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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는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마 26: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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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26-28

크리스챤 작가요 심리학자인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권두언으로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나의 사무실 스태프들의 월급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는 최근 오른쪽 팔꿈치에 혹이 만져져서 MRI 사진을 찍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 캐롤은 또한 호르몬 불균형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직도 효율적인 치료책을 못 찾고 있어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집안 정리나 청소할 시간이 없어 언제 시간을 내어 산만한 집안 살림을 정리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나는 최근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론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염려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더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제 자신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이런 증세가 내 관절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어떻게 내 침을 마르게 하는지, 어떻게 내 손바닥에 땀이 나게 하는지, 어떻게 호흡곤란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소화불량과 위경련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문제를 치유하지 못한 채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 나의 아내는 최근 이런 문제들에 대한 너무나도 완벽하고 강력한 치료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치료제의 효율성은 거의 기적적인 것입니다.  저와 저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제의 효율성을 임상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치료제는 식전이나 식후에 복용하시면 됩니다.  호흡곤란을 느낄 때, 혹은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수시로 복용하실 수가 있습니다.  물과 함께 드실 수도 있고, 물 없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처방전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이 치료제는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합니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이 치료제는 무료라는 사실입니다.  이 치료책을 일컬어서 저는 '땡큐 데라피'(thank-you therapy), '감사 치료제'라고 부릅니다.
이 이야기는 단 베이커라는 분이 자신의 책 '땡큐 데라피'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우리들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지식, 좋은 사상을 배우려고 하지 말고 믿음 있는 감사를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에게도 감사를 가르쳐 주옵소서.
나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은혜로운 마음을 주옵소서."

무슨 심령, 무슨 심령해도 감사하는 심령이 하나님 앞에서 제일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가장 고귀한 기쁨이 어디에서 올까?  이 기쁨은 감사하는 삶에서만 얻을 수가 있습니다.  감사는 심령을 풍성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절대명령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요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이 축복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격은 감사할 줄 아는 인격입니다.  제일 저주받은 생명은 감사를 모르는 생명입니다.  심령이 어두워진 사람의 첫 특징은 전혀 감사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이 간 사람의 인격의 총체적인 내용은 감사의 내용입니다.  결국 신앙이란 감사의 인격을 만드는 대 작업입니다.

사실 감사생활이 인간의 행복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권이고 삶의 근본이고 삶의 복이고 삶의 의무입니다.  꽃에 향기만 있으면 언제고 벌과 나비는 날아오듯이, 믿음의 사람은 감사의 향기만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든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곧 일어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의 유일한 자산은 뭐니 뭐니해도 감사뿐이다!  신앙생활을 깊이 들어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 내 유일한 자산은 감사뿐이라는 것이 강하게 부딪쳐 오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불평과 원망이 없어지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과 기쁨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없어지고 담대해지고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남다른 신령한 힘이 역사하는 것을 자신이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이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감사의 치료요법', 혹은 이 '땡큐 데라피'를 자신의 평생에 적용하며 살아가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일진데 우리는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의 치료요법은 우리의 평생에 적용하면서 살아가야 할 거룩한 삶의 습관이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감사는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 생애 속에 나타난 감사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언제 어떻게 감사하며 우리의 일생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감사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뜻 안에는 '고백한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에는 반드시 감사의 고백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신앙의 기초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확신입니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더 크게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감사가 없는 인생은 결국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아무리 잎이 무성한 나무라고 할지라도 열매가 없다면 그 나무는 가치를 상실하고 맙니다.  좋은 나무는 결국 그 열매가 말해 줍니다.  기억하십시오.  열매는 아름다운 생명의 몫과 가치를 다한 극치의 상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모든 생명의 도리입니다.  감사는 모든 생명의 최고의 정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어떤 복을 받기 위한 전주곡이 아니라 그 감사 자체가 복입니다.  내 안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그 자체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의 최고의 응답은 무엇일까요?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빚진 자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다 감사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가정의 분위기는 언제나 감사와 찬양의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엡 5:19-20)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언제 감사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음식을 먹기 전에 감사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식사 전에 기도하십니까?  어떤 분은 '매끼 식사를 할 때마다 꼭 기도를 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는지도 모릅니다.  식사하기 전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것은 예수님의 모범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은 최후의 만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또 잔을 가지사" 그 다음에 무엇을 하셨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는 감사의 기도를 하신 후에 떡을 나누시고 잔을 나누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사건에 앞서서 우리 주님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나누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축사하셨다'는 말은 영어 성경에 "gave thanks", "감사하셨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축사하셨다는 말은 본래 감사하셨다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한 마디로 감사는 우리 주님의 거룩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치신 분이 우리 주님이라면 그 일용할 양식을 받고 이 땅에 생존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음에 대해서 우리가 그분에게 감사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는데 아직 살아 있다.
밥을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25일 전이다.
주먹밥 하나만 먹고 싶다."

