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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신앙인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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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신앙인(골2:6-7)

  (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의 몸 속에 있다가 나갔다.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면서 쉴 곳을 찾았지만 얻지 못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이 나왔던 집에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집은 깨끗이 소제되고, 수리되어 있어서, 나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전보다 더 심해졌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로 믿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보다 더 나쁘게 되기에 예수님을 잘 믿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지배하는 주인이어야 한다. 빈집이 되면 위험하다.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그들 모두는 교인일 수 있어도,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나오면 다 교인이 되지만,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교인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이 천국에 간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따라서 우리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버려진 자라고 했다(고후13:5). 여인이 잉태하면 임신초기라면 몰라도, 새로운 생명이 자신 안에서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1. 생명의 주님을 영접할 때, 영적 성장은 시작된다(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예수님을 주로 받으면, 생명의 씨가 우리 마음에 뿌려져, 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된다.

  예수님을 주로 받지 않으면, 예수님 안에서 행할 수 없다. 뿌리도 내릴 수도 없고, 예수님의 교훈을 받을 수도 없다. 믿음 안에서 굳게 설 수도 없다. 감사함이 넘치는 삶은 더욱 살수 없다. 이처럼 영적 성장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이루어진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이 들어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에 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마귀의 자녀가 되어, 마귀가 있는 지옥에 가야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모셔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주님, 주인으로 모셔들이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다면,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우리 안에서 자라나 성숙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거듭난다. 새롭게 태어난다. 생명의 주인이 우리 안에 들어와, 생명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주인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다 바뀌게 된다. 술집도 주인이 바뀌면, 교회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다 개조되지는 않는다. 주인이 바뀌어도 집을 리모델링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이를 잉태한 여인은,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입덧을 하기 시작한다. 이전의 맛이 아니라, 입맛이 새로워진다. 관심이 새로워진다. 이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우유, 기저귀, 아이 옷과 아이의 침대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를 생각하고, 집을 구하고 꾸미게 된다.

  인생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새로운 삶의 의욕이 솟구친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영혼은 소생한다. 관심이 달라진다. 성경을 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천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행가보다 찬송가가 더 좋아진다.

  예수님의 인격이 내 인격이 된다. 예수님의 관심이 내 관심이 된다. 예수님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을 영접한 일이 있는지 살펴 보라.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생의 선물을 받으시기 바란다.


2.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심령 깊은 곳에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닮기 원하는 열망이 있다. 어떻게 해야 성장하게 될까요?

(1) 예수님 안에 거하라(6).

본문에 “그 안에”라는 구절이 두 번 나온다. 즉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려면, 예수님 안에 거해야만 한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이기에,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킨다(요15:9-1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은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면, 말씀 안에 거하게 된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벗어나면 기준을 잃게 되기에 교만해 진다. 말씀을 먹어야 힘이 솟는다.

  말씀을 공부할 때, 신앙의 체계가 잡힌다. 미숙한 사람은 자주 요동한다. 간사한 교훈에 쉽게 빠져든다. 성경 공부를 부지런히 하면 신앙의 체계가 선다. 그때 요동치 않는 신앙의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만 굳게 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굳게 세우는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예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고, 우리도 예수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이것이 기도다. 기도는 대화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는 함께 간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영성생활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호흡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다. 호흡이 끝나면 육체의 생명은 끝난다. 인간의 힘은 호흡에 있다. 운동선수를 보면 호흡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흡수하는 통로다. 기도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성장할 수 없다. 기도 없는 그리스도인은 가장 무력하다. 말씀과 기도는 함께 가야 한다. 말씀 없는 기도는 무력하다. 기도 없는 말씀은 무력하다. 대화가 단절되면 오해가 생긴다. 친밀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2)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려라(7).

악한 자들이 그냥 두지 않고 자꾸 쓰러뜨리려고 하기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다. 이 세상과 악한 영들은 우리를 유혹하고 흔들어서, 주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나무라고 해서 모두 풍성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 좋은 땅을 만나야 한다. 좋은 땅을 만날 때,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된다. 귤나무도 척박한 땅에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고 한다. 귤은 크고 맛있지만, 탱자는 작고 시다.

  귤나무가 땅을 잘못 만나, 탱자나무같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비극인가? 우리도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없다. 예수님은 말씀이다. 이단은 예수님께 뿌리를 두지 않고, 교주에게 뿌리를 둔다. 잘못된 신학은 어떤 철학이나 사상에 뿌리를 두게 만든다.

  그러면 신앙이 잘 자라지 않고, 이상하게 자라게 된다. 우리는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 올바로 신앙이 자란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능력이 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비결은, 어떤 경우라도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이다.

