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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자 (눅 7: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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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자 (눅 7:36-50)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금수와 같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순박한 농부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길 위에 꽁꽁 얼어붙은 뱀 한 마리를 불쌍히 여겨 집으로 가져와 화롯가에 놓아두었습니다. 얼마 후 생기를 되찾은 뱀이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농부의 아들을 향해 덤벼들었습니다. 농부는 부지깽이를 들어 뱀을 후려쳤습니다. 그리고 길게 뻗은 뱀을 막대기에 감아 밖에 내던지며 중얼거렸습니다.
“배은망덕한 놈, 은혜를 모르면 벌을 받지. 저를 살려준 사람의 아들을 물려 하다니…” 그러자 농부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그러니 짐승이지요, 앞으로는 절대로 뱀을 구해주지 마세요!”

짐승이 은혜를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은혜를 알아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주셨고, 지정의를 갖춘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결한 인격성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참된 지자(知者)는 모든 교우에게 배우는 사람이요, 참된 강자(强者)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富者)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사람이 감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감사의 경험과 감사의 표현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진나라 경공 휘하의 명장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위과입니다. 그가 임금의 명령을 받아 노나라를 징벌하고 있을 때, 큰 위기를 맞게 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회라고 하는 적장 때문이었습니다. 두회는 키가 3m를 넘는 거한이요, 무기로는 무게 120근(62kg)의 개산대부라는 도끼를 지녔는데 이것을 마치 팔랑개비마냥 휘두르는 것이었습니다.

두회와 싸움에서 패전을 거듭하게 된 위과는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던 중 비몽사몽간에 청초파, 청초파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정신이 들고나서 청초파가 무엇인지 알아보니 그곳은 풀이 우거진 호수가의 평원이었습니다. 위과는 궁여지책으로 전장을 그곳으로 옮겨서 다시 한번 두회와 결전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두회가 왠지 모르지만 자꾸만 비틀거렸기 때문입니다. 위과가 괴이쩍은 생각이 들어 자세히 보니 웬 노인이 두회가 움직일 적마다 풀을 맺어 그 발에 거는 것이 아닙니까. 하도 이상한 현상이라 수하의 사람들에게 그 광경을 말해 주었으나 누구도 노인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결국 풀에 걸려 넘어진 두회를 처치한 위과는 깨끗한 승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낮에 본 노인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자기는 비록 유명을 달리하는 저승 사람이지만 당신의 은혜가 하도 고마워서 오늘 낮에 풀을 맺어 그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위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노인의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인지라 심히 의아해 하고 있는데 그는 자기가 조희의 애비라고 한 다음 곧 사라졌습니다. 조희가 누굴까? 조희는 위과의 부친의 애첩이었고 위과의 부친은 진나라 제일의 명장 위무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위무자는 매양 전장에 나갈 때마다 맏아들 위과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만일 자기가 잘못되면 지체하지 말고 조희를 적당한 사람에게 시집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부친이 늙어 죽게 되자 갑자기 유언으로 조희를 자기와 함께 순장시키라고 했습니다. 위과로서는 고민이 안 될 수 없었으나 결국 그녀를 살려 좋은 곳으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부친의 정신이 온전할 때의 말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결초보은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배경입니다.

언듯 보면 무척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지만, 이 고사를 통하여 우리는 큰 교훈을 얻습니다. 바로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죽어서까지라도 보답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결코 은혜와 감사를 잊어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 8:12-14) 『[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그러므로 받은 바 은혜를 생각하며 늘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그럼 어떤 은혜에 감사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교회에 들러, 자신의 소원을 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구하는 바를 간절히 고하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기도가 응답이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그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집사가 되었고, 교회 일에도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기도를 드려도 응답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고민하던 집사는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하늘 보물창고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천사가 보여준 창고는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그 성도가 “이 창고는 어떤 창고입니까?”물었더니 “이 창고는 기도 응답 창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할 때마다 이 보물 창고를 열어 나누어 줍니다.”라고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이어서 옆 창고로 갔습니다. 이 창고는 기도 응답 창고보다 훨씬 더 큰 창고였는데, 거기에는 보물이 하늘 천장까지 가득히 쌓여있었습니다. 또 그 성도가 “이 창고는 무슨 창고입니까?”하고 물으니 천사가 “이 창고는 감사 창고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쌓아 두었던 보물창고입니다. 그런데 기도 응답 창고가 동이 났는데도 아무도 감사를 하지 않아서 보물이 그대로 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깬 그 성도는 그날부터 성전에 엎드려 감사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려 보니 정말 감사할 것이 많았습니다. 감사를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날마다 자신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에 주르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기도 응답의 하나님 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가 되시는 진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동안의 불평과 교만이 사라지고 가슴 속에 기쁨과 감사가 더욱 넘쳐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지금 성도가 되었고, 영생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권세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을 부어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를 들어주심에 감사해야 하고, 나를 지키고 보호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할수록 늘어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2. 사람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형제의 은혜, 친구의 은혜, 이웃의 은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의 은혜를 입고 삽니다.

