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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 줍는 자의 믿음 (룻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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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줍는 자의 믿음 (룻 2:1-7)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모여서 룻기서를 읽는다고 합니다. 룻기서는 위로의 책이며, 소망의 책, 감사의 책입니다. 또 한 사람 이방인 여인이 돌아와서 선민이 되는 첫 번째 은총을 입는 책이 바로 룻기서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이후 천년 만에 한 이방여인이 선민이 되는 아름다운 책이 룻기입니다. 룻기서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역전의 드라마와 같이 놀라운, 새로운 장면으로 바뀌어 집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책인지 모릅니다.

  룻기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좀 어렵다고 해서 이방 땅으로 건너났을 때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하나님을 떠난 손해와 불행, 아픔이 얼마나 크다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흉년이 들어서 말론과 기룐이라고 하는 두 아들과 함께 이방 땅으로 먹고 살기 위하여 건너가 이방의 풍속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땅에 적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나라에 있는 자부를 받아들여서 그 나라 시민이 되어 그 나라에 살려고 했지만 하나님을 떠난 영광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평안, 행복, 부유함, 축복은 절대로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모든 환경은 바뀌어졌습니다. 두 아들과 남편이 죽었습니다. 나오미 혼자 남았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브람함도 이삭도 어려웠을 때 애굽에 내려갔다가 큰 손해, 큰 어려움을 당한 것처럼 어렵다고 해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지경을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성공할 수도 문제가 해결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다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다시 넘어와서 국경을 건넙니다. 그 라인 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쪽에 있었을 때는 살았는데, 저쪽에 가서는 죽음이 왔습니다. 이쪽에서는 생명이 있었는데 저쪽에서는 영원한 사망과 저주가 온 것입니다. 돌아오는 자에게 주시는 위로와 은혜가 측량할 수 없이 큽니다. 돌아가면 삽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로 건너뛰면 생명을 얻습니다.
 
  중국에 가면 도문이라는 곳에 두만강 다리가 있습니다. 북한으로 건너가는 다리입니다. 그 다리 중간에 라인이 하나 그어져 있습니다. 이쪽은 중국, 저쪽은 북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도 군인이 따라옵니다. 건너면 안 되니까 건너면 쏩니다. 한 발자국도 건너면 안 됩니다. 그 라인을 이렇게 보고 사진을 찍습니다. 왜냐하면 이쪽은 중국, 저쪽은 북한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라인 하나지만 라인 하나만 선이 그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쪽에 있는 사람들의 정치와 이쪽 정치가 다르고, 그쪽의 문화와 이쪽의 문화가 다르며, 그쪽의 의식과 사상이 이쪽과 전혀 다릅니다. 모든 것은 것이 다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생각, 생활, 습관이 우리의 인생관, 미래관, 국가관, 가족관, 물질관, 행복관 등 모두가 다릅니다. 하나님 밖에서의 생각과 그리스도 안에, 그의 품 안에 왔을 때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주님에게로 돌아오면 주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포도나무는 주님이 돌보아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가지마다 말할 수 없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모압땅을 떠날 때 나오미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자부 둘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고향,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가야 되겠다. 국경을 넘어서 주님에게로 가야 되겠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되겠다. 너희들은 너희끼리 가라.” 이렇게 말할 때 자부 둘 가운데 오르바라고 하는 자부는 갔는데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어머니를 따라갑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을 나도 갖겠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겠습니다. 어머니 계시는 곳으로 따라가겠습니다.” 밀레의 그림과 같습니다. 