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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로 환경을 이기라(1) : 기도로 열린 하늘 문 (눅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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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환경을 이기라(1) : 기도로 열린 하늘 문 (눅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눅 3:21)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에서 다루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첫 장면으로, 그 배경은 아주 깊은 산골이나 또는 높은 산,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사람으로 붐비는 요단강 가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삼십 년 가까이의 사생애 동안에도 예수님께서는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전심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삶을 사셨고 경건한 생활을 해 오셨기 때문에 깊은 기도생활 속에서 사적인 생애를 보내셨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분의 공적인 생애에 집중하면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장면은 아직은 공적인 생애의 시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유대광야에 들어가 주리시고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에 시작된 생애가 진정으로 공적인 생애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시점은 공적인 생애와 사적인 생애를 갈라놓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I. 세례 받으심의 의미

예수님의 이 첫 번째 기도의 장면은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세례가 무엇이뇨?”하는 교리문답에서 여러분들은 “세례는 죄 씻음의 표요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표적입니다.”하고 답변을 했을 것입니다. 원래 이 세례는 불결을 씻는다는 표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죄 씻음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는 이 세례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 씻음의 표가 세례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고, 이 세례가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표적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과 하나 될 필요가 없으니 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이지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그 의미는 우리들이 받은 세례의 의미와는 다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독특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는데 첫째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이 장면은 바로 메시아로서 공적인 취임을 하는 표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 씻음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이 세례의 사건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으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는 음성이었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은 두 가지 사실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치고 있으니,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인침이며,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서 하실 일들에 대한 인치심이니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즉 “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내가 기뻐하노라”라고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치심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로서 공적인 취임을 하시게 되고 이 공적인 취임을 통해서, 감추어져있던 메시아가 아니라 드러난 메시아로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시고 인류 구속의 대업을 이루시기 위한 첫 발을 역사 속에 내디디시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의미는 죄인은 아니시지만 죄인인 우리와 한 형제라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특한 사랑의 방법을 입증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과 동일한 한 부류의 사람들처럼 세례를 받으심으로, 당신께서 우리들과 한 몸을 이루는 한 지체라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은 아니시지만 죄 있는 지체들과 함께 한 몸을 이루신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들의 세례 받음에 참여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한 지체되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 되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지만 죄인들과 하나 되셨고 죄 없으신 분이지만 인간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슬픔과 아픔, 고통, 유혹을 한 몸에 받으시면서 자기가 구원해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 직접 내려와서 맛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을 배우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백성들을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방법을 터득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넘치는 긍휼과 사랑으로 구속해야할 자기의 백성들이 어떻게 죄와 결별할 수 없는 부패한 인간이 되었고 그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고 앙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전적으로 타락한 그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 그것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터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 온전히 내어주심으로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백성들을 인도하는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II. 하늘 문이 닫히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이렇게 하늘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희랍어 성경에서도 이 부분은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늘이 자동으로 열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열려졌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닫힌 하늘의 문을 누가 열었는지 보십시오. 