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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대로 되는 원리 (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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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되는 원리 (창 1:1-5)

  기독교는 말의 종교다. 말은 두 종류가 있다. ‘말’과 ‘말씀’이다. 말은 일상의 언어요, 말씀은 종교적 언어다. 말씀은 말이 숨 쉰다고 해서 ‘말숨’이라고 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말쑴’이 되었다가, 결국엔 ‘말씀’이 되었다. 따라서 말씀은, 살아 있는 말이다.

  그러면 말이 살아 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말이 살아 있으려면, 말한 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하나님께서 말하신 그대로 천지가 창조되었다. 그러기에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은 말씀이다. 그래서 반드시 그대로 된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신 것도 말씀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광경이다. 하나님께서 말로 우주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말하시니, 그대로 우주가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그대로 되는 원리를 말씀드리려고 한다.

1. 말하는 대로 된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빛이 있으라(3)하시매 빛이 있었다. 그대로 되었다.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7).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9).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었다(11).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하시매 그대로 되었다(15).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24).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30). 이렇게 우주와 만물이, 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

  이처럼 말한 대로 이루어지기에 (잠18:20-21)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나니, 곧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다. 우리 운명이 혀(말)에 달려있다.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며, 복을 누리며 살기도 하며, 저주 받기도 한다. 우리의 운명이 말에 달려있다. 성도들은 아름다운 말을 잘해야 한다. 말은 그대로 되는 힘이 있다. ‘죽는다, 죽는다.’ 하는 사람은 정말 죽게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사람은 정말 안 된다. 

  일전에 대중가요 노랫말을 연구회에서, 가수들을 분석해보았는데, 박상희 회장의 결론은 가수들도 노래를 부른 대로 되더라는 것이다. 늘 ‘죽겠다’는 주제로 노래 부른 가수는 다 죽었고, 슬픈 노래를 부른 사람은 다 슬펐고, 요절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가수 윤심덕은, 1926년 현해탄에 몸을 던져, 극작가 김우진과 동반자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수가 마지막에 불렀던 노래가 사의 찬미이다. 죽음을 찬미하다가 자기도 죽었다. 그리고 남인수는 ‘애수의 소야곡’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 중에 눈감아드리겠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그는 41세에 생을 마감했다. 목포 출신의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애절하게 부르다 49세에 죽었다. 차중락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후, 뇌염증으로 29세에 요절했다. 신장염으로 세상을 떠난 배호는 ‘마지막 잎새’를 부른 후 생을 마감했다.

  ‘흑점’이란 노래를 남긴 양미란은 골수암으로 숨졌다. ‘태양의 흑점처럼 어두운 내 마음’이란 노랫말에서, 이미 암의 불길한 징조를 읽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정호는 ‘님’을 불렀는데, 그 곡에 ‘간다 간다 나는 간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 노래를 부르다가, 폐결핵으로 33세에 진짜 갔다.

  권혜경은 산장의 노래를 불렀다.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산장에서를 불렀기에, 외로운 여인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 송대관은 “쨍하고 해 뜰 날”을 불렀는데, 정말 쨍하고 해가 떠서,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노랫말대로 되고 있다.

  ‘나는 행복합니다.’를 목청껏 부른 윤항기는 행복을 얻었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동생 윤복희와 외롭게 자라난 윤항기는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님이 되더니, 신학대학까지 세운 정말로 행복한 사나이가 되었다.

  가수들은 한 곡을 취입하기 위해, 같은 노래를 보통 2,000∼3,000번이나 반복해서 부른다. 이렇게 하다보면 꿈속에서도 부르고, 잠꼬대로도 부른다. 무슨 말이든지 3,000번만 반복하면, 그와 똑같은 일이 생겨난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하는 말을 보면, 그의 미래를 쉽게 분석할 수 있다.

  그러기에 말을 잘해야 한다. 말은 말대로 되게 하는 힘이 있다. 따라서 ‘나는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 ‘나는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까짓 것 문제없다.’이런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대로 되어 진다. 저주보다 축복의 말을 해야, 복이 임한다. 말대로 되는 깨달음이 있기를 축복한다.

2. 생각하는 대로 된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7번 나온다(4, 10, 12, 18, 21, 25, 31). 특별히 31절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만드셨기에, 그대로 되어 좋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나쁘게 보면, 한없이 나쁘게 보인다. 그러면 무엇이 좋게 보고, 무엇이 나쁘게 보이도록 할까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다.

  마음과 생각은 자유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생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무섭다. 생각은 자유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다. 한 번 생각을 잘못하여, 일평생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생각을 잘못하여, 영원히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가룟유다는 생각을 한 번 잘못하여, 영원히 저주 받은 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회계까지 맡은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 육신의 생각만 했고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만 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먹고 말았다. 이처럼 생각하는 그대로 된다.