가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이삭을 줍는 아름다운 노동이 있고, 부모님을 모시는 효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를 모시는 이방여인이,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모습이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세상에 어린아이 안고 찍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로하신 어머니를 부축해서 다니는 삶은 이 지상에 제일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귀히 여기고, 부모님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부모 없는 게 그게 사람입니까? 저도 생각해 보면 제가 지금 사람인냥 어머니 아버지도 안 계시는데, 이 기쁨을 부모님께 드려야 되는데, 그래서 저도 이번에 부총회장이 되고 어머니 아버지 산소에 가서 산소를 안고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기도 덕택입니다. 어머니 받아주세요. 아버지 받아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부모님이 계셨으면 부모님 앞에 춤을 출 텐데. 세상에 부모 모시는 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하고 함께 있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은 그때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룻은 어머니를 모시고 온 겁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할 때,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길로 나가면 거기에 좋은 일이 있습니다. 룻기서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믿고, 부모님 잘 모시고, 열심히 일하면 잘 된다라는 겁니다. 간단한 논리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듭니다. 룻이 나중에 다윗왕의 조상이 되지 않습니까? 이방여인이 어떻게 이런 영광스러움이 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됩니다. 그에게서 메시야의 길이 열립니다. 메시야가 태어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정말 인생의 기본이 되고, 우리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눈으로는 바라보며, 내입으로 주님을 시인하라 그랬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귀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늘 귀를 열어놓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눈은 잠잘 때 감게 만들고 입도 다물게 했지만 귀는 24시간 열어놓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늘 교통하고 늘 대화하라고.

  병원에 입원해도 혹시 혼수상태에 빠지고 산소 호흡기를 끼며, 말을 전혀 못하고 이렇게 있어도 귀는 늘 열려 있답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 교회에 집회하셨던 목회를 잘하시는 목사님이 쓰러져서 병원에 가니 99% 돌아가신다고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장로님들이 위로하러 와서 “빨리 후임자 정해야 되겠다.”고 그러니까 이분이 화가 나서 일어나버렸습니다.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다 들리더랍니다. 지금 목회를 잘하고 계십니다. 사람 돌아가실 때라도 그런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됩니다. 끝까지 듣는 겁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에 찬송 불러드리고, 왜냐하면 끝까지 들으니까. 저도 저희 아버님 돌아가실 때 옆에서 두 시간 계속 찬송을 불러드렸습니다. “아버지! 잘 가세요. 아버지! 사랑해요.” 계속 그 말하면서 “아버지! 기도 하세요. 천사가 와 있어요. 아버지! 힘내세요. 주님이 이끌고 계세요.” 아버지가 말문을 닫고 그래도 너무 편안하신 겁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고 평안하게 계속 찬송을 부르는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항상 옆에서 그렇게 해 드려야 됩니다. 어느 목사님도 완전 병원에서 쓰러져 계셨는데, 또 장로님들이, 교인들이 와서 “돌아가시면 빨리 후임자 모셔야 된다.”고 그러니까 그만 이분도 일어나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분이 이번에 부총회장이 나설 때 누가 그 말 했는지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어른은 돌아가시기 전에 임종이 가까왔는데 자녀들 5남매가 와 장례식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누가 모셔야 된다고 그러고, 화장하자고 그러고, 계속 싸우니까 너무 속상한 겁니다. 이분도 “야! 그렇게 하려면 내가 걸어갈게.” 그러고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귀를 늘 열어놔야 됩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주의 음성을 듣으며, 그래서 밤에 잠을 자도 귀는 열어놔야 됩니다. “불이야! 강도야!” 그래도 귀는 들어야 되니까. 하나님의 지혜로 정말 잘 만드신 겁니다. 귀로 앞의 소리를 잘 듣게 한 것도 “뒤의 소리는 듣지 마라. 앞만 바라보고 앞에 계시는 주의 음성을 들어라.”는 뜻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뒤에 있지 않습니까? “뒤로 돌아오라. 세상으로 가라. 백(back)하라. 유턴하라.” 그래서 뒤의 음성은 듣지 말고 앞에 계신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왜 나옵니까? 들으려고 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옵니다. 인생은 무슨 소리를 듣습니까?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 복된 자가 되고, 생명의 소리를 들어야 생명을 얻고, 구원의 소리, 하늘의 뉴스, 신령한 음성, 영생의 음성을 들으려고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들으니까 여러분이 소생하는 줄로 믿습니다. 

