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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북한 땅의 영적 회복 (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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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땅의 영적 회복
요엘 1:1~7

히브리말에는 하나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이 늘 사용하는 칭호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로 본래 이 여호와는 변형된 것으로 야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여호와로 바뀐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칭호를 한 글자로 줄일 수 있습니다. “요”입니다.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도 한 글자로 줄일 수가 있습니다. “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부르실 때 신약 성경에 보면 “엘리”라고 부르신 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요엘이라고 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한 글자씩으로 줄여서 합성어로 요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아버지 브두엘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지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요엘은 B.C 830년경에 유대에서 예언자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적인 것을 빼놓고 인간적인 것으로만 계산한다면 예언자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 불쌍한가? 하나님의 책망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할 때는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기독교 최초의 교회에 담임목사 감독을 30년이나 지낸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감독이 야고보서 3장 1절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많이 선생 되지 말라.” 하나님의 더 큰 심판이 이 예언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큰일 납니다. 하나님의 책망이 주어집니다. 우리 설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이단이라고 합니다. 어쩌다가 이데올로기 설교를 할 때 한마디만 잘못해도 ‘공산당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 한마디만 잘못해도 ‘반정부인가?’ 한마디에 인생 운명이 달려있는 그런 사람들이라서 인간적으로 보면 참 불쌍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누구든지 내가 말한 것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한 재앙을 그에게 줄 것이다.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생명나무에 기록된 말씀에서 너를 제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듭니까?

구약의 모세를 보시면 40년 그토록 고생을 했습니다. 아마 인류 역사에 나타난 지도자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을 가장 훌륭하게 했는데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실수해서 하나님의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이 목이 마르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냐?” 하나님이 “이 반석을 치면 거기서 물이 나올 테니 네가 그렇게 해라!” 해결 방법을 주셨는데 모세가 화가 났습니다. 말마다 자기에게 원망을 하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마치 자기가 하는 것처럼 말 한마디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반석을 한번 쳐도 되는 것을 화가 나니까 두 번을 때려버렸습니다.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 순간적 실수 하나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아니하였느니라. 왜 내가 시키는 대로 안하고 성질을 내고 야단이냐?” 그래서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도 모세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못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자들은 이 사명이 올 때 대개는 하기 싫어합니다. 모세도 안하겠다고 수없이 거절했습니다. 요나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런 거 못하겠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갔다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언자 가운데 마지막은 세례 요한으로 추종을 하는데 그의 생활이 성경에 자세하게 나타났습니다. 그의 옷은 우리들과 같이 디자인된 옷을 입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약대를 잡은 그 털옷을 몸에 두르고 가죽 띠 하나를 메고 음식은 야생의 메뚜기를 잡아먹으면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도 자연스런 인간입니다. 그런 생활을 그리워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해야 되는 일의 성격이 민중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계속 해야 합니다. 사람이 이 대중 앞에서는 코미디언들 인기 있는 소리를 해서 기분 좋게 해서 박수를 받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야 신이 나고 대중 앞에서는 사람이 살맛이 나고 그러는 것이지 예언자가 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민중의 죄 때문에 죄를 회개하라는 예언자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회개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 소리는 누구나 다 듣기 싫어하는 소리입니다. “뭘 잘못 했다고 이 야단이냐?” 듣기 싫어하라는 소리를 날마다 하라니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신약의 스데반을 보십시오. 회개하라고 설교했다가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 요엘 예언자도 똑같은 일을 지금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자는 하나님께 잘못하면 큰 심판을 당하고 백성들에게도 항상 버림당하고 소외당하고 보기 싫어하고 욕만 먹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겁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목사 될 사람 인터뷰 107명을 했습니다. 젊은 20대 중반의 응모자가 있었습니다. “왜 응모자가 되려고 하느냐? 왜 목사가 되려고 신청했는지 답하시오.” “엄마가 자꾸만 하라고 하셔서요.”