하나님 이외에 하늘의 문을 여실 분이 누가 있겠으며, 닫힌 그 하늘을 하나님 이외에 다시 활짝 열어놓으실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늘의 문이 굳게 닫힐 때 제일 먼저 일어나는 비참한 일은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각기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참된 신앙의 도리를 잃어버려서 거의 무정부 상태와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유일신 신앙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에 마땅히 깃들여야 할 정의와 공평과 인자는 사라졌습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비참한 시대가 되었고 여호와가 누구신지, 여호와의 행하신 위대한 일들이 무엇인지 새카맣게 잃어버린 세대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사라진 것이 원인이 되어 순결한 유일신 신앙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삽시간에 그 신앙을 모두 잃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비참한 이민족과 다름이 없는 백성들로 변질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당시를 생각해보십시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하늘의 문이 굳게 닫히고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자 유대교라고 하는 아주 이상한 종교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참된 계시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들이 그치자, 구약종교의 뒤를 이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구약의 참된 의미를 풀어서 그들에게 종교의 도리를 설명하실 때에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박해하고 핍박하다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그렇게 성경과는 완전히 다른 이교에 가까운 거짓된 종교들을 만들어 내었고 그 아래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벌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있다고 할지라도 하늘 문이 닫히고 참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더 이상 들리지 않자 이제 그들에게는 참된 신앙의 도가 무엇인지 오리무중이 되었고 영적으로 방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하늘의 문이 닫히고 나면,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게 되면 여러분들의 영적인 생활은 급속히 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만일 일주일만 해가 빛을 잃어버린다고 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상상할 수 없이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논밭에 있는 수많은 작물들은 아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고 이상기온으로 인해서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닫히고 나면 여러분들에게 은혜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가슴을 파고 들어와서 나를 녹이고 깊은 감화와 은혜를 주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동이 사라지고 우리의 심령에는 깊은 어두움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면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 속에서 살기보다는 자기마음대로 자신의 상식과 판단을 기초로 허둥대면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마치 더듬이를 잃어버린 귀뚜라미와 같이 어디로 뛸지를 모르고 방황하는 그런 신세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은 캄캄한 어두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면서 가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이것은 시편 기자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백입니다. 짐승과 같이 무지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실 때에 비록 판단은 어리고 미약하며 주위는 캄캄한 어두움이지만, 어느 길은 걸어가야 할 길이고 어느 길에는 함정이 놓여 있고 어느 길에는 한 번 빠지면 큰 덫에 걸려서 살이 찢기고 뼈가 드러나도록 몸부림을 쳐도 그 덫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 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 닫히면 그것이 모두 끊어집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구덩이와 함정, 지뢰, 덫, 이런 것들이 가득 찬 숲 속을 시력도 없는 소경이 더듬어서 산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늘이 닫히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에게 있어서 소중한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우리의 귀에 들리는 것입니다. 사업이 조금 안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직장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늘이 닫히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하늘이 닫히면 우리의 기도의 문이 닫힙니다. 예전에는 곤고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주님이 우리의 위로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날 모른다 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는 우리 주님께로 흠향되고 우리는 항상 넘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 문이 닫히고 나면 더 이상 기도할 수도 없고, 기도해도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로 열납되는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의 문이 닫힌다는 것은 결국 곤고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빛을 받지 못한 식물처럼, 먹을 것을 잃어버리고 마실 것을 찾지 못하는 짐승처럼 그렇게 기갈을 면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의 심령은 깊이 메마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기도하기 싫어서 기도를 버리는데, 시간이 흘러가면 기도가 자기를 버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닫힌 하늘 아래서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닫혔을 때 일어나는 또 하나의 현상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겉으로는 그럭저럭 잘 살아 가실지도 모르겠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모두 아십니다. 기도의 문이 열려있습니까, 닫혀있습니까? 기도할 때마다 은혜의 빛이 쏟아져 나옵니까, 아니면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까?

세 번째로 하늘의 문이 닫히면 이 땅의 물질적인 축복들이 그치게 됩니다. 이런 사상은 특별히 구약에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닫으셨던 아합의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왕상 17-18). 땅들은 식물을 내지 않고 온 땅에는 기근이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적인 궁핍이 찾아왔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질의 축복만을 쏟아 부어주심으로서 당신이 그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을 순교로 데려가실 수도 있고, 순결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일생동안 핍박을 받다가 주님께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신실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하지만 악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과 궁핍 속에서도 순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정직한 믿음의 사람들, 참된 신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인정하면서도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삶에 깊은 고갈이 온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삶에 견디기 힘든 궁핍이 찾아오고 어두움이 찾아오기 시작할 때 혹시 하늘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문이 닫힌 사람들이 사업을 하면 곤궁과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동업을 하면 동업한 사람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문이 닫힌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불행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영적인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물질도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물질은 칼과 같아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죄악을 증가하게 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의가 넘치게 하는 귀한 방법인 것입니다. 하늘 문이 닫히면 이런 축복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로 하늘의 문이 닫히고 나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뜨려지고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던 아내 하와와 어떤 다툼도 없었지만 범죄하고 하늘의 문이 닫히자 그들은 서로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가득 찼던 부부관계는 지긋지긋한 관계로 바뀌기 시작했고, 평화와 기쁨은 사라지고 갈등과 슬픔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보듬어야할 그들의 관계가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비극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늘 문이 닫히고 나면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는 깨뜨려지고 사랑하여야할 사람들 사이에 상처와 고통이 헤집고 들어옵니다. 가족들과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도 파괴되고 지체들과의 관계도 깨트려집니다. 그리고 결국은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모두 하늘의 문이 닫혔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III. 하늘 문이 열리면

