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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과 나 [고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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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 ; 흔히 심리학자들은 정신병자의 대부분이 사랑의 결핍 때문에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한 환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많은 신체적 접촉을 가질 것을 권면한다.  다시 말하면 환자가 사랑 받고 있다는 인식을 할 때 그 병이 어느 정도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랑의 힘은 위대하고 강하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산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살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이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을 품고 태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는가?  아직도 세상에는 사랑이라고 이름하는 행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직도 이 시대에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는가? 

  외모를 조건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연인들, 재산을 조건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녀들, 성적을 조건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들, 살다 보니 정이 들어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부들의 모습 가운데서 우리는 과연 진하고 가슴 아픈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사랑을 원하신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진정한 사랑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 24;12절에서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고 말씀하셨다.

  흔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 봉독한 고전 13장은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담고 있는 사랑장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1-3절의 말씀을 통해서 사랑이 없으면 이라는 단어가 세번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단어를 중심으로 사랑과 내가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 사랑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고자 하는가?  왜 그는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였는가?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 보고 과연 사랑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보자.

1. 사랑하지 않는 나는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이다. (1)

  바울은 1절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가리가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우리의 많은 행동과 업적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현대인들은 무척이나 분주하게 활동한다.  또 바빠야만 무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이것을 󰡔일중독증이라고 말한다.  이 일중독증으로 인해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마약중독, 알콜중독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이 이 일중독증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그렇게 바빠야만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바빠야 하는가?  우리의 활동에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수십년 전에는 사람들이 비록 풍요로운 생활은 하지 못했어도 대부분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왜 그토록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더 바쁘게 살아야 하는가?  조금이라도 더 벌고, 조금이라도 더 잘살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을 잃고 있지 않은가?  사실 더 버는 이유는 가족들을 사랑하게 때문이 아니던가?  교회에서 더 열심히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는 이 사랑을 잊어버린 채 모두들 바쁘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사탄은 우리에게 바쁘게만 움직이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그런데 그들은 그 분주함 가운데 자기들의 영혼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실 그 분주함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있는가?

  흔히 부모들은 자기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 아이를 위하여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아이들이 부모들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울은 분명한 목소리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가리가 된다고 말한다.  즉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후크선장󰡕이 주는 의미.  과거를 잊고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돌볼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피터팬이 납치 당한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모험을 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사랑은 실천에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실천적인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바쁘게 움직이고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실상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교회에서도 발견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봉사하면서 우리처럼 열심히 봉사하지 않는 성도들을 비판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봉사를 하나님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바쁘게 움직이길 원한다.  그리고 더 많은 일들을 이루기를 원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분주함에 쫓겨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는다면 우리는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가운데 사랑이 있느냐는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동기가 없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가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바쁜 가운데서도 “과연 내가 무엇을 향하여 뛰고 있으며 누구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사랑이 없는 나는 아무리 바쁘게 움직이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하여도 사실은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2. 사랑하지 않는 나는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2)

  우리는 주위에서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선진국일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성경은 이미 이러한 현상을 말하고 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라는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있으며 또한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사람이다.  왜 사람들이 많은 애완동물을 키우는가?  그들은 사랑 받고 싶기 때문이다.  또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 열대어를 키우는 시간 중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먹이를 주는 시간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비록 말못하는 짐승이지만 우리는 그 짐승들을 통하여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  그만큼 사랑은 중요한 것이다.  사랑은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

  왜 부모들이 힘들게 자녀들에게 신경을 쓰는가?  왜 부부가 서로에게 헌신하는가?  그것은 사랑이라는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의미를 느낀다.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수고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고생할 때 “고생이 너무 많아요, 힘들었죠?” “당신 참 고생이 많소”라는 말 한마디로 그 모든 고통과 피로가 깨끗이 씻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자녀들이 부모를 향하여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심리이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逆으로 추출할 수 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 받기 원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나를 통하여 사랑 받으며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란 사랑하며 사랑 받을 때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 정채봉씨의 생각하는 동화.  마술사로부터 신기한 지우개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 지우개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었다.  그는 지우개를 가지고 신문을 지웠다.  높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가진 자들의 부귀와 영화를 모두 지웠다.  그는 신이 났다.  그림책도 지우고 사진첩도 지웠다.  그는 시와 소설도 다 지우고 이제는 아예 사전을 지우기로 했다.  그런데 지우개가 다 닳도록 단 한 단어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한 세상을 소유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나눌 때 우리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라는 탄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가운데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가 사랑을 베풀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하라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다. 
 
3. 사랑하지 않는 나는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다. (3)

  바울은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희생의 자세라고 말한다.  어떠한 가르침도, 어떠한 교리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사랑이야말로 자기를 가장 아끼는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바울은 3절에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서 인간의 솔직한 이기주의를 지적한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따라 그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며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목적은 분명히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써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인 순교를 위하여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그는 斷言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구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런 유익도 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예수님께서는 마 6장에서 은밀하게 구제하고, 기도하며, 금식하는 자에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는 약속을 주셨다.

  또 성경은 승리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이나 승리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고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위한 축복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서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바울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우리가 사랑을 베풀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익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가정에서, 교회에서 , 직장에서 경험한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사랑할 때 나의 마음은 편안하다.  내가 먼저 용서할 때 나는 밝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먼저 사랑하는 행동, 먼저 용서하는 행동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한다.

  *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대사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진정한 사랑은 먼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래서 자기 스스로에게 유익을 주고 싶다면 사랑하라.  먼저 아내를 사랑하라.  그러면 인정받을 수 있다.  먼저 남편을 사랑하라.  그러면 사랑 받을 수 있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라.  자존심은 사랑하는데 큰 적이 된다.  만일 수백만원의 돈이 주어진다면 자존심을 세우겠는가?  내가 자존심을 버리고 사랑할 때 수백만원, 수천만원의 돈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의 삶이 다가온다. 

  예수님은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가 복을 받는 조건이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사랑할 때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사랑은 너를 위해서도 밀요하지만,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결론 ;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하는 삶을 원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멋진 삶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세상을 살 수 있다.  용서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멋진 삶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사랑하는 삶, 먼저 용서하는 삶, 먼저 사과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멋지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을 도구로 하여 사랑이라는 목적지를 향하여 나가는 삶이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걸어야 할 길이며,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진정한 사랑, 영원한 사랑으로 다듬어지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소원한다.

행복한교회 - 김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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