  에스겔 37장에 모든 해골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살아났습니다. 오늘 죽은 자들의 모든 영혼도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면 누구든지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듣는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듣는 종교가 아니고 보는 종교입니다. 자기 공로입니다. 교회에 와서 듣기만 하면 우리 온 몸이 소생하고 살아납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유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십니다. 이렇게 룻같이 비참하고, 다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을 믿고 믿음의 길로 나오니 이 길이 열려지는 겁니다. 세상 사람은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리는 하나 밖에 없으니까, 놓치면 끝나니까 생명 걸고 서로 싸웁니다. 동물의 세계와 같습니다. 내가 지면 죽으니까 싸웁니다. 그러나 우리 교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리와 길을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질투나 시기를 하지 않습니다. 한 자리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잘되게 하십니다.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어제나 오늘도 언제든지 변챦고 보호해 주시네♬(찬송가 178장)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남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일할 것이 많고 먹을 것이 많습니다. 과수원에 있는 아들이 ‘사과 못 먹으면...’하는 그런 걱정 안합니다. 그런 걱정을 하겠습니까? 과자공장에 있는 아이가 과자 먹고 싶은 걱정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앞날을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길을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한 10여년 가장 걱정한 것이 ‘나는 장가갈 수 있겠나’ 늘 그 걱정을 했습니다. 그 어려운 농촌에 누가 오겠습니까? 아무도 내게는 그 농촌에, 그 가난한 집에, 동생들도 많은데 누가 오겠습니까? 그러나 다 그래도 나한테 걸리는 어리숙한 여자가 있는 겁니다. 누군가를 준비해 놓은 겁니다. 여러분! 어리숙한 사람이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목회의 길이 있습니다. 사람은 안 봐주지만 하나님이 봐주시면 되는 겁니다. 길이 있습니다. ‘나는 일자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도 혹시 그런 생각하지 말고 그런 생각하는 동안에 기도 하십시오. 그런 생각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며,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주님께 맡기고 소망의 항구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한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엔더슨 목사님이 빌리 그레함 목사님에게 그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이 비천한 종이 목사님을 한번만이라도 뵙고 싶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목사에게 한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때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만나서 하는 말씀이 “목사님! 하나님 앞에서는 비천한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 세상에 보잘 것 없는 목사는 한사람도 없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 앞에서야 그렇죠.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때가 되면 다 우리를 높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다 어려웠을 때는 모두 비천한 자였습니다. 링컨도 얼마나 비천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귀하게 만들어 주시고, 루즈벨트도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세계적인 인물로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아이젠하워도 심장병으로 14번이나 쓰러진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드골 대통령도 당뇨병과 백내장 때문에 평생 시달려 왔고, 유명한 웨슬레 선생도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서 얼굴이 다 망가지고 폐결핵을 앓아서 각혈까지 했지만 세계적인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 다 만들어 주셨습니다. 에디슨이 얼마나 비천했지만 세계적인 과학자로 만들어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손을 잡으면 걸어가던 애들을 옛날에 자동차에 올라 태우면 되듯이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낙심하면 안 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또 남에게 시기 질투 합니다. 책임전가 합니다. 원망불평 합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증오합니다. 그러면 점점 더 안 됩니다. 오늘 룻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하나님을 믿고 베들레헴으로 나왔습니다. 베들레헴에 왔어도 “나 이방인인데 멸시천대 받고 집안에 있을 수 없어 부끄럽다. 남편도 죽고 어린 나이에 이게 무슨 꼴이냐.” 이러지를 않고 어머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빨리 밭에 나가서 일을 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밭으로 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밭에서 이삭을 줍게 했습니다. 신명기 24장에도 그런 말씀이, 레위기 19장 9절에도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4장에 19절에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까치열매, 까치밥이라고 과일을 다 못 따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 긍휼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농사를 지어도 다 거두어 가면 안 되게 하시고, 곡식을 베어도 떨어트리게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뒤따라 와서 이삭을 줍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은 성도들은 이삭을 떨어트려야 됩니다. 