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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믿고 따르는 말 (행 27: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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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믿고 따르는 말 (행 27:9~19)

할렐루야!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떡 많이 드셨습니까?
맛있는 것 있으면 나눠 먹는 것이 좋습니다.
나누는 사랑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이 귀합니다.

제게도 많은 분들이 사랑의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 혼자 다 먹고 쓰지 않았습니다. 저 먹을 것 조금 남기고 모두 나누었습니다.
원로 목사님들께도 드렸고
우리교회 초대 담임목사이셨고, 부산 구포교회에서 목회하다
은퇴하신 박영준목사님도 찾아뵈었습니다.
개척교회 전도사님들께도 드렸고,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 이런저런 분들에게 나누어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전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하고 넉넉하여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옆의 분들과 “오늘 참 좋은 날입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아델파 볼페스’라는 82세의 할머니가
‘레이날도 와벡체’라는 24세의 청년과
58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2007. 8. 24. dongA.com/news 참조)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여러분의 자식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미쳤다고 … 제 정신이냐고 …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 펄쩍 뛸 것입니다.

지금도 아마존에는 옷을 입지 않고 사는 종족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예배 시간에
옷을 입지 않고 사는 사람들처럼 옷을 벗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도, 같은 시대에 살아도 … 문화와 관습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상하게 변하고 험해져도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항해하기가 어려운 때

세상을 바다로 비유한다면 인생은 항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항해는 이제부터 마음먹고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떠나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항해중」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에 의지하여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어떻게 가고 계십니까?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죄인으로 붙잡혀 로마로 끌려가는 바울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모습이 나옵니다(1절).
그때 바울이 자신을 끌고 가는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에게
“지금은 항해하기가 어려운 때이니(9절)
배가 닿은 미(美)항에 그냥 머무르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아구스도대」는 로마황실의 군대로서 경찰권을 가졌으며
전 제국에 걸쳐 곡물 수송자들을 안전하게 호위해 주는 것이
그들의 주 임무였다. - <톰슨성경> 주석 참조 -

10절에 보면, 바울은
“…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행27:10) 고 말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보니”라는 말의 헬라어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알아차린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경험이 많은데,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항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5절에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고후11:25)라고 한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은 배타고 다니면서 세 번이나 배가 깨져 고생했고
일주일동안 망망대해에서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깊은 바다”는 “망망대해”라는 뜻입니다.(쉬운성경참조)
이렇게 바울은 풍랑을 겪은 경험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가 그렇게 간곡하게 만류했는데도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지중해를 항해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유라굴로>라 불리는
무서운 광풍을 만나게 되어 더 이상 항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에 실었던 짐을 바다에 버렸고
배에 필요한 기구까지 바다에 던져 배를 가볍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인지 낮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바다 속에서
14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풍랑과 싸워야 했습니다.(행27:27)

2000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형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광풍이 세상에 일어납니다.
경제적인 파도, 정서적 불안의 파도, 정치적인 파도,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파도가 극심합니다.
더욱이 연세 드신 분들은 충격으로 다가오는 문화의 파도도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녔을 때는 제과점에서 여학생을 만나다가
선생님한테 들키면 혼나고 심하면 정학까지 당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교복 입고 손잡고 다니고 길에서 끌어안고
너무나 당황스럽습니다. 좀 부럽기도 하고 …
이렇듯 변해 가는 젊은이들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어른들이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과학문명이 발달되면서 편리해졌지만
새로운 기계를 쓸 줄 몰라 어려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얼마 전에 연세 많으신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차를 타고 어느 곳을 찾아 가는데
그분이 길을 잘 몰라 갔던 길 또 가고 헤맸습니다.
그분은 차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는데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라서 길을 헤매는 답답한 경험을 했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새로운 제품들, 새로운 문화에 대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어른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가정에
어떤 풍랑을 겪고 계십니까? 어떤 풍랑이 다가오고 있습니까?

