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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합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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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합 2:1-4)

제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60여년 동안 그러니까 제가 말귀를 알아들으면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이 말세라는 것입니다. 젊은 놈들이 싸가지가 없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다 썩었고 세상이 공평하지를 못하고 등등해서 세상이 말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른들의 이야기를 나이 들은 우리가 젊은이 들을 보면서 하고 있습니다. 죄악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가 아니고 하나님 마음대로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로서는 알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유대나라와 이스라엘이 다 타락했습니다. 종교, 정치, 문화 할 것 없이 전부가 타락을 하고 죄악으로 가득 찼기에 선지자의 신령한 눈으로 볼 때에는 기가 막힙니다. 이 멸망할 수밖에 없고 멸망될 수밖에 없는 세상,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박한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성문에 올라가서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이 왜 이 모양 입니까? 우리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이렇게 망하는 것입니까? 하고 울부짖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기다려라. 정한 때가 있나니, 무서운 심판이 있다. 있을 것이다.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심판을 넘어서 구원의 역사가 있고 밝은 아침이 있고 메시아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믿음을 가져라 믿음을 가지고 살아라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나온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어떻게 요동하던지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든지 간에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아멘 아멘입니다.

1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좋은 일이 있으나 나쁜 일이 있으나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하나님밖에 모릅니다. 너는 어떻게 하나님밖에 모르냐 할 정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오래전 목사님들 하고 일본에 간적이 있습니다. 후지산 까지 여행을 하는데 제가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목사님 뭐 잡수실래요. 묻습니다. 답은 우동입니다. 제가 우동을 좋아 하기도 하지만 아는게 우동밖에 없어요. 그다음 저녁에도 우동 그다음에도 우동, 그렇게 이틀을 지나니까 같이 간 목사님 한분이 소리를 질러요 제발 물어 보지마세요, 밤, 낮 우동예요? 우동만 먹고 삽니까? 그냥 우동, 우동 난 밥 좀 먹어야 됩니다.

저는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우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뭐라든 어떻게 비난하든 아는 것이 그것뿐이냐 하든 그저 하나님. 내가 찾아 갈 곳은, 내가 의지 할 곳은 , 내가 물어 볼 곳은 하나님밖에 없다.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박국이 아는 것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1절 “내가 파수하는 곳에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 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한 젊은 전도사가 어떤 가난한 집에 전도를 갔습니다. 그 가정을 보니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병들어 누워 있고, 자식들은 몇 명이나 되는 데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엄마는 행상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희망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으로 도와 주나 기도하다가 전도사가 용기 있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이번 주일에 모처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 남편의 병원비도 대주고 당신 자녀들의 학비도 대줄 수 있는 분을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이 부인은 반신반의로 한번 속아 본 셈치고 주일이 되어 깨끗한 옷을 입고 그 젊은 전도사가 일러준 장소에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 가보니까 천막을 쳐놓고 몇 사람 모이지 않는 곳에 그 젊은 전도사 침을 투기며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그 젊은 전도사가 찾아 와서 하는 말이 잘 오셨습니다. 매 주일 이곳에 나오시면 그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도 이 시간에 나오십시오. 너무나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부인이 속으로 "당신 신세나 내 신세나 마찬가지네요.

그러나 하도 열심히 권하니까 당신 말대로 한번 매주일 와 보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게 되어 남편은 병이 낳아 건강하게 되어 직장에 나가게 되고 자녀들은 학교공부를 계속하게 되어 훌륭하게 되고 다 믿음 안에 사는 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오늘 하나님께 나온 여러분에게 주의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자는 은혜를 사모 하는 자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은 간절함이 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간 아기의 모습을 그리면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다림, 무너진 빌딩의 잔해 속에서 내 아들이 살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그 기다림, 결혼 신청을 해놓고 그 승낙여부를 기다리는 기다림. 이 모든 기다림 속에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단점은 잘 기다리지 못합니다. 급합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교인들이 새벽에 나와 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것 해 주세요 저것 해주세요, 하나님이 오냐 알았다, 그래서 준비해가지고 주시려고 하면 벌써 없어 졌어요. 기다리지를 않는 거지요. 사모함이 없어요. 은혜받기를 원하시는 여러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이라는 뜻은 '잘 껴안는다, 씨름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이 예언 활동하던 시대는 많은 패역무도한 열왕들이 있었습니다. 그 왕들에게 소리를 내어도 정의가 정의로 통하지 않는 그런 불의함을 보고 하박국은 성루에 올라가 우뚝 서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세 가지로 보는데 첫 번째 기다림은 오기를 가지고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니기나 해보자 지금까지 투자 한 것이 얼만데 손해 보기 싫어서 버티는 기다림. 두 번째 기다림은 포기하는 자세의 기다림, 줄려면 주고 말려면 말고. 언제는 내가 은혜받고 살았나, 그럭저럭 살겠지, 하는 기다림. 세 번째 기다림은 분명한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취함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당당하고 늠름한 기다림입니다.

나의 기다림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기다림 속에, 당당한 기다림 속에 하나님은 대답을 하십니다. 3절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짖 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정한 때가 있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래서 하박국은 이러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3:17절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살고 믿음으로 살고 말씀으로 삽니다. 그런데 자꾸만 떡으로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삽니다. 은혜로 사시기 바랍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하나가. 어느날 한가한 시간에 손자 손녀를 앞에 쭉 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늑대 두 마리가 있단다. 그런데 늑대 한 마리는 아주 악한 늑대로서 화를 잘내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거만하고 거짓말하고 교만하고 , 또 한 마리의 늑대는 기뻐하고 평안하고 사랑하고 소망을 주고 인내하고 아주 온유 겸손한 그런 복스러운 늑대 두 마리가 있단다. 이 두 마리가 항상 싸운다."

항상 싸운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가만히 있다가 "그래요 내 마음에도 늑대 두 마리가 있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아이가 묻기를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도 늑대가 있나요?" "그럼, 두 마리가 있지"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어느 늑대가 이겼나요? 두 마리가 싸워서 누가 이겼나요?"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겼지."

우리 마음에도 두 마리의 늑대가 있습니다. 의심이라는 늑대와 믿음이라는 늑대입니다. 어느 늑대를 키우시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나는 믿음으로 산다.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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