  그래서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였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도 생각에 달려 있다. 긍정적인 사고가 장수의 비결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노인의학연구소 소장인 레너드 푼 박사가, 100세 이상 장수한 노인 350명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점을 조사했다. 그 결과 그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사 대상자 중에는, 중노동을 하는 사람,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 조부모나 부모가 장수하지 않은 사람 등,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이 있었다. 즉 그들은 생활여건이나 유전, 음식 등,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올바른 생각을 통해서 장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래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도 생각에 달려있다. 따라서 생각을 잘못해서 병에 걸리지 마시고, 생각을 잘해서 장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런가 하면 성공과 실패도, 생각이 좌우를 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아름답게 하자.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헤럴드 셔먼(Harold Sherman)박사는, 자신의 저서 ‘바꿔볼 만한 인생’에서 “불행을 당했으면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생각을 통해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생각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창조력이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적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소극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불행이 닥치면,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 봐야 한다. 생각을 바로 하면, 그 생각을 통해 얼마든지 성공하고,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된다. 죄도 손으로 짓는 죄보다, 마음으로 생각으로 짓는 죄가 더 크다. 사람을 보고 미워하면 이미 살인자요,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자요, 탐욕을 품으면 이미 도적질한 것이다.

  선한 일도 마찬가지다. 돈 몇 푼을 주는 것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옷 하나 주는 것보다, 더 따뜻한 마음과 형제라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 주변 사람을 좋게 보자. 어떤 사람은 친구도 부모도 나쁘게 본다. 이웃도 나쁘게 본다. 남편도 아내도 나쁘게 본다.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좋게 보시기 바란다. 또 자기 환경을 좋게 보자. 아마 사람들 중에, 자기 환경에 만족하는 분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남과 비교해서 자기 환경을 좋지 않게 보면, 그 사람은 한없이 불행해진다.

  가정환경, 교회환경, 직장환경, 사회 환경을 향해 불만을 품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시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가난해도 생각으로 부자로 살 수 있다. 이 세상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다 소유한 것과 같다. 이렇게 생각을 좋게 만드시기 바란다.

3. 심은 대로 된다.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드셨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좋게 만들면, 좋게 된다. 나쁘게 만들면 나쁘게 된다. 마귀는 사람에게 나쁜 씨를 심어서, 나쁘게 만든다.

  토기장이가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대로, 쓰임을 받는다. 크게 만들면 크게 쓰이고, 작게 만들면 작게 쓰이며, 귀하게 만들면 귀하게 쓰임 받고, 천하게 만들면 천한데 쓰임 받게 된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그래서 (갈6:7)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다.

  가을이 되었기에, 심은 대로 거두는 계절이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뿌렸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분명한 것은 심은 것을 거두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뿌렸던지. 뿌린 대로 거두게 된다. 신학교에서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다.

  신학생들 중에 시험공부는 하지 않고, 기도만 열심히 하고는 시험성적이 좋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원망하고, 자신은 택한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가끔 본다.

  공부하지 않고서 좋은 성적을 바라거나, 수고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 땀을 흘린 자가 거둔다. 심지 않고 거두려하면 도둑이다. 남의 농장에서 소를 훔치고, 남의 인삼밭에 들어가서 인삼을 훔치면 도둑이다.

  남의 아이를 엎어 가면 유괴다. 열심히 심는 자가 거둔다. 심지 않았다면 거둘 수 없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경건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은혜가 있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은혜가 없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해야 한다.

  헌금을 드리는 사람이,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 기도를 하는 사람이 응답받고, 능력도 받는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능력도 응답도 받을 수 없다. 영적인 일에 많이 심을 수 있기 바란다.

  인도의 어떤 왕이, 왕궁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다.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하자, 왕이 거지에게 하는 말이 “네가 나에게 무엇을 먼저 주면, 나도 너에게 주겠다”고 했다. 거지는 옆집에서 강냉이 한 홉을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고 “이것밖에 없다.”며, 강냉이 다섯 알을 내밀었다.

  왕은 그것을 받더니, 웃으면서 하인에게 “금주머니에서 이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 주라”고 했다. 그때 거지는 속으로 탄식하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주머니를 다 받았을 텐데”하는 후회 때문이었다.

  좋은 씨앗을 뿌려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가라지를 심고, 알곡을 기대하지 말라. 악한 습성을 심고, 고매한 품성의 인물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시기와 증오를 심으면서, 우정과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 뱀의 알을 품고, 병아리가 깨일 것을 기대하지 말라.

