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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에 부흥이 임할 때(2) (행 2: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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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교회에 부흥이 임할 때(2)
본  문: 사도행전 2:37~47절(신약p.190)

찬양을 들을 때마다 대원들을 세워보는게 취미가 되었습니다. 오늘 60명이 넘는 대원이 찬양들을 드리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합니다.
교회는 반드시 부흥이 임해야 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왜 교회는 부흥을 갈망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피로 값 주고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워주셨는데, 이 교회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하나님이 목적하신 모습을 가지고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연숙씨가 쓴 ‘흔들리는 신앙 붙들어주소서’라는 글에 보면 미국에 이민 간 장로님이 나옵니다. 그분은 22년간 108번을 교회를 옮겼습니다. 그는 일년에 평균 다섯 번 교회를 옮겼습니다. 이교회도 마음에 안들고, 저교회도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별세하여 장례를 치루게 되었는데 장례를 치룰 교회가 없었다는 겁니다.

이 지상교회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다 허물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교회에 대한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그 설립목적, 그 비전을 가슴에 품고 그런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한 갈망들이 우리에게 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냥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가 얼마나 교회로서의 존재가치가 있고,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교회부흥을 위해서 정말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부흥이 임할 때 어떻게 교회가 변화되는가? 그 지난 주간에 저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교회부흥이 임할 때 교회는 깨끗하고 거룩하여 집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느냐, 모이지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깨끗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부흥을 통해서 비로서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회개자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 부흥이 임할 때 많은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됨으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진정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의 회복이 부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떤 내용으로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지 않으면 그 예배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부흥이 임하지 않으면 좋은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우리가 예배행위를 하고 갔는데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지 않습니다. 예배를 받지 않으면 하늘문이 열리지 않고, 그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흥이 임하면 믿음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을 높이기 위한 열망이 내 속에 가득차게 되어져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공동체로 회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부흥이 임하면 성도들이 모이기를 힘쓰고,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영적으로 강한 공동체로 변화가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도 모이기를 힘썼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델로 제시해 주신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부흥이 임했을 때,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했을 때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로 변화가 되어졌습니다.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임이, 이 커뮤니티가 교회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모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모일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모이는 그곳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교회마다 찾아가보면 차이가 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는 교회는 새벽기도, 수요예배, 주일예배 등 모임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 모릅니다. 십년전에 교인들과 함과 함께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이십여명의 분들과 명성교회 새벽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특별새벽기도 기간인데 새벽기도를 3-4부 드리는데 한번 예배를 드릴 때마다 삼천여명의 사람들이 가득가득 차는 것을 봤습니다. 또 마당에는 다음 예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얼마나 부흥을 갈망하는지...얼마나 은혜를 사모하는지...여러분, 교회는 모였다가 흩어집니다. 모일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세상을 향하여 나갈 때는 강력한 하나님의 도구로서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향하여 파송되어져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래알을 보십시오. 모래알은 아무리 부대에 담워놓아도 부워버리면 전부다 흩어집니다. 조그만 모래알이 무슨 힘을 발휘합니까?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뭉쳐질 때 큰 바위와 같은 힘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서 나가서 죄악을 깨뜨리고 마귀를 추방하고... 각 가정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가보세요.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부흥을 경험할 때 마음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모이기 쉽고 은혜를 사모하게됩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모이기 싶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모이고 싶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모이고 싶은 겁니다. 부흥이 임할 때 이런 이유 때문에 시간시간마다 모이기를 힘쓰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나 우리 기독교 역사에 모이는 곳마다 하나님이 역사했습니다. 모이는 곳에...그래서 부흥이 임하면 모이기를 힘쓰고 모여서 은혜를 사모하고 찬송하고 힘을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여 뜨겁게 기도하는 강한 공동체가 되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나 부흥이 임하지 못하면 모이지를 않아요. 그 교회는 점점 약한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공동체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갈망하고 사모하기 바랍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힘써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그래서 귀하게 쓰임받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흥이 임할 때 모이기를 힘쓰는 강력한 공동체가 됩니다.

네 번째, 부흥이 임할 때 교회는 기사가 표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43절에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인해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교회에 부흥이 임하면 목사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가고, 성도님들 한분한분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임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상하게 내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들어오면 그것은 놀라운 기사와 표적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임할 때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옵니다. 그 능력은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 병든 자가 고침받는 기적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 부흥이 임할 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기사와 표적은 사인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건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들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기사와 표적이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야, 저 사람은 다르구나!”라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부흥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예수님을 믿어도 아무일도 하지 못합니다.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가? 과연 나를 통해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있는가?
나를 통해서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타나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하시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을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이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인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교회되기 위해서 부흥을 갈망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흥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시고서는 그런 역사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섯째, 부흥이 임할 때 교회는 사랑이 충만한, 기쁨이 충만한 교회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44-46절에 보면 유무상통했습니다.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아서 있는자가 없는 자를 도와주워서 부족함이 없는 삶이 되고, 순전한 마음으로 서로 교제와 사귐을 가지는 너무나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천국이 되었습니다.