그러면 하늘의 문이 열렸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정 반대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늘의 문이 열리면 첫 번째로 마음속에 한줄기 강렬한 빛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파고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지나가는 이야기와 같아서 귓가에 떠돌기만 하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선명한 진리의 빛이 비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터득하게 되고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영혼과 심령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인생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진리가 하나님의 빛이 되어서 자신의 어두운 생애와 어두운 인생의 그늘을 비춰주게 됩니다. 어느 길이 가서는 안 될 길이고 어느 길은 걸어가야 할 길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게 되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내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놀라운 비밀이 무엇인지를 터득하게 됩니다. 강퍅하던 우리의 마음이 녹아지고 교만하던 우리의 마음이 낮아집니다. 이런 강력한 변화가 말씀의 빛이 열려진 하늘을 통해서 쏟아 부어지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닫혔던 기도의 문이 열려지게 됩니다. 하늘이 열릴 때에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어서 가슴만 두드리던 영적으로 막혔던 신자들이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시자마자 폭포수와 같이 쏟아지는 기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같이 더러운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나같이 불결한 인간의 간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보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주님을 멀리 떠났지만 여전히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기다리셨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신령하고 놀라운 기도의 은혜의 세계 속에 다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실패하여 곤궁하고 힘겹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자 이제 그들의 요령과 처세술, 인간적인 재주로는 도저히 받을 수 없었던 물질적인 축복들, 이 세상에서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늘 들어주시는 주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표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사업에 실패하고 직장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인생을 의탁할 때가 없어서 유리하고 방황하던 사람들이 먼저 주님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문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렸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이토록 곤고한 것은 하늘의 문이 닫혔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깊이 기도하고 아버지 앞에 매달립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다시 그들에게 축복을 부어주시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물질의 축복과 이 세상에서의 형통한 복들은 앞으로 받을 신령하고 놀라운 축복의 맛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쳐지게 만드시고 그들의 생업과 그들의 가정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시작하십니다. 인간이 자기 수단과 방법으로 큰돈을 벌어보려고 머리를 쓰면서 살아가는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셔야 합니다. 하늘을 열고 주님이 다 부어주실 때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다시 하늘을 여실 때 우리에게 막혔던 축복의 문들이 열려서 하나님 앞에 섬기면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늘 문이 열리면 다시 화해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깨어진 가정의 아내가 와서 은혜를 받고 막혔던 하늘의 문이 열리고 말씀의 빛이 들어오니까 자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니까 가족들을 사랑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가정에 놀라운 변화들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가정의 영적인 가장이 됩니다. 호적을 떼어보면 자기 남편의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하늘나라의 호적을 떼어보면 호주가 자기입니다. 변화를 받고 앞에 새로워지니까 그렇게 미웠던 남편이 사랑스러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 문이 열릴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입니다. 하늘 문이 열릴 때만이 이렇게 깨뜨려졌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놀라운 화해와 일치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IV. 기도할 때 열리는 하늘 문

그러면 이 하늘이 언제 열립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 때에 하늘 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캄캄한 어두운 절망의 역사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신앙의 역사를 적어갔던 믿음의 사람, 다니엘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이방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의 관심은 이국의 땅에서 재상의 노릇을 하며 호의호식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언제나 경건한 슬픔의 눈물이 고여 있었으며 그의 마음에는 두고 온 예루살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가 어떻게 열린 기도의 문을 유지하며 살았습니까? 간신배들에 의해서 왕 이외의 누구에게든지 기도를 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고 하는 조서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한 번의 기도, 하루의 기도생활을 생명과 바꿀 각오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을 열고 하나님 앞에 하루에 세 번씩 예전과 똑같이 일관되게 기도하면서 자신의 기도의 열려진 문을 지켰습니다(단 6).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열린 기도의 문을, 열린 은혜의 문을 두셨다면 여러분들은 더더욱 그 열려진 문을 지키기 위해서 깊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악한 세력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여러분들을 멸하기 전에 먼저 기도의 문을 굳게 닫아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합니다. 