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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진실하면 (사 49:3-6, 롬 10:9-13,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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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진실하면 (사 49:3-6, 롬 10:9-13, 마 15:21-28)


귀신들린 딸을 둔 어머니가 예수를 찾아와서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얘기가 오늘 나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 본문을 보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께서 고쳐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 믿음이 크다 그래서 고쳐 주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이 천년 전에 있었던 얘기지만 오늘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가나안이 어떤 나라입니까?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 할 때 수백 년 동안 가나안 땅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그 다음에 여호수아 휘하에 들어와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이게 본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땅이라 하고 가나안을 점령을 합니다. 점령을 하면서 가나안의 원주민들은 밖으로 내쫓김을 당합니다. 지금도 그 갈등입니다.

지금 그 가나안이 팔레스타인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본래 우리 땅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먼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우리였는데 다만 이집트로 종살이 가느라고 너희들이 중간에 점령했지 않느냐 우리 땅 내놔라. 이 갈등이 지금 팔레스타인의 갈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이미 유대 백성이 비록 로마 식민지에 있었지만 가나안 사람보다는 유대사람들이 주도권을 이루고 있었고 유대사람들이 아닌 이방사람 특별히 가나안 출신 사람들은 식탁에도 같이 못 앉을 뿐 아니라 완전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천대받는 가나안 여성이 와서 그것도 남성 위주 사회에서 한 여성이 정상적인 아들을 축복해 달라고 온 게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가장 못 된 질병인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청탁을 가나안 족속이 감히 유대백성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인 예수에게 와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완화 됐지만 외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품고 돈 벌려고 이 땅에 무작정 온 불법 외국인 노동자 한 여성이 찾아와서 내가 불법으로 지금 체류하고 있지만 우리 딸아이가 병들었으니 고쳐주십시오 하고 어느 병원을 찾아갈 수 있습니까? 찾아가서 신고 되면 추방당합니다.

할 수 없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마 우리교회 선한이웃 클리닉 일겁니다. 우리는 추방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때 이 여성이 우리교회 클리닉을 오는 발걸음이 무겁겠습니까? 가볍겠습니까? 생사를 건 갈등이 될 겁니다. 혹시 좀 비근한 얘기가 될 수 있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영화에도 가끔 나오는 얘기인데요. 지금은 호주라는 나라가 굉장히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호주에 서양인이 진입해서 원주민들 쫒아내고 얼마 후에 호주에 소위 영국에서 온 백인들이 아름다운 게임 하나를 했습니다. 사냥 게임입니다. 원주민 사냥. 그 장면 들으셨고 영화로도 보셨지요.

그래서 원주민은 사냥감이 됐습니다. 많이 사냥하는 사람이 상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원주민 여성 한사람이 정신도 다 미친 상태로 서양에서 온 한 사령관한테 와서 우리 딸 좀 살려 주십시오 할 때 사령관 입장이 뭐라고 얘기하겠습니까? 너무 예들이 과격해서 안 좋습니다만, 예수님 당시에 강한 여성이 예수를 찾아온다. 타부입니다.

특별히 귀신들린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입니다. 아픈 것도 아니고 찾아와서 가나안 여성이 이렇게 예수에게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당신은 정통 유대인의 후손이고 그것도 유대인들이 아주 숭앙하는 성왕. 민족을 통일시킨 훌륭한 다윗 임금의 직속에서 태어나신 자손임을 압니다.

저는 이방인입니다. 가나안 사람입니다. 여성입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당신을 찾아 올수 있습니까? 다윗의 자손인 주님 제 딸 좀 살려 주십시오. 이 말을 받은 예수는 성경 말씀에 보면 침묵했다고 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했을 겁니다. 도대체가 이런 여성이 찾아온다는 게 예상도 안했었고 다윗의 자손이라며 감히 가나한 여인이 부르는 것도 달갑지 않았을 겁니다. 주변에 이스라엘에서 온 많은 백성들, 사람들, 제자들을 에워싸고 감히 나서서 하는 말 다윗의 자손이여 인정합니다. 저는 이방인입니다.