  남의 인격을 멸시하고, 남에게 중상 모략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탱자를 심어 놓고 감귤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게으른 사람이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밭에서, 곡식을 추수하는 것을 기대함과 같다. 심지 않고 달라고만 하면, 이는 미신이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사람이, 자신도 행복해진다. 장미를 심어야 장미를 볼 수 있다.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려면,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진실과 성실로 일하고, 좋은 이웃을 만나고 싶으면, 내가 먼저 이웃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거에 심은 대로 거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10년, 20년, 30년 후의 나를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심고 있나요? 또 영원을 위해 나는 무엇을 심고 있나요? 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거두는데 목적이 있다면, 심어야 한다.

4. 믿는 대로 된다.

주님은 말씀하신 대로 된다고 믿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도 믿는 대로 된다. 100% 믿으면 100%의 이적의 역사가 나타나고, 50%만 믿으면 50%의 역사가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열매를 취하려 하셨을 때, 열매가 없어 저주하시자, 그대로 무화과나무는 말라버렸다.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제자들은 놀랐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고 하셨다.

  이 말씀의 원문은 “에케테 피스틴 데우” (Ἔχετε πίστιν θεου̑), 그 뜻은 “너희는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믿음이 무엇일까? 의심치 않고 믿으면, 믿음대로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저주다.

  믿음은 억지로 되지 않는다. 믿어져야 믿을 수 있지, 믿어지지 않는데, 억지로 믿음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기에 믿음은 거저 주는 선물이다. 노력으로 되지 않고, 선물로 받을 수 있다. 믿기만 하면 이적은 나타난다.

  믿음은 참 귀한 보배다. 믿음은 인간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는다. 믿음은 과학보다도 초월적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며,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되고, 작게 믿으면 작게 된다. 또 안 믿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이 금보다 귀하다고 했다. 예수님 당시 수많은 이적이 일어났는데, 모두 믿음대로 되었다.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걷고, 믿음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믿음으로 소경이 눈을 떴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신 다음, 고쳐주셨다. 믿음도 없는데 고쳐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이적을 못 베푸심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에, 100세가 되어서도 아들 이삭을 얻었다.

  프랑스의 어느 여인은, 살충제를 먹고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마신 액체는, 독이 없는 다른 액체였다. 그렇게 믿고 먹었더니 죽었다. ‘닉’은 철도관련의 일을 하는, 힘세고 건강한 직원이다. 어느 날 일꾼들이 일찍 일을 마쳤다.

  다른 일꾼들은 모두 퇴근한 후에, 닉은 수리하고 있던 냉동차에 갇히게 되었다. 닉은 그 차 안의 온도가 영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갈 수 없어서, 얼어 죽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찾아서, 가족들에게 남기는 쪽지를 썼다.

  “이곳은 너무 춥다. 내 몸은 마비되고 있어, 이제 정신이 몽롱해 진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 될지 몰라” 그를 발견했을 때, 이미 그는 죽어있었다. 하지만 냉동차는 고장이 나서, 내부온도가 섭씨 15도였고, 산소도 충분한 상태였다. 자신이 얼어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죽었다.

  불면증 환자에게 소화제를 수면제로 위장하여 처방하면, 환자는 편하게 잠을 자고, 고열 환자에게 증류수를 해열제로 위장하여 주사하면, 신기하게도 열이 내린다. 이것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바로 믿음의 힘을 보여준다.

  1914년 북미와 남미 사이에 ‘파나마 운하(Panama Canal)’가 완성되었다. 그 이전에는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려는 배들은, 2달에 걸쳐 남미를 돌아가야 했다. 인류 발전에 대단한 어려움을 주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운하를 파면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날씨와 지리적 어려움과 싸워가며, 93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모든 어려움들보다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의 빈정거림이었다. 사람들의 불신앙, 의심과 냉대는 무엇보다도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운하를 팔 수 있습니까?”

  “물이 어떻게 93킬로미터나 통과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배가 지나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 일을 맡은 감독은, 그저 묵묵히 일만 했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 이 공사가 다 완성되면 다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11년 만에 그 공사가 끝나고, 콘크리트로 물을 막아, 배가 지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2달 걸리던 거리를, 2시간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못 한다’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이적을 나타내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그러므로 ‘나는 못한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님, 저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나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기 바란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 있는 자를 찾으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결론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에 부딪칠 때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원망하고 불평했는데, 결국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하던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나 “할 수 있다. 문제없다.”고 하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불평대신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남의 결점을 말하기보다, 남의 장점을 말하도록 하자. 비판하는 말보다, 칭찬하는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오늘 말씀과 같이 그대로 되는 원리는 말대로, 생각대로, 심은대로, 믿음대로 된다. 좋은 쪽으로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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