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굶주린 자를 먹이라 (마 25:31 ~ 46)

  • 잡초 잡초
  • 359
  • 0

첨부 1


제목 : 굶주린 자를 먹이라
본문말씀 : 마태복음 25:31 ~ 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태복음 25:31-46)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주위의 불우한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제가 대학생 때만 해도 사람을 만나면 “진지 잡수셨어요?”가 인사였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밤새 잘 주무셨는지, 아침이나 드시고 하루를 시작했는지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몇 kg이나 빼셨어요?” 하고 묻지요. “5kg정도 뺐어요.” 하면 다들 축하하고 좋아합니다. 요즘은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살이 찌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오곡백과가 풍성하지만, 불과 몇 시간만 북쪽으로 가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UN기구 가운데 하나인 WFP(World Food Program, 세계식량계획)는 북한에 대해 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 홍수 피해로 더 많은 사람이 굶어죽을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엄마가 젖이 없어 갓난아이들을 먹이지 못하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북한은 그 정치 제도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가져다줘도 끝이 없습니다. 전 세계가 도와도 먹여 살릴 수가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열심히 일합니다.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하지만 아이들에게 먹일 우유도 제대로 없습니다. 남한의 우리에게 먹을 것이 풍성하도록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난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대물림 되는 가난이 있습니다. 미국 대도시의 도심에는 가난을 대물림해서 사는 흑인들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가난해서 정부의 사회보장 대상자였는데 딸도 마찬가지고 손녀마저 그렇습니다. 대물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됩니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거기서 헤어나질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습니다. 설령 우리 부모가 가난했든지, 우리 세대에 어떤 특별한 일로 가난이 찾아왔다 해도, 하나님을 안 다음부터는 달라집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소유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가난하다면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지혜와 건강과 능력과 은총을 구해서 내 대에서 가난의 대물림을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가난은 대물림할 수도,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가문에 이런 가난의 대물림이 절대 없도록 기도하십시다.

나쁜 습관 때문에 가난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술 때문에 재산을 탕진합니다. 도박, 마약, 범죄, 잘못된 사고방식, 낭비, 심지어 일하기 싫어하고 잠자기만 좋아하는 게으름 때문에 가난이 찾아옵니다. 우리의 뼈 중에는 게으른 뼈가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너희가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을 다하고 기도하며 지혜와 능력과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면서 일합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7일째 되는 날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건전하게 살면 절대로 가난을 대물림 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생활 습관, 질병이나 기대하지 않았던 재난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들이 해를 끼쳐서 가난해지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거지가 된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만난 어느 노인은 젊음을 독립운동에 바쳤다가 해방이 되자 가족도 없이 길거리에 앉아 거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요. 이름 있는 사람들은 해방 후에 다 한 자리씩 했지만 평범한 독립 운동가였던 이 할아버지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가난을 스스로 선택한 경우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 사도 바울, 예수님 같은 분들입니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영적인 목적을 위해 가난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영광과 존귀를 다 버리시고 이 땅에 가난하게 태어나셨습니다. 자기 집도 없이 제자들, 특히 여자 7~8명의 도움을 받으며 3년 동안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가난한 자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영적인 목적을 위해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였습니다.