더 믿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그때 그들이 왜? 풍랑을 만났는지 …!”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답이 11절부터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11절을 보세요.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행27:11)

백부장은 세상적인 평가로 보면 정확한 사람입니다.
백부장에게는 선장과 선주의 말이 더 믿을 만 했습니다.
아무려면 전도하고 장막이나 짓던 바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풍랑을 만나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자신의 영적 삶을 점검해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 하나님 말씀을 더 의지하고 사는지?
- 자신의 판단을 더 의지하고 사는지? 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해 보니 …, 내가 배운 바로는 …, 내가 아는 바로는 …
내가 읽은 책에서 보니 … 라고 하며 자신의 작은 머리에 담긴 생각을
성경보다 더 앞세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영적 삶을 점검하는 방법 중 또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사람(영적지도자) 말을 따르는지
인생경험 많은 자, 전문가의 말을 따르는지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경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사람들이 쓴 책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 좋던 사람이,
성경 아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 강의 듣고,
언론의 보도를 통해 … 믿음이 흔들립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오늘 본문에 나온 풍랑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영적지도자’의 말을
듣기만 했지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 중 하나가 구약에 소개된 <요나>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니느웨로 가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나 1장에 보면 요나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셨고, 일 맡기실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요나의 신앙고백은 정확했습니다.
다만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니느웨로 가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다시스로 갔습니다.
그것이 풍랑을 만나고 엄청난 고난을 당한 이유였습니다.

예배 중에는 아멘 하고, 집에 가서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가고 싶은 대로 … 하고 다른 사람 말을/다른 책의 글을 더 따른다면
그것은 바른 신앙자세가 아닐 뿐 아니라
요나처럼 풍랑을 만나는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편의주의 때문에

풍랑을 만난 또 다른 이유는 12절에 나타난 대로 편의주의 때문입니다.
바울의 “머물자”는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미(美) 항에서 머물기가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12절 봅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행27:12)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귀찮다는 이유로 …
편한 것을 찾다가 풍랑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안함만을 찾는 태도인 편의주의는 …
신앙생활이 아니라도 인생 자체를 불행하게/실패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신앙생활은 편하던 세상 삶에서 불편한(?) 영적 삶에 자신을 묶는 것’ 입니다.

성경 말씀에/신앙전통에/예배에/모임에 자신을 묶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예배참석, 십일조, 첫열매,
기도생활, 봉사생활 … 에 자신을 묶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비와서, 더워서, 추워서, 피곤해서, 미워서, 싫어서, 불편해서 …
이런 핑계를 대는 것은 풍랑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것, 천국 소망을 가지고 교회에 모이는 것,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 자체가 불편한 것입니다. 귀찮은 것입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여러분, 제가 목사로 사는 것이 편하고 좋을 것 같습니까?
사는 것이 편치 않습니다.
제가 목사인 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면 너무 편하고 자유로워서 좋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사는 여러분도 참고 견딜 일이 많으실 것입니다.
할 말 다 못하고, 하고 싶은 것 다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좁은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천국 가는 길이요,
참된 행복의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길 가는 것을 중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이라 하고, 일하라 하고 … 교회가 귀찮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귀찮게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귀찮게 여기는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등록하지 않고 떠돌이 교인으로 다니는 분들 편안하겠지만 …
그것이 풍랑 만나는 지름길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불편을 이유 삼는다면 풍랑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앞세우기 때문에

풍랑을 만난 또 다른 이유는
자기 생각/자기 능력, 인간의 생각/인간의 능력을 앞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12절에 보니“미(美) 항 보다는 뵈닉스에 가서 추위를 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여기서 거기 정도는 우리가 얼마든지 갈 수 있지 … 할 수 있어 …
기도하고 전도나 하던 바울이 뭘 알겠어 …
잡혀 가는 주제에 …라는 생각으로 바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물론 자신감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하나님을 외면하는 교만이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기도하자고 하면 ‘뭐 그런 것까지 기도하느냐?’는 분이 간혹 있습니다.
어떤 일은 ‘그 정도는 그냥하자 …’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드린 헌금을 재무부에서 주일 오후에 정리하고 나면
기도제목이 적힌 봉투만 제게 가져옵니다.
책상 위에 두고 기도제목이 적힌 봉투를 보면서 기도합니다.
봉투에 적힌 기도제목을 읽다 보면 눈물나는 기도제목이 많습니다.
-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 …
- 친구/부모님 전도할 수 있게 …
- 아프지 않게 …
- 아이를 갖기 원하여 …
- 속도원을 위해, 선교회원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 … 참으로 다양합니다.
- 어떤 아이는“하나님, 제발 우리 엄마 아빠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제목에 써 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봤더니 집사님 부부였습니다.
집에서 어떻게 싸우기에 부모님이 싸우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합니까.
싸우지 마세요.
- 어떤 아이는 “하나님 용돈이 올라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제목을 써 놓았습니다.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아이들 용돈 좀 올려 주세요.

