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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주목하여 보실 때 (시 8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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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6:10~13
주님이 주목하여 보실 때

조선시대 세종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 유명한 학자중에 신숙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선 세종때 집현전 학자였습니다.
하루는 세종임금이 늦은 밤까지 책을 읽고 있는데, 집현전 숙소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세종은 궁금해서 내관에게 누가 책을 읽고 있는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내관이 학사 신숙주가 아직도 글을 읽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종이 너무 기특해서 계속해서 책을 읽다가 신숙주가 먼저 잠이 들자, 친히 가셔서 입고 있던 옷으로 덮어 주었습니다.
세종이 죽을 때, 어린 단종을 부탁했을 정도로 왕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세종이 죽고 난후 딴 마음을 품고, 수양대군과 친해져서 단종을 폐위시키는데 앞장을 섭니다. 계유정란이라고도 하지요.
이일이 성공하자, 그는 살아있을 때에 영의정을 두 번이나 하고, 평생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다가 59에 죽습니다.

같은 시대에 성삼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숙주와는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신숙주가 한 살 먼저 태어났지만, 똑같은 21 살 때에 과거급제를 한 이 둘은, 훈민정음을 만드는 일에도 똑같이 공을 세웠고, 국비장학생으로 중국에 유학도 똑같이 다녀왔습니다.
나라의 학문을 연구하는 중추적인 기관인 집현전에서도, 똑같이 일했습니다.
20년 이상,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습니다.
신죽주와 같이 세종의 신임을 얻을 정도로 학문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의 마지막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숙주가,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서 왕권을 찬탈하는 것을 찬성한 반면, 성삼문은 결사반대했습니다.
단종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몰아낸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고, 또 나라의 정통성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성삼문은, 이 일에 자기 친구 신숙주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의 친구이나,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기에 죽여야 한다”
그러면서 절교를 했습니다.
성삼문은, 수양대군이 폐위시킨 단종의 복위를 시도하다가 사전에 적발되었습니다.
이때 여섯 사람이 모의를 하다가 다 잡혀서 죽었는데, 우리는 이 사람들을 사육신이라고 합니다.

세조가 된 수양대군이 직접심문을 합니다.
신숙주가 쓴 글을 보면, 자기 친구였지만 성삼문의 충성과 기개에 감탄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손이 오랏줄에 묶이고, 시뻘건 쇳조각이 배꼽 위에서 지글지글 끓는 상태에서도, 그는 태연하게 “다시 달구어 오라, 나으리(세조)의 형벌이 참 독하다”며 독기를 부렸습니다. 그의 허벅지는 쇠꼬챙이로 뚫린 지 오래고, 팔도 이미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성삼문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그 옆에 서 있는 친구 신숙주에게 한마디 합니다.

“네 이놈 숙주야, 옛날에 너와 더불어 집현전에 숙직할 때 영릉(세종)께서 원손(단종)을 안고 뜰을 거닐며 말씀하지 않으셨더냐. ‘내가 죽은 뒤라도 너희들은 이 아이를 잘 돌보라’는 그 말씀이 아직 귀에 쟁쟁하거늘, 네가 이토록 악할 줄 미처 몰랐다.”

이 말을 들은 신숙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서 도망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신숙주의 부인은 목 메달아 죽었습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성삼문을 보고, 수양대군은 그의 학문이 너무 아까워서, 내게 복종하면 살려준다고 말했지만, 성삼문은 거절했고 결국은 죽었습니다. 이때가 38살이었습니다.

신숙주와 성삼문, 세종때는 그렇게 신임과 총애를 받던 신하였지만, 나라가 어려울때 보니까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지금도 충신의 대명사는 성삼문이고, 신숙주는 변절의 대명사입니다.

여름에 제일 잘 변하는 음식 중에 “숙주나물”이 있습니다. 콩나물과 비슷한데 콩나물과는 다른 나물이지요. 바로 변절자 신숙주에서 나왔습니다.

나라가 태평이고 편안할 때는 누구나 다 충신인 것 같지만, 진정한 충신은 힘들고 어려울 때가 되봐야 아는 것이지요.

우리는 가끔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을 합니다.
평소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특별한 일을 만날 때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목하여 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1.혼자 있을 때입니다.
얼마 전에 나온 책 중에 “아무도 보는 이 없을때 당신은 누구인가”. 미국의 유명한 빌 하이벨즈 목사님이 쓴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하는 말은, 진정한 신앙은 혼자 있을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은 체면이나 얼굴을 중시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는 우리가 얼굴의 가면을 씁니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는 그런 모습들이 다 사라지고, 자기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혼자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때 하나님은 주목해서 보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집에서 양을 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야곱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때, 심지어 장인 라반이 보지 않아도, 자기 맡은 일을 잘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요셉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보디발의 부인의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사무엘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영성을 쌓았습니다.
다니엘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양을 물고 가던 곰이나 사자를 죽이고 양을 찾아왔습니다.