그러면 요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뭐냐? 여기 이상한 말 한마디를 합니다. 1장 4절에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이 주셔서 하는 말이 이겁니다. 그리고 이 말을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이것이 너희의 역사가 될 것이니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 말하는 이 네 가지 이름의 벌레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농작물을 손상시키는 병충해 벌레들입니다. 이 말대로 해석하면 농부가 피땀 흘려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배추라고 합시다. 팟종이라고 하는 병충해가 달라붙어서 배추를 갉아먹은 것입니다. 다 먹지 못하고 좀 남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메뚜기가 남아서 남은 부분을 또 뜯어먹었다고 했습니다. 다 먹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보이지도 않는 늣이라고 하는 것이 달라붙어서 야금야금 배추를 다 뜯어먹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병충해 중에 성격이 가장 강한 황폐스러운 황충이가 날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몽땅 갉아먹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농사지으신 분들은 제일 골치가 이 병충해입니다. 농사 잘 지어놨는데 이런 것들이 날아와서 들러붙으면 하루아침에 농사가 헛농사입니다. 그런데 이 병충해의 성격과 그 강인성이 날로 심해져서 지금은 이 병충해가 달라붙지 못하도록 하는 농약이 성분이 아주 지독합니다. 점점 더 독한 성격의 농약을 주지 않으면 농작물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먹을 때는 인체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이제 보편화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습니다. 무공해 식품, 유기농 식품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 사회에 우리가 먹고 있는 이 모든 농산물은 다 오염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먹고 살고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먹으라 그런 뜻 아닙니까?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수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탐스러운 식료품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 농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레가 뜯어먹어서 형편없이 잘 안되니까 시중에 나와 있는 이 농산물은 아주 탐스럽고 보기 좋은 것은 농약을 많이 친 것이라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안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안하면 안 사가니까요. 그런데 어떤 현명한 주부는 ‘저렇게 보기 좋고 탐스러운 식료품은 농약이 많이 오염된 것이다.

그러므로 봐서 시들시들하고 벌레가 많이 뜯어먹은 것은 농약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좀 더 주고라도 그런 이상한, 시들시들하고 벌레가 뜯어 먹힌 것을 오히려 사가는 현명한 주부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농부들이 그것을 또 알아가지고 벌레를 기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기른 배추를 좀 뜯어 먹혀서 비싸게 파는 농부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병충해는 인간의 기본 생활에 절대적 피해를 주는 벌레들이라고 우리가 결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타나는 이 네 가지의 병충해는 그 시대 그 사회에서 제일 질병스러운 농작물 피해자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뜻인가? “앞으로 이스라엘 나라는 이렇게 뜯어 먹힐 것이다. 팟종이 같은 바벨론이 와서 뜯어먹게 될 것이다. 다 먹지 못하고 남은 부분을 메뚜기 떼가 와서 또 뜯어먹을 것이며 헬라와 로마가 차례로 와서 다 뜯어먹고 아무것도 안남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라!” 이런 뜻입니다. “나라 형편이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아무것도 안 남았도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겁니다. “나라와 국민이 하나님의 뜻을 버렸기 때문에 굶어죽게 되는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육신 생활도 매우 중요하게 취급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여기서 살게 하실 때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적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배부르게 먹고 윤택하게 살라!”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신명기적 축복은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 내려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할 것이요 육축을 위해서 들에 풀이 나게 하시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다.” 이것이 신명기적 축복 약속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에 순종하면 약속한 이 모든 복은 네게 돌아갈 것이니 네가 만약 도시에 살면 그 성읍에서도 너는 복의 사람이 될 것이요 저 들판에 나가서 살면 들판의 복을 받을 것이요 네가 만약 어린 아이를 낳으면 그 소생이 복을 받을 것이요 네가 농사를 지으면 그 토지의 소산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요 만약 네가 짐승을 기른다면 그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요 네가 사용하는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아서 윤택한 식량이 거기에 담길 것이요 네가 들어가면 들어가는 대로 나오면 나오는 대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네가 만약 창고를 지었다면 그 창고가 가득하게 될 것이다.” 신명기적 축복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네가 만일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섬기면 나는 저주하겠다.” 이것이 신명기입니다. “요엘이여! 나가서 이렇게 말하라.”

