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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드림의 은혜 (고후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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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의 은혜 (고후 8:1-8)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매주 주일 설교를 통해서 기독교의 역설의 진리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누는 역설의 진리들은 가장 예민한 주제가 될것같습니다.
종종 우리는 교회 속에서 편견과 한쪽으로 치우친 믿음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물질과 관련된 믿음입니다. 어떤 분들은 물질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합니다. 물질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는 목사가 바른 목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정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물질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바른 가르침과 교훈들이 교회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가 하나님의 사랑의 사람인가”를 새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돈과 소유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의 관심은 얼마나 많이 소유할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세상의 관심은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주는데 있고 드리는데 있습니다. 세상 사람의 관심은 양에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내면의 동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손에 얼마나 들고 있는가를 묻지만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나눠주고 있는가를 관심갖는 것입니다.세상 사람들은 돈으로 위안을 얻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돈이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물질에 대한 많은 말씀을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기록한 바울도 오늘 고후8-9장 2장에 걸쳐서 물질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바울도 물질의 주제가 중요한 주제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목회자로서 드리는 일에 대해서 나 자신은 분명히 믿음으로 감사하여 순종으로 드리면서 기쁨과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회중 앞에서 광고하고 설교하고 재촉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마음의 부담이 많습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에서 돈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은 더럽고 추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에서 물질을 말하면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돈을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닙니다. 돈 그 자체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문제는 돈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가 문제입니다. 돈이 선한 그리스도인에게 들어가서 선하게 쓰이면 좋은 것이고 강도에게 들어가서 악하게 쓰이면 나쁜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아주 강조점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많이 소유하는 문제가 아니고 소유한 것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돈을 많이 벌지 말라,돈을 적게 벌라,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번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은혜가 넘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나타나는 모습 중의 하나가 바로 물질을 다루는 삶의 모습입니다. 과연 얼마나 물질에 대해서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하신 말씀이 많습니다.

사람의 헌금생활은 신앙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다루어가시고 하나님께서 결국은 열매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의 헌금 생활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반응의 양식으로 나의 영적상황을 바로 알 수 있는 바로메터입니다.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를 점검하는 도구중에 하나가 바로 드리는 헌신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성도가 건강한 성도인가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신의 모습 한가지를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오른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앞에 마게도냐 교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좋은 점들은 우리가 서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취할 것을 취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연보에 있어서 마게도냐 교회의 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마게도냐 교회는 드림의 은혜가 있었던 교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드림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 드릴 수 없는 속에서도 자원하여 드립니다.

1-2을 보십시오
본문에 소개되는 마게도냐 교회는 드릴 수 없는 형편의 교회였습니다. 그 드릴 수 없는 정황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너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있었던 교회”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어떤 환난인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그당시에 많은 교회들이 당하였던 믿음으로 인한 환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극한 가난”까지 있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과 가난” 사실 헤쳐나가기 어려운 절대적인 어려운 여건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환경이나 상황이 문제가 되지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마게도냐 교회는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있었기에 외부적인 환경의 시련과 가난의 어려움을 이겨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과 가난”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받자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 풍성하게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때 풍성하게 하여야 합니다. 넘치도록 드렸습니다.사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될 수 없습니다.그러나 오직 은혜가 풍성하고 넘칠 때 가능합니다. 그러면 가난하고 환난 가운데 있는데 풍성하게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와 감사는 비례입니다.
큰 은혜는 큰 감사가 있습니다. 은혜가 풍성하면 좀 문제가 생겨도 어려움이 생겨도 좀 물질의 문제가 있어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가 있을 때 우리 속에는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법입니다. 나보다 주님과 이웃을 먼저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합3:17에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말씀하고 있읍니다.
선지자는 지금 상황이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합니다.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로 인하여”“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즉 하나님 때문에 감사합니다.사실 우리는 집때문에,차때문에,돈 때문에 감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물론 이런 소유를 통하여 오는 기쁨도 누리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은혜때문에 오는 감사가 더욱 필요합니다.

극한 가난과 환난 가운데 어떻게 그들은 드렸습니까?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 중심에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기쁨으로 드리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동기가 되어 드리는 자는 주님께서 주신 것처럼 행하며 살아간다.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금은 체면이나 강요나 억지에 의해 드려진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였기에 기쁨으로 지원함 가운데 열심으로 희생하며 드렸습니다.