그 일로, 야곱은 부귀영화로 고향에 돌아오게 되고, 요셉은 얼마후에 총리가 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보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보던 보지 않던,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자기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여 보실 때에, 합격한 사람들이지요.
저는 여러분들도 이런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 볼 때는 누가 못합니까? 그러나 사람이 보지 않더라도 주님께서는 보고 계신다는 이 믿음이 얼만 훌륭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평가는 사람이보지 않을때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때 하는 것이지요. 혼자있을때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눈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제한이 없으십니다.

개그맨 이경규씨가 진행하는 “몰래카메라”가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유명인을 대상으로, 당사자만 모르게 해 놓고 사전에 계획을 한 뒤에,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요.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그 사람의 숨겨진 인격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 연예인들이 좋지 못한 행동을 할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보면서 놀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방송에서 보는 이미지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방송 출연할 때는, 얼마나 인격이 대단하고 얼마나 멋지게 보입니까?
그러나 촬영이 끝나고 녹화가 끝난 다음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이 사람의 인격은 방송출연 할 때가 아닙니다. 끝난 다음에 그 사람의 인격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있을 때는 감히 아무 일도 못합니다.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해서는 안될 일을 하다가 발각되는 것이지요.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가 재미있는 조사를 했습니다.
전국의 아르바이트생 1107명을 대상으로 ‘만약 우리가게의 사장님이 된다면, 가장 좋을 것 같은 연예인’을 고르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조사에서 최고의 사장님 감으로 꼽힌 사람은, 유재석(34.7%)이었습니다.

요즘 MC중에 가장 인기있는 사람입니다.
유재석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다 엄청난 인기가 있고, 더구나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인기 절정입니다.
지난주 한 일간지에서 유재석씨가 진행하는 무한도전이 얼마나 방영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일주일에 무려 115시간을 재방송해 보냈습니다. 여러분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168시간 중에 115시간을 방송했다면, 하루에 약 17시간 가까이 방송했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24시간 중에 17시간, 엄청나지요.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은 재방송해 보낼까요? 바로 시청률 때문입니다.
본 것 또 봐도 재미있다는 것이지요, 그 가운데는 유재석씨가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유재석씨는 같은 동료들과 TV에 나올 때나, 촬영이 끝난 다음 혼자 있을 때가 같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그는 더욱 다음 방송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성실함을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어떻게 합니까? 혼자 있을때 어떻게 합니까?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어도 하나님은 보십니다.

여기서 실수하면, 우리는 넘어지게 됩니다.
다윗 보십시오. 그렇게 경건하던 임금이, 잠시 동안 하나님의 눈을 외면할 때, 밧세바의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우리야를 죽게 합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이라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은 없어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주목하여 보고 계십니까? 혼자 있을 때입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어린아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도, 철야하고 성경읽고, 기도하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혼자 있을 때에 자기 신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에 더 큰 능력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더 많이 기도하고, 혼자 있을때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마음대로 철야하고 밤새도록 성경읽고.
저는 여러분들이 혼자 있을 때에, 신앙의 베스트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싫어합니다.
그것이 비록 나중에는 나에게 득이 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될 수만 있으면 회피하려고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자기 방식대로입니다.
열왕기 하 1장에 보면, 아하시야가 다락난간에서 떨어져 병듭니다.
그때 아하시야는 신하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내서 물어봅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결국 아하시야는 죽습니다.
바로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어렵고 힘들고 고난이 오면, 사람속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갈라지게 된 원인도, 바로 이 환경 때문입니다.
사람의 내면이 약하면, 환경에 의해 사람이 변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하나님 방식입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환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지요.
야곱은 20년 만에 원수같이 여긴 형 에서를 만납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적대심을 품고 군사 400을 거느리고 다가옵니다.
그렇게 답답했을 때, 야곱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죽이면 죽겠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복수의 칼을 갈던 에서의 마음을 따뜻한 봄날같이 바꿔주셨습니다. 응답받은 것이지요.

기도하다 누명쓴 다니엘, 여전히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자굴에 빠졌지만 다시 기적같이 살아나왓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고난속에 있던 바울과 실라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찬양하고 기도했더니, 옥터가 갈라지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왜 환란이나 고난이 없습니까?
세상은 비닐 하우스안이 아니라, 들판입니다. 볍씨를 뿌린 모판이 아니라, 모심기를 한 논과 같습니다.

