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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평화 (창 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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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화 (창1:26-28)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금주 중에 있을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평화의 문제가 또 다시 뜨거운 관심과 화제와 논란의 초점으로 등장했습니다.

  평화는 좋은 것이고 당연히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평화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평화에 대한 쌍방의 의미이해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분명히 파악해야 하는 것은 기본에 속하는 일입니다. 어디에서나 어떤 좋은 이름을 달거나 멋진 구호를 외치는 집단을 보면 대체로 그 이름이나 구호와는 오히려 정반대되는 경향이나 행태를 보이곤 합니다.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집단일수록 “민주”라는 이름을 달기를 좋아합니다. 별로 공화국의 정신을 갖지 않은 국가일수록 공화국이라고 자처하기를 잘합니다. 자유가 거의 없는 나라일수록 스스로를 자유국가라고 선전하기에 힘을 쏟습니다.

  마찬가지로 평화를 파괴하거나 위협하고 있는 세력일수록 오히려 평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평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그러한 현상이 특히 한반도에서 버젓이 벌어져왔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화를 큰소리로 외치는 자들이 생각하는 평화가 과연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평화이해가 보편타당성을 갖는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동족을 향해 엄청난 양의 온갖 치명적인 다량살생무기를 비축 및 정조준 해놓고 핵무기까지 개발하여 위협을 가하면서 말하는 평화가 어떤 평화인지를 바로 알고 평화선언이든 평화조약체결이든 평화체제구축이든 논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국정과 국방과 외교의 책임자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평화에 대하여 바르게 정리된 생각을 갖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평화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사회와 국민에게 제시할 책임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삼중의 관계를 가진 존재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고 인간 사이의 관계가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세계와의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이고, 하나님은 한 사람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또 하나님은 인간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싫든 좋든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이용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삼중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세 가지 관계 사이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른 관계들이 바로 서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인간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고, 인간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면 타 피조세계와의 관계도 잘못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환경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있지만 인간과 타 피조세계 사이의 잘못된 관계로서의 환경의 문제는 바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잘못된 인간 사이의 관계에 그 근본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기주의와 탐욕을 버리고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지 않고서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인간이 갖는 세 가지 관계가 바로 선다는 것은 각각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관계입니다.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는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며 일치를 이루는 관계입니다. 타 피조세계와의 바른 관계는 그 피조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유익과 행복을 주도록 관리하는 관계입니다. 이 세 가지 바른 관계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평화한 관계에 있는 것이 인간 사이의 평화와 타 피조세계와의 평화를 이루는 관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사이의 평화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 평화는 자유와 정의를 전제로 한 것임이 분명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유의 하나님이시고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평화가 자유와 정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 평화는 반드시 인권이 보장되는 평화임이 분명합니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와 정의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자유는 하나님의 고유한 본성의 하나이고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에게서 가장 인간다움은 바로 자유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다움의 상실 즉 비인간화의 핵심의 하나가 자유의 상실임을 말합니다. 자유는 하나님의 본성이고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 또한 자유로운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인간에게서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그르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인간 사이의 평화를 파괴하는 것임은 자명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또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하나님의 선과 의가 손상되지 않는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과 의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습니다(본문 27-28절).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며 하신 이 첫 말씀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생육하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원하시고 기뻐하신 뜻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을 보존하고 번성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이요 의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파괴하거나 위협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악이라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과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어서나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있어서 공히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즉 참된 평화는 사람의 생명과 행복이 보장되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입니다.

  생명권, 자유권, 행복권, 이 세 가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부여하시고 선언하신 인권의 기본구성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평화는 이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권이 유린되는 곳에 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죽이고 자유를 박탈하고 행복을 짓밟으면서 평화를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학적인 사고를 이 다원적인 세계에서 비기독교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존중과 자유와 정의와 인권과 평화에 대한 기독교의 이 기본적 입장은 이미 기독교의 교리를 넘어서서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논하고 추구하는 평화는 어디까지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체계에 합치하는 평화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북한정권이 말하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북한정권은 주민에게서 대부분의 자유를 박탈 혹은 제한하고 있습니다. 거주와 이전의 자유도 없고 표현의 자유도 없습니다. 특히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들에게서 정의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권이 무참히 유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굶겨죽이고 처형해서 없애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극히 일부분의 권력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북한주민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평화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평화를 어찌 평화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남북한 주민 모두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정의를 확립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남북한 주민 모두의 생명과 번영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서든 인간답게 살 권리, 자유, 생명, 행복을 파괴하거나 위협하거나 제한하는 평화를 말하는 자는 민족의 적이고 파괴자일 뿐입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오직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확고한 신념 위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60여 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위협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온 세력과 평화를 논하고 그들이 원하는 거짓된 평화체제에 합의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고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 전체를 불행과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평화논의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권력자들로 하여금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깨닫고 받아들이게 하는 노력이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울 좋은 구호 아래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평화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려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평화가 아닌 것을 평화인양 위장하여 온 민족에게 강요하는 그 어떤 합의도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사의 거역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체계에 부합하는 평화를 한반도에 정착시키는 데 우리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왜곡된 이념의 굴레 속에서 자폐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는 공동체사회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이루어가는 길입니다. 인간은 본래 관계적 동물이고 사회적 존재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나라는 모든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좋은 이웃관계는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각 나라와 사회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야 국가 간의 바른 관계를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알지 못하거나 거부하거나 짓밟는 국가와 정상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그래서 국가 간에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면 각 국가와 자연과의 관계도 정상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환경문제가 각 국가 간의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그 국제적 해결이 난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문제도 모든 나라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확고해질 때에만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사회가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배우며 실천하도록 만드는 평화의 논의를 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는 국제사회에로 나오기를 꺼리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북한정권이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야욕을 감추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오늘날 그들의 총체적 위기를 탈출해보려는 술책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는 국제사회 속에서 꾸준히 그 위상을 높여온 우리 대한민국마저 북한의 복사판이 되게 하려는 무서운 기만책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함께 그들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또 그것을 알면서도 그 “평화”의 연극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매국적이며 반역적인 처사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대통령과 그 일행이 민족과 세계 앞에서 되돌릴 수도 없고 씻을 수도 없을 역사적 과오를 범하고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한의 모든 동포들이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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