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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에 이르는 길(4) : 장애물(3) - 염려↔평안 (마 6: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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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르는 길(4) : 장애물 3-염려↔평안 (마 6:24-34)

<序: '염려', 현대인의 피할 수 없는 적>
어렸을 때 심심풀이로 손금을 볼 때가 있습니다. 손바닥에 잔금이 많으면 항상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잔근심이 많다는 말이지요. 자나깨나 잔근심이 많은 사람들은 정말 자기 손에 잔금이 많아서 팔자가 그렇게 타고났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잔금이 별로 없는 사람도 근심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현대는 정보 사회입니다. 인터넷의 도래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정보를 거의 매초마다 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 과잉으로 인해서 우리가 꼭 알지 않아도 좋을 정보까지 습득한다는데 있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입니다.

건강에 대해서도 너무 많이 알아서 탈입니다.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인터넷 검색을 해봅니다. 자기 병세와 비슷하다 싶으면 근심을 싸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진짜 약은 의사가 처방하는 약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별거 아니네요. 이 약 드시면 금방 나을 겁니다." 의사의 안심시키는 말 한 마디가 실제로 병에 걸린 환자를 훨씬 더 절 낫게 하는 명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유난히 잔걱정이 많습니다. 잘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까지도 시시콜콜 알게 되다보니까 근심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기 예배당에 나와서 앉아 계시는데 집에 있는 일로 염려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뭔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서 마음이 무거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몸은 교회에 나와 앉아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염려에서 시작해서 염려로 마칩니다. 건강 걱정, 자식 걱정, 직장 걱정, 돈 걱정, 정치 걱정, 경제 걱정, 환경 오염 걱정, 심지어 자꾸만 늘어나는 주름살과 흰 머리털 걱정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의 염려에는 끝이 없습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에 따르면 모든 병의 70% 정도가 마음이 지어낸 것에서 오는데 그 주된 원인이 스트레스와 염려 때문이라고 한다. 영적인 문젯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보낸 수천 통의 편지를 읽는 가운데 나는 염려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심장 전문의들은 염려를 심장 질환의 제 1원인으로서 꼽았다."

그렇습니다. 염려 때문에 사람들은 신경성 위장병에 걸립니다. 소화기 계통의 질병은 십중팔구 염려나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걱정이 생기면 제일 먼저 밥맛이 떨어집니다. 맛난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편안하면 돌멩이라고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염려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마음에 염려가 가득한데 잠이 올 리가 만무합니다. 마음이 편해야 잠도 잘 잘 수 있습니다.

실로 염려야말로 현대인들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최고의 난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염려가 우리가 행복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고 서 있는 세 번째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염려에 대해서 주신 해법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本: 염려에 대한 예수님의 해법은?>
  먼저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가정과 직장을 다 버린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들은 24시간 내내 주님만 따르기로 작정한 풀타임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최고 관심은 장차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생계 문제였을 것입니다. 이제 옛 직장을 다 버리고 주님과 동고동락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이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선한 일은 '하라'고 명령하시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염려가 무익하고 해로운 것이기에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염려에 대해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해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염려는 두 주인을 섬기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문 25절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25절의 첫 글자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25절 말씀이 24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25절은 24절에 대한 결론으로서 나온 말씀이라는 사실이지요. 그러므로 24절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주님께서 25절 이하의 말씀 전체에서 주시고자 하는 요점을 바로 깨달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24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두 주인을 섬기는 일이 염려의 원인이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려 하다 보니까 염려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희랍어로 '염려한다'는 말은 본래 '마음을 나눈다'(to divide the mind)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왜 염려합니까? 마음이 나뉘어져서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돈, 둘 다 섬기려 하기 때문에 마음이 나뉘어져 염려가 생깁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살고 하나님을 위해서도 살려고 하니까 염려가 찾아옵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다 잡으려고 하니까 염려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까?

마음이 사방팔방으로 찢겨져 분열될수록 염려도 비례해서 많아집니다. 이렇게 마음이 끊임없이 나뉘어져 분열된 사람은 평안이 없습니다. 약 1: 8 말씀처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나 행동, 결정 모든 면에 있어서 찢기어져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염려가 떠날 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 속에 두 주인, 세 주인, 수많은 주인들을 섬기기 때문에 마음이 두 갈래 세 갈래 갈라져서 염려도 비례해서 많아지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누구를 섬기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섬기는 대상이 고귀하면 그 사람의 인생도 고귀하여집니다. 특별히 한 분 주님을 섬길 때 우리는 마음 속에 신뢰와 안정감이 생겨서 여러 주인을 섬기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마음이 늘 단순하고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염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마음에 여러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섬기는 숫자에 비례해서 근심 걱정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으면 염려를 줄이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단순한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부유하고 가장 넉넉하고 가장 고귀한 주 하나님 한 분을 최우선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이외에 세상적인 주인을 많이 섬기면 많이 섬길수록 그 마음에는 염려와 근심이 떠날 날이 없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벧전 5: 7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지수가 커지면 염려지수는 작아집니다.

