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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라! (빌 3:12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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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라! (빌 3:12 - 16)

성경 전도서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전도자는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희락을 누려보기도 했습니다.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해보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크게 해보기도 했습니다. 집을 짓고, 포도원을 조성하기도, 과수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금은보화와 처첩들을 거느려 보기도 했습니다. 눈이 원하는 것,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하나도 막지 않고 다 해보았습니다.

그 이후 전도자의 고백은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1:11)라고 인생의 부귀영화에 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전도서에 소개된 전도자의 고백이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 우리들의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고백이 우리 후손들과 후배들의 고백일 수밖에 없습니다.

1.우리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사람의 소원은 한이 없습니다. 인간의 야심은 끝이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음부 깊은 줄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야망과 야심이 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12)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수고하고 노력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팔일 만에 할례(割禮)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逼迫)하고 율법의 의(義)로는 흠(欠)이 없는 자로라”(빌3:5-6)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 사울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청년 사울은 자만심, 영웅주의에 빠졌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서서 가편 투표를 했습니다.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정부의 체포 영장을 지니고 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학문적으로도 당대의 최고의 석학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현대적 의미로 말한다면 “하버드나 옥스퍼드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15:8-10)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모래알만큼의 재물, 쥐꼬리만큼의 지식, 하루살이의 유명세, 바람에 날리는 풍선 같은 허풍, 빈대낯작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맹꽁이 바람 넣고 황소 앞에 폼 잡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당부하고 타일렀습니다. 한마디로 까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까불다가 주님의 불벼락을 맞아 소경이 될번 했다는 겁니다.

교인들은 어떤 특별한 직분을 가지면 마치 벼슬을 딴 것처럼 다 된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분을 벼슬로 아는 자들은 직분 자가 되는 순간부터 영적인 바이러스(Virus)에 걸립니다. 대추나무 잎 바이러스에 걸려 오그라들듯이 오그라지고 맙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의 직분을 한갓 벼슬로 알았습니다.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 영적인 바이러스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못 고쳐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갈6:3-4)고 당부했습니다.


2.우리는 다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빌3:12)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후 자기는 모든 것을 다 이루기는커녕 “죄인의 괴수, 만삭되지 못하고 태어난 자”임을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 천의 은혜를 받고 사단의 가시를 얻었습니다(고후12:1-10). 그러나 그때부터 바울은 겸손해 졌습니다. 은혜스러워 졌습니다.

변화된 사도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主)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知識)이 가장 고상(高尙)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5-8)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 이루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고, 소멸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외면하고, 면류관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3.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고 말했습니다.

푯대는 “골대”를 말합니다. 운동선수들이 제한 된 시간에 헐떡이며 뛰는 것은 골대를 향해 한골 넣기 위함입니다. 계속 전진할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선수들이 골대를 향해 전진하지 못하고 뒤돌아본다면 “자책골”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망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배설물”같이 더럽게 생각하고 잊어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특히 과거의 잘못과, 그가 갖추고 있는 완벽한 요소들이(5절) 그를 과거에 집착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성도들은 과거의 잘잘못을 잊어버리고 현재와 미래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즉 미래 지향적이고 그리스도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경주에서의 푯대는 그리스도입니다(14절). 우리의 푯대는 세상적인 높은 지위나, 학식, 재물 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가변적이요,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영원하며, 참생명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달음질함으로 모두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맺는 말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경주하는 자가 상급을 바라지 않을 수 없듯이 바울도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성도는 주안에서 예비된 놀라운 상급을 받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딤후4:8).

후에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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