당연히 고난과 환란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자식 다 잃고, 재산 잃고, 건강 잃고, 부인나가고,
여러분, 욥이 신앙생활 잘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엉망으로 살다가 벌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인데도 그런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예수 믿어도 건강 때문에, 돈 때문에, 자식 때문에 걱정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때 의젓해야 합니다. 그럴때 일수록 하늘을 바라보고 주님 바라보아야 합니다.
담담하고 의젓하고 가슴펴고.

자기 인생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은 링컨은, 실패하고 무너지고 떨어지는 날일수록 “이까짓거” 하면서 자기 마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자기 관리에 신경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극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반석위에 세운집이 되어야 합니다.
창수가 일고,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서, 우리의 영적인 집에 부딪힐때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주목하여 보시는 혼자 있을 때나 고난을 받을 때에 이길수 있는가?

1.기도입니다.
지난 7월에, 세계적인 복음 선교선인 둘로스호가 한국에 입항했습니다.
부산과 목포, 포항, 인천항에 머물면서 선교와 복음을 전한,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선교선이 바로 이 배입니다. 그 배의 단장은 최종상 목사입니다.
어떤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제일 힘든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최목사님이 하신 말씀은, 전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제일 어려웠을 때는, 바다의 풍랑을 만났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의 말이 더 중요합니다.
바다에 태풍칠 때, 배의 엔진이 꺼질 때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태풍이치고 바람이 불어도 배의 엔진은 꺼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파도 때문에, 배가 좌우로 흔들려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야 전복되지 않지, 엔진이 꺼진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최악의 상황이 올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배의 엔진은 꺼지지 않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태풍이 심하게 쳐도, 배의 엔진이 꺼지면 안되듯이, 우리 인생이 고난이 아무리 심하고 어려워도 신앙의 엔진인 기도가 꺼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주님께 나와서 부르짖고 기도해야 길이 생깁니다.

예수님 살아계실 때 그 앞에 온 사람들 보십시오, 전부 병들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다 구원받았습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은 다 해결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예수님 보고 그 앞에 나와도 아무런 변화 없었습니다.
문제가 없으니까요, 아쉬운 것이 없으니까요. 그때는 좋아보였지만, 지금 우리중에 바리새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서기관이나 율법사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기도의 엔진을 꺼지 마십시오. 기도의 등대 불을 끄지 마십시오.
엔진이 배를 살리고, 기도가 우리를 살립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가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훈련입니다.
경건 훈련, 말씀훈련, 기도훈련, 훈련을 통해서 몸이 만들어 집니다.
마찬가지로 훈련을 통해서 우리 마음도 만들어 집니다.

여러분, 훈련은 한번 받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받을 때는 괜찮지만, 그 훈련을 중지하면 다시 우리의 본성이 돌아오게 됩니다.

지난 금요일날 조집사님 개업식 때, 골프연습장에 갔습니다.
그 골프 연습장 사장님이 와서, 골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골프치러 오라는 것이지요.
그 분 말씀은, 여기서 3달 정도 연습을 하면, 필드에 나갈수 있답니다.
그런데 필드에 가서 잘 치기 위해서는, 여기서 연습할 때 프로골프에게 자세교정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맞지요, 아무것도 모르면 자세도 바르지 않고,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올바로 할 수도 없지요.
그런데 프로골프에게 자세를 교정받고, 필드에 나가서 얼마있지 않으면, 다시 원래의 자기 자세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또 프로골프에게 자세를 교 정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반복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골프치는 바른자세가 자기 몸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교정받고 자세를 바로잡아야, 제대로 골프를 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받을 때는 좋지요. 조금만 쉬면 다시 원래의 우리 육신적이고 인간적이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스프링이 완전히 늘어나는 것처럼, 우리 본성이 바뀔 때까지 힘들고 어려워도, 확실하게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강군이 되는 것이지요.
고난이 오거나 혼자 잇거나 간에 자기 삶이 변하지 않을만큼의 혹독한 영적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의 강도가 많을수록 유사시에 생존확률이 높습니다.

특공대원들 지옥훈련 하는 것 아시지요. 유사시에 살아남기 위해서지요, 그 때는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나 후에는 그 훈련받은것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지요.
그 힘든 훈련, 완전히 몸에 익힐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는 사람은,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치있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삼문은 가치있는 삶에 비중을 두었고, 신숙주는 인간적인 가치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도, 고난이 다가올 때도,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요? 기도와 훈련으로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주님께서 내 삶을 눈여겨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안에서 주님의 교회와 영광을 위해 거룩하게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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