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별된 성도의 삶 (단 1:8-16)

  • 잡초 잡초
  • 373
  • 0

첨부 1


구별된 성도의 삶 (단 1:8-16)

본문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잡아다가 그중에 귀족 중 지혜로운 소년들을 뽑아 특별대우를 하며 왕궁에서 시중들게 했는데 다니엘, 사드락, 아벳느고, 메삭등입니다. 그들은 불과 나이 14, 15세의 어린 소년들로서 포로의 신분으로 왕명을 거역하는 것은 죽음을 자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믿음의 항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나라는 우상의 나라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왕은 어떻게 해서든지 외국에서 잡아온 귀족들을 자신들의 전통과 우상교에 교화시키려고 많은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바벨론왕은 무력으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였습니다. 부패가 심하고 무력이 판치던 그 난세에 어떻게 네 명의 소년은 그토록 돈독한 신앙을 무장하였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에 물들지 않은 네 명의 소년들처럼 이 시대 속에서 믿음의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1. 부하게 될수록 더욱 영성을 더욱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포로시대를 예견하고 예루살렘 사태를 보면서 모든 것이 폐허되었다는 슬픈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모든 것이 다시 영화롭게 된다는 기쁜 전망을 하였습니다. 에스겔서를 뒤 이어 다니엘서가 나오는 것은 얼마나 조화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에스겔서는 포로전기에 자신이 예견한 일을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면 다니엘서는 포로 후기에 자신이 경험하고 미리 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불쌍한 포로로서는 먼저 한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 다음에 다른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여간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을 통해 경험되어진 하나님 말씀의 중심적인 메시지는 어떤 것입니까?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식 다니엘의 이름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답게 다니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리 정치가요 사업가였으며,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니엘을 예언자로 여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늘과 교통하는 예언자는 사색가요 명상가요 청빈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식견 때문입니다. 예레미아나 일부 다른 예언자들처럼 비천하고 굴욕적인 삶을 살지 않고 제후처럼 생활했고 그 자신이 대제국의 총리노릇을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군주였던 느부갓네살, 고레스 그리고 다리오의 조정에서 오래도록 고급관리직에 있었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후대에 교회사가인 요세퍼스는 그를 가장 위대한 예언자 중 하나라고 칭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영성생활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을 지키려고 박해를 받았고(6장), 금욕과 절제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좋은 떡을 먹지 않았으며(10:3), 예언의 영에 사로잡혔을 때는 혼절하여 앓기까지 했습니다(8:27).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도 아닌 이방 나라에서 환상을 보면서 “메시야의 도래 시기”를 정확하게 예언하는 영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부하게 될수록 성도들은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에 가장 약점은 점점 나아지면 과거의 모든 은혜를 잊고 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해지면 교만해지지 쉽고 영성생활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다니엘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포로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왕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으나 율법에 금지된 것과 우상 앞에 절을 한다는 부정으로 인하여 몸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10대 소년들로서 왕의 위엄이나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뜻을 정하였으니 그 뜻이야 말로 오늘날 신앙의 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요, 귀감이라 하겠습니다. 소년들의 믿음은 힘 앞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살아있는 믿음이요, 위협에 굴하지 않는 생명 있는 믿음이요, 부귀에 미혹되지 않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2.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결단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실천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없고 실천이 있으면 답답하기는 하지만 신뢰가 갑니다. 그러나 말은 있으나 실천과 결단이 없으면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결단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런 면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감독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왕이 정해준 좋은 음식과 술(포도주)을 먹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물과 콩을 대신해서 먹으려고 합니다. 열흘 동안 시험을 해보시고 왕이 정해준 음식을 먹는 아이들과 비교해 보십시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는 것이 죄가 될까봐 미심쩍어 하였습니다. 왕의 진미가운데는 우상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것이거나 우상의 이름을 축사된 것일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위해 어떠한 위협이라도 결단을 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신앙의 결단을 했습니다. 신앙인들은 신앙적인 결단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만은 하나님의 것이야!
이 시간만은 하나님께 드려야 해!
처음 것은 하나님의 것이야!
십분의 일을 주님의 것이야!
세상의 어떤 유혹이 와도 나는 말씀대로 살거야!
세상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 해도 해도 나는 믿음대로 살거야!
어떠한 경우가 있더라도 사랑의 파괴하지 않을 거야!

이러한 순종과 결단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론이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가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이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론과 실제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정보와 결단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지혜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 1장 20절에 보면, “왕이 지혜와 명철에 대한 모든 문제를 그들에게 묻는 중에 그들이 자기의 모든 영토 안에 모든 마술사와 별을 살피는 자보다 열배나 나은 줄 아니라”고 그의 지혜로운 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가장 위대한 면은 결단력입니다. 믿음의 이론을 실천하는 결단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결단력만이 여러분들의 삶을 건강하게 합니다. 행복하게 합니다. 풍요롭게 합니다. 자유롭게 합니다.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 1924~)는 1970년대에 오일쇼크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다 쓰러져가는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킨 미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기업인입니다. 그가 크라이슬러 회장이 되기 전에 32년간이나 근무하던 포드 자동차에서 기업주인 헨리 포드 2세와의 불화로 잘못도 없이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그는 해고는 당했지만 불운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파산 직전으로 내 몰려 휘청거리는 크라이슬러에서 그를 최장으로 초빙하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이미 기업 평가에서 회생불능이란 평가를 내려졌기에 내로라하는 CEO들이 모두들 사양하는 회사였지만 그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결정했습니다.

