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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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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13)

탈무드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잘 살던 부부가 의견 충돌로 이혼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반씩 나누어 갖기로 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반씩 나누었습니다. 땅도 반씩 나누었습니다.
집도 팔아서 반씩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녀가 11명이었습니다. 서로 많은 자녀를 맡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랍비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하나 더 낳을 때까지 살아라.”
부부는 랍비 말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빨리 아이를 더 낳아 이혼하자”
10개월 후에 그들은 드디어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의 뜻을 해석했습니다. “이혼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후 이들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부부든 결혼할 때는,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철석같이 서약을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그 사랑의 서약은 온데간데없고 이해득실만 따지게 됩니다.
‘내가 손해 봤다.’ ‘어쩌다 저런 사람을 만나 이 고생을 한담’ ‘내 눈이 삐었지’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가깝다고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못살겠다고 이혼하자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혼하는 가정이 너무나 많습니다.
평생 참고서 잘 살아왔는데,
70대 노인부부가 이제 와서 성격이 안 맞아 못살겠다고 합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합니다.

사랑은 도대체 다 어디에 간 것입니까?
따지고 보면, 인생은 참으로 짧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너무나 짧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고속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릅니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그렇게 보면, 사랑하기에도 바쁜 시간입니다. 미움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미움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용서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은 온통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요13:1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사랑을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 로마의 병정까지도 용서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사랑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바로 그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고, 목숨을 바친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들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다.”(사43:4)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당신은 주님의 빛나는 보석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의 결론처럼,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엄숙한 명령이 있다면 그건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첫째계명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둘째계명
한마디로 하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독히도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헤르만 헤세의 단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웬 머리가 하얀 노인이 나타나서 ‘한 가지 소원을 얘기하면 들어 주마.’
이 엄마는 ‘우리 아이가 평생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그 소원을 빈대로 그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 아이가 노인이 된 어느 날, 그 머리가 하얀 노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소원을 얘기하면 들어 주마.’
그러자 그 노인은 “저는 이제라도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내가 사랑함으로서 그 사람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래서 감자탕교회로 유명한 조현삼 목사님은 ‘파이프 행복론’이란 책을 썼습니다.
내가 사랑을 흘려보내는 파이프가 될 때,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고, 그렇게 해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진정한 자기의 존재가치가 높아지는 것이고, 위대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랑장’이라고 불리어지는 유명한 사랑의 찬가입니다.
이 내용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달달달 외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다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은 먼저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사랑의 봉사를 좀 더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자기 재산을 팔아 나눠준다고 되는 게 아니죠.
구원은 오직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믿음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구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믿음이 가장 우선이 되는 일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도무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은 소망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소망은 우리가 존재케 하는 힘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죽게 됩니다.

케에르케고르라는 유명한 철학자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갈파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바로 절망입니다.
미래에 희망이 없는 사람은 결국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라는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나찌에 의해서 세워진 이 수용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독가스실에 들어가 죽고,
때로는 생매장을 당하였으며, 심지어는 생체실험의 대상이 된 사람도 있었다 하죠.
아비규환의 그 현장 속에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으며
제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기가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더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었어요.
그 사람들은 누가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죽었다고 합니다.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에 보면, 지옥에 들어가는 문 위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고 합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은 다름 아닌,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 될끼어)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죽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은혜로
죽음 너머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서 바울 사도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모두 성도에게 항상 있어야 할 것이지만,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결국 그 빛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만 있다면, 방언을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전14:5 전반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다면
이것도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도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우리의 믿음이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면
이것은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기적의 역사가 믿음 안에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다 사랑이 있고서야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이 없이 하는 방언이라면 그것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그냥 울리는 잡음과 다를 바 없이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능력이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사랑으로 행할 때 위대한 것이지,
만일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 하는 예언, 남의 비밀을 말하는 것은 상처를 줄 뿐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를 하고
또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희생을 감수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모두 우리가 사모하는 좋은 것이지만
사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필요한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가장 영원하고 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마디로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만들어 봤습니다.
조금 경망스러운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의미는 확 다가옵니다.
“태양은 불덩어리, 하나님은 사랑덩어리”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덕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부족함이 많지만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십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부드러워지고 기쁨이 충만하고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늘 겸손합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기 전에는 모든 것이 부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아는 만큼 성숙해지고 온전해집니다.
지금은 우리가 희미하지만 주님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사랑이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으로 덮어주고, 감싸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으로 그 상처를 싸매주고, 서로 보듬어 주길 바랍니다.

셰익스피어인지, 톨스토이인지 그 출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산책을 나왔다가 구걸하는 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은 동전이라도 주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지만, 마침 전혀 없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걸인의 손을 잡으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걸인은 ‘아닙니다. 당신이 내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걸인이 요구한 것은 동전이었지만, 사실은 사랑을 더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엄청난 사랑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상대방의 눈을 맞추며 웃어주는 작은 친절이 더 소중합니다.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고, 손을 잡아주는 따스한 마음이 곧 사랑입니다.

함석헌 시인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다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다면…”

시인의 고백처럼 오늘 우리에게는
지친 고갯길을 함께 할 수 있는 벗, 동지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혼자서 넘기에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러나 조용히 다가와서 내 등을 쓰다듬어 주는 그런 벗이 있다면,
우리는 비록 현실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 같다고 할지라도
그 먼 길을 다시 가 보겠다고 용기를 내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서로에게 그런 벗이 되어 줍시다.

여러분의 믿음이 자랄수록 사랑이 더 커지길 바랍니다.
소망이 커갈수록 사랑의 실천이 더 깊어지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의 동기가 사랑이길 바랍니다. 목적도 사랑이길 바랍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를 만들어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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