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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떠한 지도자를 원하느냐? (삼상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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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지도자를 원하느냐?

(삼상8:1-9)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1. 본문에 등장하는 사무엘은 사사(士師, Judges)시대의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가 죽고 난(B.C.1390년경) 이후부터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약 350년간의 시대를 말합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동안 이끌었던 지도자는 모세였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을 영도해왔던 지도자는 여호수아였습니다. 그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 사울이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기까지 350여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방 민족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등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활약했던 인물들이 바로 사사들이었습니다.

당시 사사들의 직임은 외적의 침략이나 약탈이 발생할 경우 정치적, 군사적 통치자가 되어 적군을 물리치고 백성들의 재산을 보호하며 평화를 수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각종 대소사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재판관의 역할을 해서 ‘사사’(Judges)라고 불리웠습니다. 더 나아가 백성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고 깨우치는 신앙적, 영적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요약하면, 왕권과 제사장직, 그리고 선지자직을 도맡은 지도자였습니다. 이러한 사사들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세워졌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 통치하는 일종의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이들 사사들 중에는 주어진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한 인물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엘리는 실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이 백성이 하나님 앞에 드린 예물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데 급급하고(삼상2:29), 심지어 제사를 수종드는 여인들을 겁탈하는데도(삼상2:22) 이를 막지 아니하고 방치했습니다. 이러한 엘리 집안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축복하시는 중에도 엘리 집안만큼은 환난을 당할 것이며, 그 집안에 영영토록 노인을 끊어버리고, 집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자녀들을 젊어서 죽여버리고, 엘리의 두 아들들은 한 날 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심판과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삼상2:31-34)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상3: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삼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다시 말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예배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겨 심판하시겠다는 뜻입니다.(삼상2:17) 하나님의 이같은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엘리의 두 아들들은 동시에 죽임을 당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엘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놀라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고, 그의 자부는 해산 중에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낳자 마자 죽어버렸습니다.

반면 엘리 다음의 사사이며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은 아주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께 바쳐져 성전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삼상1:28) 사무엘은 성전에서 양육받던 중 12살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소명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삼상3장) 그 때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로 하여금 사사로서의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듣게 된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자기 스승인 엘리 집안에 대해 내릴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이유를 분명히 밝혀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삼상3:10-14) 그래서 자신이 마지막 사사로서 모든 통치권을 사울에게 이양하는 고별사에서
(삼상12:1-5) 지난 날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을 고백합니다. 그는 엘리의 두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물을 약탈하고 성전을 더럽힌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를 방치한 엘리의 영적 무지와 그의 둔감한 영성으로 빚어진 비극을 일찍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제사장의 직무를 깨끗하고 철두철미하게 수행했고, 왕권을 지닌 통치자로서 추호도 백성을 속이거나 압제하는 일이 없었고,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축재하거나 뇌물을 받고 재판을 불공정하게 행한 일이 전혀 없었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울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게 되었을 때도 기꺼이 일체의 잡음이 없이 그 일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통치권의 핵심이 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탁월한 영적 감각(영성)을 지니고, 투명한 도덕성과 빼어난 공정성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여 그의 사사로서의 통치 기간 중에 그 어느 때보다 군사, 정치적으로 평화를 누리며, 타락했던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부흥시켜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무엘이 늙어 이스라엘 전 지역을 통치하기가 수월치 않게 되자 자신의 아들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역에 보조하도록 했습니다. 통치권을 세습시킨 것이 아니라 단지 보조 사사로서 세웠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직이 세습 계승된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큰 아들을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으로 ‘요엘’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작은 아들은 ‘여호와는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비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만큼 사무엘은 자신의 믿음과 영감이 깊이 반영된 매우 신앙적인 이름을 짓고 양육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려서 성소에서 자라가면서 엘리 가문의 비극적 종말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알고 있던 터라 자식 교육에 열과 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대로 “그 두 아들들이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利)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삼상8:3)

