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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세 가지 뜻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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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살전 5 : 16 - 18
제 목 :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뜻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다 나름대로 자기 자녀들에 대해 어떤 소원을 가집니다.  “우리 자녀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또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착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이런 등등의, 바램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대학에  들어가서, 어떤 직업을 가지며, 또 어떤 사람을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구체적인 소원을, 부모가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대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자녀인 우리 성도들에게, 소원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 이것을 우리가 무엇이라 표현을 합니까? 
“하나님의 뜻” 이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반적인 뜻이 있고,  둘째는 구체적인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일반적인 뜻,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라고 하는,  하나님의 바램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성도들의 삶의 원리를 가리킨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각 개인마다, 그가 처해있는 환경과 여건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느냐? 라고 하는,  각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바램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을 하는데 어느 대상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세상적인 조건들을  다 갖춘 사람을 먼저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건 좀 못해도, 신앙이 좋은 사람을 먼저 택할 것인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가야 하느냐? 
어떤 선택의 귀로에 있어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명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용히 성경적인 원리를 묵상하면서, 또 많이 기도하는 가운데, 이러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말씀보고, 늘 묵상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결코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살아가는데, 어찌 그 인생에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겠습니까?  어찌 그 인생을 헛되이 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보고 묵상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요? 그 깨닫는 것에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꼭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고, 내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자녀를 향한 우리 육신의 부모의 뜻은, 때로는 옳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식을 낳은 부모이지만, 그 자녀들에 대해서 잘 모를 경우가 있다는  것이예요.  자녀들의 개성과 인격과, 그 특성을 샅샅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전혀 맞지 않는 소원을 가지고 자녀들을 이끌어 갑니다.

또 어떤 부모들은, 부모의 개인적인 욕심을, 자녀를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그런 소원을 가진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강압적으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녀들을 억지로 끌고 가는, 부모들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녀를 향한 우리 육신의 부모의 소원은, 대부분은 옳겠지만, 또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은, 언제나 옳습니다.  틀리지를 않아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나보다도, 나 자신을 더 잘 아시기 때문이지요.
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 과거를 아시고, 내 현재를 아시고, 내 미래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 하나님은, 진실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십니다.  내가 잘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그 뜻은, 언제나 옳고, 또한 언제나 나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하나님의 뜻에, 우리는 그저 순종하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따라갈 때에, 그것이 내게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인 뜻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있어야 될,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원리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다시 한번 오늘 본문 말씀을 읽어 봅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  얼마나 우리가 성공하고 출세를  하느냐?  사실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뻐하고 있느냐?  지금, 현재에 기도하고 있느냐?  우리가 감사하고 있느냐?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다른 모든 것, 이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지위에 올라 있느냐가 아니라, 그 지위에서 내가 기뻐하고 있느냐? 내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그 환경 속에서, 기도하고 있느냐?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 가운데서, 기본적으로 행하기를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 세 가지의 뜻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되,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얼굴 찡그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예요.  늘 웃음을 띄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아니 저 사람은 뭐가 그렇게 좋은 일이 있기에, 저렇게 항상 웃고 다니나?” “아 저 집에는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저렇게 즐겁게 살아가나?”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그 사람이 진짜 예수 잘 믿는 사람이고, 그 가정이 정말 예수 잘 믿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항상 기뻐합니까?  남편이나, 아내나 여러분의 자녀들이 가정에서 즐거움을  나누며,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먼저 천국이 되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먼저 천국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의 참다운 기쁨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누리고 사는 모습, 세상이 알지 못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사는 모습,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신앙의 모습, 이러한 삶의 모습을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있으면 기뻐합니다.  많이 소유하고 누릴 때 기뻐하고, 잘 될 때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 내게서 떠나가면, 금방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쁨은, 이렇게 환경에 좌우되는 그런 기쁨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크고 신비로운 사랑을 알고, 그 엄청난 사랑 속에서 구원받은 나 자신을 생각할 때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샘 솟듯 솟아오르는 기쁨, 영원히 변치 않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우리 성도들은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쓸 때에,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권면했습니다. 
잔치 상을 벌여놓고 좋아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 말 한 것 아닙니다.
바울이 그 말 할 때에, 그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햇볕도 들지 아니하는, 축축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감옥에서, 내일이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자리에서, 그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는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자신이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그 마음에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해 주셨고, 구원해 주셨다.  이제는 하나님의 일에 수종들게 까지 해 주셨고, 주님을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해 주셨다.”
그는 이러한 어쩔 수 없는 감격에 기뻐하면서,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에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보고 3년만에, 그 며느리를 따라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30년 동안 절에 다닌 시어머니였는데, 교회 다니는 며느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만해도,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30년 절에 다닌 이 시어머니가, 3년만에 며느리를 따라 교회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교회에 나오면서, 며느리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야야, 내가 절에 다녔을 때, 나도 절에 다니면서 마음에 평화를 얻는 비결을 알았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도요, 마음에 평안을 누릴 줄 압니다.  또, “내가 절에 다니면서 세상 염려 잊어버리는 비결을 나도 배웠다.” 맞습니다.  절에 다녀도 세상 염려 잊어버릴 줄 압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 분이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30년을 절에 다녔지만, 한번도 너 예배당 갔다 왔을 때만큼  기뻐해 본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그렇지요?  절에 30년 다녀도 거기에 기쁨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며느리는  교회만 갔다오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시어머니가 그걸 볼 때마다, 도대체 저기에 무엇이 있길래 저리도 기뻐하는가?  그래서 그 며느리를 따라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혹시 여러분 가정에, 예수 믿지 않는 가족이 있습니까?
