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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행 17: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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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행 17:32-34)

바울이 아덴 즉, 지금의 그리스 수도인 아테네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17:22-31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장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그가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1.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32)

복음을 들은 첫 번째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감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학자 중에 신학자요, 위대한 설교자인 사도 바울이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롱을 당하였다.

여기 “조롱하였다”는 말은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비웃었다는 말이요, 업신여기고, 멸시하여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바울 당시만이 아니라 현대인간들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창19: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천사를 통하여 롯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셨다. 그 때 롯은 이 말씀을 자기 딸과 정혼한 두 사위들에게 찾아가 전해주었다. 그러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하였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비웃는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비웃는다. 예수님의 재림을 비웃고 그가 행하신 많은 이적들을 비웃는다. 천국을 비웃고, 지옥을 비웃는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증거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미쳤다”고 정신병자 취급을 하였으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멸시하였다.

기독교의 복음이 이렇게 외면을 당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지성과 이성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믿고, 받아 드리려는 합리주의로 나가고 있다.

신령한 진리는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세상 초등학문을 버릴 때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2.다음에 다시 듣겠다고 연기한 사람들이 있었다.(32)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고 망설이며, 결단을 미루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바로 지금 결단해야 할 것을 내일로 연기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내일로, 다음 기회로 연기한다. 하나님은 “오늘” 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내일” 하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기도를, 전도를, 충성을, 성경을 읽고 배우는 일을, 예배드리는 일을, 회개를, 결단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보화를 발견하고서도 머뭇거리는 사람은 그 보화를 소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회는 우리에게 여러 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단이 쓰는 최고 무기가 “내일”이라는 단어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내일, 내일 하지 말라 내일은 끝없는 내일이다”
인생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단 한 번의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인생은 연습도 없고, 반복도 없다. 때문에 옳은 일은 미루지 말고 즉시 시행하여야 한다.

어거스틴은 “날마다 마지막으로 알고 살아야 된다.”고 말하였다.
분명한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 “다음에 다시 듣겠다”고 말했지만 성경에 의하면 바울이 다시 그곳에 갔다는 기록이 없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은 복을 들을 기회가 다시는 없었다는 말이다.

3.믿은 사람이 있었다.(34)

그들은 비록 소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즉시 받아 들였다. 기독교의 진리는 알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다. 먼저 믿을 때 하나님의 진리가 알아지고, 깨달아지는 것이다.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먼저 믿어야 한다.
요6: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믿는 일이 옳은 일인 줄 안 이상 그들은 지체하지 않았다.

믿음이란 가져도 되고, 가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노리개나 장난감이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반드시 가져야 할 보배이다.

결단을 내려야한다.
아무리 세상의 것이 그 마음에 가득 차 있다 하여도,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계시지 않는 한, 허무한 인생의 삶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돈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명예를 가지고, 아쉬운 것 없이 편안하게 살려고 한다.
물론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으면 편안하게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평안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편안은 육적인 것으로서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평안은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지식이 있고, 명예가 있어서 편안하기는 하지만, 평안하지는 못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 성경은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꼭 가져야 할 귀한 보배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신33: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 시대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옳은 일이라면 즉시 실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믿음, 봉사, 충성, 전도, 기도 등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영원한 후회와 탄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결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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