말씀을 거둬감으로 판단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기도의 문을 닫으므로 기도할 수 없게 하고, 축복의 문을 닫음으로써 곤궁하게 만들고, 치료의 문을 닫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상처를 받게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되도록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사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기도의 문을 열어놓으셨다면 깊이 기도하면서 기도로 열려진 이 하늘 문을 유지하면서 살려고 몸부림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쟁 중에 잃어버린 평화를 찾는 일도 힘들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의 은혜를 주실 때에 겸손하게 깊이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사는 그런 성도에게 그 문이 닫히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문이 굳게 닫혀져 있다면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문을 닫고 외면하시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무엇이 우리를 곤궁하게 하고 무엇이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닫아버리게 만듭니까? 환난입니까, 궁핍입니까, 시련입니까, 핍박입니까, 질병입니까? 이 모든 것들은 결코 하늘의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것들이 하늘의 문을 닫을 수 있다면, 모든 역경들을 딛고 하나님 앞에서 열린 교제를 가지며 주님 앞에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의 간증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일 것입니다. 핍박도 이기고 신앙도 이겼습니다. 무엇으로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열린 하늘의 문은 한 가지에 의해서만 닫히니 그것은 곧 죄와 불순종입니다. 죄와 불순종이 하늘의 문을 닫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던 우리의 영혼에 어두움이 깃들게 합니다. 하늘의 닫힌 문이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기도할 수 없게 하고 이 땅에서의 축복을 거둬가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 상처와 갈등이 깊어지게 만들어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닫힌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쇠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회개의 열쇠입니다. 회개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닫힌 하늘의 문을 다시 여십니다. 기도생활에 있어서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원히 열려진 기도의 세계도 없고 영원히 닫힌 기도의 세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열려진 기도의 세계는 언제든지 닫힐 수 있고, 닫힌 기도의 세계는 언제든지 열릴 수 있습니다. 열려진 기도의 세계는 죄에 의해서 닫힐 수 있고 죄에 의해서 닫힌 기도의 세계는 회개의 열쇠로 열 수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렇게 닫힌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다면 얼마나 곤고하시겠습니까? 이따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지만 놓쳐버리는 말씀이 태반일 것입니다. 그 영혼에는 어두움이 깃들이고 영적 생활에는 생기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 닫힌 하늘의 문을, 우리의 죄와 우리의 불순종, 우리의 악함을 인해서 굳게 닫혀져 4백여 년 동안 열리지 않던 이 하늘의 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로 여시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지나온 4백년처럼 시시때때로 이 하늘의 문이 닫힐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 하늘의 문은 무엇으로도 열 수가 없고 오직 기도로 열어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기도의 능력을 보십시오. 10년, 20년 혹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날 동안 하늘의 문이 굳게 닫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독특성을 잃어버리고 죄와 갈등 속에서 기쁨과 희락을 잃어버린 어두운 생활을 해왔다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 손에 열쇠를 쥐어 주셨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열쇠입니다. 회개라고 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열쇠를 통해서 기도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 자기의 외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의 외아들이 그렇게 자기의 몸을 찢어 산 하나님의 백성들, 한때 핏길을 걸어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기의 사랑하는 그 자녀들이 수많은 축복의 약속, 하늘 문이 열릴 때에 쏟아 부어질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에도 불구하고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울고 소망을 잃어버린 자기의 백성들을 지켜보시는 것만큼 주님의 마음의 큰 고통은 없습니다.

왜 머뭇거리십니까? 그리고 왜 도전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닫힌 기도의 문은 숙명이 아닙니다. 오늘도 자신의 지은 모든 죄와 불순종으로 주님이 열어놓으신 하늘의 문을 닫아버린 것을 깊이 참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실패한 인생의 벌판에서 무릎을 꿇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여 주님이 주신 이 기도의 열쇠를 가지고 하늘 문을 열어보십시오. 오랜 세월동안 닫힌 하늘의 문에 열쇠를 꽂으며 열고자 애쓰는 그 소리가 들릴 때에 우리의 기도를 도울 천사들은 기뻐 뛰기 시작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시켜 굳게 닫힌 그 하늘의 문을 열고자 하실 것입니다. 이윽고 하늘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은총의 빛을 기억해 보십시오. 죄 가운데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찬란한 빛이 비취면 예수의 사랑을 모르던 실패한 사람들, 주님이 뜨겁게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감히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말하며 절망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날 위대한 일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늘의 문이 열리고 빛줄기처럼 쏟아지는 하나님의 은총의 햇살아래서 오랫동안 묵었던 우리의 슬픔은 물러갈 것이며 오랫동안 숙명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졌던 실패는 우리에게서 떠날 것입니다. 마른 땅과 같았던 우리의 영혼에 다시 물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고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V. 결론과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실패하지 않는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을 제외하고는 일평생을 열린 하늘 아래 살아가던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강퍅함, 그리고 우리의 부주의함, 때로는 우리의 게으름으로 가끔은 하늘의 문이 닫힙니다. 그러나 영원히 닫힌 문은 없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간절한 기도를 기다리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주님의 은혜의 빗줄기를 한 몸에 받으며 사는 열린 하늘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오랫동안 패역과 견디기 힘든 시련 속에서 고침 받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던 여러분들의 영혼에 놀라운 신령의 빛이 깃들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시는 이 첫발을 그 요단강에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심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열려지는 하늘을 보실 수 있으셨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처럼 기도해서 수많은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닫힌 하늘의 문을 열고 또 그 열려진 문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빗줄기처럼 내리게 하는 도구들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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