BC 3~4세기 경 희랍 스토아학파의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는 스토아철학 때문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가난을 별로 개의치 않고 덕스럽게 살았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소문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그가 산다는 시장에 가보니 거지같은 사람 하나가 통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당신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 드릴까요?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디오게네스는 “제발 거기서 좀 비켜 주시오. 내가 지금 햇볕을 즐기고 있는데 왜 가로막고 있습니까?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사는 스타일을 소박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흡족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자신을 훈련했습니다. 책에서 읽었는데, 어느 미국인이 자기 회사의 사장에게 “저는 월급의 1/3만 받고 싶습니다.” 했답니다. 사장이 “왜 그렇소?” 하고 묻자 “세금을 많이 내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일 필요는 없지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가난에 처할 수는 있어도 그 가난이 절대 대물림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가문에는 가난의 대물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웃 한신교회와 함께 개천절에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를 보내기 위한 걷기대회를 엽니다. 이 선한 일을 이웃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은 참 좋은 축복입니다. 이 밖에 YMCA, YWCA, 그리고 CTS TV 방송국에서 좋은 축제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10월 3일 오후 2시, 탄천 운동장에 모여 축제에 참여하고 이어 1시간 정도 걷기를 할 것입니다. 사랑방, 지역, 교구별로 슬로건을 만들어서 주위사람들을 격려하면서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대회등록금 대신 여러분의 헌금으로 분유를 구입하려고 합니다. 만약 10만원을 헌금한다면 실제 분유는 14만원 어치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분유 회사가 분유 값의 30%를 할인해주고 또 모금액 전체의 10%의 분유를 더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회에서는 어느 사업가가 올리브유 7,500병을 주셔서 필요한 분들이 구입해서 가정에서 잘 사용하고 모금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롱 속 금반지를 가져온 분도 있었고 여러 가지 각자의 방법으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일에 동참했습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인류를 둘로 나누실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자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쪽에 두리라”(31~33절)고 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부유하신 분이 아주 가난하게 오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을 단번에 바꿔 영원을, 하나님을, 천국을, 영생을 향하도록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때는 양과 염소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선을 행하며 산 선한 자와 선행을 도외시한 악한 자를 가르는 만민의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심판자 예수님은 무엇으로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실까요? 우리의 선한 생활과 선한 행위, 악한 생활과 악한 행위를 보고 가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善)의 근본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이 찬송처럼 선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는 선을 향하여 방향을 정한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이시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 외에는 선한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선을 향하여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선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 사함 받아 죄에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면, 그 끝은 영원한 형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본문에서 선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른편에 있는 선한 사람은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한 그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가 상속 받으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나라를 받을 자들입니다. 영원히 복 받을 선한 사람들은 선행이 생활화, 습관화된 사람들입니다. 늘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행동과 선한 말, 선한 태도로 선한 습관이 몸에 배어서 자기가 선한 행동을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슴 속에 계시고, 성령님이 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선이 우리의 인격이 되어 스스로 선을 행하고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 굶주릴 때 먹여주었지. 목마를 때 마실 것 주었지. 나 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었지. 병들었을 때 심방해주었지. 내가 감옥에 갔을 때 날 돌봐주었지!” 예수님의 이 말씀에 선한 사람들은 “저희가 언제 그랬습니까? 저희는 주님에게 그렇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합니다. 특별히 선을 행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생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마음먹고 10년 만에 한 번 선을 행한 사람은 일기장에 기록하고 족보에 영구히 기록할 겁니다. 매일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던 사람이 어쩌다 선을 행하면 생색을 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이 자기화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선한 말을 하고, 선한 얼굴을 보여주고, 선한 행동을 하고, 선을 위해 기도해주는 모든 것이 습관화, 생활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은총 주셔서 선이 우리의 인격이 되기를 원합니다. 입을 열 때마다 선이 쏟아지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겠지요. 10년이나 20년 전, 어려움에 처한 분을 위해 기도와 격려와 도움을 주고 잊어버렸는데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났더니 “오래 전에 당신의 도움 때문에 제가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생각이 잘 안 나요. 왜? 그런 일이 특별한 것이 아니니까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지요. 늘 선을 베풀고 선을 말하며 선을 도모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성령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복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왼쪽 사람들을 보고 “너희는 나 굶었을 때 먹을 것 안 줬지. 나 헐벗고 있을 때 너는 브랜드 옷 입고 나한테 남대문 시장에서 산 것 하나도 안 줬지.” 하십니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기억이 안 나는데요.” 선을 행해봤어야 기억이 나지요. 자기만을 위해 살았지 가난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 병든 사람들, 감옥에 있는 사람들, 다른 누구를 위해서 살아본 적이 없거든요. “가장 비천한 사람들, 가장 작은 사람들, 그 한 명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고,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눈에 도와줘야 할 사람, 기도해줘야 할 사람, 사랑의 격려를 해줘야 할 사람이 보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여러분 옆에 두신 것입니다. 또 한 번의 선을 베풀 기회, 선한 말을 해줄 기회, 선한 손으로 그를 안아줄 기회, 선한 격려를 해줄 기회를 여러분에게 주신 줄 알고 작은 선을 곳곳마다 퍼뜨리며 사는 축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요 사는 방법 입니다. 의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선을 행하듯이 악인들도 무의식적으로 악을 행합니다. 생활 습관입니다. 상대방은 가슴에 20년 동안 상처를 품고 살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게 모멸스러운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악이 습관이 되어서 독을 쏘고도 몰라요. 독화살에 맞은 사람들은 마음의 불구자가 되어 힘들게 사는데, 그들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의식도 안하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선을 위해 창조되었고 선을 위해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훈련받는 것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선한 빛을 비춰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선한 사람들로 살게 하시려고 우리로 예수 믿게 하시고 성령을 우리 가슴 속에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이 습관화 될 수도 있고, 악이 생활화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공동묘지에서 일하는 장의사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2억 원의 재산이 남았는데 그 돈을 몽땅 장례비용으로 쓰고 죽었답니다. 누구한테 한 푼도 선을 행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지요.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죽으면서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갔을지 짐작이 되십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를 믿고 선을 행하는 것이 생활화되면 이 땅의 은총과 하늘의 은총을 동시에 누릴 수 있습니다. 존 디 록펠러는 세계최초로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돈 버는 데는 귀재여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평생 쓰고도 남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53세 때 병이 들어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돈을 모으는 데만 애를 썼을 뿐 선을 위해 쓰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자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던가?’ 지난 53년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후회가 되었습니다. ‘내가 왜 나만을 위해서 살았던가!’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제가 잘못 살아서 이 질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오늘부터 제가 돌아서서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제 돈을 쓰면서 살겠습니다.” 록펠러는 그 후로 많은 선을 베풀고 98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적 삶에서 방향을 바꿔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웃을 향해, 교회를 향해, 세상을 향해 삶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의학 연구를 위한 리서치센터도 만들고 많은 선을 행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분이 되었습니다. 1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던 사람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100세 가까이 산 모습을 보면서, 선을 위해서 사는 것은 이 땅의 축복과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누리는 길임을 봅니다.

“하나님, 저를 선하게 바꿔주셔서 습관적으로 좋은 것, 긍정적인 것, 아름다운 것, 참된 것을 생각하도록 해주시옵소서. 제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선한 말, 축복의 말, 사랑의 말, 격려의 말이 되게 하옵소서. 제 태도와 모습마저도 바꿔주셔서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선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축복하며 살게 하옵소서.” 여러분의 인격이 변화되어 말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선이 여러분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하늘의 복과 이 땅의 복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