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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하는 사람들(몬 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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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 1;20-25                        함께하는 사람들



도입

전 결혼 전에 한 여자와 수십 년을 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그 사람에게 싫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이제 집사람만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마누라가 하나라도 이렇게 문젠데, 둘이라면 얼마나 그 문제가 더 심각해지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관계를 맺고 살지만 우리의 평생토록 지속되는 관계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부모, 형제, 친지들이고, 그 이후에 친구들, 배우자 정도일까요?  그런데 이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때론 우리에게 큰 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물론 기쁨이 될 적도 많지만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때론 다투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원망도 하고, 질투와 시기의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평생을 함께 하는 삶, 그것이 친구 사이이든, 부부 사이이든, 혹은 부모와 자식 사이이든 그 관계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자세입니다.  먼저 내가 실천해야 할 모습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바울의 주위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함께 평생을 같이 했습니다.  어쩌면 바울은 이 사람들 때문에 그 험한 전도자의 세월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그들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도 바울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도우며 함께 가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그들의 관계를 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계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1. 마음으로 함께하기

바울의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바울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물질로 바울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마음으로 바울을 도왔습니다.  비록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는 바울과 영원토록 함께 했습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음으로, 마음 가운데서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1) 순종

바울은 빌레몬을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언제나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빌레몬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만 등장합니다.  몬 1;1절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이 유일한 구절에서 바울은 그를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헬라어로 동역자라는 단어는  sunergov" 입니다.  이 말은 함께 한다는 전치사 sun 과 수고하다는 동사 ergw'/ 의 합성어입니다.  즉 바울은 빌레몬을 자기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친구로 인정한 것입니다.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평가는 이처럼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으로 인하여 그 동안 수많은 기쁨과 평안을 누렸습니다.  비록 바울은 빌레몬의 영적인 아버지였지만 오히려 빌레몬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곤 했습니다.  함께 20절을 읽겠습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바울은 빌레몬이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오네시모를 보냈습니다.  빌레몬은 자기에게 큰 기쁨과 평안을 줄 것임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빌레몬이 지녔던 아름다운 성품,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본문에서 말하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단지 상하 관계에 의한 질서로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해석은 지극히 유교적인 성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長幼有序라는 가르침의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연 단지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만 모든 것을 누를 수 있을까요?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순종이란 하나됨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양보와 희생을 터전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바울은 먼저 겸손의 모습을 빌레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특권을 내 던지고 빌레몬에게 간구하는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울과 빌레몬은 이런 모습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바울은 빌레몬에게 충분히 명령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지위를 빙자해서 억지로 복종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빌레몬의 마음이 자발적인 순종으로 움직이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그만큼 빌레몬을 향한 바울의 신뢰는 두꺼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순종이 있습니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서 먼저 이런 순종의 모습들이 자리 잡아 가길 원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순종하는 가정, 성도와 성도가 서로 순종하는 그런 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기의 처소를 예비하라고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좋은 방이나 하나 마련해 놓으라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자기가 처할 장소를 두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합니다.

바울이 실질적으로 빌레몬에게 말하는 것은 묵을 방 따위의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 것 쯤은 바울이 말하지 않아도 빌레몬이 미리 준비해 놓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22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빌레몬에게 기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물질적인 후원도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그것 역시도 기도로 함께 함이 없다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를 요청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돈을 대서라도 자기를 감옥에서 빼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기도만을 요청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돈이 중요한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돈이 우리 삶에 필요합니다.  돈이 어느 정도 우리에게 안정과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인심은 창고에서 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우리의 키를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물론 코를 크게 할 수는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 하나 고쳐줄 수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것이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울 또한 명문 가문의 출신으로 많은 부를 거머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부를 거머쥘 충분한 기회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후 변했습니다.  돈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일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돈에 앞서는 마음이었습니다.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빌레몬에게 간곡히 기도로 자기와 동행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오.  물질이 없다고 핑계될 필요 없습니다.  돈이 없다고 서글퍼할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에 앞서는 기도의 능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몸으로 함께 하기

우리가 순종과 기도로 함께 하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정신적인 것만으로는 우리가 함께 하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하는 자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그리하여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으로도 하나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의 고향을 떠나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입니다.

1) 에바브라(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바울은 에바브라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라고 소개합니다.  지금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투옥 중인 것입니다.  단지 마음으로만 함께 하고 믿음으로만 함께 한 것이 아니 몸으로 함께하며, 고난 가운데서도 함께 한 것입니다.

왜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에바브라에 대한 기록은 본문 말고도 골로새서에 두 번 등장합니다.  함께 찾아서 읽겠습니다.  1:7절과 4:12절입니다.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에바브라의 이름이 나오면 꼭 연관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1;7)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4;12)

함께하는 사람은 이처럼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하나의 믿음이고, 하나의 푯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푯대를 향해 함께 걷고 계십니까?

2) 마가(나의 동역자)

바울은 마가를 나의 동역자 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마가를 이렇게 부르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거쳐야 했습니다.  행 15;36-39절에는 바울이 자신을 사도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동고동락하며 선교했던 바나바와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분쟁의 핵심에는 바로 마가가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다음 선교지로 떠나자고 한 반면에 바울은 그를 두고 가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일로 둘은 각자 다른 선교의 장을 열게 됩니다.

아마도 어렸을, 그래서 선교에 오히려 방해가 되었기에 바울에게서 배척을 당해야 했던 마가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변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기꺼이 그를 일컬어 나의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딤후 4:11절에서 바울은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씁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마가는 이제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 오네시모와 같이 유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나의 필요를 내세우기 전에 마가처럼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 유익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아리스다고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전도여행을 할 때 함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바울과 함께 감옥에도 갇힌 전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의 왕성한 활동력에도 불구하고 아리스다고에 대한 기록은 별로 두드러지게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 20;4  27;2절을 보면 아리스다고는 항상 바울과 함께 했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가 설교를 했다는 기록도, 이적을 행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단지 그는 바울과 함께 했을 뿐입니다.  마치 이름 없는 보디가드처럼 그는 늘 바울 옆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존재 자체는 바울에게 크나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는 그런 사람들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리스다고와 같은 사람, 묵묵히 내 곁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이 정말 그리운 시대입니다.

4) 데마

데마는 바울의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끝이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서를 쓸 때만 해도 그는 바울과 함께하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에 끝부분에서 기록한 편지에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마는 자신의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그의 주님을 향한 사랑, 바울을 향한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사랑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유혹이었습니다.  결국 데마는 넘어졌고, 끝내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넘어질까봐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관계를 파괴하려는 많은 유혹들을 언제나 상종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유혹은 단 한 가지 특징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사랑, 자기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5) 누가

바울은 골 4;14절에서 누가를 소개하면서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누가는 바울과 동행하며 그의 건강을 돌보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단지 의원 이상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인 딤후 4;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가 쓸쓸한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 그의 곁에는 오직 누가만이 있었습니다.  누가는 바울에게 단지 몸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누가가 있음으로 바울의 영혼을 새로운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바울은 굳어진 무릎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결론

바울의 곁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데마처럼 영영 바울의 곁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마가처럼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누가처럼 영원토록 함께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관계가 부부이든, 형제이든, 혹은 친구이든 함께 한다는 것은 많은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순종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내가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이 땅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힘을 빌려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으로 함께 하고, 몸으로 함께 할 때 우리들의 관계는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의 마지막 인사를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할지어다  바로 이런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서의 만남 가운데, 그리고 행복한 교회의 만남 가운데 자리잡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복한교회  김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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