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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우리가 주께 감사합니다 (대상 29:10-19, 고후 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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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께 감사합니다 (대상 29:10-19, 고후 8:10-15, 눅 21:1-4)

1. 오늘은 우리 교회 추수감사절임과 동시에 작년 10월 1일에 입당했기 때문에 새 성전 입당 1주년을 하루 앞둔 날입니다. 그래서 단지 추수를 인한 감사만이 아니라 성전 입당 1주년을 기념하는 감격과 감사를 함께 가지면서 우리 주님의 선하신 손길과 은총을 새롭게 체험하고 결심도 다시금 새롭게 다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2002년 12월 18일 새 성전 기공의 삽을 뜬 날로부터 작년 12월 10일 입당하게 되기까지 4년의 세월은 우리 교회에 엄청난 시련의 날들이었습니다. 마치 광야 같았던 이런 세월들을 통하여 우리 주님은 우리 교회를 연단하셔서 이 성전을 받을만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입당의 감격을 주셨습니다.

   저는 작년 입당 예배 설교 때 “오늘 새 성전에 입당하게 되는 2006년 10월 1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 길갈에 12돌을 세웠던 것과도 같은 날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유랑을 끝내고,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너고, 약속의 땅에 첫발을 디디게 된 그날에 그들이 요단강 바닥의 바윗돌 12개를 가져다가 길갈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 조상들과의 약속을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의 감격을 어찌 우리가 다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시련의 4년 동안 힘든 건축을 마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약속을 기억하셔서 꿈만 같았던 새 성전에 입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여출일구로 작년 입당의 그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그 감격도 자연적으로 잊혀지고 흐려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12돌을 길갈에 세웠습니다. 그 돌이 그들의 흐려져 가는 의식을 일깨우고 감격을 다시 불붙게 해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금년에 1주년, 내년에 2주년, 그 다음해, 또 그 다음해 계속해서 기억하여 지키므로 우리 교회가 항상 그 감격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명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년 입당예배 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감격해서 목메어 외쳤던 말씀을 소개했었습니다. 그들은 포로생활을 끝내고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면서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라고 하면서 서로 자기와 상대방의 살을 꼬집어보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꿈이 아니고 생시인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온 세상, 아니 온 역사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래서 입당이야말로 우리가 기쁨으로 주님 앞에 드린 우리의 곡식 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건축이 중단되는 어려움 속에서 모두가 망연자실하고 있었을 때,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받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박국2:3이었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성도 여러분에게 소개했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성도 여러분은 참 잘 참고 기다렸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렸고, 기다리면서 열심히 건축에 참여하셨습니다. 그 결과 입당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응하였고, 우리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의 기쁨은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고 우리의 기도는 응답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기 우리의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충성이 요구됩니다.

   저는 작년 입당 때 또 한 가지 소개드린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상6: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 성전 속에서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더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이란 거룩한 사역이기는 하지만 잘 진행된다고 해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인데 하물며 부도로 1년을 지난다고 할 때 화약을 안고 불 옆에 서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했고, 교회의 유익을 앞세웠으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자타가 공히 인정하듯이 우리교회는 건축하면서, 아니 그 후에도 성전 속에서 방망이로 서로를 두들기는 소리나, 도끼로 서로를 찍는 소리나, 모든 철 연장으로 서로가 서로를 찌르므로 부르짖는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들리지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큰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오늘 입당 1주년과 추수 감사절을 맞으면서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고, 확인하고, 다짐하고,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2. 이제 오늘 역대기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다.

(1) 14절에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물론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그 백성이 하나님께 바친 건축헌금을 두고서 한 말입니다. 그야말로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해서 바친 헌금, 그리고 힘을 다하여 넘치게 바친 것을 보고 그 마음에 감사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번 그렇게 느끼지만 지난 제직회 때 건축 재정보고를 들으면서 역시 다윗과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그래서 다윗은 스스로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말씀이 바로 우리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라고 했습니다. 다윗 자신이 누구였습니까? 베들레헴 목자 이새라는 사람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왕을 뽑으려고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오라고 했을 때 그는 그 자리에 불려오지도 않았을 만큼 수에도 치지 않던 막내였습니다. 한때는 사울에게 쫓겨 벼룩처럼 동가식서가숙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윗을 보시고 하나님은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일약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양떼에 복을 주셨다든지, 전쟁을 이기게 해 주셨다든지, 병을 고쳐주셨다는 등등 소유나 사역에 관한 감사 정도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존재에 관한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 같으면 단지 금년 농사가 잘되었다, 금년에 사업이 잘되었다, 가정이 만사형통하다 그런 정도의 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이 놀라운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스리는 백성은 누구입니까? 애굽에서 노예로 죽음의 세력아래서 신음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하고, 광야 40년도 거뜬히 극복하고, 가나안 일곱 족속도 이기고 마침내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된 그 백성 아닙니까? 약속의 땅에 와서도 주변의 국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울 시대를 거쳐 다윗이 왕이 되면서 부국강병의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주변 모든 국가들이 다윗을 두려워하고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형통의 축복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감사절에도 “나를 나 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을 진멸하고 그 땅을 유업으로 받아 살게 된 것이 그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아 강하기 때문이라든지, 아니면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더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요, 불순종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소행으로 말한다면 수없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나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찬송을 부를 수 있을 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어느 정도입니까? 요3:16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롬5:의 말씀처럼 세상에 의인을 위하여 대신 죽는 자가 혹 있고, 선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흔하지 않은데 우리 같은 원수를, 죄인을,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사랑을 우리가 어찌 다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저와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서만” 태어난 존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다윗은 성전 건축이 그렇게 소원이었고, 성전 건축을 위여 온갖 것을 다 준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전 건축이라는 평생을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단지 성전 건축을 위하여 마음을 먹은 것뿐인데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 할 수 없는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는 했지만 건축에 관한 모든 자재와 비용은 이미 다윗이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윗은 영적인 복은 물론 엄청난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성전을 건축하지도 못하고 “건축해야 되겠다.”고 소원했을 뿐인데도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전 건축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 성전 건축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수고와 사랑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복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기도합니다. “이 성전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분들, 땀 흘리며 수고하는 분들, 힘을 다하여 헌금하는 분들, 그리고 건축에 참여한 업체들에게도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시옵소서.” 바라기는 이런 일을 인하여 성도 여러분의 감사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3)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서에 보면 “하나님은 있는 대로(또는 있는 그대로)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찬송가 339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가의 원문은 “아무런 변명 없이 나 있는 모습 그대로 주께로 갑니다.” 그런 뜻입니다. 이 노래를 지은 엘리옷 여사는 반신불수로 고생하면서 영적으로도 방황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목사인 자기 아버지와 아버지를 찾아온 전도자가 주님께 나아가는 문제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도자가 “당신 모습 그대로 주님께로 나아가십시오.”라고 하는 말에 큰 감명을 받고 주님을 영접하고 이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감사절에 우리도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내가 가진 이것으로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주님은 우리 있는 그대로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주님 앞에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저 가난한 과부의 엽전 두 푼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신 그 주님이 여러분을 받아주실 줄 믿습니다.

   새 성전 입당 일 주년, 그리고 2007년 이 추수감사절에 여러분의 넘치는 감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와 복을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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