둘째로, 쓸데없는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꼭 해야만 할 염려와 할 필요가 없는 염려가 있습니다. 몇 일 후에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시험 때문에 걱정을 해야지만 준비를 잘할 수 있지요. 이 경우에 어느 정도의 걱정과 긴장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아니면 사업을 하든지 간에 적당한 걱정은 업무의 성취를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아무 소용도 없는 걱정을 쓸데없이 사서 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27절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지금은 키가 커지기 위해서 영양 보충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해서 인위적인 방법으로 키를 늘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키 크는 일은 전적으로 인간의 능력 밖에 있었습니다. 인간이 염려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신체에 대해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특히 사춘기 학생들은 자기 외모에 대해서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는 키가 작아." "눈이 작아." "코가 너무 낮아." "덧니가 보기 싫어." 자기 외모에 대해서 100%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걱정하다보니 밥맛도 떨어지고 잠도 안 오고 스트레스는 쌓이고 외모는 되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집니다. 키가 더 커질리 만무합니다. 못 생긴 얼굴이 더 잘생겨질리 만무합니다. 오히려 역효과만 일어나서 우울증, 노이로제까지 겹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거의 90% 이상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득 찬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문제를 놓고 아무리 고민해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은 염려가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누구 말대로 쓸데없는 염려는 장차 빚을 내는 날이 오리라고 지레 걱정해서 미리 이자부터 무는 것입니다. 양식이 채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밥을 굶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나기도 전에 병원에 입원하는 헛수고와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내일 빚을 낼 것이라고 미리 짐작해서 오늘 이자부터 미리 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 양식이 떨어질까 해서 오늘 굶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내 몸에 병이 생길 것을 미리 예상해서 지금 당장 병원에 입원하는 헛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쓸데없는 일로 염려하는 것은 마치 흔들의자(rocking chair) 위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움직여봤자 흔들의자는 여러분을 그 어느 곳으로도 옮겨주지 못합니다! 몸만 움직일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염려로부터 자유롭게 되시려면 꼭 해야만 할 염려와 염려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염려를 잘 분별하십시오! 그리하여 날마다 모든 쓸데없는 염려를 다 버리십시오!

셋째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까 걱정했을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계 문제를 염려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돈과 관련되기 때문에, 한마디로 돈 문제를 염려했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시청각 교육을 하신 것이지요.

먼저 26절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보잘 것 없는 새, 그리하여 스스로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 새 한 마리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챙기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련히 아셔서 먹을 것을 다 채워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먹을 것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또한 2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들판에 핀 꽃 한 송이가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들에 핀 꽃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련히 아셔서 입을 것을 다 챙겨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입을 것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미물인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에 핀 꽃 한 송이까지 아름답게 입하시기 때문에 31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새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꽃보다 훨씬 더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이 필요한 것을 다 책임지고 공급하듯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염려하는 것은 모두 이방인들, 즉 하나님 없이 사는 불신앙의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염려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해서 염려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런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을 사랑해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당연히 여러분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 4: 19은 말씀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염려에 가득 차서 먹을 것, 입을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면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33절을 보세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세상의 불신앙인들과는 달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먹는 것, 입는 것은 저절로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텍사스 폿 워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침례교 신학대학인 서남 신학대학(Southwestern Seminary)이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베이커 코우쎈(Baker Cauthen) 교수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막 발발해서 중국이 전쟁의 암운에 빠져 있었을 때인 1939년, 돌연 사표를 내고 중국에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하필 왜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중국으로 가냐고 물었을 때 코우쎈 교수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주님의 뜻이 중심이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옳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총성과 대포 소리가 나는 곳도 염려할 바가 못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세상 염려는 저절로 사라집니다. 어떤 면에서 염려는 사치병입니다. 게으르고 한가하니 쓸데없는 염려가 생깁니다. 군대에서 군인들을 매섭게 돌릴 때에는 안전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빈둥빈둥 휴식 시간을 많이 주면 군기가 다 빠지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서 탈영을 하거나 안전사고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부지런히 하면 염려할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結: '염려'라는 쥐를 잡아라>
  오래 전에 비행기가 처음 생겨서 항공 운항의 개척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고 공중을 날고 있는데 쥐가 뭔가를 열심히 갉아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조종사의 지식으로는 쥐가 비행기의 주요 케이블과 조종 장치를 다 갉아먹을 경우 심각한 기체 결함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이미 출발지로부터 두 시간이나 날아왔고 그 다음 기착지까지 가려면 최소한 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조종사는 처음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조종사는 곧 쥐가 무엇인가를 갉아먹는 설치류(rodent)라는 사실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런데 쥐나 토끼와 같은 설치류 짐승들은 땅 위나 땅 밑에서는 살 수 있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조종사는 즉시 비행기의 고도를 높여서 2만 피트 상공까지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랬더니 쥐가 갉아대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쥐가 죽어버렸던 것이지요! 설치류인 쥐가 이 정도 높이에서까지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종사는 이렇게 함으로서 두 시간 후에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쓸데없는 걱정은 설치류 짐승인 쥐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정없이 갉아대면 결국 우리의 심신에 병이 듭니다. 입맛이 줄어들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우울증과 노이로제를 가져옵니다. 조종사가 쥐를 잡기 위하여 고도를 높여 공중 높이 올라갔던 것처럼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기도할 때 염려는 죽습니다! 주님께 맡길 때 염려는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500번 이상 하고 있습니다. 요 14: 27은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빌 4: 6도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염려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 염려가 꼭 필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염려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염려입니까? 냉철하게 분별하셔야만 합니다. 쓸데없는 염려는 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다만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근심을 다 맡아주시고 평안히 쉬게 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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