이것은 지난 7월, 일본 규슈(九州) 북동부의 한 도시에서 굶어 죽은 50대 남성이 남긴 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존의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은혜, 이것은 결코 적은 은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소위 문명사회의 기적을 이루고 있는 21세기에 유엔식량농업기구의 2003년도 통계에 의하면 이 지상에서 인류 인구 가운데 약 8억 4천 2백만의 인구가 아직도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이것은 적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전세계 인구의 약 14%, 그러니까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7명 가운데 한 사람이 하루에 한끼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지구촌의 생존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한 끼의 식량을 앞에 놓고 감사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지구상에서 매년 2천만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절박한 생존의 세계 속에서 오늘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앞에 놓고 감사한다는 것은 얼마나 절실한 기도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가정에서든, 혹은 직장에서든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심으로 나의 생존의 원천이 그분인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나처럼 먹지 못하고 있는 이웃들에게도 먹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다음으로, 축복이 나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이 깨달아지고 느껴질 때 감사하십시오.

우리말 성경번역에서 예수님께서 식사하시기 전에 감사하셨다는 말이 때로는 '축사하시고'라는 말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는 거의 감사와 축복, 이 두 개의 단어가 동의어처럼 쓰여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그것이 작은 식량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식전에 드리신 감사의 기도는 동시에 그 축복이 다시 이웃들에게 나누어지기를 소원하시는 축복의 기도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축복의 기도는 또 다시 축복을 나누는 기적을 가져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병이어 기적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마태복음 14장 19절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으로 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사실 예수님이 이 상황에서 감사하신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감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이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 오천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다 포함하면 최소한 2만명의 군중들이 있었다고 추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2만여명의 군중.  그런데 한 어린아이가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왔던 식량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적은 분량의 양식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비록 그것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을 때에 거기서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은 차라리 감사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스펄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한 자루의 촛불을 인해서 감사한다면 하나님은 별빛을 주시고, 또 별빛을 인해서 감사한다면 그분은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인해서 감사한다면 그분은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인해서 우리가 감사한다면 햇빛도 필요 없는 광명한 천국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주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지고 느껴질 때 예수님처럼 즉각적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또 다른 축복, 또 다른 기적을 우리들에게 가져다 줄 것을 믿습니다.

세 번째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감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의 삶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최후의 만찬상에서의 예수님의 감사 기도입니다.  이 최후의 만찬이 끝나면 예수님은 어떻게 되십니까?  체포당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슬픔의 길에 십자가를 지시고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만찬에서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이 떡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부셔져야 할 당신의 몸 바로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가 최후의 만찬에서 나누고 계셨던 그 잔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깨어져 그분이 흘리셔야 할 보혈의 잔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문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최고의 위기 앞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의 현장이 끝나 가는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가 있었다.  이 사실은 어쩌면 우리의 궁극적인 인생의 질문과도 연결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질문을 해결할 수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그리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그분 자신의 비극적인 삶의 위기 앞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가 있었는가?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묻고자 하는 세 번째 질문은 마지막 질문이면서 결론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늘이 어둡고 삶이 고단할 때 그때에도 어떻게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 대답은 결코 어렵지가 않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적인 대답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시면 됩니다.  이 슬프고, 이 답답하고, 가슴 아픈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이 나의 삶을 다스리신다.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유명한 고백을 들으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확신의 근거 위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선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으로 이루어질 것을 아셨기에 주님은 아파하시고, 고통하면서도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피의 잔도 감사하면서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환경이 역경이고, 어둠이고, 고통이고, 아픔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삶의 현장 배후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오늘은 보이지도 않고 오늘은 이해되지도 않지만 내일에 보여지고 내일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을 수가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감사의 본질과 기초는 구원의 감격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 다른 어떤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은 은혜만으로도 일평생 감사의 감격 속에 살아간다고 하면 이 사람은 최고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로 주신 믿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건강주심을 감사해야 하고,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삶의 승리를 주시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품에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감사의 치유법은 이런 하나님의 주권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적용할 수 있는 처방전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고난을 승리로, 죽음을 부활로 바꾸어 사는 기적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땡큐 데라피, 감사 치유법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시 제이 데니스라는 설교자가 소개하는 감사 테라피의 위력을 증언해 드림으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 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 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아직도 당신의 몸을 의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나 정치가가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당신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맞지 않는 찬송의 음정 소리가 귀에 거슬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는 추수감사절은 말 그대로 감사를 나누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한 해를 살아오면서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그러나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도를 나눌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도를 올려드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기도의 선한 응답을 믿을 수 있기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성도야말로 마치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처럼 구원의 은혜와 부활의 기적을 경험하는 축복의 인생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이 순종하여 복을 받는 것은 귀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와 복에 감사하는 것은 더욱더 귀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제일 잘못된 인격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격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제일 슬퍼하는 믿음은 감사를 모르는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한 촌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만납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저들의 강청에 주님의 대답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명령하셨을 뿐입니다.  저들의 순종하는 믿음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들이 다 제사장에게 가는데 놀라운 일은 가는 도중에 그 몸들이 깨끗해졌습니다.  순종의 시작이 기적의 문을 열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고난은 신분을 초월합니다.  질병 중에는 신분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사람의 신분을 같게 만들었지만 감사는 사람의 신분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다 고침을 받아서 각기 제 길을 찾아갔지만 오직 사마리아 사람 혼자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붙들고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세상 길에 물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생명 속에 하나님의 깊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보다 더 귀한 것이 감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천년 전 예루살렘의 아이들이 호산나라고 외쳤던 것처럼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오늘 우리도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Thank You, Jesus!"

사랑하는 여러분, 이 감사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 안에서 보다 풍성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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