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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의 떡과 잔 (고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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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떡과 잔 (고전 10:16)

고전 8장에서 다룬 우상의 제물에 관한 교훈을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하여 다시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실례로 들어 고린도 교인들의 불신앙을 경고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하나님께 세례를 받고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고전 10:1)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 10:2)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고전 10:3)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4)

이는 이스라엘 역사의 구속사적 의미를 교훈한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영생수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령한 식물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먹었으나 멸망을 받았음을 증거하면서, 신앙의 긴장감을 줍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전 10:5)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성도의 삶에 견주는 비유적 교훈임도 말합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전 10:6)

그들 중에는 우상 숭배를 하다가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자 들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간음을 행하다가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고 또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 물려 죽은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10:7)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고전 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고전 10:9)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수를 마신 성도들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실족함에 대해 경계를 준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였으면서도 광야에서 범죄함으로 멸망당하였던 것을 생각하여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명합니다.(12절)

하나님께서 이러한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도들에게 거울로 주셨다고 합니다.(11절)

또한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가 감당할 시험밖에는 허락하지 아니하시므로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하였습니다.(13절)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자부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하지 아니하고 죄악을 좇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행동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와 관련하여 교훈한 것인데 다른 사람의 양심을 생각하여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함을 받은 것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반석의 물을 마신 것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할 것을 예표적으로 교훈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는 것이며 성찬에서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전 10:16)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전 10:17)

성도가 잔을 나누고 떡을 먹음은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고 한몸 됨을 의미합니다.
성찬은 성도들의 하나됨의 근원을 기념합니다. 교회와 교회의 하나됨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이 바로 바울 사도께서 성도들의 하나됨을 보여주어야 하는 성찬을 행하던 중,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는 불화와 충돌을 놓고 그토록 걱정한 이유였습니다.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고전 11:17)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고전 11:18)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고전 11:19)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고전 11:20)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고전 11:21)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전 11:22)

오늘날 많은 교단과 다양한 문화에 속해 있는 여러 교회들이 여러 교회들 가운데 존재하는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찬을 기념함은 성찬이 교회들의 화합과 하나됨을 보여주는 명백한 예가 됩니다.
교회가 하나될 때 사단의 세력을 대적하는 힘을 더욱 강하게 발할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승리 원인은 크게 세가지로 꼽힙니다.유일신 신앙, 국론통일, 제공권 장악이 그것입니다. 전쟁 초 이스라엘은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다.우리는 그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습니다.이에 전세계 군사 전문가들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극비리에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섰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보기관도 그 최신 병기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습니다.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밝힌 최신 무기는 그들의 신앙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공중 권세를 잡은 사단과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사단은 영상과 전파와 사이버공간을 장악하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유일신 신앙의 재확립, 부단한 자기 갱신, 영적 무장 그리고 일치와 연합으로 힘을 축적하고 집합시켜야 합니다

성찬의 잔과 떡은 흘리신 피와 상하신 몸 곧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을 가리켜 '주의 만찬' (the Lord's Supper)(고전 11:20)이라 하는데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며 이 의식을 확립하신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일을 돕기 위해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라는 중요한 두 가지 표상을 주셨습니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그의 피를 의미합니다. 둘 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킨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또 이 성찬의식을 '교제'(Communion)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성도들이 이 예식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음이 주는 의의에 참여하며 예수님과 나누는 교제입니다.

성찬은 자신을 희생하시고 구원이란 놀라운 선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감사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고 합니다.

  성찬의 잔과 떡은 새언약을 세우시고 용서의은총을 허락하신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고전 11:23)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4)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25)

예수님께서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눅 22:19)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20)

