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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신 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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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신명기 7:6-11)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마다 일 주일 분의 365일 성경묵상 자료를 나눠드리고 있으며 교회 홈페이지에 동일한 내용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매일의 생활에 영의 양식이 되어 우리 영혼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요즘은 매일 성경 묵상을 위해 신명기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교우들이 매일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함께 읽어가면서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 기도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지난 주간에 읽은 말씀 가운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 8:3) 는 구절이 있습니다.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40년의 기간은 인생을 배우는 훈련기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인생이란 다만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아침마다 하늘의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이 신비한 하늘 양식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 광야에서 굶주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만나보다 훨씬 큰 만족을 주는 영의 양식을 먹지 못했다면 영적으로 죽었을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양식 가운데 가장 필요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능력을 가진 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신의 배고픔을 채운 것은 아침마다 내린 만나였지만 그들의 영혼을 살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육의 양식을 먹으면 그저 목숨은 유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사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육신의 양식으로만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은 육신의 양식처럼 날마다 규칙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영의 양식입니다.  주일아침 한 번 듣는 설교만으로는 우리의 갈한 심령을 만족하게 할 수 없으니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건강한 영의 삶을 누리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 6절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38년간 광야생활을 하다가 이제 가나안 땅을 바로 눈 앞에 둔 시점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가시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수 많은 민족과 나라가 있는데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을까요? 

본문의 말씀처럼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은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로 지내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되어 비로소 자유를 찾은 무리들이었습니다.  자유는 얻었지만 아직 땅도 없이 광야를 떠돌고 있는 유랑민족이었습니다.  이미 가나안에 자리 잡고 있는 민족들과 그들이 탈출한 애굽 백성들을 자신들과 비교할 때 자신들이 얼마나 작은 민족인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신체적으로 우세하였기 때문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12 정탐군들이 가나안 땅을 미리 탐지하고 돌아와 그 땅의 아름다움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신체가 뛰어나게 강건하여 우리들은 그들 보기에 메뚜기처럼 작고 초라하다는 열등의식에 빠졌던 사람들입니다.  7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은 모든 민족 중에 가작 적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볼품 없는 민족을 기뻐하시고 택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까?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그리고 너희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하여 너희를 그 권능의 손으로 인도하여 바로의 손으로부터 건져내셨다’ 고 그 이유를 밝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만 사랑 때문에 우리를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 택하여 불러내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고백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애굽에서 해방되어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그 땅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이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 한 가지가 있으니 곧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너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약속하신 것을 변함 없이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가 주신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자손대대로 그 약속을 지키시고 사랑을 베푸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지체함이 없이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실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하나님의 명령과 법과 규칙들을 그 땅에 들어가 잘 지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가나안 땅을 향해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차례 반복 반복하여 설교한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주제였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 피차에게 행복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당연한 반응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말에 순종하면 나의 사랑이 너희에게 영원하리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오직 나만을 사랑하라는 요구이십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요구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오직 나만을 사랑해달라는 요구가 이상하거나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마치 부부의 언약을 맺은 결혼관계로 상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신부로 맞이하여 남편이 되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사54:5, 렘3:14).  그리고 그 언약의 중심에는 변함이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변함 없는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대하듯 이스라엘도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기로 사랑의 언약을 맺은 사이입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가 사람들 앞에서 굳게 약속한 것은 두 사람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오직 부부 사이에서 서로에게 지켜질 특별한 약속입니다.  결혼식장에서 오직 이 여자와 이 남자만을 사랑한다고 서약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며 친구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자를 사랑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한적이고 독특한 사랑입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서약은 내가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는 그 방식으로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그 특별한 사랑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약속입니다.

오직 아내와 남편과만 공유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부부의 관계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여 아내와 한 집에서 살며 같은 음식을 먹고 한 침대에서 살을 맞대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사랑의 방식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면 그것은 상호 협정을 깨뜨리는 행위이며 불륜이며 불법입니다.  오직 부부 사이에서 변함없이 그리고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이 사랑의 언약에 어떤 모순이나 지나침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하신 명령입니다.  오직 나만을 사랑하라고 하신 이 명령에 하나님의 독선이나 무례함이 있습니까? 

