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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빛을 저들에게도 비추라 (마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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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빛을 저들에게도 비추라 (마 5:43-48)

1. 아프카니스탄 인질 사태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극에 달했었다. 8월의 찌는 듯한 무더위처럼 그 비난의 정도가 극에 달했을 때 저는 네티즌들의 수많은 댓글을 공부하듯 탐구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짧은 한 마디로 욕하는 것에서부터 한 페이지가 넘게 비판해 놓은 것들도 있었다. 그것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 사람들의 비판을 보고 있으면 열이 받쳤다. 어느새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근육이 경직되듯 내 영혼도 경직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방어적인 비상사태가 되곤 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께 그렇게 물었다. “하나님!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을 비방하는 저런 사람들도 받아들이라고요? 저런 사람들도 사랑라고요?” 하나님은 저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럼. 그래도 사랑해야지. 아니, 그러니까 더 사랑해야지. 하나님의 자녀인 네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저 사람들을 누가 사랑하겠니? 봐라. 툭 건들기만 해도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드는 저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니? 너희들이 포기하면 저 사람들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사랑에 서툴고, 수준이하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에게 잘해주는 너의 이웃만 사랑한다면,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너에게는 아무 상이 없느니라.”


2.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예수님은 구원론과 이웃론(타인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기술)을 따로 떼어 놓은 적이 없다. 예수님은 “내가 저들을 구원하는 것과, 내가 그들의 이웃이 된다는 것은 동일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 분의 일생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와 창기와 병자들을 식탁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신 것은 결국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날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질문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명령은 이중적이다. 이 명령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우리를 심판하기도 한다. 우리의 소중한 목숨이 그것에 달려 있고, 동시에 그것은 우리를 심판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논쟁을 벌였다. 왜 그랬을까?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종교적 행위로만 부족하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십일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믿음은 한 가지를 요구한다. “세상과의 관계”이다. 우리 주님은 세상과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다. 그 관계를 통해서 세상과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오늘 말씀에도 관계의 중요성이 나온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44-45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우리들이 원수도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생긴다고 했는가? 원수 사랑과 박해자를 위한 기도의 결과는 놀랍게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을 관계로 부르셨고, 또 그 관계를 통해서 우리들을 구원하셨다.

  마태복음 6장 본문에도 이런 관계를 말해주는 “너희 아버지”라는 말이 10번 이상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냥 내 아버지, 또는 하나님 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굳이 “너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쓰신다) 6장 전반부에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은 외식에 반대하면서 구제, 기도, 금식이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얼핏 들으면 구제하고 기도할 때 다른 사람에게는 신경 쓰지 말고, 너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구제의 은밀성, 기도의 은밀성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를 갖지 말라는 관계없음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구제와 기도의 은밀성은 외식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은밀성이지 그 정신은 원래 관계에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구제가 무엇인가? 구제를 자신에게 하는 사람은 없다. 구제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향해 하는 것이다. 구제는 본질적으로 관계에 가깝다. 기도란 무엇인가? 우리들에게 기도가 왜곡되어서 그렇지 기도는 원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를 자기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신약 성경이 보여주는 기도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하나님과, 또 다른 사람들과 더 친하게 해 주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가르쳐 준다.

  노마 진 모튼슨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유년기 대부분을 다른 집의 수양딸로 가서 살았다. 8살 때 이 아이는 그 수양집에 하숙하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못된 남자는 5센트를 주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어린 노마 진은 그 사실을 수양어머니에게 얘기했는데 수양어머니는 오히려 노마 진을 때렸다고 한다. “그 하숙생은 하숙비를 잘 내니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말라”고 했다. 노마 진은 남한테 이용당하고 5센트 동전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면의 상처와 외로움을 표현하려 했다가 매를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덟 살에 배워야 했다.

  결국 그녀는 할리우드로 도망가서 이름을 마를린 먼로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 최고의 배우가 되었다. 영화 세트장에 있던 사람들은 마를린 먼로를 아주 미워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제작진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몇 시간을 몸치장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너무 무서워서 분장실에서 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세 번의 결혼을 했지만 매번 남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았나요?”
  어느 토요일 밤, 마를린 먼로는 35살의 나이로 목숨을 끊었는데 가정부가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전화선이 뽑혀 있었다. 그녀가 왜 그렇게 죽었는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뽑혀 있었던 전화선은 그녀의 일생에 대한 상징이다. 그녀는 끝내 아무와도 통하지 않아 죽었던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


3. 우리들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44-45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우리가 원수도, 박해하는 사람도, 악인도, 불의한 자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신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믿지 않는 사람을 여전히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햇빛과 비는 모든 사람이 누린다. 그러나 영적인 햇빛과 비는 우리만 누리지 불신자들은 누리지 못한다. 죄와 어둠 가운데 있는 불신자들은 구원의 빛을 누리지 못한다. 날마다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의 단비를 불신자들은 누리지 못한다. 햇빛과 비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자연적으로 누리게 되지만, 구원의 햇빛과 은혜와 성령의 단비는 우리만 누리고 있다. 왜 그럴까? 구원은 비밀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은 왜 우리들에게 원수도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너희들이 누리고 있는 구원의 빛과 성령의 단비를 그들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원수도, 박해자도, 못된 사람도, 악인도, 불의한 사람도 구원과 은혜와 성령을 맛보아 그들도 그것을 누리기를 원한다. 너희들이 그것을 해야 한다. 너희들만 누려서는 안 된다. 너희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저 사람들도 누리게 해라.”

  우리의 사랑과 인격은 매우 부족하다. 원수는커녕 우리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왜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실까?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구원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들을 오늘도 세상으로 보내서 저 사람들도 구원의 빛과 성령의 단비를 맛볼 수 있게 하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셨다.

  어떤 목사님이 계셨다. 이 목사님은 골프를 너무나 사랑하셨다. 이 목사님이 어느 주일 아침에도 너무 골프를 치고 싶어서 병이 날 정도였다. 교회에 전화해서 몸이 근질근질하고 갑자기 아파서 못 간다고 하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천사가 보면서 한 숨을 지었다. “하나님! 너무 심하네요. 벌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홀에서 힘껏 골프채를 휘둘렀는데 350야드를 날아가더니 골프공은 홀 속으로 쏙 들어갔다. 홀인원이 되었다. 목사님은 펄펄 뛰며 난리가 났다. 천사는 너무 화가 나서 하나님께 말했다. “하나님,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벌을 내려야지 홀인원이 뭡니까?” 하나님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평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홀인원을 했으니 쟤가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니? 그런데 쟤가 누구한테 자랑하겠니? 목사들이나 교인들한테 자랑할 수밖에 없는데 그거 자랑하면 주일날 빼먹은 것 들통 날 것이고...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하지 못하는 고통이 그에게는 있느니라.”

  (좀 다른 얘기지만) 우리에게는 이 고통이 있는가? 자랑하고 싶은 고통이 있는가? 자랑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고통이 있는가? 우리는 골프의 홀인원에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인 홀인원이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홀인원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랑하는가? 예수만 있으면, 그 분만 믿으면 단 한 번에 내 인생이 영원한 가치로 홀인원 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우리에게 있는가?

  전도의 열쇠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에게도 가고, 박해자에게도 가고, 악인에게도 가고, 불의한 자에게도 가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작정할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 우리들에게 관계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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