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함께 교제하면 풍성해집니다 (요일 1:1-4)

  • 잡초 잡초
  • 364
  • 0

첨부 1


함께 교제하면 풍성해집니다 (요일 1:1-4)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여러분,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왕의 남자'가  관객 천만 명을 훌쩍 넘겨  최고의  흥행에 성공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영화가 연산군이라는 한 남자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외로움을 다루었기에 영화 '왕의 남자'는 깊은 공감을 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일찌기 어머니가 선왕인 아버지에 의해 사약을 받고 죽음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으나 진정한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와도 속내를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연산군은 사람들을 향한 미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광대 '공길'을 만난 사건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연산군은 공길이가 천한 광대였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공길'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이 영화에서는 연산군과 공길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비약하여 동성애적인 관계로 암시하여 동성애를 정당화시키는 위험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산군의 인간적인 고독과 외로움에 동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산군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왕이었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외로웠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아주 유명한데도 여전히 외롭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고독과 슬픔, 그리고 아픔을 이해해주고 함께 해줄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살도록 지으시지 않고 함께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교제하며 기쁨을 나누면 배가됩니다.  우리가 함께 교제하며 슬픔과 아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듭니다. 우리는 함께 하면 풍성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들을 극복하고 함께 교제하는 삶을 통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본문 3절을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보고 들은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너희와 우리의 사귐, 이 사귐의 근거는 우리가 꼭같은 예수 체험을 한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예수를 만났고 함께 그를 보았고 함께 그를 만진 자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 만나면 그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여서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에 대한 간증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요, 성도의 사귐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제를 통해 얻은 힘을 가지고 아직도 그분을 알지 못하는 다른 이웃들에게 그분의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바를  너희에게도 전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다가가면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사람중심의 교제는 오래 못가고 싫증을 느끼고 섭섭함이 생기고 배신감을 느끼고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인체내 화학물질의 존재를 확인했으나 불행히도 이 물질의 효력은 1년밖에 지속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 인터넷 판이 28일 보도했습니다.

  파비아대학의 엔조 에마누엘레 박사 등 연구진은 최근 열렬한 연애를 시작한 18~31세의 남녀 58명과 싱글 남녀들의 내분비물질을 비교한 결과 사랑에 빠진 남녀의 몸에서는 신경성장요소(NGF)라 불리는 화학물질이 활발하게 분비돼 황홀경을 헤매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연구진은 "진실하고 깊고 열광적인" 사랑에 빠진 지 6개월 미만의 남녀들, 즉 하루에 최소한 4시간은 상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혈중 NFG 수치를 조사한 결과 열애중인 사람들은 NGF가 227단위로 장기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123단위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1년 이상 지난 뒤 이들 `열애' 그룹을 다시 조사한 결과 이들의 NGF 수치는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나 싱글들과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유효기간이 1년이다.' 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회안에서의 성도의 사귐은 다릅니다. 감정에 기초하여 사귀다가 쉽게 싫증을 느끼고 돌아서는 사귐과는 다릅니다.

  교회에서의 사귐, 즉 교제와 교회밖에서의 사람을 사귀고 교제하는 것의 차이는 그 안에 예수님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마다 누구와 교제해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물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모여야 하고, 둘째는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두가지 차원의 교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둘중에 어느 하나가 빠지면 십자가를 이룰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교제는 이 두가지 차원을 함께 동시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되기까지는 진정한 삶의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돌아가 쉴 때까지는 결코 평안함이 없었나이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철학자 말틴 부버는 그의 유명한 저서"나와 너"에서 "나와 너"사이에 아무리 최선의 인격적인 교감을 가져도 "영원자 당신"과의 만남이 없이는 우리의 만남은 온전할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단절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였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분을 요한일서1;1에서 생명의 말씀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분을 들었고 보았고 손으로 만졌다고 증언합니다.