오늘 마게도냐 교회를 바라보면서 돈에 대한 우리는 중요한 태도를 또한 볼 수 잇습니다.
우리 속에 풍성함과 자원함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바로 인색함입니다. 고후9장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관계를 맺다보면 인색한 분들이 있습니다. 도무지 나눔을 모르고 베품을 모르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인색한 분들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돈을 쓸때 인색합니까? 더 쓰지 못해서 안타까와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자식들에게 베푸는 것입니까?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원하여 줍니다. 고생이 되고 어렵고 나는 힘들어도 줍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드리는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색함입니다.인색하다는 것은 그 마음이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아끼는 자세’를 굉장히 좋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아낌이 어떤 동기로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11;24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뿐이라“고 합니다.

아낀다고 부자가 되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언제 아껴야 합니까?나를 위해서 쓰는 것은 좀 아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쓸 때 아끼는 것이 오히려 은혜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님 앞에 나온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이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 앞에 부엇을 때 낭비로 보여집니다. 제자들중에서 특히 계산적인 가롯유다는 “왜 기름을 발에 부어 허비하는고 만약 이 기름을 판다면 많은 자들을 구제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 우리도 그런 믿음들이 있었습니다.하나님의 은혜의 동기로 감사하여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풍성한 헌금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원하여 드릴때 과연 그 드리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드리면 경제논리로 본다면 그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어려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즐겨내는자를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심은대로 거두는 복을 약속하십니다. 고후 9장 6절 “적게 심는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장 7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저는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도들에게 역사하시는가 어떻게 교회 속에서 역사하시는가 그 현장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축복하시고 그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봅니다. 온전히 베풀고 나누는 가정을 볼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이 인정과 축복을 얻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드림의 은혜 속에 자원하여 드리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그리스도처럼 모든 것을 드립니다

8:5 우리의 바라는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합니다.
여기 드리되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드리고 모든 물질까지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드리셨습니다. 왜 그렀습니까?오직 우리가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그리스도처럼 자신들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드렸습니다.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라고 합니다.여기 보면 마게도냐 교회는 “자신을 먼저 드리는 믿음”이었습니다.
은혜받은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는 삶의 패턴이 차이가 있습니다.은혜가 있는 사람은 먼저 드리고 주는 것이 우선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언제나 “다오다오” 스타일입니다. 언제나 모든 삶의 스타일이 받는 것으로 익숙해 있어서 드리고 주는 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이런 분들은 진정한 헌신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물질을 드리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몸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주님의 것이요 물질도 주님의 것입니다. 물질을 주님께 드리는 것도 큰 헌신이지만 더욱 큰 헌신은 바로 몸을 바치는 헌신입니다. 무언가 자신이 하나님게 합당히 드려지고 잇으면 인생에 만족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자신을 볼 수 잇습니다.

한번은 마더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여행하다가 어떤 자매를 만났습니다.
이 자매는 자살 직전에 있었습니다. 테레사가 그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나와 한달만 같이 인도에 가서 지내보고 나서 그때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이 자매가 그 빈민굴에서 그 거지 소굴에서 한달간 헌신하는 삶을 살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달아났습니다.
거기서 왜 마음이 바뀌었을까요.드리는 삶은 헌신의 삶은 참만족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은혜가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예수님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지면 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헌신하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라고 합니다.

롬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자가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몸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에 드리셔야 합니다. 은사를 주시는데로 교사로 찬양대로 교통봉사대로 안내로 다양한 사역에 자신을 드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몸을 헌신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물질로 하나님께 많이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몸의 헌신을 하지 않습니다. 기억할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실 때 예수님의 몸도 내어주셨습니다.모든 세상의 물질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모든 범사를 내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드림 속에서도 십자가의 드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드리셔야 합니다. 재능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해도 좋도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후9장 12절에 보면 바울은 헌금의 행위를 ‘봉사의 직무“라고 합니다.
여기 “직무‘라고 하는 것은 의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의 문제를 넘어서 신실하게 해야 할 순종이라고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드림을 실천할 때 내가 쓰고 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필요가 없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같이 자녀가3명이거나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경우에는 써야 할 필요가 많습니다. 계속해서 저 자신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리더로서 자신을 지켜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런 저런 삶의 필요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많이 생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는 바로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드림의 순종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후 9장 13절에 보십시오.그런 온전한 순종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진실함 믿음과 복종하는 것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합니다. 물질의 바른 드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하나님의 사역들이 진전되지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물질이 없어서입니다. 왜 물질이 없습니까?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드림의 헌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헌금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습니다. 드림의 헌심이 없는 헌신은 위선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보다 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고 어려운 마게도냐 성도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그들의 헌신 그들의 드림이 바로 오늘의 교회를 있게 하였고 우리를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드려진진 헌금들이 어떻게 사용됩니까? 선교와 구제와 교육과 장학과 생활을 위해서 귀하게 사용되어집니다.

