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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어떤 곳인가?(11) : 기도, 말씀, 교제, 봉사, 핍박이 충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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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어떤 곳인가?(11) "기도, 말씀, 교제, 봉사, 핍박이 충만한 곳"

행2:42-47,4:31-37
지난 수요일 구역장 모임에서 권사님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강변교회는 저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강변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것은 가장 잘한 일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 분은 1981년부터 강변교회에 나오는 분인데 지성과 영성과 감성이 풍부한 분입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사님은 참으로 행복한 분입니다.”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자기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그리고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교회는 물론 거의 모든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 냉소적인 느낌과 자세를 지니고 살아가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어머니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우리 모든 교회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자손들이고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으로 탄생한 교회였는데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지녔던 다섯 가지 특징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기도가 충만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교회와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기도가 충만한 삶을 사셨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항상 힘쓰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라고 분부하신 주님의 말씀 몇 곳을 인용합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막11:17).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겠느냐”(눅18:7).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서 기도하라”(마26:4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서 기도하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기도하는 가운데 부흥 발전했습니다. “다 거기 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저희가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대 대 주재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행4:24,29,31).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4). 예루살렘 교회는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모여서 일심으로 기도한 교회였습니다. 따로 따로 각각 기도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같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조선교회도 기도하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기도하는 가운데 부흥 발전되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들이 모두 기도에 파묻혔던 사람들이었고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들이 모두 기도에 파묻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는 교회의 생명인데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가 충만한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둘째,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말씀이 충만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교회와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하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였는데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하라고 분부하신 주님의 말씀 몇 곳을 인용합니다. “내 말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5:24).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8:31).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마11:15).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예수께서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마10:5,7).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부흥 발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던 120명과 3천여 명은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행2:13,1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부흥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전했고 집사들이 말씀을 전했고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의 핵심인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를 들어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아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행4:1-4).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베드로와 사도들이 가로되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5:29-31)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행8:4).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데 모든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우리 조선 교회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듣는 사경회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모임에서 손인웅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되 찾아야 할 것들 여덟 가지를 지적했는데 그 첫째가 순수한 말씀을 전하는 강단의 회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늘 날 많은 강단에서 세속적인 만담과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하는 사람의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말씀은 교회의 생명인데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순수한 말씀이 충만한 생동하는 교회였습니다.

셋째,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교제가 충만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교회와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켜 포도나무 가지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고 말씀했고 포도나무 안에 거하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지끼리 서로 붙어 있으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예수님은 형제와의 화목을 예배보다 먼저 강조했습니다.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4).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분부와 기도를 따라서 하나가 되어 교제를 이루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하나가 되어 교제를 이루는 가운데 부흥 발전했습니다. 전에는 서로 시기도 했고 서로 다투기도 했고 서로 잘난 척도 했습니다. 함께 모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모두 한 곳에 함께 모였습니다.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3,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2:1,2). 분열이 있는 곳에, 외톨이로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교제를 더욱 더 힘썼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4,46).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친밀한 교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은혜 충만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옥에 갇혔습니다. 협박과 위협을 당한 후 풀려났습니다. 풀려나서 사도들이 달려 간 곳이 저들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있던 곳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서 자기들이 당한 일을 낱낱이 고했습니다. 저들의 교제가 얼마나 소박하고 인간적이고 친밀했던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 다 고하니”(행4:23).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인간적인 교제의 장면입니다.

