지나자 무당들이 그 땅을 떠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통하여 세상이 변화되고, 세상이 하나님을 통하여 복을 받는 위대한 자리로 나타나는 겁니다. 1904년도에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곳에는 부흥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에반 로버츠를 통하여 강력한 부흥의 역사가 그 도시를 휩슬었을 때 술집들이 백프로 문을 닫았습니다. 댄스홀이 문을 닫았습니다. 도박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할렐루야! 완전히 악이 소멸되고 소각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술집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 어떤 희망이 있습니까? 어떤 정치지도자가 나와서 이 세상을 바꿉니까? 어떤 기업가가 나와서 이 땅에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이 땅의 소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죄악은 갈수록 포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가정으로까지 무서운 죄악이 쓰며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부흥이 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능력의 사람들로,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나타날 때 이 땅을 어지럽게 만들고 어둠을 주관하던 세력이 이 땅에서 물러가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입니까? 마귀를 대적할 때 골리앗을 대적하던 다윗의 모습으로 써 있습니까? 우리에게 부흥이 임하지 않으면 연약한 계집아이 앞에서 세 번씩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의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교인은 억만명이 있어도 마귀는 꼼짝하지 않습니다.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같은 믿음을 회복할 때, 부흥이 임하고 성령이 충만할 때 그는 골리앗도 물리치는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다시 말하면 포항도시와 우리의 가정을 복되게 하고, 이 땅과 이 민족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목마르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축복의 땅을 물려주기 위해서 부흥을 갈망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박국은 부르짖습니다. 주의 일을 수년내에 부흥케 해달라고...오늘날 부흥관이 많이 잘 못된 것은 주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을 부흥케 해달라고, 본질적인 부흥의 갈망보다는 부흥의 결과를 통해서 내가 이익을 취하려는 그런 목마름이 많습니다.

하박국은 기도했습니다. 오늘 이 기도를 놓치지 마십시오. “주의 일을” 주의 일을 부흥케 해 달라고...영적인 도전이 되어서 우리가 변화받아 하박국이 되어 하박국처럼 기도함으로 우리 교회와 포항도시와 이 민족에게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고 목격하고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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