우리 딸 좀 고쳐주십시오. 예수는 침묵하셨다. 이 말이 굉장히 맘에 걸립니다. 왜 침묵했습니까? 그러자 제자들이 나와서 얼마나 귀찮게 굴었으면 적당히 안심시켜서 돌려보냅시다. 우리 일이 바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하시는 두 번째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양을 위해서 왔다.

이방인 신경 쓸 여가도 없다. 그 장면 한번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영화로 찍는다고 하면 어떤 장면이 계속 되겠습니까? 만유의 주이신 예수께서 불쌍한 사람 찾아왔더니 네가 아니고 정통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만 구원하러 왔다. 구원의 제외. 우리 보통 같으면 그냥 가야합니다.

기분 나쁘다고. 딸이 죽으면 죽었지 기분 나빠 못 있겠다. 이 여성의 끈질긴 인내심 한번 보십시오. 그러자 여성이 계속 간구를 합니다. 간구를 했더니 예수께서는 들은 척을 안 하시는데 여성이 마지막 결단을 합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걸 포기합니다. 여기까지 오면 여성은 대단한 인내와 결단이 있는 여성입니다. 근데 예수께서는 전혀 응답이 없으십니다. 마지막 예수의 응답 보십시오. 자녀들이 먹는 빵을 집어서 개한테 줄 수는 없지 않느냐. 가나안 여성은 당시 통념으로 개라고 불림 받았습니다.

가나안의 모든 백성들 개. 그중에서도 귀신들렸으니 죄송합니다만 미친 개. 그거 아닙니까? 미친개를 가진 어머니가 와서 고쳐 달라. 내가 개한테 줄 수 없지 않냐. 특별히 미친개에게 왜 하늘나라 복음을 줄 수 있느냐. 인격 모독입니다. 여성으로 보면 만유의 주인인 예수께서 하신다는 게 아마 청천병력이었을 겁니다.

보통 사람이 하는 얘기도 아닌데. 그때 이 여성이 하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주님 맞습니다. 그런데 개들도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개 비슷한 나도 우리 딸도 미친개도 부스러기라도 먹으면 낫겠는데 좀 주십시오. 이 장면을 한번 우리 그려보십시오.

인간적으로 사회적 통념으로 당시 상황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어떻게 개 취급 받으면서 살려달라고 합니까? 마지막 예수의 말씀입니다. 네 믿음이 큰데 참으로 크도다. 어떻게 그런 억압과 시련과 자존심과 명예 이 모든 걸 다 이기고 살려달라고 하느냐. 네 큰 믿음이 진실 된 믿음이 내가 응답을 하마. 네 소원대로 되어라. 그 순간 귀신들린 아이가 나았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영화입니다.

엄청난 스토리로 묶을 수 있습니다. 근데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여 이렇게 말했는데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가지 희망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가나안 사람들처럼 바빌론에 끌려가서 완전히 속국이 되고 신민이 되고 바빌론 사람들의 밥입니다. 그럴 때 얼마나 어려웠으면 배교자도 많이 나왔고 이스라엘을 욕한 사람도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 끝까지 견디면서 남아있던 지조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겠다. 끝까지 남아있는 지조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성경 말씀은 남은 자들. 지독하게 핍박을 받았지만 남은 자들.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불러다가 이스라엘 땅에 다시 보내서 나라도 세우게 하고 성전도 짓게 하겠다. 오늘 이사야에게 준 약속입니다.

오늘 이 약속을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시 나라를 세우게 하겠고 성전도 세우게 하겠는데 내가 이 남은 자들 후손으로 오늘 왔으니 나는 이스라엘에 남은 자들. 돌아온 백성들의 후손들을 고쳐 줘야할 자격이 있다. 여인 말입니다.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딸 좀 고쳐주십시오. 그때 여인과 예수간의 대화 내용은 구체적으로 없습니다만 만약에 우리 드라마를 만든다면 이렇게 할 겁니다. 이사야서 말씀에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자기나라로 데려오게 된 목적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본문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목적이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미치게 하려고 그 선발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택했습니다. 땅 끝까지 구원시키려고 백성을 택했습니다.

