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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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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9)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문제를 안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목사들이 교회 안팎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십 년 동안 개신교 교인 수는 십사만 명 이상 줄었습니다. 반면에 천주교 교인 수는 이백만 명 이상 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 신자도 이백육십만 명 이상이나 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동안 교회가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때문에 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교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위기가 바로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교회가 교회 본연의 모습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만 하면 오히려 이 위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교회가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교회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회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그렇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칭호는 참으로 위대한 칭호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일찍이 성경은 모세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신명기 33장 1절과 시편 90편의 제목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그리고 엘리 제사장에게 와서 경고의 말씀을 전한 익명의 하나님의 사자도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삼상 2:27) 또한 성경은 사무엘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삼상 9:6) 그 밖에도 르호보암에게 싸우지 말 것을 지시한 선지자 스마야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2:22) 물론 엘리야와 엘리사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왕상 17:18, 왕하 4:7)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사명을 맡아 수행하는 중요한 인물을 부르는 위대한 칭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왜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겠습니까? 그가 목회자로 모든 면에서 완벽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이런 편지를 써 보낼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 목표를 분명히 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로 하여금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목표에 끝까지 도전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의 일꾼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들에게 낙심과 좌절을 안겨 주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허물을 들춰내서 넘어지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그로 하여금 전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 줘야 마땅합니다.

  과연 사도 바울도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피해야 할 것과 더욱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지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이것들을 피하라고 했는데 과연 어떤 것들을 피하라고 했습니까? 디모데전서 6장 3절 이하 10절까지 말씀에 있는 거짓 교사들을 흉내조차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따르면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대신 자기를 나타내기 좋아합니다. 지극히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며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자기와 다른 것은 조금도 용납하지 못해서 자기와 다른 것은 무조건 틀렸다고 우겨댑니다. 그 결과 마음이 부패해지고 경건조차 이익의 방도로 생각합니다. 돈이 물론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결국 세상에 속한 헛된 것들의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마침내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의와 경건을 따르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삶입니다. 또한 사람들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삶이 바로 의로운 삶이요 경건한 삶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의 의를 내세우기 쉽습니다. 또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을 따르는 삶이란 또 어떤 삶입니까?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에 대한 충성을 변치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을 따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만 믿음이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편안하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따르는 삶이란 두말 할 필요 없이 주님의 십자가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 사랑에 빚진 마음으로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긴채 이웃과 더불어 나누지 못하는 삶은 결코 사랑을 따르는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본문 18절, 19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참 사랑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의 사람의 삶의 뿌리임과 동시에 열매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와 온유를 따르는 삶이란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살다 보면 참기 어려운 일을 겪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참기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에 대해서 무던히도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사람은 끝까지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참을 뿐만 아니라 깨끗이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온유하신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형제와 자매의 잘못에 대해서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 교회 개혁의 소리가 교회 안팎에서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지시한 그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싸워 이김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상급으로 주시는 영생을 취하고 그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는 참으로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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