  절망스럽고, 한스럽고, 정말 죽고만 싶을 때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의 뜨거운 피를 뚝뚝 흘리시던 주님 바라보면 새 힘이 난다. 넉넉히 이길 수 있다.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사는 길이 있고, 믿음의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면, 주의 능력을 힘입게 된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격하는 가슴 있어야 한다. 이 감격 없으면, 감격 식어지면 우리는 자꾸 흔들린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강변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에, 가뭄이 오고 더위가 와도 걱정하지 않고, 때를 따라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다.

(3) 영적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라(7).

세움을 입으려면, 영적 안내자의 도움을 잘 받아야만 한다. 변화와 성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무력하다. 자존할 수 없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성장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 영혼은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을 해 주는, 영적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영적 안내자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영적 안내자들을 세우셨다. 신앙생활을 처음시작 할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말씀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행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그때 내시가 빌립에게 (행8:31)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깨달을 수 없기에, 안내를 받아야 한다. 예배 드리러 왔다고 해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복음을 알지 못한다.

  바울 같은 훌륭한 인물도, 처음에는 바나바의 도움을 받았다. 영적 안내자가 이처럼 꼭 필요한데, 잘못된 영적 안내자는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자기 사람을 만들어, 그들을 조종하고, 다스리고 이용한다. 그러나 훌륭한 안내자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든다.

  영적 지도자를 세우심은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세우게 된다. 봉사를 통해 소속감을 갖게 된다. 보람도 갖게 된다.

  그러나 봉사를 억지로 하려 하지 말라. 봉사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우리가 봉사할 때, 상급을 받게 되므로, 성도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성도들을 편안하게만 하고, 봉사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성도를 영적으로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구원은 값없이 받지만, 상급과 면류관은 헌신을 통해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사하기를 힘쓰시기 바란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더 능력이 생긴다. 그때 우리는 점점 더 성숙한 사람이 된다.


3. 성숙한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사는가?

(1) 말씀의 교훈대로 산다(7).

예수 그리스도는 삶을 통하여, 성도의 믿음이 어떠해야 할지 본을 보이셨다. 우리 인생은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뉴욕 한 거리에서, 풍선 장수가 풍선을 팔고 있었다. 장사가 안 될 때면, 그는 풍선을 하나씩 날려보내곤 했다. 풍선이 하늘로 떠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잠시 동안은 장사가 잘 되곤 했다. 그는 각기 다른 색깔의 풍선을 날려보냈다.

  처음엔 하얀색, 다음엔 빨간색, 그리고 노란색의 풍선을 날려보냈다. 잠시 후, 한 흑인소년이 풍선 장수를 올려다보며 질문했다. “아저씨, 검은 풍선도 하늘로 나를 수 있나요?” 풍선 장수는 어린 흑인 소년을 내려다보며, 동정심과 이해심이 넘치는 말을 했다.

  “얘야, 풍선이 떠오르고 안 떠오르고는 색깔이 아니라, 풍선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란다” 풍선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풍선의 색깔이 아니다. 풍선 안에 있는 헬륨 가스다. 우리를 떠오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다. 우리의 내면에 무엇이 있느냐가 문제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습이 생활에 나타난다. 주님을 닮아 가는 변화와 성숙은, 내면에서 시작된다. 또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하워드 헨드릭스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계속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그의 행동이 아닌 생각을 변화시켜라”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된다. 내 힘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힘으로 살게 된다. 이처럼 영적으로 성장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더 닮아가게 된다. 예수님처럼 살게 된다. 사랑의 사람이 된다.

(2) 굳센 믿음을 갖게 된다(7).

예수님은 제자들이 의심할 때 안타까워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을 좇아 바다 위로 걸어오다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 의심할 때, 바다에 빠졌다.

  의심하면 역사 할 수 없다. 유익이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의심을 이기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의심을 이겨야 한다. 결코 바랄 수 없는 중에 아브라함은 바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신앙 성숙의 절정은 순종에 있다. 순종하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성숙한 믿음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세워놓고, 절하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부 가운데 던져 넣도록 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의 친구들은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그들에게, 당장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굳세었다. 믿음이 성숙했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절할 수 없다고 했다고 했다(단3:17-18). 이처럼 성숙한 믿음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고난을 감수한다.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굳센 믿음의 사람이 되어, 흔들리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3) 감사함이 넘치게 된다(7).

성숙한 영혼은 감사하는 영혼이다. 한 사람의 성숙도는, 그 사람이 얼마나 감사하는 삶을 사는지에 의해 측정할 수 있다. 그의 언어 속에, 얼마나 감사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성숙한 신앙인은 억지로 하는 감사가 아니기에, 감사함이 넘쳐난다. 바울은 지금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서를 쓰고 있다. 차가운 옥중에서 그는 감사를 노래하고, 감사를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늘 감사하는 삶을 사셨다. 이적을 일으킬 때마다, 먼저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

  감사는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다. 예수님은 이적을 일으키실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적은 감사할 때 일어나기에, 이적을 경험하기 원하시면,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시기 바란다. 또 감사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형통하게 된다.

  결론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영적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라. 말씀의 교훈대로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쳐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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