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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하라 (약 5: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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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야고보서 5:15-16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성도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 받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기도가 먼저인 것이 사실입니다.

한 자매가 열심히 작정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신랑이 필요합니다. 결혼해야합니다. 좋은 남자 보내주시옵소서..'
정말 믿음도 좋고 신앙 열심히 하는 자매였는데 열심히 작정기도를 드려도 하나님께선 도무지 남자를 보내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매가 기도 하는 것을 본 목사님이 자매를 불러 이야기 했습니다.
'자매님의 기도는 너무나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에요,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기보다 부모님이나 이웃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는 것이 성숙하고 잘 전달 될 것 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깨달음을 얻었는지 다음 날 부터는 기도의 내용이 바뀌었다.(?)
'하나님 저희 사랑하는 부모님에겐 정말로 좋은 사위가 필요합니다. 부디 저희 부모님들을 위해 근사하고 좋은 사위를 보내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또한 소중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소위 구속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면서 위하여 기도할 때 질병을 치유 받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치유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모든 치유의 역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약을 먹고 의사가 치료하지만 결국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질병 가운데 있을 때 그 사실을 교회에 알려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그 병이 낫게 됩니다. 성도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은 사도 야고보가 야고보서 전체를 통해 계속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오직 믿음으로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나를 치유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없다면 기도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믿음으로 기도해서 응답받으면 믿음이 더 해진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조차 병에 걸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목사도 어쩔 때는 아파서 꼼짝 못합니다. 왜 하나님은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어쩌면 그와 같은 고통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고통 역시 주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신도로서 기독교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C.S. 루이스에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캠브리지 대학의 위대한 교수였던 루이스를 찾아와 질문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째서 이 세상에는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많습니까?” 루이스는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안 그래도 사람이 교만한테 고통마저 없었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 오만 방자해졌겠습니까?”
우리는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고통당해야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중보 기도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에 응답받게 되니까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게 됩니다. 이웃의 아픔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되므로 더 큰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에게 더 훌륭한 믿음을 안겨 줍니다.

엔젤라 헌트의 한편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우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세개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어느 산마루에 세 개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세 나무가 다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나무의 꿈은 어느 날 그가 금으로 입혀진 보석함이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나무의 꿈은 바다를 여행하는 군함이 되어 왕을 태우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나무의 꿈은 이 산마루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나무가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우러러 볼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나게 해주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무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세나무는 함께 모여 그들의 꿈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자주 함께 기도했습니다. 어느날 나무꾼들이 이 산마루에 올라 첫째나무를 짜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금으로 입혀진 보석함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농부에게 팔려가 그의 외양간에 소나 말을 먹이는 여물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실망했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나무꾼들이 둘째나무를 짜르기 시작할때 그는 이제 바다를 여행하는 군함이 되어 왕을 태우고자 하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어부에게 팔려가 작은 어선이 되어 호숫가에 띄워졌습니다. 군함이 되기에는 그는 너무 연약했던 것입니다. 그는 실망했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무꾼이 세째나무를 짜르기 시작했을때 그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의 꿈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높고 아름다운 나무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목수에게 팔려 가서 뒤뜰에 버려졌습니다. 그는 실망했지만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말구유가 된 첫째나무에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아기가 태어나 그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이 아기의 이름은 예수라고 불리웠습니다. 호수에 떠다니던 둘째나무에도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의 배에 어느날 한분이 오르자 그의 제자들이 함께 오르게 되었고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며 바다를 한마디로 꾸짖자 호수는 잠잠하게 되었고 제자들은 그에게 엎디어 그를 주님과 왕으로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비로소 그가 왕 중의 왕을 모신 배 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수에게 팔려 그의 뒤뜰에 버려졌던 셋째나무는 어느날 로마군인들의 청탁으로 십자가 나무가 되어 갈보리 높은 언덕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의 나무에는 그의 친구 첫째나무에서 태어나고 둘째나무가 태우고 다니던 갈릴리 사람 예수라는 분이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원래의 꿈처럼 하나님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세나무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은 오래전 함께 모여 기도하던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고난은 있었지만 고난의 저 건너편에서 더 아름다운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함께 주님을 섬기며 또한 주님에 의해 쓰임받는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응답받을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은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축복 가운데 한 가지가 거룩한 삶입니다.
16절 말씀에 서로 기도하라고 하기 전에 강조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질병은 죄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 맞습니까? 모든 질병이 죄 때문에 생긴다면 15절 말씀에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라는 구절을 빼 버려야 할 것입니다. 혹시 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모든 질병이 반드시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죄 때문에 그에 대한 징벌로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에 걸렸을 때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혹시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힐책하고 연단하기 위해 이 질병을 내리신 것은 아닌지,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육신의 고통을 허락하신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웃을 바라보면서 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무슨 죄를 지어서 벌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에 바로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욥의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결론을 내립니까? 욥의 고통은 욥이 지은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변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나 자신의 죄는 철저히 다스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라고 한 것은 교회 전체가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전에서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기도 내용은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지금 교회가 어려움에 빠져 있고, 각 가정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과 나태함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여 무릎 꿇어 기도하면 그 땅을 고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정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죄를 고백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병 낫기를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병 뿐만 아니라 나의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이 혹시 나의 죄와 게으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하여 엎드려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살필 때 그 기도는 우리의 병을 고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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