그러면 이런 말씀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민족 역사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지나간 기독교 2000년 역사의 세계사를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 주변의 개인의 역사 속에 나타납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이 말씀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객관성 있는 신앙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자가 될 때 어느 나라나 요새 우리말로 “선진국이 되었다. 위대한 국가 건설이 되었다. 만약 너희 중에 어떤 국민이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이데올로기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서 무슨 공산당을 만든다든지 사회주의 복음을 한다든지 이런 이상한 일을 할 때 주었던 것도 다 빼앗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소련 공산권이었던 우크라이나 청년 20명이 제가 목회하던 미국의 교회에 온 일이 있습니다. 간증하는 시간을 달라고 해서 주었습니다. 그들의 간증 골자는 이겁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공산당에게 속았습니다. 공산당이 가장 열심히 한 일이 교회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준다던 그 약속은 정반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환경의 가장 좋은 땅을 가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히틀러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땅이 너무 좋아서 수천대의 자동차를 동원해서 우크라이나의 흙을 독일로 실어 날랐습니다. 그렇게 좋던 땅이 황폐하고 아무것도 먹고 살게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으니까 없애버린다고 교회를 다 없애버렸는데 소련은 없어지고 하나님은 살아났습니다.” 그렇게 간증했습니다. 저는 옛날에 모스크바 수양회에 가서 일주일동안 위성국가 15개국에서 몇 백 명이 왔습니다. 제가 일주일동안 강의하는데 그때는 사실상 지금 같지가 않아서 잘못하면 그곳 감옥에 투옥됩니다. 그러나 15개국에서 지도자들 수백 명이 왔는데 나를 바라고 왔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간에 지금도 기억이 아주 생생하게 납니다. 몰다비아에서 오신 목사님 한 분이 나이는 70이 넘었는데 제 강의 도중에 이 강대상 앞으로 뛰어올라오셨습니다. 그 시간이 마지막 시간이었는데 이때가 아니면 내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 끝나기 전에 저에게 시간 1분만 달라고 하셔서 제가 허락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옆으로 물러났는데 그분이 청중들 앞에서 “여러분, 들으셨지요? 우리는 속은 겁니다. 70년 동안 속은 겁니다. 나 감옥에 5번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보내진 한 한국 목사에 의해서 역사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속았습니다. 왜 이렇게 좋은 우리나라가 못살아야 됩니까? 우리는 속은 겁니다.” 그 말을 하신 겁니다. 제가 일주일 강의한 것보다 그분의 1분 소리침이 더 은혜가 되어서 박수 받으셨습니다.

객관성 있는 평가로 지금 대한민국은 이럭저럭 경제적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 10대 강국 안에 들어가는 평가를 받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땅이 적은 나라! 우리 대한민국 국토는 미국의 94분의 1입니다. 그렇게 조그만 땅 덩어리 69.6%가 쓸모없는 산입니다. 뭐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절대 에너지 자원인 석유는 이 땅에서 한 방울도 안 나옵니다. 전 세계 전쟁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죠? 뭘 잘해서? 뭐가 넉넉해서? 200개가 넘는 세계 모든 국가 가운데 인구 비례로 하나님 믿는 숫자가 현재로 제일 많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한 것입니다.

세계의 그렇게 많은 기독교 국가 가운데서도 세계 선교는 미국 다음으로 공헌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선교 안하면 세계 선교는 끝입니다. 가장 열정적인 집회 숫자와 새벽 기도를 드리는 나라! “하나님이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그 역사는 지금 우리에서 영적으로 얼마든지 해석 가능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북한 땅이 회복되는 길이 뭐냐? 영적 회복입니다. 신앙 회복하면 그 나라는 회복됩니다.

저는 미국 장로교단 목사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30년 전에 북한 교회 지도자들과 대화한 적 있습니다. 그때 말했습니다. “아니, 북한은 왜 교회를 다 없애버린 겁니까?” 북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미국에 와서 “당신들은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평양이 동양의 예루살렘이었던 것 아십니까?” “그래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말입니다.” “한반도의 복음은 대동강과 압록강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 맞아요. 토마스 목사 제너럴셔먼호 타고 들어와서 대동강에서 순교 당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은 창호지를 접어서 노끈을 만들어서 몰래 어깨 상인의 멜빵으로 만들어 압록강 넘어온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입니다. 다 북한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다 없앴느냐 말입니다.” “당신들이 다 없앴습니다. 6·25 동란 때 미국 폭격기가 북한의 교회를 다 폭격해서 2300개가 다 불타버렸습니다.

그 후로 복음이 전파 안 되는 겁니다. 미국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당신들이 뭘 잘했습니까? 북한의 교회 다 없애버린 것은 미국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그러면 책임지겠습니다. 북한 땅에 2300개의 교회를 미국 장로교단에서 원형 회복시켜주겠습니다. 사인합시다. 당장 들어가서 달러 보따리를 자동차로 싣고 들어가서 6·25이전에 있었던 2300개의 교회를 다 건축해 주겠습니다. 사인합시다. 우리가 없앴으니 우리가 다시 다 회복시켜드리겠습니다.”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됩니다. 북한이 사는 길은 기독교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선교의 문만 연다면 다른 나라는 그만하고 미국과 한국의 절대 예산이 북한에 가도록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왜? 교회마다 북한 선교 예산을 예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교회의 예산이 북한 정부 예산보다 많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 선교를 위해서 예치해둔 달라만 들어가도 북한 경영이 일 년 안에 달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 북한이 고향이신 교우님들! 북한이 열린다면 “내 고향 당에 교회 한 채 짓겠다. 내 재산 다 털어도 좋다.” 그러신 분이 우리 갈보리교회에도 얼마든지 계십니다. 대한민국 다 합치고 미국 다 합치면 문제없습니다. 북한 경제는 선교비만 들어가도 일 년 안에 회복될 것입니다.