  '교제(코이노니아)'란 성도들 간의 사귐을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제는 세속적인 사귐과는 달리, 주님과의 교제를 전제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면서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성도들 간에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사귐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되고, 그 주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더 풍성한 교제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소생함을 얻고, 우리의 신앙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견고해져 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는 영적인 기쁨으로 충만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사귐의 기쁨을 아시고 계신지요? 본문 4절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고 또한 이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인생-이것이 우리의 인생이 되기를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1773년 영국 웨인스게이트라는 시골 소도시에서 저술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렵게 목양하던 존 포쳇이라는 침례교 목사님이 런던 대도시 교회의 초청을 받아 44년이상 목회하던 시골 교회를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이사 마차에 얼마간의 이사짐을 실은 다음 목사관을 막 떠나려고 하던 참에 마중 나온 성도들이 차마 더 좋은 여건의 목회지로 떠나는 목사님 내외를 붙잡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모님 메리 포쳇이 갑자기 땅에 주저앉으면서 자기 남편에게 "여보, 난 여기 못 떠나요. 이 형제 자매들을 두고 난 떠날 수 없어요"하고 통곡을 시작하자 삽시간에 교회 마당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잠시후 포쳇 목사님은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여보, 짐을 다시 들여놓읍시다.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 그보다 더 좋은 교회가 어디 있겠오."
  다시 목사관으로 들어온 목사님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작시한 찬송이 525장 찬송입니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앞 한 기도 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안에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 동락하는중 위로를 나누리--"

  저는 우리 교회가 작지만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진실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실현되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발전해가리라고 확신합니다. 이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고 늘 그분의 사랑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를  기뻐하고 피차 세워주는 사랑이 항상 가득함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풍성하게 발전시켜 가고자 우리 모두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읍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하면 피차에 상처를 주지 않고 함께 교제하며 더불어 축복을 누리는 삶을 효과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먼저, 이기심을 내려놓고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이기심이 관계를 파괴합니다.  우리의 이기심이 분쟁, 논쟁, 이혼의 첫 번째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제를 위하여 이기심을 내려놓고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하고 배려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해와 배려속에서 사랑을 싹트고 관계가 발전하며 교제는 무르익어 갈 것입니다.

또한, 교만을 내려놓고 피차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잠언 13장 10절에 보면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교만이 교제를 깨뜨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납니다.  성경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차에 겸손한 자세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는 말씀입니다. 존경할만한 자격과 인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참된 교제를 위하여 서로 먼저 존경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세 번 째로,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두려움이 서로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우리는  가까워지기를 열망하나 또한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포장하고 가면을 씁니다.  여러분의 가면을 벗고 우리 모두가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 내놓아야 합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상처는 내놓아야 치료되지 감추면 악화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약함과 죄를 서로 고백하라고 말씀합니다.
 
  2005년 4월호 가이드 포스트지에는  미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사고로 7명의 우주인이 목숨을 잃을 때 그리스도인 남편 릭을 떠나보낸 아내 에블린의 이야기가 커버 스토리로 실려 있었습니다.

  "지난 1월 16일 이제 2주간이 지나면 남편이 우주에서 돌아와 나를 꼭 안아 주며 내 귀에 다정하게 속삭여 줄 것을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우주 왕복선의 이륙을 지켜 보았다. 그런데 2월1일 컬럼비아호는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던 중 텍사스 상공에서 폭발했다. 내 삶이 하늘에서 송두리채 산산조각나는 순간이었다. -엄마, 내 수학 숙제는 누가 도와주나요? 내가 결혼할 때 누가 날 데리고 입장하는 거지요?-울부짖는 딸아이를 난 아무 대답 못하고 끌어안고 있었다. 난 지금까지 남편이 없는 미래를 한번도 상상할수 없었다.

  처음 경험하는 큰 충격과 절망감--그런데 그때 내 마음 깊은곳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인생의 어려운 시절마다 한결같이 위안을 주던 음성이었다. 주님의 음성이었다. 넌 헤쳐 나갈수 있다고 그분은 말씀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 결혼 생활의 중심에는 우리의 사랑보다 더 큰사랑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 큰사랑을 언제나 의지해 오지 않았던가, 그 조건 없는 사랑을. 그리고 그 사랑은 내가 울부짖는 순간에도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내 남편과 나를 그리고 내 예쁜 두 아이를 묶어 주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분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그의 사랑안에서 여전히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끝이 없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모든 관계의 중심에 모신다면 우리는 어떤 위기를 만나도 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더 발전시키며 풍성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계에는 예수님이 계십니까? 부부관계, 부모 자녀관계, 그리고 교우관계에 예수님을 모시고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관계로 발전시켜 그 사랑으로 인간관계의 모든 위기를 넘어서고 성도의 풍성한 교제를 누리며 끝없는 사랑의 기쁨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