사무엘이 자녀 교육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들은 아버지의 신앙과 삶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써 자녀들에게 훌륭한 본을 보이며 가르쳤지만 자녀들이 부모의 본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남용하여 축재하고, 뇌물 수수로 탐욕을 일삼고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므로 아무리 보조 사사이지만 지도자의 본분을 망각한 타락한 아들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사무엘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2. 이에 이스라엘 각 지파의 대표들(장로)이 들고 일어나 사무엘을 찾아가 주변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입니다. 사무엘이 나이 많아 얼마가지 않아 죽게 되면, 그래서 만약 온 백성이 존경하는 사무엘과는 전혀 다른 두 아들들이 통치권을 장악하게 된다면 나라의 경제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몹시도 불안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권력 남용에 따른 부정축재와 양극화, 빈부의 격차 등은 더욱 커질 것이고, 불법과 불공정은 사회불안을 초래하여 결국 경제는 물론 정치적 불안을 가져와 외세의 침략을 자초하여 나라 민족의 안위가 심히도 걱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 나라들처럼 강력한 왕정 국가 체재를 만들어 이웃 나라들과 대등한 강국을 세우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본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보다는 이방 민족들처럼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대로 왕을 세워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들이 일어나 사무엘의 노령과 그의 아들들의 부정부패를 들먹이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달라고 하지만 그들의 이같은 요구는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들의 근본적인 동기는 더 이상 사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국으로부터 약탈을 당하거나 침략을 당해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심지어 속국이 되어 압제를 당하게 된 이유가 자신들의 범죄와 불신앙,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우상숭배에 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사 제도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통치에 결함이 있다고 판단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9일에 미국의 인권 운동가인 체임버스 상원의원이 “재앙 구경만 하는 신을 고소합니다.”라는 이색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고소인은 자신이며 피고(被告)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어디에나 있는 존재”, 즉 신(神)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실없어 보이는 이번 고소 사건에 대해 “누구나 누구든(신까지도) 고소할 수 있도록 한 미국 헌법의 불합리함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며 헌법 개정을 주장했습니다. 불합리한 소송이 범람하는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일종의 시위라고 합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이 공개한 고소장에 따르면, 체임버스는 “신이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테러리스트적 방식으로 나와 선거구민을 포함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고소장을 통해 “피고는 무시무시한 홍수와 엄청난 지진, 끔찍한 허리케인, 공포의 토네이도, 치명적인 전염병 등으로 비참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또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으로 아기·어린이·여성·노인·장애인을 포함한 대규모 인명을 앗아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법원에 “(신의) 이런 위험한 행위와 테러리스트식 위협을 중단하도록 영구 금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또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아는 존재라면, 법정에도 있을 것이고 고소당한 것도 알 테니 피고 자격이 충분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무시무시한 홍수와 엄청난 지진, 끔찍한 허리케인, 공포의 토네이도, 치명적인 전염병 등 비참한 재앙들>이 마치 신의 방관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신을 고발하고 있지만, 그리고 헌법의 불합리성을 고발하고 있지만 그 모든 재앙과 재난들이 인간의 범죄와 우상숭배로 인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 시대의 장로들처럼 인류가 당하는 모든 재앙과 재난 등이 마치 하나님의 통치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고발하는 행위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달라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는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려는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이러한 그들의 본심을 꿰뚫어 본 사무엘이 그들의 요구에 기뻐할 리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괴로운 마음을 이끌고 하나님 앞에 나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한 것입니다. 이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삼상8:7-9)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는 말씀, 즉 그들의 요구대로 그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주라는 말씀은 그들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음에 주어진 말씀,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는 말씀은 왕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 인간 왕의 통치가 가져다주는 온갖 폐해를 뼈저리게 겪어보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되고 정의로우신 통치자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사로서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파렴치한 장로들의 요구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가나안 땅 정착 이후 40여 년간의 사사시대를 통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는 행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그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을 포기하고 방탕과 저주를 선택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원하는 방식대로 세워지는 왕의 통치 제도를 분명히 알게 하여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사람의 뜻에 따라 세워지는 지도자의 통치가 백성들에게 어떠한 희생과 폐해가 주어지는 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삼상8:11-20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젊은 남녀의 군대 징집제입니다. 기드온 사사 시대에는 미디안의 침략에 단지 300명의 정예부대를 가지고 나가 싸우도록 했습니다. 당시 미디안 군대의 모습은 메뚜기떼처럼 많았고, 그 거느린 약대(낙타부대)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했습니다.(사사기7:12) 이렇게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을 패퇴시킬 때 300명의 용사들이 한 일이라고는 단지 하나님 명령대로 나팔을 불며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디안 병사들이 칼날을 세워 자기들끼리 서로를 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300명 용사 중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미디안 대군을 완전히 파멸시킨 것입니다.(삿7장) 만약 인간이 세운 왕의 통치에 따라 전쟁에 나갔다면, 엄청난 청춘남여의 피를 흘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정의 아픔과 고통이 뒤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는 수많은 피를 자청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는 각종 징세 제도입니다. 인간이 세운 왕의 통치권 행사에 필요한 각종 세금을 내야만 했고, 왕궁 유지를 위한 수많은 인력과 그에 따른 특별 교부세를 바쳐야 했고, 국방에 필요한 엄청난 군비 마련을 위한 세금, 그리고 국가 산업 건설을 위한 각종 명목의 징용 등입니다. 사실 사사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십일조와 예물 외에는 별도로 바치는 세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각종 징세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과 희생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에 대한 심판과 저주인 것입니다. 셋째는 왕의 폭정으로 인해 겪게 되는 온갖 종류와 형태의 인권말살과 횡포 등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나라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삼상8:18)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이러한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장로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사람이 세우는 왕정 제도를 요구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지만 이는 그들에 대한 일종의 심판으로서 허락된 것입니다. 사람의 뜻에 따라 세워지는 지도자의 통치를 통해 뼈아픈 고통과 호소할 데 없이 당하는 환난(“너의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리라.”)을 겪어보라는 것입니다.