저는 십년 전에 회령을 봤습니다. 북한의 함경북도 회령! 십년 후에 또 가봤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발전을 해서 일 년이면 지도가 바뀝니다. 회령이 북한의 유명한 도시인데 10년이 지나도 변한 게 하나도 없고 더 초라합니다. 밤이면 불빛 하나 있습니다. 김일성 동상에 비취는 것 하나입니다. 같은 문화를 가지고 같은 인종이 같은 지역에서 같이 살아왔는데 이 차이는 뭐냐? 금년에도 사상 유래 없는 홍수 재앙을 만나서 국토의 11퍼센트 가까이를 못 쓰게 되었으니 내년의 식량난은 뻔하게 보입니다.

조선기독교연맹회 위원장 강영석 목사님이 LA에 오셨을 때 제가 환영 위원장이었습니다. 둘이서 밥 먹고 농담 같이 살짝 말을 건넸습니다. “왜 북한은 선교의 문을 안 여는 겁니까? 당신 목사잖아요? 열면 절대적으로 북한이 유익할 텐데 왜 그렇게 꽉 닿고 선교의 문을 안 여는 겁니까? 2300개의 교회가 다 어디로 가고 봉수 교회라고 선전용 하나만 내놓으면 어떡합니까? 선교의 문을 열어보세요. 우리 다 들어가서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잖아요?” 나와 둘이 앉았는데 내가 자꾸 자꾸 말했더니 내 귀에 대고 “더 잘 알면서 왜 자꾸 야단이십니까?”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여호와를 찾으라.” 영적 감각이 없으니까 보이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는 겁니다.

“여호와를 버리면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을 것이다.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허사로다. 요엘이여! 가서 그렇게 말하라. 순교 당해 죽어도 가서 말해라.” 여러분, 인간 구원을 위해서 최초의 사역자로 부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무슨 말입니까? “너를 만나는 사람들은 다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는 나라는 다 복을 받을 것이다.”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습니다. 심방을 가지 않을 때는 거의 책을 읽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대통령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잘 쓴 글이 없나 하고 모두 찾아 읽었습니다. 나온 책들은 다 읽은 것 같습니다. 글 속에 그 사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신다고 나왔는데 국민으로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김우중 씨가 쓴 책도 다 읽었고 현대 건설 회장님이 쓰신 책도 다 읽었고 괜찮은 사람이 쓴 책은 제일 먼저 사서 다 읽었습니다. 김우중씨 자신이 쓴 책, 이명박 자신이 쓴 책 읽어본 중에 철저하게 밝힌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자신들의 어머니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길거리에서 쫓겨 다니며 좌판행상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정도의 곤고한 생활자였다. 그래서 자기들도 어머니가 하는 일 따라서 그런 일을 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똑같이 강조점을 둔 것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어머니는 그 가난하고 곤고한 생활 속에서도 새벽 기도는 일 년에 하루도 안 빠지고 하시는 것을 봤다.”

저는 목회자로서 그분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들은 어머니를 잘 두셨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으라.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한 자의 길은 망하리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다음 달에 북한 통치자를 만나러 가신다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의 기도 제목은 어찌되었던 이 오고 가는 발걸음을 통해 북한 땅에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땅은 살 것이다. 이러한 가장 빠른 길을 영적으로 볼 수 있을 때 그 땅이 희망이 될 것이다. 다른 길은 없을 것이다.” 개인도 국가도 아무리 농사를 잘 지었어도, 아무리 부강하고 튼튼해도 병충해가 들러붙으면 끝이 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포도나무가 열매가 없이 하얗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만 됩니다. 열매 맺는 포도나무가 되어 풍성한 삶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의 뜻을 저희들이 잘 깨닫고 그대로 잘 실천하여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살 수 있게 하옵시고, 영적 회복이 저 북녘 땅에 하루 속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역사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 사랑하는 모든 어린 양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했던 저 북녘 땅의 영적 회복이 이제는 때가 되어 성취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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