따라합시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천국을 어디서 맛봅니까? 히브리서에 보면 교회에서 천국을 맛본다. 교회와보니까 정말 천국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최고급 호텔에서 많은 돈을 주고 먹고 마셔도 그 기쁨은 잠시 뿐이었는데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바라보니 너무나 기쁘고 좋더라. 교회가 천국을 맛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천국을 맛보게 할까요? 하나님이 성령이 임할 때, 부흥이 임할 때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부흥이 임하면 뭐가 충만해져요? 내 속에 뭐가 충만해 져요? 예수 그리스도 충만해 집니다.

그리스도가 충만해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 진다는 겁니다.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녀도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사랑이 없어요. 기쁨은 어디서 생기느냐? 기쁨은 내 속에 사랑이 넘칠 때입니다. 사랑이 넘치면 섬기고 싶습니다. 서로를 섬깁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속에 충만하니까, 사랑을 주고 받으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하면 기쁨이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되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도 우리교회 오니까 너무나 위로를 많이 받아요. 너무나 사랑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뭐가 생겨요. 기쁨이 생깁니다. 나도 남을 사랑해야지.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내 마음속에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없는 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불평하고 시기하고, 갑갑하고 사막과 같이 됩니다. 주고 받을게 없습니다.
주는 자가 없고 섬기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 교회가면 열받고 돌아옵니다. 은혜를 못 받아요. 상처받습니다. 어떻게 그런 곳에 가고 싶겠습니까?

요즘 한국교회에도 새로 믿는 신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잘 된다는 교회 가보면 이동신자들이 많습니다. 명성교회 주변에서 개척교회하는 목사님들 불평이 많습니다. 조금 모아놓으면 그 교회 다 간다는 겁니다.
우리가 알야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왜 교회를 안나오느냐?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별로 즐거운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별로 기쁨이 없는 것 같아요. 나보다 안기쁜 것같아. 그래서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캐나다에서 어떤 분이 이사를 갔습니다. “야 이 도시에서 어느 교회를 선택해서 다녀야 되겠는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아무 곳이 나 가면 안되잖아요. 세시간씩 가더라도 가야할 교회를 가야 합니다. 그런데 알아 볼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로터리를 보니 교통순경이 신호를 하고 있습니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교회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그분이 교통순경을 찾아갔습니다.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뭐요?” “저가 교인인데 이 도시에 와서 교회를 다니고 싶은데 어느 교회가 좋습니까?” “그래요, 저는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교회를 다닌다면 저 남쪽에 있는 교회를 다니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곳에서 십년동안 교통신호를 하는데 주일날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 다릅니다. 어떤 교회는 얼굴에 인상을 쓰고, 어떤 교회는 기쁨이 없는데, 저 남쪽에 있는 교회는 항상 환하게 웃고 나옵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교회를 나간다면 저 교회를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교회를 등록했습니다.

교회의 생명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기쁨을 너희에게 주노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교회가 기쁨의 교회가 되려면 부흥이 임하지 않으면 기쁨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기쁨이 내 속에 충만할 때 서로 사랑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이 있는 그곳에 기쁨이 나타나게 됩니다.
괴로운 자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나 성도의 사랑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기쁨을 회복합니다. 울고 들어왔으나 웃고 나갑니다. 탄식하며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찬송하며 나갑니다.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부흥을 갈망해야 될 줄 믿습니다.