예수님이 오시기 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제정하신 율법의 언약 아래 있었습니다. 이를 일반적으로 '구약 (Old Covenant)' 곧 엣 언약 이라 합니다. 이 언약 아래에서 죄는 오직 율법이 위임한 제사 체계를 통해서만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기념하며 최후의 만찬을 그의 제자들과 나누실 때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송아지와 염소의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나아갈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고전 시 중에 ‘거장의 손이 닿을 때(The Touch of the Master’s Hand)’라는 시가 있다합니다. 이 시는 “경매장에 한 낡은 바이올린이 있었네. 3달러까지 부르는 사람이 있고 더 이상은 없었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마치 보물을 다루듯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 구석구석 닦았네. 그리고 현들을 조여 음정을 잡고 연주를 시작하였네. 그 아름다움은 천사의 음악같이 청중을 황홀하게 했네. 한 곡을 끝내고 노인은 감회 깊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네. ‘잘 있었느냐, 내 사랑하는 아들아. 40년 만에 너를 만져보는구나.’ 그러고 나서 다시 연주를 시작하였네. 경매는 갑자기 활기를 띠어 결국 이 바이올린은 3천 달러에 낙찰도었네”는 내용의 시라 합니다.
이 시를 누더기가 된 인간, 죄와 허물로 값없는 인간에게 거장이신 하나님의 마무리 손질이 끝났을 때 아주 새로운 가치가 부여된다는 뜻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광선속에 먼지처럼 드러나는 인간의 전부를 볼 때 걸작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필요 한 것은 하나님의 마무리 손질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끔히 씻음을 받는 일, 만신창이인 나를 하나님의 마무리 손질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맡겨 용서를 받고 새사람이 되는 길만이 나의 인생을 걸작품으로 남기는 길이 됩니다.

성찬의 잔과 떡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우리라고 불리우는 성도들이 은혜에 감사하며 나눕니다.
비록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시간이지만, 이는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의 만찬을 찬미함으로 마치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가능케 하신 축제, 즉 미래에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과 영광 중에 함께 나누실 메시아의 연회잔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29)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막 14:25)
성찬은 천국 혼인 잔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성찬의 잔과 떡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드린 희생 제물을 기념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를 믿는 자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신약은 믿지 않는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상황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 11:29) 하며, 함부로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자에겐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회개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자신의 삶을 살피는 일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중세기 이탈리아에 기사도 정신에 충렬한 한 성주(성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생전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공을 세웠으면 하고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한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만찬을 나눌 때 사용한 금잔을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성주는 당장 많은 돈을 준비해서 말을 타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문을 나서려 할 때였습니다. 성문 앞에서 한 문둥병자 거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푼 도와주십시오."
"무슨 소리냐? 나는 지금 우리 구세주의 영광스러운 금잔을 찾으러가는 길이다. 냉큼 비키지 못할까!"
"성주님, 저는 며칠을 굶었습니다. 제발 한 푼만!"

성주는 마지못해 금화 한 닢을 꺼내 땅바닥에 내던지며 소리 질렀습니다.
"자, 이걸 가지고 떠나라.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큰일 때문에 너를 돌볼 겨를이 없다."

이때부터 수 십 년 동안 성주는 예루살렘은 물론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그리고 멀리 애굽과 사막에까지도 금잔을 찾기 위해 뒤지고 다녔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드디어 돈은 떨어지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앉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용마를 타고 비단옷을 입고 떠나던 때와는 달리 낡은 옷에 지팡이를 짚은 쓸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성문 앞에 다달았을 때였습니다. 그의 앞에 예전의 문둥병자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한 푼 도와주십시오."
그동안 숱하게 겪은 고생으로 이제 그의 거드름은 잦아지고 사랑이 솟아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지에게 나누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른 빵 한 조각 밖에는.
그는 빵의 절반을 잘라 거지한테 주었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쪽박을 들고 옹달샘으로 가서 물 한바가지를 길어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돕는 것이 변변치 못해 미안하오. 하지만 이것이 내 전부인 것을 어떡하오."
그러자 갑자기 문둥병자 거지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들어라. 금잔을 찾으려고 아무리 헤메어도 소용이 없다. 샘물을 길어온 그 보잘 것 없는 쪽박이 나의 성배이다. 네가 떼어준 빵이 나의 살이며 이 물이 내 피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와 더불어 나누는 식사야말로 진정한 성찬이다."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 지시고 우리 죄짐을 담당하신 주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며 사랑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시며 사랑의 실천이 율법의 완성이며 주님의 제자된 표라 하셨으니 이 사랑을 실천 했는가를 다시 한번 살피며 사랑의 살천자가 되길 다짐하며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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