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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겨 두심의 은혜 (롬 9: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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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 두심의 은혜(롬9:27-29)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섭리안에서 있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 구원사상에 대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구원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구원은 또한 행위의 열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어떤 오해의 질문앞에서도 바울의 답변은 단호합니다.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며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마음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구원의 은혜를 입는 것이요 한 사람이라도 멸망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모두를 향해 긍휼이 여기심이요 오래참아 기다려 주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롬9장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충격이었습니다. 저들에게는 선민사상이 있었습니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라면 자동적으로 구원의 대상이 되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주장은 구원에 있어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부르심을 받지 않고는 아무나 믿을 수도 없고 구원의 그릇이 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답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주신 축복이 있다면 신분의 차이의 벽을 없애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벽이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이는 불행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저주하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누군가에 우월감을 갖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원하심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모든 것을 허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복음의 요구입니다. 이제 우리사이에 있는 벽도 무너져야 합니다.

마5:23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하거든 예물을 제단앞에 두고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것은 우리를 향한 복음의 요구입니다. 이제 사도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남은 자의 구원사상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7절에 무엇을 말합니까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입니다. 적어도 구원에 있어서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에 메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는 누구인가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야기는 하지만 제사는 드리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사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지자는 영적 간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함께 섬기기로 했지만 마음은 이미 바알과 아세라에게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당시 바알은 풍요의 신 아세라도 쾌락의 신입니다.

사29:13절의 하나님의 탄식을 보십시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버렸다 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떠난 저들은 하나님은 외면한 채 하나님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닙니다. 적당한 선에서 멈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는 드릴테니 제물은 드릴테니 애굽과 앗수르와 함께 적당히 즐겨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냅니다. 미가를 예레미야를 보냅니다. 주제는 단 하나입니다. 돌아오라입니다. 내 백성아 돌아오라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면 지금 너희가 의지하는 앗수르가 바벨론이 너희를 심판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무엇인가 풍요와 쾌락을 줄 것 같지만 결국 사람들의 행복을 삼켜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회개를 거부한 돌아오기를 거부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결국 바벨론포로가 되게 만드십니다. 바벨론에서 터를 잡고 70년동안 살았습니다. 갈수록 이스라엘은 조국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성전을 회복하고 다시 예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예언하게 하셨던 것처럼 바사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유다사람들은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해방입니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신청하시오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사람은 신청하시오! 그러나 망설이는 것입니다. 70년을 이국땅에서 살면서 일군 지금의 환경을 뿌리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사야가 외친 것입니다.

27절을 보고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혈통적 이스라엘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말한 남은 자는 누구인가 환란중에서도 악에 물들지 않고 여호와의 신앙을 지킨 경건하고 의로운 자를 의미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사람입니다. 구원은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절대주권하에 있어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29절에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남은 자는 곧 하나님의 남겨두신 자임을 말합니다.

역시 은혜로입니다.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입니다.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진리 중에 하나가 남은 자의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느시대에나 남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아벨을 대신하여 태어난 셋이 에녹이 노아가 아브라함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저는 저들의 멋진 믿음의 색깔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어야 함은 오직 은혜인 것입니다.

왕상 18,19장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합왕과 이세벨이 통치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협박하거나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산속에서 홀로 영적싸움을 싸워 갑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떠났고 자기만이 혼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때 산에 있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대로 아합을 만나러 내려옵니다. 그 내려오는 길목에 엘리야가 처음 만난 사람이 아합왕의 궁내대신 오바댜였는데 18:3-4절에 오바댜는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는 사람이었다합니다.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멸할 때 오바댜는 선지자 일백인을 가서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던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엘리야가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야는 혼자 산에 숨어있었지만 경건한 사람 오바댜는 선지자 100인을 몰래 굴에 숨겨 지켜 살려 줬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것은 엘리야지만 더 경건한 오바댜를 봅니다. 큰 사람은 엘리야지만 작지만 더 큰 사람 오바댜를 봅니다. 부흥회를 다녀보면 곳곳에 하나님의 숨겨 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 남은 것처럼 탄식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칠천인을 남기셨다하셨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

만일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라입니다. 소돔은 의인 10인이 없어 멸망을 당했던 성입니다. 아니 사실은 의인다운 의인 하나도 없던 성이 소돔이었습니다. 그 소돔과도 같은 세상에 곳곳에 하나님이 남겨두신 자들이 있어 조국을 위해 기도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이다. 오직 은혜입니다.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바로 선교적목적입니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종자는 남겨두어야 수확을 기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미래적 목적을 위해 저와 여러분을 믿음안에서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씨앗으로 구속하셨음을 아는 것이 자기인식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열매로 남겨 주신 것이 아니라 씨앗으로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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