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편견을 넘어 (행 10:9 ~ 23)

  • 잡초 잡초
  • 433
  • 0

첨부 1


편견을 넘어 (행 10:9 ~ 23)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사도행전 10:9-23

우리 모두에게는 편견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작은 편견들이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또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편견에서 해방을 받아 좀 더 자유롭게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도전해주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방색, 지방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함경도 사람은 어떻다든지, 평안도 사람은 성질이 급하다든지 그런 것이지요. 저는 평안도 사람인데도 하나도 안 급합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람이 어떻다는 편견, ‘서울깍쟁이’라고 서울 사람들에 대한 편견도 있어요. 요새 서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전국에서 서울로 올라오지 않습니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비행기로 1시간이면 끝인 이 작은 나라가 지방색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이런 편견은 건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진보주의자가 어떠니, 보수주의자가 어떠니 하는 정치적 편견도 있고, 강자 앞에서는 꼼짝 못하면서 약자는 무시하는 편견도 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도 많습니다.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같이 살아본 경험이 없는 단일민족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입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후하지만 비(非)서구인에 대해서는 상당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 동포들이나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또 얼마나 심했습니까?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아침에 눈먼 사람을 보면 재주 없다고 침을 탁 뱉었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뒤뚱뒤뚱 거리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곤 했어요. 또 기업에 대한 편견, 노동자에 대한 편견, 교회는 교회대로 다른 교단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부산에서 다녔습니다. 그 당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경건한 사람들은 예배드릴 때 엘리야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 기도한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절대로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서울에는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자유주의자들이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는데, 어느 교회를 다녀야 할지 몰라 남대문에 있는 한 교회에 그냥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딱 들어가니 교인들이 모두 의자에 앉아 있는 겁니다. ‘아, 이런 사람과 내가 어떻게 함께 예배를 드리나?’ 저는 그날 예배를 못 드렸습니다. 편견이었지요. 그 후에 제가 미국에 갔다가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부산에 갔는데, 예전의 그 교회에서 저를 위한 환영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들어섰더니 의자가 쫙 놓여있었어요. 편견 때문에 사람들을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도 있지요. 딸아이가 트럭을 가지고 놀면 “야, 여자애가 무슨 트럭이야?”하고 인형 같은 것을 주지요. 요즘은 동일한 기회만 주어지면 여자도 남자처럼 못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딸 셋을 키우면서 늘 했던 말이 “너희들은 남자 되는 것 빼고는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에서 남학생들을 다 젖히고 학생회장을 하더라고요.

편견이란 무엇인가? 편견은 사실을 잘 알지 못한 채 좋지 않은 행동이나 과격한 판단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기도 전에, 만나기도 전에 마음으로 결정하고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은 남녀 사이의 편견의 문제를, ‘종달새를 죽여라’(To Kill A Mockingbird)는 흑인에 관한 편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그밖에도 이념적 편견, 철학적 편견, 애정문제에 관한 편견 등, 편견은 여러 분야에 여러 모양으로 존재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책임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편견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십니다.

