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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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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 (계 3:7~13)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자신의 암호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여권에 필수적으로 적혀 있는 주민등록번호입니다. 이것 외에도 우리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암호 한 두 개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에 가서 돈 찾을 때에도 반드시 암호를 사용해야 하고, 집의 문을 열 때도 요즘은 열쇠가 아니라 숫자를 눌러 문을 여는 가정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확인할 때에도 암호, 즉 패스워드 (password)를 적어야합니다. 이 패스워드가 없으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삶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패스워드가 필요한 까닭은 인생에 나에게만 열려진 공간과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이 패스워드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인증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패스워드를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세계의 문, 구원의 문, 생명의 문, 열린 문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갖고 있는 문으로 한번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한번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권세를 가진 분으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합니다. ‘열린 문’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는 문을 열어주신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집에 도둑이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위협해도 문을 꼭 닫아 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오면 얼른 뛰어나가서 문을 열어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족과 친구처럼 맞이해주시는 것이 열린 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 “네 패스워드를 말해봐라.”고 할 때 빌라델비아 교회가 “나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입니다.”라고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교인들을 향해 문을 열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 본문 말씀을 읽다가 어릴 때 읽었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 생각났습니다. 도둑들이 훔친 보물을 굴속에 감추어 두었는데 그 굴에 들어가려면 바위 문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 바위 문 앞에 서서 도둑 두목이 큰소리로 외치는 암호가 바로 “열려라 참깨!”입니다. 어릴 때 우리는 이것이 진짜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열려라 참깨”라고 외쳤던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알리바바는 이 패스워드를 이용해서 보물을 소유했습니다. 이 패스워드를 들은 바위 문이 저절로 열린 것으로 보아 아마 그때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패스워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이 패스워드를 꼭 간직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패스워드란 우리의 지식일까요? 돈일까요? 명예일까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유일한 패스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 나라의 열려진 문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더 구체적으로 “나는 빌라델비아 교회 교인입니다.”라고 말하면 문을 열어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도님들 모두가 이런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습니다.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 교인처럼 예수님 앞에 나가서 “저는 소망교회 성도입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너는 무조건 들어와라.”하고 문을 열어 주신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운 경험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가장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를 지켜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3:8)

빌라델비아는 영어로는 필라델피아, 즉 형제 사랑이라는 두 단어가 합성어 된 교회 이름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데 교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네 외모가 그럴 듯하다. 네가 열심인 것 같다. 네가 수없는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이미 끝났다. 변화되지 않고 성숙되지 않는 외모만 갖추고 있으나 죽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행위가 전혀 다른 사데 교회와는 다른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졌다. 외적으로는 보잘 것 없다.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숫자도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구나.”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말씀으로 반복해서 칭찬하십니다. 무엇보다 핍박과 억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으로 인내하며 신앙의 지조를 잘 지켜나갔다고 칭찬하십니다. 여기서 ‘작은 능력을 가졌다’는 말씀은 칭찬이 아니라 꾸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은 믿음, 작은 능력은 예수님의 원래 의도였던 말씀이라기보다는 빌라델비아 교인들 스스로 갖고 있던 자의식을 예수님이 그냥 쓰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탄의 회당에 속해있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함부로 퍼뜨리고 구설수를 만들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면서 이렇게 조롱하며 비난합니다. “너희는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이다. 숫자도 적고 능력도 없이 초라하지 않느냐? 문벌도 없고, 지식도 없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비록 작은 능력을 가진 것 같아 사람들이 너를 비하하고 조롱하며 열등감 많은 사람으로 문제를 삼지만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잘못된 비교 기준표를 만들어서 내 마음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웃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과 비교의 대상으로 삼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집의 평수가 몇 평인가? 한 달 수입은 얼마인가? 입고 있는 옷은 유명 브랜드인가? 듣는 음악은 고전 클래식을 즐기는가? 대중가요를 좋아하는가?’ 끊임없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모든 것을 비교하면서 그것 때문에 뽐내기도 하고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다를까요? 교회 안에도 세상 풍조가 들어와 지속되기도 합니다. 나와 다르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찬송가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지,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지 비교합니다. 기도를 조용히 하는지, 큰 목소리로 하는지 비교합니다. 교회들끼리는 성도의 숫자와 헌금 액수가 얼마나 많은지 비교합니다. 때로는 누가 더 충성하는지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런 인간이 만들어 놓은 비교 기준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조금 우월한 것을 즐기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비교와 경쟁의식으로 생겨나는 우월감과 열등의식 속에는 은혜가 없습니다. 은혜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비교 의식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 가운데서 무너질 때 생깁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 되신 것을 고백하는 자리에 은혜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여러 가지 차이가 있고 우리 모습과 출신이 다를지라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요, 기쁨과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비교하고 비판하면서 갈등하며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갖고 있구나. 자랑할 만한 외적인 힘이 없구나. 그러나 외모와 형식으로 너를 보지 않겠다. 네가 가진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에서 벗어나서 해방되어라. 네가 가진 열등감에서부터 너를 탈출시켜라. 잘못된 우월주의를 벗어버려라. 쓸데없는 외모주의, 형식주의, 학벌주의, 지역주의, 물량주의적인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교회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곳입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업적을 보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인격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들이 내세우는 비교와 경쟁적 행위를 거절하시고, 그것을 극복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짓말로 너를 속이는 다른 사람들의 유혹에서부터 해방 되어야 한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환경이 좋아서 칭찬받은 것이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도 핍박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이런 이들이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3:9). 그들의 특징은 남을 모함하고 음해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위협하고 주관하려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속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으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참된 진리가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주님의 말씀 을 지키는 것은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소규모였기 때문에 때로는 버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를 향해 반복해서 칭찬하십니다. “네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뒤따르고 지켰구나. 내가 너를 인정할테니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위협을 당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남이 나를 주관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역사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눈을 무서워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더 중요한데 사람의 눈에 의해서 좌지우지 당하기도 합니다. 남의 평가에 의해서 끌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위협하는 사탄의 회의에서 그들을 뒤엎으려고 할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약속하십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3:9)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갈등을 너무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대로 살려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때로는 인생사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오히려 사탄에게 속했던 사람들이 와서 절하고,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네가 그들에게 가서 영향력을 받고 거꾸로 그들을 쫒아가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조를 지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면 그들이 네 모습을 보면서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놀랍게 나타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가 위로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을 지키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축복의 문, 생명의 문, 구원의 문을 열어 놓았다. 내가 열어 놓으면 사람들이 닫을 수가 없다. 내가 확정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패스워드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에 붙잡힘 받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등감과 우월의식과 비교의식에서 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아부하는 것은 하나님 두려워하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시선과 평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한 평가에 관심을 갖지만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질 때 하나님이 주신 열린 문 속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문을 열어주셨듯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나는 소망교회 성도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문을 열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신앙의 모습을 지켜보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을 칭찬하기 원하십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그렇게 될 때 예수님의 약속된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하나님을 사랑하며 따르는 우리 모두가 이런 귀한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능력, 우리의 지식, 우리의 업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인정,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내게 주어진 삶이 한걸음, 한걸음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앞에 올바로 서는 열심과 열정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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