우리 조선교회도 몇 십 년 전만해도 교제가 충만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손봉호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잃어버려서 안타까운 것이 여럿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신자들과 교회들 간의 친밀한 유대감[교제]입니다. 과거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다른 교회를 돕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50년대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이웃에 어려운 교회가 있으면 자기 교회 못지않게 도우려 했습니다. 자기 교회 지붕이 새는데도 이웃에 시작한 개척교회에 연보를 하는 것이 그렇게 특이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교회가 부흥한다면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인들, 교회 간에는 그런 유대감이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우리 강변교회 안에는 친밀한 교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교제도 하고 즐거워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도 집사님들 권사님들 장로님들이 많이 모여서 수고하면서 은혜롭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영란 집사는 이번 여름 청평나들이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습니다. “그렇게 별장을 둘러보고 난 후 김명혁 목사님의 인도로 찬송과 교제의 시간을 함께 했다. 온통 푸르름에 둘러 쌓인 공간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하고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지 어느 때 가장 행복한지를, 발표들을 통해서 서로 나누었다. 문득 만남이란 것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식사 후엔 각자 자유롭게 교제를 나누고 청평 물가를 도는 보트 타기에 모두 동참했다. 신선한 바람과 아무 것도 막는 것 없이 질주하면서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을 꼭 묶어 두고 싶을 만큼 너무 상쾌했다. 그리고 오늘 나들이의 막바지로 둥글게 돌아가는 게임으로 숨 넘어가게 깔깔대며 웃게 했다. 목사님이 함께 하심으로 각자 원하는 동물 별명으로 하는 놀이에 살짝 긴장도 되고 재미 있기도 하고 벌칙으로 근사한 올드 팝을 끝으로 귀가 길에 올랐다. 청평 나들이로 각박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 한 켠에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강변교회는 분명이 친밀한 교제가 충만한 교회인 것 같습니다. 교제는 교회와 천국의 존재 양식인데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친밀한 교제가 충만한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넷째, 예루살렘 교회는 봉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봉사가 충만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교회와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섬김과 봉사였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도 섬기며 봉사하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여기 섬김이라는 말은 봉사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몸으로 봉사하고 그리고 물질로 봉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물질로 구제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 특히 주린 자들과 목마른 자들과 병든 자들을 물질로 돌아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4-40).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서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을 힘썼습니다. 몸으로 봉사하고 물질로 구제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기뻐했습니다. 사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봉사에서 오고 구제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처음부터 봉사와 구제로 충만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2:44,45). 이와 같은 구제와 봉사는 일회성 행사로 그친 것이 아니었고 계속된 사역이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2-37). 여기 기록된 말씀은 구제가 단순히 인도주의적 자선 행위에 그치지 않고 큰 은혜를 받은 결과로 나타나는 은혜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히13:16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서로 행함과 서로 나눠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시간과 물질에 인색한 사람은 은혜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시간과 물질에 너그러운 사람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밭을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둔 바나바는 나중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구제를 이따금씩 한 것이 아니라 매일 했다고 했습니다. “그 매일 구제에”(행6:1). 그래서 구제하는 일을 전담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여 세웠다고 했습니다. 봉사는 주님의 삶의 모습이고 양식이었는데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봉사와 구제가 충만한 교회였고 따라서 성령과 은혜가 충만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다섯째,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핍박이 충만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교회와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핍박을 받으시다가 죽임을 당하셨고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핍박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2-24).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요15:20).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24:9). 핍박은 주님을 따르는 참 교회와 참 성도가 지니는 표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핍박을 몸에 지니면서 살아갔습니다. 저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황하거나 원망하거나 분노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면서 주님 가신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교회는 부흥 발전했습니다. 환난과 핍박으로 인해서 복음이 안디옥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저희를 잡으매 날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행4:1,3).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행5:18). “저희가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0,41).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행7:57,58).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행8:1,4).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는데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19,21). 핍박은 주님의 삶의 모습이었고 양식이었는데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이 충만한 주님 닮은 교회였습니다.

우리 조선교회도 핍박을 받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핍박을 받는 가운데 부흥 발전되었습니다. 아마 우리 신앙의 선배들 중에 핍박의 흔적을 몸이 지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 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표지는 핍박이었고 조선 교회의 부흥 발전의 첫째 비결도 핍박이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다음과 같은 자조적이고 역설적인 말을 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핍박이 없는 평안이 계속되는 것이 반드시 축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돌이켜볼 때 참된 교회는 언제나 핍박과 함께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개인이나 교회에 고난이나 핍박이 없는 평안이 계속되는 것이 반드시 축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내어 버림의 표시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고난과 핍박을 추구할 것도 아닙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할 것뿐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 다섯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말씀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교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봉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핍박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말씀을 추가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교회에 기도가 충만할 때 주님께서 가까이 오십니다.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교회에 말씀이 충만할 때 주님께서 가까이 오십니다.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교회에 교제가 충만할 때 주님께서 가까이 오십니다.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교회에 봉사가 충만할 때 주님께서 가까이 오십니다.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교회에 핍박이 충만할 때 주님께서 아주 가까이 오십니다. 그래서 기쁨이 아주 충만해 집니다. 우리 강변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와 말씀과 교제와 봉사와 핍박이 충만한 축복받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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