왜 편견이 생깁니까? 과거에 겪은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나머지를 다 어둡게 보는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문화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생긴 편견도 있습니다. 혼혈인들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도 그 한 예입니다. 문화적, 사회적 편견으로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신앙인들과 교회에도 편견이 있습니다. 다른 교단과 교류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더 잘 믿는 교단이기 때문에 다른 교단과는 교류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교단의 총회장이 다른 교단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만 한 번해도 교계 신문에 대서특필합니다. 마땅한 일이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편견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려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요 유대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을 싫어했습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유대 민족인데, 이방인은 상대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가이사랴 동네에 이태리 사람이 있었는데 로마군인이었습니다. 유대 사람은 이태리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상대를 하지 않는데, 게다가 군인이라면 이스라엘의 정복자니까 그 사람들이 만나자 한다고 베드로가 만나주겠어요? 베드로는 이방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잘 먹다가 유대사람이 오니까 일어나서 싹 도망갔습니다. 자기가 이방인과 밥 먹는 것을 유대사람들에게 안 보이려고 한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 사도에게 혼이 났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유대인만 사랑하십니까?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런 행동은 하지 마십시오!” 사도바울이 아주 잘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견을 없애주시려고 오늘 이 성경구절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루에도 세 번씩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편견이 있었어요. 여러분 역시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혹시 베드로처럼 어떤 편견이 있는지 찾아보시고, 있다면 지금 그 편견을 이곳에 내려놓고 가십시오. 놓았다가 다시 집어가지 마시고 그냥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그 때가 12시이고 배가 고파 아래층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지붕에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비몽사몽간에 환상에 빠졌습니다. 하늘에서부터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거기 보니까 별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네 발 가진 온갖 짐승들과 곤충, 벌레, 뱀, 그리고 조류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베드로는 ‘아니, 왜 이런 것들이 나타날까?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야, 손을 뻗어 그것들을 잡아먹어라.”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베드로의 반응이 “하나님, 절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속되고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제가 전혀 먹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로 먹지 않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셨는데도 속되고 더러운 것들이라고 안 먹어요. 여러분, 그 속되고 더러운 것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그리고 “참, 좋다!” 하신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발 달린 짐승들을 창조하시고는 “참 좋다”, 벌레들을 창조하시고는 “참 좋다!”, 공중의 새를 창조하시고도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름다우신 하나님,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좋다고 하신 생물들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무리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해도 저는 이 속되고 더러운 것들은 안 먹습니다. 내가 더럽다고 하면 더러운 겁니다. 절대로 안 먹어요.”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편견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은 좋습니다. 다만 내가 싫어할 뿐입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뱀입니다. 우리 집에는 저 외에는 여자밖에 없으니까 TV에 뱀이 나오면 다들 눈을 가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가정에서 우리 가족을 식사에 초대해서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그 집에 갔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니 길이가 한 2m 정도 되어 보이는 굵은 뱀이 바닥에 척 늘어져 있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과 제 아내가 기겁을 해서 기절할 뻔 했어요. 그 뱀은 그 집의 애완용 뱀이었어요. 뱀 껍질이 착착 벗겨지는데도 그것이 그렇게 멋있는가 봐요. 우리 식구들이 어쩔 줄 몰라 하기에 제가 주인에게 살짝 “우리 식구들은 뱀 알레르기가 있으니까 잠깐 다른 곳에 치웠다가 데리고 오면 어떨까요?” 말하고는 겨우 점심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싫어하지만 그 집에서는 만지고 장난치고, 최고로 귀여운 동물이었어요. 이것도 동물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입니다.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으로 생긴 편견이지요.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만들어놓았는데 네가 왜 속되다, 더럽다고 하는가? 네가 창조자냐?”하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먹어라!” “못 먹습니다.” “먹어!” “못 먹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도 딱 버티고 안 먹는다는 겁니다. 그러는 동안 환상에서 깨서 그것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어요. 그러자 베드로의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여러분도 종종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고는 혼란스럽거나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 때 어떻게 하십니까? 김상복 목사한테 전화하잖아요. 제가 그런 전화상담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 제게 이야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더러 해석해달라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떤 때는 들어보면 개꿈인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제가 영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하고, 다른 이야기도 다 물어서 제 의견을 말해줄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도 환상을 보고 도대체 무슨 뜻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는 저 가이사랴에 사는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고넬료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여기 와서 당신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그 환상을 보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방인이요, 정복자인 로마 군인이 부르는데 유대인인 그가 왜 가겠습니까? 그런데 드디어 베드로가 편견에서 해방을 받기 시작하고, 편견에서 자유로, 아가페로 돌아서는 첫 발자국을 디딘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고넬료에 대해서 그저 이방인, 로마 군인으로만 알면 편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22절). 이방인이요 군인이요 정복자라 할지라도 그 속에 의로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셋째,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유대인들 사이에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넷째, 천사와도 교류하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복음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22절).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하고 만나보지도 않았고 대화도 해보지 않았는데 무조건 싫다, 좋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편견입니다. 사실 만나보면 고넬료처럼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속에 어떤 종류의 편견들이 있든지 이 편견을 제거시키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무조건 맞아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품어주시는 것처럼 여러분도 편견 없이 다른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여러분의 인생을 즐기게 되기를 원합니다.

링컨 대통령 시절, 남북전쟁이 끝나고 남부 출신의 로버트 리라는 장군이 워싱턴에 있는 아주 잘 지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시간이 되자 그 장군은 앞으로 나와 흑인 옆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같이 예배를 드리던 남부에서 온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우리 남부의 최고 사령관인 장군께서 어떻게 흑인 옆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장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여, 십자가 앞의 모든 지면은 다 똑같습니다.” 편견에서 해방 받은 장군입니다. 이런 지도자들이 사회 곳곳에 있을 때 그 사회는 새로운 사회, 편견 없는 사회, 공평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로버트 리 장군과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부부가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데 그만 타이어가 펑크 났습니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많은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데 좀 도와 달라고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저기서 터덜터덜 거리면서 폐차장에서나 볼만한 낡은 차가 한 대 다가와서 섰습니다. 그 차에서 거지처럼 옷을 입은 사람이 한 명 나와 묻습니다. “차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부부가 사정 이야기를 하자 “나에게 도구가 있으니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 차에서 잭을 가지고와 다 고쳐주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부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허름한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갔지만 이 허름한 사람은 차를 세우고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무시하거나 멸시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다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고, 피부 색깔도 다르지만, 모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편견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으로 우리의 손을 펴서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1955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흑인 가수가 처음으로 섰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마리아 앤더슨이지요. 그녀는 얼마나 멋진 음성을 가졌습니까. 공연을 마치자마자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마리아 앤더슨은 대답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나의 시선을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향하여 ‘내가 너를 영원히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어려운 일들을 모두 이기고 흑인 오페라 가수로서 최초로 뉴욕 무대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편견 없이 다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천국을 값없이 은혜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이 있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얼마든지 어려움을 견뎌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편견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처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편견을 당할 때에도 그 모든 것을 아시고 “내가 너를 영원히 사랑하느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음성을 듣고 이겨나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온 누리에 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