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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만이 남길 수 있는 축복 (왕상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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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만이 남길 수 있는 축복 (왕상 2:1-4)
   
    테레사 수녀의 편지가 공개되므로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타임지가 숨겨진 테레사 수녀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테레사 수녀의 비밀을 공개했습니다. 그녀가 40여년에 걸쳐 지인들에게 보낸 40여 통의 편지의 내용이 공개됐는데 의외로 본인 내면의 어두움, 의심, 번민 이런 것을 드러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테레사 수녀는 오랜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현상이 아니고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이 시대의 성자로 부렸던 테레사 수녀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파장을 일으킬만합니다. 과연 성자로 추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것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의 믿음도 흔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일 때문에 나의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왜 그랬을까? 그건 알 수 없지요. 제 개인적인 추측은 일종의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우울증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하도 성자로 추앙을 받다보니까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가 마치 정말 성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신성불가침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이것은 테레사 수녀이든 캘커타의 걸인이든 다 똑같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죄를 안 지을 만큼 거룩한 사람이 없고 하나님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를 성자인 것처럼 추앙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망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추앙받는 본인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그 위상이 절대적이 됐는데 자기의 연약함이든 의심이든 고민을 누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고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남에게 예수님 잘 믿으라고 권면하지만 정작 자기들의 고민이 있을 때는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어느 누구도 남에게 가르치기만 하고 본인은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착각이지요. 예수님 말씀에 ‘마지막 날 주여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고 예언을 하고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라고 말할 때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하시는 일이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정말 의인인지 누가 예수님의 진실한 종이었는지는 그때까지 가 봐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테레사 수녀의 사역에 대해서 한 가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그녀의 사역에 좀 더 수직적인 면이 많았으면 좋았겠다 라는 것입니다. 수평적인 것은 탁월했지요. 타인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캘커타 빈민을 위한 봉사, 정말로 인류를 위해 많이 공헌했습니다. 그러나 수직적인 면 - 예배, 기도, 말씀, 전도, 성령, 이런 것을 부각시켰다는 인상을 제가 받지 못했습니다. ‘형제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테레사 수녀가 늘 하시던 말씀이에요. 그녀의 사역을 대표하는 말씀입니다. 옳습니다. 형제에게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가 예수님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섬기는 것은 그대로 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 섬기는 것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수직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신앙이지 사회사업은 아닙니다. 영국의 위대한 부흥사였던 스미스 위글스워드라는 분은 30분에 한 번씩 기도하고 1시간에 한 번씩 성경을 읽는다고 했어요.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케넷 헤이건 목사는 하나님이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면 다음의 양을 늘린다고 했습니다. 기도, 금식, 성경읽기, 이것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하면 하나님이 다시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한국음식에 어떤 반찬, 어떤 요리를 차리든지 빠질 수 없는 것이 밥, 국, 김치입니다. 이것이 한국음식이라면 항상 있어야 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에요. 신앙생활도 어떤 예배든 어떤 모임이든 반드시 빠지지 말고 들어가야 되는 것이 기도, 말씀, 영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뺄 수 없습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여러분의 목사로서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많은 식견을 쌓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인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책도 읽고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마는 그러나 교인들이 정말로 듣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말씀이에요. 교인들은 성경말씀을 듣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조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식견을 높이기 위해서 심리학이든 역사학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이런 것을 보지만 결국 거기에는 생명을 찾을 수 없고, 생명이 되고 은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할렐루야!
  저도 가끔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데 제가 좋아하는 설교는 재미있는 설교도 아니고 세련된 설교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평이하게 전하는 설교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은혜가 되고 저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수요오전예배 때 이미 인용한 구절인데 하도 제 자신에게 은혜가 되어 한 번 더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언뜻 읽어보면 지극히 평범한 말씀처럼 들립니다마는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유언을 남길 수 있을지. 이 말씀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첫째는 다윗은 자기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축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희망사항이 아니고 잔소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요 축복하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도와 그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다윗이 숨지기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인데 이것은 예언이고 축복이요 권면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조건부 형식으로 돼 있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리라, if,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리라, 조건부 형식으로 돼 있지만 그럼에도 장차 그 아들 솔로몬의 미래가 형통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기만 하면 너는 잘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축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말을 해 줄 수가 있습니까.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믿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만일 다윗이 이런 유언을 남기지 않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내 아들아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 인생은 참 어렵다. 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것은 안되더라. 있는 사람은 더 있고 없는 사람은 없는 게 인생이더라. 인생은 불공평하고 세상은 어렵고 사람은 악하고 그러므로 돈밖에는 없다. 믿을 사람 없다. 너도 적당히 살고 적당히 교회 다녀라.’ 이런 식으로 유언을 남겼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윗이 그가 일평생 편안하게 살고 소위 팔자가 좋아서 이런 긍정적인 말을 남긴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인생은 굴곡이 많았습니다. 고생을 다윗처럼 많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자신의 인생의 고난, 쓴 경험이 그 영혼을 냉소적으로 만들었다든가, 비관적으로 마음을 쓰게 만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다윗이 남길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너를 형통케 하실 것이다, 너는 반드시 잘 될 것이다, 다윗이 왜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까?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믿음의 고백이에요. 살다보면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려움이 우리의 믿음을 왜곡시키게 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만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영혼을 변질시키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고 인간은 거짓되나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할렐루야!