좀 어리숙해야 됩니다. 함께 사는 이런 부드러운 사회, 정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됩니다. 한 사람이 살면 그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이 다 같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됩니다. 오늘 교회나 사회나 너무 각박해 졌습니다. 이웃이 없습니다. 이삭을 안 남기듯이 싹싹 끌어가고, 모래까지 끌어가는 시대입니다. 남기지 않습니다. 나 혼자 내 집안으로 다 가지고 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남겨야 동물도 먹고 살고, 사람도 먹고 삽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회를 부드럽게 만들고, 이삭을 줄줄줄 떨어트려서 함께 사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우리는 잘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이 변해야 됩니다. 그러면 다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전에도 그런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은 사실은 어렸을 때는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잘못해서 우리 가정이 기울어지면서 어려워진 겁니다. 청소년 때는 아주 제가 어렵게 지냈습니다. 과일도 없고, 집에 논밭도 얼마 안 되니까 항상 어려웠습니다. 가을이 되면 가을에 감, 밤, 대추도 따고 그러지 않습니까? 다 따고 간 다음에 제가 밤 따러 산에 가서 밤나무에 올라갑니다. 허리를 탁 묶고, 여기다가 러닝셔츠 안으로 따서 전부 집어넣는 겁니다. 칡이라는 끈으로 바지 다리 밑을 묶고, 옷 속으로, 주머니 속으로 전부 넣어 걷지도 못할 정도로 해서 옵니다. 그래서 어떤 집은 정말 그렇게 남겨놓는 겁니다. 아예 어려운 자리는 놔두고. 어떤 집은 끝까지 다 따갑니다, 올라가서 아무것도 없으면 제가 그냥 내려오겠습니까? 욕합니다. 저절로 이게 나옵니다. 오늘 우리는 옆집도 모두 같이 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만 계속 크고, 우리끼리 잘되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다 함께 나누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어려운 일에 최선을 다 하듯이 온 우리나라 어려운 곳곳을 향해 섬기고, 제가 혹시 그런 섬기는 기회가 더 총회적으로 열려지면 그런 일을 많이 할려고 그럽니다. 많이 나누어서 이 땅 위에 이삭이 넘치도록. 할렐루야! 함께 웃으며 감사하는 이 복된 나라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룻기 2장 1절에서 부터 3절까지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하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이미 베들레헴으로 건너 왔습니다. 나오미의 남편은 엘리멜렉입니다. 엘리멜렉은 모압땅에서 죽었지만 그 친척들이 다 거기서 삽니다. 친척중에 부자가 있는데 그 밭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일하고 보니 자기 시아버지 하고 집안형제입니다. 가까운 집안입니다. 그 집안에서 가서 일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은 가만히 있지 말고 주님 앞에 나와서 믿음으로 일하고 기도하며, 가정에, 부부 간에 다툴 때에도 집에서 다 해결하려고 그러지 마십시오. 해결 못합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은혜를 받으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됩니다. 밖에 나와서 거두어서 집으로 들어가야지, 있는 것 가지고 서로 잡아 뜯고 그러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싸우는 데서 피해야 합니다. 안 되면 피해야 합니다. 가장 절망 있는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소망 있는 곳에 나와서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밭에 갔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시아버지 집안 밭에서 일하게 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여러분의 길을 우연히 오늘 누구를 잘 만나게 하시고, 우연히 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우연히 복을 내려주시고, 우연히 건강하게 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은 내 가는 발걸음 우연하게 인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는, 세상은 육하원칙 틀림없는 공식된 길로 가지만 틀립니다. 우리는 우연하게 가도 이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됩니다. 그 밭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다음 말씀 4절.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보아스는 부자이며 주인입니다. 여기 밭에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삭 줍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인이 오더니 “너희들에게 복이 있을 지어다. 여호와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랬더니 모든 일하는 직원들도 “주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합니다. 나라가 되려면 이렇게 되야 됩니다. 요즘 노사가 막 생명 걸고 서로 싸우고 그러는데, 주인이 와서 “여러분! 얼마나 수고 합니까?” 그러고 복을 빌어주고, 밑에서도 “얼마나 수고 많습니까?”라고 그러고 주인에게 복을 빌어주고. 항상 “하나님의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밖에서 들어오면 집에서도 “얼마나 수고했어요.” 그러고 축복해 주고, 또 집에서는 밖에 들어오는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너희들에게 주의 축복이 있으라.” 오늘 천사의 합창이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은지 듣다가 저는 눈물이 나서 애 먹었습니다. 설교도 못할 뻔했습니다. “주의 축복이 있으라.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복을 빕니다. 

