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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모세는(1) (히 11: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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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모세는(1) (히 11:24~28)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지난 6월 7일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미국 하버드대학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중퇴한 지 32년 만에 명예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기념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Crimson 誌(하버드대학 학생신문)가 저를 '하버드 대학교의 가장 성공한 중퇴자'라고 불러줘서 행복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빌 게이츠(Bill Gates)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이며 오늘날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하나로 우리나라 삼척동자도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공한 인물입니다.

빌 게이츠는 1973년 모든 사람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하버드 법대에 입학을 했지만 1975년 학교를 중퇴합니다. 하버드대학 재학 중 '컴퓨터'라는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3학년 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를 창립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컴퓨터 사업을 할 텐데 굳이 법대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남들은 다 미쳤냐고 했겠지요. 특히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명문 중의 명문 하버드 법대에 입학한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그가 법대를 졸업해 성공한 법조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고 하는데 이런 아버지의 꿈을 무참히도 깨버린 불효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기업이 되었고 회장인 빌 게이츠 또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부자인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기부금을 많이 내는 존경 받는 부자입니다. 그래서 하버드대학은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준 것이고 졸업식장에서 졸업생과 동문들 2만 명이 그의 연설이 끝나자 5분간이나 기립박수를 보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따지는 것 중 하나가 소위 '가방끈'이라고 부르는 학력입니다. 그야말로 온 사회가 다 '학력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공부 많이 하고 학력 높은 사람이 무조건 능력도 좋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학력위조' 파문을 보면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 교수나 예술가, 연예인, 심지어 승려와 목사까지도 관련되어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 다른 모든 직업뿐 아니라 목회자를 찾을 때도 이 '가방끈'을 가장 먼저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학력과 능력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영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부 많이 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학력 높은 사람이 오히려 신앙생활을 더 못할 때가 있는데 그 까닭은 자기 '자신'을 너무 믿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 각계각층에도 학력파괴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이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으면 대학교수도 되고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나아가 빌 게이츠라는 인물은 얼마든지 법대를 졸업하고 법조인으로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었지만 과감하게 그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고생길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왜 사서 고생을 한 것일까요? 그것은 더 큰 미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내가 가는 길도 비교적 '괜찮은' 길입니다. 꽤 큰 성공이 보장된 길입니다. 편안한 길이요 쉬운 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어려운 길을 택해 과감하게 모험을 한 것입니다. 거기에 더 큰 길, 더 좋은 미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더 큰 미래를 꿈꾸며 나아간 이 모험의 길이 오늘의 세계 최고의 기업과 가장 성공한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사실 빌 게이츠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컴퓨터 산업은 이제 막 시작된 미래가 불확실한 분야였습니다. 제 기억으로 컴퓨터를 전공하던 형님이 1980년쯤 애플Ⅱ라고 부르는 아주 단순한 청계천 조립 PC를 집에 가져왔는데 그 때 겨우 시작된 컴퓨터라는 분야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이제 설교 준비도 PC 없이는 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고, 인터넷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도 못하고, 컴퓨터 없이는 아예 세상이 안 돌아갈 정도가 되었습니다만 1970년대면 사람들이 컴퓨터라는 것이 있는지도 잘 모르던 시대라는 말입니다.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하는 그 때,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컴퓨터의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현실을 포기하고 모험을 떠난 빌 게이츠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위대한 사람들은 현재의 작은 성공에 만족하거나 지금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진리가 오늘 우리의 영적인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성경은 우리에게 "도전하라"고 명령합니다. 성경 자체가 도전의 정신입니다. 성경은 지금의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말고, 쉬운 길로 가려고만 하지 말고,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더 큰 미래를 향해 도전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이 '현실안주'라는 함정에 신앙의 인물 중에도 빠졌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예가 바로 변화산에서의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십니다(막 9:2 이하). 예수님은 세 제자 앞에서 찬란한 모습으로 변모되신 후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시는데 이 얼마나 환상적인 장면입니까? 베드로는 이 장면에서 너무 황홀하고 감격한 나머지 주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주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너무 좋사오니 여기서 영원히 살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저는 세 분의 종이 되어 잘 모시겠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황홀한 고백에 주님이 어떤 대답을 하셨는지는 성경에 안 나옵니다. 그러나 곧이어 예수님과 세 제자가 산에서 내려왔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보면(막 9:9) 주님은 이 제안을 거절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님은 그 산 위에 안주할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초막에서 베드로의 시중이나 받으면서 편안하게 머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행이 산에서 내려오자 산 아래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찾아온 아버지입니다. 주님은 또다시 귀신을 쫓고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피곤한 삶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혹시 베드로의 고백처럼 산 위에 머물러 계셨다면 참 편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베드로의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말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신앙의 자세를 보여주며 산 아래로 내려간 주님의 뜻은 그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작은 편안함이나 성공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과 내게 보여주신 더 큰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해 모험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편안함과 손쉬운 성공의 길을 포기하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비록 그 길이 너무 멀고 험해 보여도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내게 보장하신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 길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 그리고 내가 본 그 길을 향해 과감히 떠날 수 있는 자세, 내가 현재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을 포기하고 갈 수 있는 자세, 이것을 오늘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모세가 바로 그런 길을 간 사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세를 영적 세계의 빌 게이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늘부터 이 모세의 믿음, 모세의 모험에 대해서 두 차례에 걸쳐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과 25절을 함께 읽습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본문은 모세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앞서 23절에서 모세의 부모의 믿음을 다루면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곧바로 모세가 자란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장성한 모세가 한 일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고난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모세의 정체성

