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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삼하 14: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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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삼하 14:21-24)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소년 압살롬을 데려 오라 (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받은 줄을 오늘날 아나이다 하고 (23)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 왕이 가로되 저를 그 집으로 물러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1. 고대 로마의 브루투스에게는 티투스와 티베리우스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그는 그의 아들들이 반정부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선택하기 곤란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살릴 것인가? 조국에 충성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담대하게 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자들을 법에 따라 채찍질을 한 뒤 광장에서 사형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난 후 아들들을 향해 고개 한번 안 돌리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의 궁전에는 브루투스를 기념하는 글귀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식은 여러 명 낳을 수 있지만 나라는 하나 밖에 가질 수 없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그토록 사랑하고 보고 싶었던 아들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아버지 다윗 왕을 뵙고자 했지만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며 왕궁출입을 금지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향해 얼굴을 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다, 노여워하다는 뜻입니다. 형제를 살인한 압살롬에 대한 노여움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죄악에 대해 아직 용서가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압살롬이 지은 살인죄는 무엇인가?

다윗이 이방 나라인 그술과 화친을 위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 정략 결혼을 통해 낳은 아들이 압살롬이고 딸이 다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히노암을 통해 낳은 아들이 암논인데 바로 다윗의 맏아들이었습니다. 이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이복 여동생 다말의 미모에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침실에 끌어들여 사랑을 빙자하여 근친상간(강간)합니다. 그리고 암논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킨 후 곧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다말을 내쫓아버립니다.(삼하13:1-17)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친 오라비 압살롬이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 다말을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합니다. 다윗 왕도 이 사실을 알고 심히 노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습니다.(삼하13:20-21)

율법에 따라 마땅히 암논을 사형에 처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노에 그칠 뿐 2년 동안 방치해둔 것입니다. 이에 압살롬은 형 암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며 2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합니다. 그리하여 압살롬은 형제들을 모두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암논을 술에 취하게 만들어 쳐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인 그술 왕 달매에게로 도망가서 그곳에서 3년을 지내게 됩니다. 다윗은 세월이 흐르자 압살롬에 대한 분노는 어느 덧 사라지고 오히려 연민의 정이 되살아나 아들을 그리워합니다.(삼하13:39)

이같은 다윗 왕의 마음을 읽고 있던 요압 장군이 간교하게도 드고아 여인을 불러 압살롬을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다윗 왕 앞에서 눈물의 연극을 연출케 합니다. 이 여인은 요압의 각본대로 왕에게 재판을 신청하고 슬퍼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여, 저는 참 과부입니다. 남편은 죽고 두 형제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형과 동생이 싸워서 그 형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집안 사람들이 동생을 죽인 형을 살인자로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두 아들을 다 잃어 버리게 됩니다.

저를 좀 도와 주십시오.” 듣고 있던 다윗 왕이 말합니다. “내가 명을 내려 아무도 너의 아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 여인이 “왕의 판결은 참으로 의롭습니다. 그런데 왕은 왜 재판은 그렇게 하시면서 자신의 일은 그와 같이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자 다윗이 여인의 말뜻을 눈치 채고 “정녕 요압이 너를 나에게 보냈구나?”고 말합니다.

여인이 “왕이여, 왕의 말씀대로 요압 장군이 저를 보냈습니다.”고 실토하자 다윗이 요압을 불러 말합니다. “요압 장군, 압살롬 왕자를 데려오는 것을 허락하노라.” 그리하여 요압이 그술 왕에게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삼하14:1-21)

그러나 막상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압살롬을 자기 집으로 들어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도록 왕궁출입을 금지시켜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처리하자면,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불러들여 회개를 촉구하고 율법에 따라 처벌했어야 옳은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부르투스가 두 아들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나라를 위해 법에 따라 두 아들을 광장에서 사형에 처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 율법에 따라 압살롬을 처형했어야 옳았습니다. 요압 장군의 교활하고 간교한 책략에 따라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정작 요압의 음흉한 목적은 맏아들 암논이 죽으므로 차기 왕으로 압살롬이 유력한 것으로 믿어 그의 환심을 사두고자 했던 것입니다.