그 가운데 부모의 은혜는 가장 으뜸입니다. 청소년 탈선을 전담하는 어떤 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이 경찰서에 끌려오면 집에 연락이 가고 곧 이어 부모가 찾아오는데, 놀란 부모들이 아이들을 나무랄라치면, 그 아이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을 한답니다. “왜 나를 혼내세요?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자녀가 탈선하는 첫 번째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에 부모의 은혜를 깊이 깨닫지 못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고구려 때 늙고 병든 사람을 땅 속 광에 두었다가 죽으면 그곳에 묻었다고 해서 생긴 말이 고려장입니다. 고구려 때 높은 벼슬아치에 있던 한 신하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연세가 높아 고려장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신하는 차마 어머니를 고려장하지 못하고, 뒷채에 숨겨두었습니다.

날마다 혼자 갇혀 지내는 어머니가 안타까와 신하는 밤이면 몰래 어머니를 찾아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려 드리며 어머니께 효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사신이 왔는데, 물물 거래를 위해 외교적으로 큰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그 사신은 무조건 세 개의 문제를 내더니 이것을 풀지 못하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신하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그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문제는 호두알만한 구슬이 하나 있는데 속이 구불구불한 구멍으로 뚫려 있는데 명주실로 한 쪽 구멍에서 꿰어 맞은 쪽 구멍으로 빠져나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문제는 생김새와 크기가 똑같은 말이 있는데 하나는 어미이고 하나는 새끼랍니다. 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문제는 정말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나뭇가지 하나로 백 가지 나물을 만들라고 하는데 억지 문제 같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그건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구나! 이렇게 하거라.” 다음 날 신하는 어머니가 가리켜준 대로 중국 사신을 만나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첫째 문제는 가는 명주실을 개미허리에 묶어 구슬 구멍에 집어 넣어 풀었습니다. 둘째 문제는 두 마리의 말 앞에 말이 좋아하는 마른 풀을 놓으라 명하고, 가만히 지켜보니, 한 마리가 슬그머니 뒤로 빠지더니 한 마리만 먼저 풀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다 먹고 난 후에야 나머지 말이 풀을 먹으러 다가가는 것을 보고 신하가 말했습니다. “먼저 먹은 놈이 새끼이고, 나중에 먹은 놈이 어미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푹 삶은 흰 나뭇가지로 풀었습니다. 신하는 나뭇가지를 꺼내 갖은 양념을 하더니, “이것이 바로 백(白) 가지 나물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사신은 돌아가고 임금은 지혜로운 신하에게 큰 상을 내리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자신이 고려장이라는 국법을 어긴 일과 이 지혜를 들려준 것은 자신의 어머니였음을 고했고, 이로 인해 고려장이라는 악습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교훈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부모를 공경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신 5:16)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의 은혜 뿐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스승도 있고, 친구도 있고, 형제도 있고, 이웃도 있습니다. 그들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나라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만 입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조직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인간이 살아갈 가장 큰 터전은 바로 국가입니다. 우리의 역사 가운데는 나라가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설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에 나라 사랑은 목숨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를 보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이미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다스림이 어떠하든 우리는 나라가 있는 것 자체만으로, 그리고 내가 독립된 국가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톨스토이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한 번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고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하다는 물이 도대체 무엇일까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던 물고기들이 늙은 물고기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물이란 바로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우리 온 몸은 언제나 그 물에 적셔 있어야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그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란다.”

숲 속에 들어간 자가 산을 보지 못하고, 바다 한 복판에 떠있는 자가 그 바다를 모르듯이 인간은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터전을 알지 못하고, 호흡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터전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생명도 하잘 것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에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국가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독립된 주권과 신앙의 자유를 가진 나라를 조국으로 가졌다는 것에 감사합시다.

<결 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과 같습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함으로 인간은 인간다운 면모를 갖게 되고, 가족은 더 화목해지며, 사회는 온정과 사랑이 넘칠 수 있습니다.
반면,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인간의 존엄성도 흐려지고, 투쟁과 다툼과 원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오늘 받은 바 은혜를 헤아려 봅시다. 그리고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기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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