성경은 이런 결혼과 사랑의 언약이라는 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길 때 그들을 가리켜 간음한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하고 그 땅의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같은 신들에게 매력을 느껴 그 신들에게 경배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하나님과 맺은 이 사랑언약을 파기하지 말라고 신명기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고 또 반복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 살면서 얼마 못 가 그 땅의 우상을 음란하게 섬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경고하신 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떠난 이스라엘을 마치 이방 민족을 다루시듯 엄하고 철저하게 심판하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벌하셨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혼의 신성함이 점점 가벼이 여겨지고 성적인 방종이 심각해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따르는 우상숭배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이 이 시대의 심각한 영적 문제입니다.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지연된 심판을 가벼이 여기고 무감각하여 세상에 도취되어 살고 있는 이 세대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 동일한 말씀으로 경고하고 계십니다.  주후 1세기에 사도 요한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하였던 말씀이 곧 이 시대에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영국의 유명 일간지 <더 인디펜던트>에 교회 통계 전문가 피터 브라이얼리 박사가 ‘영국 교회가 40년 내에 사라진다’ 는 충격적인 보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인구의 10%만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교회 출석률이 40%에 달했다는 기록과 비교가 됩니다.  그리고 영국 교회는 다음 세대 준비에 속수무책입니다.  14세 이하 어린이들의 주일학교 출석은 14%이고, 영국교회의 40%가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86%의 교회에 중고등부가 없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경우 1980년-2005년 사이에 1백40만이 교회 출석을 중단했는데, 이러한 교인 감소는 25년 동안 매주 1,100명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계산입니다.  그런가 하면 스코틀랜드에서는 42%, 웨일즈 경우에는 53%의 출석 감소율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더 이상 기독교 국가라는 말을 하기에 합당치 않고 이제는 선교지로 전락한 형편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없고 예배를 인도할 목회자가 없어 폐쇄된 교회 건물들은 사무실, 주택, 공장, 극장, 술집으로 심지어 모슬램들의 모스크로 개조되어 사용되기도 하는 형편입니다.

영국교회의 이런 심각성은 구태여 멀리 가서 찾을 필요가 없이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장소로 사용하는 이 연합개혁교회에서도 금방 찾아보게 됩니다.  이 교회 강대 뒤쪽 편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1980년도에 찍은 이 교회 남성 교인들의 전체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 그 당시에는 거의 백여 명에 달하는 멋진 신사들이 이 교회 멤버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옥스포드 동쪽 지역 카울리에 있는 URC는 이 교회를 세운 모교회이기도 한데 과거 그 교회는 매주일 예배 때마다 근처 BMW 공장의 근로자들 수백 명을 버스로 수송할 정도로 교회가 왕성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아주 암담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 숫자를 보면 연세가 많은 노인들 몇 분이 주류를 이루고 젊은 세대는 몇 가정 안 되고 어린 자녀들 몇이 이 교회를 지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딕 울프 목사님이 이곳과 카울리의 교회를 동시에 담임하면서 교회 회복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고 있지만 과거 이 교회들이 경험했던 그 영광을 언제 회복할 수 있을지 심히 염려가 됩니다.

영국 교회의 쇠락과 함께 사회적 성향에 대한 보고에 따르면 재소자 숫자, 문맹률과 낙태, 이혼율과 마약 문제, 알코올 중독(심지어 10대 사이에서)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영국 10대의 임신 수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으며, 이런 정상적이지 못한 출산이 1961년 이래로 3배나 증가하고 있고, 어린아이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결혼한 부모의 사랑과 안정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보고합니다.  누군가 높은 도덕적 기준을 호소하면 구시대적이고 분위기 깨는 사람 또는 얌전한 척 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비웃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국 교회가 복음을 들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살자고 외치면서 상처를 입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개탄하는 실정입니다. <레이몬드 브라운의 신명기 강해 참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진 이 나라의 사회현상은 갈수록 세속화되어가고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국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국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산업의 발달로 경제가 발전되고 재력이 든든해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세속의 쾌락과 물질의 풍요에 온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며 살아야 할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 세상의 풍요와 쾌락의 신들을 좇아 살아갑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해야 할 이스라엘이 들어가 얻을 가나안 땅에는 그들의 충성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다른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땅에는 기름진 포도원뿐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는 타락한 우상의 유혹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간 그들처럼 우리 주변에 역시 언제나 우리를 유혹하는 신들의 꾀임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매력적인 무형의 우상들이 우리를 미혹합니다.  우리가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하나님만 사랑하며 사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오직 나만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외딴 섬에 고립되어 사는 사람들처럼 타락한 이 세상과 등지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은 현대 문화를 무조건 거부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시대의 문화가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도록 우리가 말씀 속에 깨어 있어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죄악과 싸우면서 불법하고 타락한 문화를 말씀으로 변혁시키고 정화시킬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셨고 이스라엘을 만민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을 받은 그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을 세상에 선포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도록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복음을 선전하는 사람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이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명하시는 그 말씀을 기억하고 날마다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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