요압이 압살롬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다윗의 마음을 읽고 판단한 것은 다윗이 결코 법에 따라 압살롬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차기 왕으로 유력한 압살롬에게 환심을 사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고 확고히 해두자는 의도에서 압살롬의 예루살렘 귀환을 꾸민 것이었습니다. 만약 요압 장군이 다윗 왕에 대한 진정한 충신이었다면 결코 연기가 뛰어난 드고아 여인을 이용하여 압살롬의 귀환을 획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 나단 선지자를 찾아가 형제를 살인한 자에 대해 엄정하게 하나님의 법을 적용하여 처벌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촉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활한 요압 장군은 겉으로는 부왕과 왕자의 화합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압살롬의 귀환을 도모했지만 그의 속셈은 하나님의 뜻보다 다윗 왕의 부정(夫情)을 이용하여 차기 대권주자로 여겨지는 압살롬의 환심을 사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연연하여 밋밋한 태도를 보이자 이를 틈타 교활한 요압 장군이 화합을 가장하여 차기 정권에까지 자기 권력 확보를 위해 술책을 피우는 바람에 결국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엄청난 정치적 환난에 겪는 이른바 압살롬의 대반역 사건이 터지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압살롬이지만 살인죄를 범한 압살롬을 하나님의 법과 뜻에 따라 처벌하지 아니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피하면서 당한 환난과 비참한 심정을 시편 3편에서 토로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반역으로 도피하는 다윗을 향해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는 백성들의 조롱, 반역자 압살롬에게 기울어만 가는 민심, 울면서 감람산을 오를 수밖에 없었던 애절한 심정 등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역한 압살롬은 결국 반격에 나선 다윗의 군대에 패배하여 도망하던 중 그 자랑스러워하던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요압 장군의 창에 심장이 찔려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과로 볼 때 맏아들 암논과 압살롬 두 아들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2. 다윗 왕의 이같은 가문과 정치적 환난은 엘리 제사장처럼 하나님의 법보다 자신의 아들들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빚어진 것입니다.(삼상2:29) 범죄한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뜻보다 부정(夫情)에 연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자식의 죄를 묵인한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자식에 대한 사랑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맏아들 암논이 범한 근친상간의 죄악을 2년 동안 묵인한 결과 이복 형제간의 보복적인 살인의 비극이 발생했고, 형제를 살인한 알살롬의 죄악을 무려 5년 동안 방치한 채 교활한 요압의 술책에 말려 인간적인 용서와 묵인을 참된 화해로 여긴 결과 하나님과의 화해가 깨지고 사랑하는 아들의 반역으로 비참하게 도피하는 처량한 모습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두 아들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린 다윗의 사랑이 그의 아들들을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한 것입니다. 다윗이 취했어야 할 바른 태도는 혈연적인 사랑보다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아니할 때 국가 통치권자로서 통치력 상실과 그에 따른 국가 기강이 문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크고 작은 전쟁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모든 전쟁에서 항상 이기게 하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들들이 범죄하자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아니했고, 하나님의 법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여지없이 다윗 왕은 민심을 잃어버리고 통치권에 엄청난 타격을 입어 급기야 반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살인죄에 대해 전혀 회개하지도 않은 압살롬에 대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루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은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과 더불어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무시되거나 하나님의 법이 세워지지 아니하면 그 가정은 결국 자녀들의 탈선과 비참한 말로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사랑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법에 근거하여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혈연과 지연, 학연 등에 연연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다면, 다윗처럼 민심을 잃고 결국 통치권에 타격을 입어 나라 전체가 무질서와 혼란, 환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 나라 민족을 사랑하는 지도자라면 어떠한 혈연이나 지연, 학연에 연연하기 보다는 엄정한 국법 준수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국가 기강을 확립하여 통치권 누수를 막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과 이 나라 백성, 지도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호12:6) “이 땅 위에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러 넘치기를 소원합니다.”(암5:24)