예수님 저 여인은 오늘 땅 끝, 인간의 발끝,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 저주 받는 곳 그곳에 제가 삽니다. 거기까지 이르러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른다는데 왜 저를 구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 이사야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목적은 뭇 민족의 빛으로 선택하신 것 아닙니까. 언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만 배타적으로 축복받으러 선택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선택한 목적은 축복을 준 목적은 하나님이 벌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앞장세워서 세계를 구원하고 땅 끝을 구원하고 뭇 민족의 모범적 국가가 되라고 선택했지 이스라엘 민족이 배타적 선민이라고 언제 택한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이야기를 여인의 항소를 통해서 들었을 겁니다. 침묵했습니다. 옳다. 예수님 보시기에 유대 백성들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갈등의 내용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런데 우리만 백성이고 우리이외 아무도 선민이 아니라고 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것을 율법주의라 이름 합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은 선민이다 축복받은 백성이다. 온 세계의 빛이다.

그런데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빛이지 당신들만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과의 갈등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께서는 침묵으로 답변하시면서 이 여성의 강한 항변을 듣습니다.

우리는 민족이 필요하고 가정이 필요하고 저 자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택한 목적이 저 하나 구원하려 택했습니까? 저보고 만방을 구원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라고 택했지 제 그 메시지를 거부하면 저의 선택은 무효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을 주라고 하나님이 가정을 택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가정과 담쌓고 살면 선택은 무효입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그렇습니다. 한나라의 축복을 준 것도 맞지만 민족을 택한 건 사실이지만 그 민족만 딱 떠올려서 그 민족만 구원해주고 다른 민족은 멸망시키라고 하신 선택도 무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뭇 민족의 빛으로. 너무 빛 된 것이 교만하니까 예수께서 오셔서 마태복음 말씀에 이렇게 했습니다. 선택을 받은 사람, 선택을 받은 백성은 빛으로만 선택받은 게 아니라 빛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스스로 녹아 버리는 소금이 돼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선택을 더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빛이 되고 싶은 사람들 소금이 되십시다. 안되면 하나님의 아들인 나 자신이 먼저 소금이 되어 십자가에 죽겠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활을 통해서 빛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보고 하는 말씀이 빛이 되자. 우리만 구원 받는 게 아니고 뭇 백성을 구원 하기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여 선두주자로 쓰는 것이다. 저는 우리가 위기가 탁칠 때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에 최악의 위기가 더해진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직접 읽지 못해서 전문가한테 들었습니다만 1941년 8월에 케나다 뉴펀들랜드라고 하는 동쪽 섬 한구석에 아르겐티아라는 항구 외각도시가 하나있는데 도시에서 떨어진 한 해변에서 1941년 8월에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만났습니다.

독일은 이미 소련을 침공했고요, 일본은 만주를 침공했고 이태리는 아프리카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계가 이제는 파멸 직전에 있을 때 루즈벨트, 처칠 둘이 비행기 폭격을 피해 몰래 군함을 타고 영국과 미국에서 와서 각자 군함에서 회의를 하는데 첫 번째 도착한 토요일은 루즈벨트가 있는 군함에서 모여 예배를 보고 그 다음날은 주일날이라 처칠배로 옮겨서 예배를 봤답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미국도 참전하고 영국도 참전하는 결의를 했는데 세계평화를 이루자.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은 먼저 유럽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전선이 두 개를 나눌 수 없으니 아시아에선 약간 방어적 참여를 하고 유럽은 공격적 참여를 하자. 그리고 세계평화를 이루자.

이런 얘기를 나눴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때 처칠이 쓴 회고록에 이런 장면이 나온답니다. 영국과 미국과 전 세계가 위기에 닥쳐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 군사 참모들을 대동하고 갔지만 중요한 것 하나는 군목을 대동하기로. 양쪽 군목이 와서 첫 날은 루즈벨트 배에서 기도를 하고 주일날은 영국 군목이 와서 기도하는데 기도야 물론 세계 평화를 주옵소서.

우리가 나서서 세계평화를 강건하게 하옵소서라고 했을 텐데 그런데 이제 처칠 회고록에 보면 그때 군목의 인도로 찬송을 불렀는데 찬송 내용이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하는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나중에 처칠이 쓴 얘기입니다. 어떤 군사 작전 회의도 세계의 최대의 위기 앞에서 내가 그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께 결단하고 용기 있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군목이 인도했던 기도와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찬송 구절 하나 하나 때문에 나는 울었습니다.