결국 훗날 사무엘의 고별 설교에서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이 되심을 거절하고 인간이 세운 왕, 사울 왕의 통치 결과 무참한 패배와 환난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렇게 고백하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삼상12: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동기에 따라 왕을 구하는 것이 분명한 죄악임을 뒤늦게나마 후회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후에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다시 한번 분명히 했습니다.

(호13:9-11)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왕정 체제 아래 왕을 두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참되고 진정한 왕, 영원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고백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왕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다윗 자신이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지도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한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사는 축복과 승리의 경험, 그리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자신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루어질 때 나라 백성이 복을 받아 태평성대를 누리게 됨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의 원대로 세워진 지도자 사울은 자신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하락하자 정권 유지를 위해 정적 다윗을 죽이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예선된 다윗은(삼상16:1) 사울을 죽여 없애버리고 단숨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수없이 주어졌음에도 겉옷자락만 베어냄으로 자신은 왕에 대한 적의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삼상24:11-12) 심지어 겉옷자락의 극히 일부를 베어낸 것조차 혹시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라는(대상16:22)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의 인격을 조롱한 행위가 아닌지 하여 몹시도 괴로워했습니다.

(삼상24:5) 사람의 뜻대로 세워진 지도자 사울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결국 자신과 더불어 가문이 비참한 말로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운 다윗은 왕에 등극해서도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섬겨,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왕이 되어 자신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강성한 나라로 세웠습니다. 모든 인류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곳일지라도 왕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곳이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된 불행한 곳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거룩하시고 축복이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뜻대로, 사사시대의 특징처럼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사는 것은 결국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사사기17: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나라 백성을 위해 어떠한 지도자를 원하십니까? 비록 사람에 의해 세워지는 지도자일지라도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나라 백성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세워지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지도자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내 마음에 이루어지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내 가정에 이루어지면 내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전지전능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여러분 삶의 지도자, 왕으로 모시고 사시므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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