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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옳지 않은 청지기의 지혜 (눅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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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않은 청지기의 지혜 (눅 16:1~9)

  오늘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빼앗아 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빈곤, 즉 가난입니다.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가난 때문에 일천오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난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지구촌에서 생산되고 있는 모든 식량이나 물자를 제대로 나누기만 하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진 재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주님이 괜히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라고 지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불의한 청지기에 관한 비유로 잘 알려져 있는 말씀입니다. 어떤 청지기가 있었는데 주인의 재산을 마구 허비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그 청지기를 불러서 “너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었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주인의 재산을 마구 낭비했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자신의 장래를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땅을 파자니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슬그머니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기름 백 말을 빚진 자는 오십 말로 감해 줬습니다. 밀 백석을 빚진 자는 팔십 석으로 감해 줬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장부를 조작한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쫓겨난 다음에 그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 놀랍게도 그 청지기에게 참 지혜롭게 처신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청지기가 제멋대로 탕감해 준 것을 어떻게 지혜로운 처사라고 칭찬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그를 옳지 않은 자라고 하시면서도 그를 지혜롭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즉 그의 모든 행동이 분명히 옳지 않았지만 지혜로운 부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우리도 맡은 것을 허비할 것 같으면 언젠가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허비란 제 것이 아닌 것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맡기신 것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주인의 재물을 허비한 청지기처럼 무서운 징계를 받아 마땅합니다.

  다음으로 그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의 주님은 모든 잘못을 용서하신다고 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니 됩니다. 오늘 우리도 가진 재물을 제멋대로 사용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니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가진 재물로 궁핍한 이웃을 구체적으로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청지기는 궁리 끝에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도와 줌으로 나중에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선행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처음에는 자기의 욕심만 충족시키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쫓겨날 형편에 처하자 똑같이 주인의 재물을 제멋대로 잘못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기 자신이 아닌 궁핍한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의 것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 16:9) 불의의 재물이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의의 재물로 자기의 배를 채우거나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쓰면 더 큰 잘못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잘못을 결코 묵과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가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도움을 주는 행동을 보시고 영주할 처소로 부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의할 것은 그 청지기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빚진 자들을 도와 줬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누군가를 도와 주면 아니 됩니다. 주님은 그를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부르심으로 우리가 그를 그대로 닮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천국에 거할 처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가 어떻게 옳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도와 줄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한 방법으로 이웃을 도와 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운 이웃을 구체적으로 도와 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욕심 때문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려면 재물에 대한 욕심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까?

  먼저 주님의 경고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욕심을 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하반절) 재물에 대해서 욕심을 부릴 것 같으면 그 재물을 위해서 살게 되고 마침내 그 재물을 섬기게 됩니다. 재물이 우상이 되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할 것 같으면 우상 숭배자가 되게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주님의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세상의 재물과 천국의 상급을 비교하면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재물을 가리켜서 불의한 재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의 재물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재물은 헛된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상급은 참되고 영원합니다. 세상의 재물은 천국에서 받을 상급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가진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학자들은 주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 가운데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가장 풀이하기 어려운 비유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주님이 불의한 청지기를 본으로 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불의한 청지기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겠습니까? 주님은 그 청지기처럼 행동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불의한 청지기도 그렇게 지혜롭게 행동했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느냐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도 주인을 두려워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경고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그 청지기도 이웃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 그토록 애를 썼는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이 궁핍한 이웃을 돕는 일에 있어서 이토록 인색할 수 있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찍이 주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참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죽하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토록 어렵습니까? 부자들은 많은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도와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재물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재물을 잘 사용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도 세상의 거할 처소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여 지혜롭게 대책을 세웠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천국에 거할 처소를 예비하는 것을 어떻게 게을리 할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로 어려운 이웃을 구체적으로 도와 줘야 합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과 더불어 모든 것을 함께 나눔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천국에 거할 처소를 예비하는 참으로 복되고 지혜로운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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