  다윗이 이런 축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특별히 훌륭한 아버지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윗은 자상한 아버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의 가족사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큰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고, 그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겁탈하다가 죽었고, 둘째 아들 아도니야가 임금이 되려고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풍파 많은 가족사예요. 다윗은 결코 이상적인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모범적인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좋은 크리스챤이 되면 당연히 좋은 부모가 되고 좋은 남편 ․ 아내가 되고좋은 자식이 되고, 직장에서는 좋은 직원이 되고 국가에서는 좋은 국민이 되겠지.’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해도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하고 좋은 배우자가 되지 못하고, 좋은 자녀, 좋은 직원이 못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은 신앙인이 아니냐? 그건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의 어떤 연약함 때문에 좀 더 좋은 그 무엇이 못 될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그의 신앙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예요. 그것을 지키는 것도 사실은 어렵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좋은 크리스챤은 좋은 부모요, 배우자요, 일꾼이요, 이렇게 되면 좋지만 그게 안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믿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런 축복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에게 받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4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다윗은 하나님에게 들은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이것은 하나님과 다윗 사이의 비밀입니다. 소위 내부정보입니다. inside information, 내부정보입니다. 비밀입니다. 삼손의 그 머리카락이 그의 능력의 비밀이었던 것처럼 믿음의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비밀의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만이 공유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는 세계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너희가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은밀한 세계가 있어야 됩니다. 모든 좋은 것은 여기에서부터 우러나오게 돼 있습니다. 축복도 은사도 능력도 평강도 이 은밀한 세계에서 흘러나옵니다.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모든 좋은 것이 그것을 통해서 우러나옵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솟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속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강건하게 만들고 진실하게 만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담대하게 만들고 여기에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고 담대함과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세계를 우리는 개발시켜야 됩니다. 이것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고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같은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실 자기 앞가림도 하기 어렵습니다.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자기 문제 감당하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다윗은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 장차 어떻게 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옵니까?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내 주변에 이런 자신감을 갖고 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이미 세상에는 의심하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 염려하는 사람, 또 비관적인 사람은 수두룩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아요. 그러나 내 인생에 대하여, 내 미래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우리는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솔로몬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지요, 좋은 이름을 갖고 있지요, 좋은 환경에서 살지요, 왕의 자리를 이어받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그가 아직 젊었을 때 그에게 그의 밝은 미래를 예언하고 축복해 주는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의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에 ‘너는 여호와의 말씀 그의 율례의 증거를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너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너를 형통케 하시리라’ 하면서 아버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아들에게 증거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귀중한 유산이에요.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산입니다.

  이것은 메시야적인 예언인데 사실 다윗이 솔로몬에게 해 주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지만 한 가지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서 겸손히 행하고 그 말씀을 잘 지켜 행하면 하나님이 우리도 형통케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형통케 해 주셔서 어떠한 일이 세상에 있을지라도 결국 잘 되게 해 주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잘 될 줄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요, 선한 것을 주시는 분이요, 우리의 삶 속의 모든 것이 연합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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