이 울음이 저로 하여금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이 되게 했습니다. 하는 고백을 썼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인간의 위기는 개인만의 위기가 아니고 가정만의 위기가 아니고 민족과 세계의 위기일 수 있습니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목적은 하나입니다.

세계의 평화. 이 가나안 여성의 이유는 미친 딸, 귀신들린 딸 낫게 해주는 것. 그걸 위해서 어떠한 비하도 어떠한 좌절도 나는 넘겨야 한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이스라엘에 사람만 구원하러 왔다. 미친개에게 빵을 줄 수 없다. 이 여성은 진실로 참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를 삭이고 이겼습니다.

민족주의도 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인간적인 모욕도 꿰뚫었습니다. 이 여성이 가진 인내는 내 딸은 반듯이 나아야 한다. 나을 수 있다. 귀신은 나가야 한다. 나도 인간이고 싶다. 우리 딸도 하나님의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고 싶다. 이 생명의 목적 하나를 위해서 여인은 결단했습니다. 뚫기로 했습니다.

예수는 침묵으로 응답하다가 마지막에 예수께서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 믿음이 크다. 질병 낫기를 원하십니까? 한번 몇 날을 견뎌 보시지요. 나라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아픈 거 한번 뚫고 나가봅시다.

질병이 낫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한데 죽음을 뚫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한번 버텨보시겠습니까?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땅에 생명도 얻어야 되고 죽음의 터널을 뚫고 영원한 생명도 얻어야 되겠고 우리 자식이 나아야 되겠고 우리 후손들도 나아야 되겠고 이 세계도 구원받아야 되겠고 민족과 이념과 체제와 모든 것을 초월하여 굴을 뚫듯이 뚫고 나가서 나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야겠습니다. 내 딸은 나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광야에서 시험하시다 예수를 이기게 하셨듯이 예수님은 믿음을 보시되 연단과 인내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인간적인 요소 때문에 믿음을 상실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가나안 여인만도 못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인내를 동반합니다. 개와 비슷한 사람이라 욕들을 받았는데 아마 여인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장자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개가 잘 짖는다고 좋은 개는 아니잖습니까? 모르겠어요, 도둑 지키는 건 좋겠지만 사냥 잘하는 건 짖는 개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사람이 말만 잘한다고 좋은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은 진실 된 인내 속에 뭔가 목표를 향한 강력한 믿음, 희망을 향한 결단. 이것이 사람을 살려내는 진실 된 사랑일겁니다.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평화와 모든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시면 모든 고난과 고초를 뚫고 가겠다고 하는 돌파력 있는 인내를 좀 가져보십시오.

그러나 그 인내는 나 혼자만의 나 이스라엘 백성만의 우리 가정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살기위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저를 통해서 역사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입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주님의 이름을 진실로 부르는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받습니다.

단, 믿음은 항상 인내해야 할 고난 고초가 따릅니다. 부활의 영광을 원하십니까? 십자가라 이름 하는 긴 고난의 터널이 필요합니다. 그걸 거쳐 나가야 부활이 있습니다. 질병에 고생하십니까? 질병을 뚫고 가시는 용기가 있어야 나음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십니까?

죽음이란 터널도 과감히 뚫어야 영원한 생명이 보장 됩니다. 오늘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커야 합니다. 뚫는 믿음입니다. 또 믿음은 진실해야 합니다. 여인은 협상을 원치 않았습니다. 타협을 원치 않았습니다. 여인은 오로지 한 길, 무슨 차별에도 불구하고 내 딸은 나아야 한다. 나을 수 있다. 주님 주십시오.

나는 진실 하나만 원합니다. 오늘 세상의 문제는 믿음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언어로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믿음, 언어, 결단이 갖고 있는 가장 밑바탕에 있는 진실 됨.

예수님은 진실 하나로 병을 고쳤습니다. 참되게 사십시다. 진실을 얘기하십시다. 하늘이 듣고 예수가 들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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