지난번에 저희 교회에 콩고에서 사역자들 5분이 오셨습니다.
그 목사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보내면서 마음에 불편함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선물이라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5분 모두에게 얼마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엄두가 나지않았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YWCA에 모시고 가서 재활용품들을 싸지만 푸짐하게 선물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내년에 한번 꼭 오시라고 너무 큰 대접을 받아서 좋았노라고 . 저는 그 메일을 받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죄책감이 찾아왔습니다. 좀더 푸짐하게 드릴 것을. 그런데 사역의 현장에서 물질이 조금 더 넉넉하게 있엇더라면 하고 아쉬울 때가 솔직히 많습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갔을때 개인적으로 야드세일을 통해서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구입했습니다. 미국은 토요일이 되면 정원에 물건을 내다놓고 세일을 하면서 판매합니다. 교회마당 집마당에 내다 세일을 하는 물건들 중에는 상당히 쓸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책 전자도구 부엌도구 의류 가구등 상당한 것들이 나옵니다. 그렇게 내다팔 때 최소의 비용으로 물건을 팝니다. 아마도 최소한 2가지 의도가 있는 것같습니다. 아직 쓸만한 물건을 서로 나누어 쓰는 의도가 많습니다. 다음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배려하는 삶의 자세가 있기도 합니다. 이미 이런 문화가 생활화되어있는 느낌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약 60억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6/1에 해당하는 약10억의 인구가 매일 굶주린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적어도 4만명이 죽어가고 잇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10명의 아이들중 40명정도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한해에 우리 음식쓰레기로 인해서 버려지는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통계에 의하면 한해 국내에서 발생한 음식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했을 때 약 14조7천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4천700만명이 식당에서만 1인당 연간 6만1천702원, 하루 169원 꼴로 낭비하는 셈이고 이를 다시 끼당으로 환산하면 1인당 56원 어치의 음식물을 먹다 버린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합니다.
어디 음식만 그렇습니까? 우리의 삶에 넘침으로 인해서 버려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물질이 아름답게 드려짐으로 그리스도의 사역들이 더욱 풍성하여 지기를 기원합니다.


3. 풍성하게 드립니다

7절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사랑과 은혜의 증명을 풍성한 드림를 통해 할 수 잇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바울이 보낸 디도의 편지로 인하여 여러면에서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7절“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일에 풍성한 것같이”라고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면에서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믿음에 풍성하고 지식도 풍성하엿씁니다. 또 사도를 사랑하는 일에도 풍성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풍성함이 있었는데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엇습니다. 바로 드림의 실천입니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지역교회들이 서로 헌금으로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 마게도냐교회는 극한 가난가운데서도 잘 도왓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은혜가 풍성한 교회라면 헌금도 풍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것은 바로 진정으로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드림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왜 헌금이 은혜로운 삶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
이것은 결국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고 돕는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영성은 결국 이기적인 것에서 이타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헌금은 바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평균케하기 위함입니다. 8:14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누가 풍성하게 드릴 수 있습니까?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톨스토이가 즐겨하던 이야기 중에 어떤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왕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루 동안 밟고 걸어 다니는 땅은 모두 다 네 것으로 주겠다.” 이 농부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동안에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좀더 많은 땅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힘을 다하여 밤늦게까지 전력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땅을 차지하고 나서 자신이 시작했던 출발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힘을 다 쏟아 버린 나머지 쓰려져 죽고 말았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에서 한번은 모기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모기가 잘 날지를 못했습니다. 잡고보니 모기가 너무 통통한 것이 죽어있는 모기를 보니 너무 피를 많이 먹어서 잘 날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서 피를 먹은 것이 결국 자신의 죽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는 것이 그것이 나를 죽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드림의 삶은 나를 살립니다. 드림의 삶은 우리의 이웃들을 살립니다. 드림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은혜받은 성도의 드림의 삶은 자원하여 그리스도처럼 풍성하게 드리면서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의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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