첫째로, 모세가 어려서부터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랐는데 어떻게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 보면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서 모세를 건져낸 후 아들로 삼았다는 내용(출 2:10) 후에 곧바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역하는 곳에 갔다가 애굽 사람이 동족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를 죽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11절). 따라서 이 때 모세는 이미 자기가 애굽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모세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는 것이지요. 우리는 성경에 비록 그 내용이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 7절부터 보면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건져낼 때 이를 지켜보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공주에게 가서 "그 아이가 히브리 사람의 아이니 히브리 여인 중에 유모를 불러다가 아이의 젖을 먹이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모세의 친어머니가 모세의 유모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요. 바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모세를 기르면서 가르쳐준 것입니다. "너는 비록 애굽 궁전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라지만 절대 애굽 사람이 아니다. 너는 히브리 사람이다."라고 말입니다. 보통 애굽에서는 유모가 아이를 맡으면 자기 집에 데려가 키우다가 4년쯤 후에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친어머니가 모세를 맡아 기른 이 4년 정도의 기간은 모세의 인생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약 3년 동안에 그의 인생의 가치관의 50%가 정립된다고 합니다. 이 기간은 모세의 80년간의 훈련기간, 즉 40년 동안 애굽의 궁전에서 왕자로서 받은 궁중훈련과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받은 광야훈련 못지않게 그의 인생의 방향과 가치관 형성에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자녀를 키울 때 이 첫 3~4년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 때 자녀들을 기도로 키우고 믿음으로 교육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너무 어려서 뭘 알아듣겠나 싶어도 이 때 받은 교육이 평생의 인격과 무엇보다 신앙을 좌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시기를 놓쳤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 시기보다 조금 효과는 떨어질지 몰라도 아이가 자라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부모가 뒤에서 기도하고 영적인 교육을 하면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특별히 모세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가르치십시오. 이것을 교육학에서는 전문용어로 '아이덴티티(identity)'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정체성'이라고 번역합니다. 내가 누구냐는 것이지요.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이 정체성을 깨닫게 해야 자녀교육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어린 모세에게 "너는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identity)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자라서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보고 그냥 참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이 정체성이 분명하면 모세처럼 실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자꾸 이 정체성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너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이 정체성을 심어주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애국심이 저절로 생겨서 "그렇다면 나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학교도 학생들에게 자꾸 "너는 명문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다."라고 심어줍니다. 나중에 커서 뭔가 학교를 빛내는 일을 하라는 뜻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지요. 내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필요합니다. 내 교회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인 정체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우리 자녀에게 어떤 정체성을 심어주어야 할까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너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살아도 예수를 위해 살고 죽어도 예수를 위해 죽고,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부도 그냥 무조건 시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출세하고 성공하려면 공부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 영적인 정체성이 있는 성도와 없는 성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모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아 이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길을 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너는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사람이 되어라." 하고 가르치면 나중에 정말 그런 사람이 됩니다. "너는 절대 손해 보지 말고 약삭빠르게 행동해라." 하고 가르치면 나중에 정말 거짓말을 하던 남을 속이던 수단방법 안 가리고 손해 안 보는 사람이 됩니다. "너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라." 하고 가르치면 나중에 정말 그런 사람이 됩니다. 온갖 좋은 것도 다 포기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사람이 됩니다. "네가 좋은 것 포기하고라도 손해 보고라도 그 길을 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주신다." 하고 가르치면 정말 그렇게 사는 모세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정말 그 길을 간 것입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교육 때문입니다. 분명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입니다.

너는 누구냐?

이제 오늘 말씀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모세에 대해 첫째 질문만 했으니 다음 주에 계속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을 하고 대답을 찾아보기로 하지요.

오늘 성경은 모세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 안에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다면,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있다면 나는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했어도 "너는 누구냐?"고 했을 때 "나는 나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하면 나는 그 수준에 맞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면서도 나 자신만 위해, 성공만 위해 사는 것이고 그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이익을 위해서라면 예수 믿지만 얼마든지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죄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너는 누구냐"라고 물을 때 "나는 히브리인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모세처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서 고생하는 길로 갈 수 있는 것이고, 성경이 "너는 누구냐?" 하고 물을 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고 대답하면 현재 누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모든 보장된 성공과 편안한 길을 버리고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주님이 가라고 하는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빌 게이츠는 왜 법조인으로 성공이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불확실하고 힘든 컴퓨터라는 분야로 뛰어들었습니까?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미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빌 게이츠보다는 꿈이 더 커야 하고, 더 큰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미래입니다. 이 길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을 가면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상급이 있음을 믿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실을 못 믿고 "난 절대 손해 안 볼 거야. 절대 힘든 길로 안 갈 거야." "나는 예수는 믿지만 그 길만은 못 가겠어." 하면 그것이 바로 불신앙입니다. 그 좁고 험한 길 앞에 있는 큰 상급을 못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인 눈멂입니다. 소경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이것을 보고, 믿고, 결단하고, 가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모세처럼 그 믿음의 길을 가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모두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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