<제가 가지고 온 봉투에 적힌 기도 제목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 키 크고 건강하고 공부 잘 하게 해 주세요.
요즘 우리나라 문제가 심각합니다. 키가 커야 좋은 줄 압니다.
그래서 개그 프로에도‘키 컸으면’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역사를 움직이고 위대한 지도자가 된 사람,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평균 키보다 작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키에 민감합니다.
키가 크다고 특별히 달라지는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믿음의 키가 커야 합니다. 삶의 키가 커야 합니다.

- 세계적인 십일조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저는 이 기도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어린 아이가 이렇게 기도할 정도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아이를 위해 특별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아이와 친하게 지낼 것입니다.)

- 우리나라 통일 되게 해 주세요.
대통령이 북한에 간다는데
이 아이는 대통령 보다 앞서서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드림아파트로 이사 가게 해 주세요>
라고 제목에 써 놓았습니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꿈인가 봅니다.
- 고등학생의 기도제목입니다.

가진 것 때문에 불안해하기보다
가진 것을 버림으로 평안케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 제목을 보고 어떻게 고등학생이
이렇게 멋있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놀랐습니다.

여러분, 뭐 그런 기도를 하느나고요?
뭐 그런 것을 위해 기도 부탁하느냐고요?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마음에 담긴 생각을 입으로/글로 표현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듣고 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표현해야 합니다.
자신감에 넘쳐 건방진 마음으로, 교만하면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겸손하게 무슨 얘기든지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수주의 때문에

풍랑을 만난 또 다른 이유는
다수를 따르는 통계를 믿는 … 다수주의 때문이었습니다.
12절에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행27:12) 했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다수를 앞세우는 세상 방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사이에
아론은 다수 백성들의 아우성 때문에 … 금송아지 만드는 것을 방관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을 때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족장을 보냈습니다.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온 족장중 10명이
“거기 가보니까 성이 견고하고 사람들의 키가 대단히 크다”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10명의 족장의 말이 맞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능히 이기리라”하며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다수결로 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못 들어 갔을 것입니다.

본문에도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의 꽃이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은 분명하지만
영적인 문제는 반드시 다수가 옳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가리켜‘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은 민(民)주주의가 아닙니다.
백성 중심의 삶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은 신(神)주주의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지, 하나님이 허락하실지,
하나님께 영광이 될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성경보다 자기 판단을 더 신뢰하고 …
기도하는 사람보다 전문가의 말을 더 따르고 …
편안한 것, 쉬운 것을 찾고 … 자기 생각, 자기 능력 앞세우고 …
다수의 생각, 경험, 능력을 따르면 잠시 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풍랑을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남풍이 순하게 불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았습니다.
‘그것 봐라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으냐?’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한대로 될 때 그때 다시 한번 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
요나 1장 3절을 보세요.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욘1:3)

“마침”그때 자기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일이 진행될 때 …
자기 생각대로 척척 맞아 떨어질 때 …
“거봐라”하는 안도감이 생길 때 …
이제 됐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싹틀 때 …
바로 그것이 풍랑을 만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보다
자기 생각(자기 판단)을 따르는 교만 때문에 불순종하고
교만한 마음 때문에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행27:14) 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고통스러운 열나흘을 보냈습니다.(행27:27)
사도행전 27장 37절에 보면
바울이 탄 그 배 안에는 276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광풍으로 인해 구원의 여망이 없는 극한 상황에서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큰 소리쳤습니다.

찾아 읽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3~25절에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시련과 역경 중에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노라”하는 믿음입니다.

풍랑을 만나고 어려움을 겪고 이런 저런 줄이 끊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하나님과 연결된 줄만 있다면 그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풍랑 만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풍랑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는 믿음의 줄만 끊어지지 않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보다, 기도보다, 여러분의 마음을 더 움직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 것이 있다면 풍랑 만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적당히/편안히 믿으려 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시렵니까?
그렇게 가면 거기서 풍랑을 만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어 보여도, 바보 취급당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왜 풍랑을 만나는지에 대한 말씀만 듣는 자가 아니라
풍랑 만나지 않는 믿음의 삶이 되도록
결단하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이들
아멘한 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은 하고 생활 속에서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삶을 사는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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