3. 또한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묵과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은 사망입니다.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마침 건너편에서 목욕하는 미모의 한 여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신하를 시켜 그 여인의 신분을 확인합니다.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눈에 콩깍지기 씌워진 다윗은 왕권을 이용하여 그 여인을 밤중 몰래 왕궁을 불러들여 간통합니다. 그리고 불륜의 씨앗이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은폐하고 해결하기 위해 충신 우리아를 전쟁에 내보내 함정에 몰아넣어 죽이고 마치 전사한 것처럼 조작합니다. 다윗은 왕권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웠지만, 그로 인해 한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고 국민을 기만하여 인권을 유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같은 죄악의 전모를 모르실리 없습니다. 당장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 다음과 같은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합니다. 

(삼하12:10-14)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첫째,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리라.”(삼하12:10-11)는 것입니다.

맏아들 암논이 아비 다윗처럼 사랑을 빙자하여 이복 여동생 다말을 근친상간하고, 이에 대한 다윗의 처벌이 없자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는 칼부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후 다윗의 후손 대부분이 전쟁과 살인 사건에 휘말려 들었습니다.(왕상2:24-25) 심지어 솔로몬 사후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서도 집 안에 반목질시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윗 가문에 대한 이러한 재앙은 무고한 우리아를 살해하고 간통 사건을 조작 은폐한 다윗의 죄에 대한 엄중한 형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죄악을 추적하여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입증한 것입니다.

두 번째 심판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11절)는 것입니다. 이는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한 후 이스라엘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한 사건으로 인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삼하16:21-22)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두어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압살롬은 당대 최고의 모략가인 아히도벨의 모략에 빠져 백주에 온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아버지 다윗 왕의 첩들을 범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다윗 왕의 폐위를 명확히 하고 동시에 압살롬의 왕권을 완전히 굳히며 다윗과 압살롬 간에 부자지정(夫子之情)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한 음흉한 아히도벨의 목적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삼하12:12)고 말씀하신대로 백주 대낮에 하나님의 심판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심판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14절)는 것입니다.

다윗은 불륜의 씨앗이지만 밧세바가 낳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처로울 정도로 금식하며 밤새도록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하고 돌아가자마자 이내 그 아이를 쳐서 심히 앓다가 죽도록 했습니다. 다윗의 죄악에 대해 선고하신대로 엄정하고 철저하게 심판을 이행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사람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저질러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권력과 금력을 이용하여 은폐조작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하감(下鑑)하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피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시33:13-15)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14)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15)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전12:14)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악에 대해 반드시 때를 두고 엄정하고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계20:11-1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다윗 왕은 맏아들이 누이 다말을 범하는 근친상간의 죄악을 범했을 때, 자기 자신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강간죄를 머리에 떠올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 내린 형벌의 내용을 살펴보고 비록 자신의 아들일지라도 회개를 촉구하고 엄정하게 하나님의 법에 따라 처벌을 내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2년 동안이나 암논의 죄악을 그냥 묻어두었습니다. 결국 다말의 친오라비 압살롬이 형 암논을 살해하는 비극을 낳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떠올리고, 집안에 일어나는 재화(災禍), 재앙과 불행을 막기 위해 더욱 더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처신했더라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집안의 재앙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은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지라도 그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얼마든지 용서를 베푸시고 죽지 않도록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겔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지은 죄악을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하려 하기 위해서입니다.(요03:17)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길만이 가정과 나라의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만이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악을 묵인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여 하나님의 법이 세워지지 아니하면, 가정이든 나라 민족이든 반드시 가정과 나라 민족 위에 내리는 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철저하게 세워지는 가정과 나라 민족,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재앙을 막는 가정과 나라 민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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