  우리는 모두 만나면 싸우려고 그럽니다. 서로가 띠 두르고, 죽이려고 그럽니다. 만나면 모두 부딪히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성도는 보아스의 밭이 되어서 밭에 일하는 분을 축복하여 그 모든 분들이 복을 받아 항상 잘 되게 하고, 또 주인을 축복하여 주인의 집이 잘 되도록 하는 이런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을 빌어주십시오. 복을 빌어주는 주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때에 따라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지식의 복, 명예의 복, 정치적인 복, 권력의 복, 인기의 복, 모든 복을 주실 때 그 복을 혼자 독차지 하지 말고, 보아스 같은 주인이 되어서 모든 분을 축복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어 주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내가 영광 누리라고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하려고 내게 이 자리를 주시는 겁니다. 모든 분에게 주의 축복이 있으라!

  5절부터 7절까지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이 소개가 되었습니다. 이 룻은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방여인이지만 어머니를 잘 모시고 열심히 일합니다. 잠시 쉬는 것 외에는 부지런히 일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부지런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열심히 일하시는 목자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을 평생 부지런히 열심히 룻과 같이 일하는 땀 흘리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부지런한 것은 축복입니다. 잠언 12장 24절에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리라.”라고 했습니다. 잠언 19장 24절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 잠언 26장 14절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침상에서 딩굽니다. 잠언 26장 15절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 잠언 26장 16절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른 사람은 말 하나는 혼자 잘 한다는 겁니다. 밖에서 아내가 열심히 종일 일하고 오면 그 다음부터 한참 가르칩니다. 가만히 앉았다가, 게으른 사람은 말이 많습니다. 집안을 떠나려고 그러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야 됩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잘 사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게으릅니다. 죄에 빠진 인생은 게을러집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인생은 게을러집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가을철에 조금만 부지런하면 가락시장에 가면 얼마나 싸게 사는지, 저녁 늦게 파장에 가면 도매로 넘깁니다. 머리 토막 잘라낸 것을 갖다가 찌개를 하면 너무 맛있습니다. 방어머리, 방어탕, 얼마나 맛있는지. 맛이 그냥 기가 막힙니다. 부지런하면 할 일이 많습니다. 집에서도 부지런하고, 나와서도 부지런하고 그러면 다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굉장한 사람이 되어서 굉장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도 슬픔과 절망의 인생, 끝이 난 가정일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고, 거룩한 땅을 나아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성심껏 모시고 밭에 가서 열심히 일하니 나중에 보아스도 저절로 만나고 길이 열립니다. 천하에 좋은 사람을 만납니다. 일하지 않고 이렇게 만나는 사람은 멋쟁이를 만나는데 알고 보니 제비족 만나 완전히 걸리는 겁니다. 일하다가 만나야 됩니다. 오늘 모두 번지르한 사람 만나 다 당하는 겁니다. 밭에 가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가 만나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룻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룻과 같은 인생이 되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백배나 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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