그는 크라이슬러 회사의 경영 분석을 마친 후, 노조에게 양해를 얻고 크라이슬러 경영을 재정비하고 신제품 개발을 감독했습니다. 온갖 어려움 끝에 멋진 소형차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 차는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그는 드디어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고질적인 부채를 갚은 후에 약속대로 5년 만에 정리 해고한 근로자들을 다시 불러들였고, 5% 삭감했던 근로자들의 연봉도 수준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미국의 영웅적인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서전에 희망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지난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었지? / 작년에는? / 그것 봐라. 기억조차 못하고 있잖니. / 그러니까 오늘 네가 걱정하는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 거야. / 잊어버려라. / 내일을 향해 사는 거야.”

아이아코카의 자질을 요약하라고 하면 <결단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크라이슬러 회장으로 있을 때 사무실 책상 위에 컴퓨터가 없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곤 했습니다. “어떻게 크라이슬러 회장의 방에 컴퓨터가 없을까?” 그러나 아이아코카는 성공의 열쇠를 정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많은 중역들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에 당혹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실행하는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결단하여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결단, 새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순종하는 결단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다윗처럼 잘못했을 때는 과감해 돌아오는 결단을 함으로 풍부한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는 것이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고아의 아버지 스완스 박사처럼 전 생애를 바쳐 사회사업 및 거룩한 사업을 위해 사는 결단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3. 성도들은 무릎을 꿇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모습이 상세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철저하게 자신의 허물과 죄악성이 보이기 때문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한 것도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주님의 위대성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두 가지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위대함에 무릎을 꿇는 겸손한 자세로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죄인임을 알고 산다는 것은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살수 있다는 증거이며 겸손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기도의 방법가운데 가장 기초는 계속되어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기도하다가 멈춤 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계속해서 기도하면 영적으로 건강해 집니다. 그래서 사사로운 일에 분노하지 않으며, 작을 일에 낙심치도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영적으로 강건해지면 세상 것은 추하게 보이지만 거룩한 일에는 욕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1) 영적인 건강의 필수조건은 계속적인 기도입니다.
기도하다가 낙심치 마십시오. 기도하다가 중단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드리는 기도의 중심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에 전념하여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는 삶이 기쁨이 있고 은혜롭지만 기도가 중단되어지면 삶이 자주 좌절하고 낙심하며 불안해합니다. 계속되게 무릎을 꿇고 살 때 우리들의 삶속에 새로운 호흡이 되어져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도 하나님 앞에서 계속된 무릎을 꿇게 될 때 자녀를 얻게 되는 축복을 받았으며, 히스기아 왕도 하나님 앞에서 계속된 무릎을 꿇었을 때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니엘도 계속되어지고 반복되어진 기도하게 될 때 그는 여러 가지 이상을 봄으로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위대한 귀감이 되었으며 큰 예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2) 구체적인 기도를 하십시오.
우리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되 기도의 내용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확실한 기도의 내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솔로몬도 성전을 건축하고 난 이후에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구체적인 기도를 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근, 질병, 가뭄, 전쟁, 패배, 포로 등으로 인한 고난에서 자유할 것을 기도하였습니다. 실제로 솔로몬 시절에는 그의 부르짖음대로 응답되어 졌습니다. 욥도 마찬가지고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확실한 기도의 내용과 구체적인 기도를 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고통을 당할 때 “환경이 변화될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두려워 떨지 않게 하옵소서”(13:21b)라는 내용의 기도를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기도는 받은 은혜를 지속하게 하는 가장 큰 무기요, 힘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들어갈 운명인데도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그 무서운 시험을 이겼고(단6:10), 엘리야는 비가 오게 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기도하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까지 기도하여 마침내 악한 자들과의 시험 속에서 승리하게 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열상18:42). 기도는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욥이 고통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기도함으로 담대한 마음을 소유하게 되는 기도의 응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기도를 하되 구체적으로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고 수 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신31:6) “너는 담대하라”(삼하10:12)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왕상2:2)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어라”(욥40:7) “장부가 되라”(사46:8;렘5:1) 살다보면 우리들은 마음이 연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담대함을 갖게 합니다.

기도는 분명한 응답이 있습니다. 시편에서 기도함으로 은혜를 지속한자가 말하기를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상에서 응답 하시는도다”(시3:4). “내가 환란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18:6) 부르짖는 기도, 간절한 기도, 진실 된 기도, 은밀한 기도는 은혜를 지속하게 해주며 시험을 이기게 하고 응답을 받습니다.

방안의 등불이 꺼지면 주위가 어두워지듯 우리의 가슴속에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의 등불이 꺼지면 절망하게 되고 낙심하게 됩니다. 반면에 방안에 어두움이 짙하게 깔려 있다 할지라도 등불이 켜져 있으면 어두움이 물러가듯 아무리 어려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별된 성도의 믿음입니다. 구별된 믿음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게 하며 생활의 어려움에 지쳐 불안과 초조, 위기감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마음을 진정시켜 줍니다.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음 없이 살 때 우리들은 밤과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믿음 없이 사는 것은 암흑과 같은 세계일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믿음이 연약하면 순간순간에 감사와 기쁨을 상실하며,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9장22절에 보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마가복음9장23절에 보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별된 다니엘의 믿음과 같이 성도들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