부흥은 사람이 만들어 낼수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 기쁨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 기쁨을 만들어 낼수 없는 겁니다. 부흥이 임하고 성령이 임할 때....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천국같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주여 우리교회에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뜨겁게 부흥을 갈망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여섯째, 교회에 부흥이 임할 때 교회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 헌신하고 쓰임받는 전도의 공동체로 쓰임받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기쁨으로 목숨걸고 전하는 증인공동체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에게 전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47절에 보니 예루살렘교회는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는, 구원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돈이 많아도 자식이 없으면 그곳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의 기쁨과 은혜됨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믿는 새 신자들이 계속 생산되고 나타날 때입니다. 죄인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기뻐하시는 기쁨이 넘쳐나고, 그래서 그 교회위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전도하는 공도체가 되는냐? 부흥이 임할 때, 성령이 임할 때입니다. 따라합시다. “우리 인간은 영적이 것과 육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육은 죄로 말미암아 기능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육은 성령으로 거듭난 존재일지라도 우리의 육은 계속 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자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잘 말씀하고 있어요.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신을 거스리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마음은 원이로대 육신이 약해서 육이 하고싶은대로 끌려가고 맙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전도해야지 하는 마음은 있지만 실제적으로 전도를 안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스스로 알겁니다. 기도를 해야지 하면서도 기도를 안합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도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지만 기도를 하지 못했습다. 마음은 원이로대 육이 약했습니다. 왜냐? 육신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육을 이기지 못합니다. 육이 뭡니까? 세상 것을 즐거워하고, 기도하는 것보다 텔레비전 보는 것 좋아하고...텔레비전은 열시간, 열한시간 빵구나도록 봅니다. 그런데 성경한절 읽는 것은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같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면 육이 좋은대로 살아가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고 여러분에게 부흥이 임할 때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성령을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자리로 나아가는 자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은 전도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전도하기 싫어하는 사람 많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성령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내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면 육이 그렇게 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전도하는 것이 기뻐지고 좋아지고 섬기고 사랑하고 선한 일을 위해서 힘쓰는 자로 변화되어 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흥이 임할 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왜 성령을 사모해야 하느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지 못하고, 내게 부흥이 임하지 못하면 육이 원하는대로만 살아갑니다. 그게 나쁜 것인 줄도 깨닫지 못하고 나중에는 한 달란트도 내놓지 못해요. 한 달란트 그대로 내 놓은 것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 받았느데, 육에 끌려 산 사람은 한 달란트도 내놓지 못합니다. 다 까먹습니다.

잘 들으세요. 왜 우리가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까? 부흥이 임하지 않으면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못합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한 영혼도 전도하지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일지라도, 베드로 보세요. 계집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몇 번 부인했지요? 세 번...세번 부인했어요.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뭐가 임했어요?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니까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로 뛰쳐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베드로의 담대한 선포를 듣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로 소리쳤던 그 완악한 사람들이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고? 죄를 자복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는데 하루에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예수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줄 믿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 공동체, 증인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심령들이 주님앞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부흥을 갈망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부흥이 임할 때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교회가 됩니다.

교회에 부흥이 임할 때 교회 밖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교회가 교회밖에 영향을 끼쳐야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우리끼리만 모여서 좋아서 노래하고 끝나버리고 교회 밖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가 뭐냐? 교회밖에 있는 사람, 하나님과 담을 쌓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 지옥을 향해 가는 그 사람, 그래서 저들의 죄 때문에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죄를 밥먹듯이 하고, 마귀에게 속아서 살아가는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께 나오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가정과 개인이 새로워지고, 사회가 새로워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겁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교회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끼리 예배드리고 아멘하고 돌아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한 가지 아실 것은, 주님이 우리를 불러 모은 것은, 우리를 여기에 모이게 하시고, 이 자리에서 은혜와 능력 주신 것은 교회밖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들을 주님께로 불러오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모은줄 믿습니다.

따라합시다. “예배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송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믿습니까? 이걸 아셔야 합니다. 예배끝이 바로 우리 사역의 시작입니다. 따라합시다. “예배의 끝은 사역의 시작입니다.”

사역을 잘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21세기 현대인들, 우리 한국만 해도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20배가 넘습니다. 그래서 심리치료사도 20배가 많습니다.

이 현대병은 마귀의 극악한 역사로 인한 현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불안정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인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노인의 자살율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적 병리현상을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정부가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교회밖에는 이 일을 할 공동체가 없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부흥이 임할 때 교회를 통해서 이 사회와 가정을 치유하는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기도하면 우울증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어떻게 되었어요? 사울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울이 상쾌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고쳐야지요. 세상을 치료하고,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지 않으면 교회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어집니다.

오늘 여러분들 누가복음 4: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눌린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그 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부흥이 임할 때 이 세상에 눌리고 갇힌 자를 여러분을 통해서, 그 교회를 통해서 자유함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마귀가 물러가는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부흥을 갈망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부흥을 주시옵소서!
이 세상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분 동안 묵상하면서 부흥을 갈망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여 내게 부흥을 주시고, 성령으로 찾아오시고, 우리 공동체에 부흥의 불을 던져주시고, 우리가 부흥을 경험하고 변화되고 새로워지게 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영혼의 부르짖음을 가지고 부흥을 갈망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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