주일날 예배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꼭 기뻐하십시오.  아니 오늘 예배 마친 후 돌아가시면, 기뻐하세요.  그냥 웃으세요.  싱글벌글 하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좋아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갔다 왔는데, 집안이 엉망이 되어 있어도, 화 내지 마세요.  교회 갔다 왔지 않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지 않는 남편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믿지 않는 식구에게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도 그렇습니다.  웃고 다녀야 전도도 잘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설 때, 전부 그냥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서,  흩어져 보세요.  이 교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야. 저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뭐가 좋아서 저렇게 기뻐하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늘 징징짜고, 찡그리고, 여러분 그런 자녀 좋아할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어려운 환경, 고달픈 여건입니다. 지금 얼마나 어렵습니까?  확실히 옛날에 비해서 많이 어렵지 않습니까?
정말로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는 변함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바로 그 은혜,  그 사랑 가운데,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항상 기뻐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첫 번째 뜻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구하기 전에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냥 알아서 주시면 될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구하라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이것은 주고받고 하는 것 이전에,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우리와 교제하기를, 더 원하고 계신다는 것이예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오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음성듣기를, 하나님은 더 간절히 소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고, 참으로 중요  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할 때에, 항상 마음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예요.  왜입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절에서 도만 닦는 수도승도 아닌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자세로, 항상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너무 바쁘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하루의 일과 중에 무슨 시간을 줄여야 하는가?  제 1순위로 정리해고  되는 것이, 바로 기도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도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심지어는 기도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성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에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기도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처럼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합니다.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다가, 무슨 병이다, 실패다, 부도다, 죽을 지경이 되면,  그제서야, 하나님! 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도가 제대로 응답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평소에 전혀 친하지 않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친해  질 수 있겠습니까?  평소에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가 없던 사람이,  어려운 일 닥쳤다고 갑자기 하나님과 가까워지지가 않습니다. 
기도는 보장형 보험입니다.  보험에 들지도 않고, 보험금을 내지도 않은 사람이 환난 때에 어찌 보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환난 날에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은혜의 때를 다시금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이런 어려울 때 드리는 기도조차도, 조금만 형편이 나아지면 그만 중단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병 걸리면, 기도합니다.  그러나 병 나으면 다시 기도하지 않습니다.
가난할 때 기도했는데, 그러나 돈 좀 생기고 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괴로울 때 기도했는데, 소원 이루어지고 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응답 이후로 기도가 중단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니 또 다시 기도할 거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금 나아졌다고 기도하지 않으니까, 계속 어려움을 주시지 않습니까?
좋을 때도 기도하고, 어려울 때도 기도하고, 병들었을 때도 기도하고, 건강할 때도 기도하고,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인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이 모여서, 기도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방에서 탁자에 둘러앉아 기도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 있는데, 이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항상 기도한다. 쉬지 말고 기도한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때 마침, 그 방에서 차 심부름을 하기 위하여 드나들던 가정부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신학 교수들이, 신학 박사들이 한다는 말이, “쉬지 말고 기도한다.” 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말을 하니까, 그만 옆에서 한마디 끼어 들었습니다.
“교수님, 나는 쉬지말고 기도한다는 것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신학자들이 아주 흥미 있다고 생각을 하고선,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께 나의 마음의 눈까지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일어납니다.
옷을 입을 때면, 내 영혼에 믿음의 옷을 입혀 달라고 기도하면서 옷을 입습니다. 세수를 할 때면, 나의 마음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어 달라고  기도하면서 세수를 합니다.

청소를 할 때도, 내 마음에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해서, 내 마음 어는 구석에도 죄가 끼어있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청소를 합니다.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쉴 때는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면서, 그 날까지 하나님이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나는 잠깐 휴식을  취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승리적인 삶을 위한, 하나님의 소중하신 뜻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감사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종이 모양만 갖추고 있다고 종이 아닙니다. 이걸 탁 칠 때, 땡하고 소리가 나야 그게 종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은 가지고 있다고 복이 아닙니다. 
그 복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이 생길 때, 그것이 진정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책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감사하게 하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 은혜를 알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 사람들이 건강에 대하여 감사합니까?  대부분이 병에 걸려 병원에서 수술을 받거나, 치료를 받고 퇴원을 했을 때에 감사합니다.
고쳐주신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엄청난 돈을 쓰며, 수술받고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건강이, 지금 나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실 이것이 더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미쳐 깨닫지를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제일 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이루신 것임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최고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수련회에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청년이 깨달은 바가 있어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런 말을 합니다.
“그동안 부모님 속 썩여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이제는 부모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  술도 끊겠습니다.  담배도 끊겠습니다.” 그 부모가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효자 났다고, 이제는 정말 사람 사는 것 같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여러분, 그 청년이 그 부모에게 돈 보따리를 갖다 안겼습니까?  아니면 무슨  성공을 했습니까?  출세를 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부모님의 은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이제 깨달았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며 살겠다고 하는데,  그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는 자녀를 바라보는 그 부모의 마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알아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큰 일에만 감사하면, 나중에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평생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생, 그 인생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마르지 않고, 늘 샘솟듯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이런 귀한 하나님의 축복, 날마다 누리시며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 세 가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따로 따로 구별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 없이 기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가 없는 기도가 진실일 수  있겠습니까?  기쁨이 없는 감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면 당연히 기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결코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토록 기쁨을 강조한 빌립보서의 결론에 가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제 이후로의 우리의 삶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귀한 신앙의 삶이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 가지의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평생에 온전히 이루어 가는 귀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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