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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방 중심 사역 (행 2: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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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중심 사역 (행 2:40~47)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0-47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회를 작은 그룹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가정이라는 소그룹을 만드시고 이 땅의 수많은 가정을 통해 인류를 다스리십니다. 소그룹별로 우주를 통치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 내에 팀장 제도들을 만들어서 기동성을 갖추고, 각 팀별로 협력과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조직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한 동(洞)에 동장과 통장, 반장 등의 조직이 있어서 동네일을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군대의 조직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최소단위인 분대와 소대, 중대, 대대 등 여러 개의 단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앙공동체인 교회도 대공동체와 중공동체, 소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공동체는 지금 이 예배처럼 수많은 성도들이 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는 것입니다. 이런 대공동체의 예배에 소그룹에서 느낄 수 없는 찬양과 은혜가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그룹의 예배 속에서 공동체의 힘을 느끼고, 새로운 격려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예배에 참석하시면 저는 매 주일, 앞에 앉아서 제 눈 카메라로 여러분의 모습을 찍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개 늘 앉는 자리에 앉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이 어디쯤 앉는지 압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늘 앉던 자리에 그 사람이 안 보이면 걱정이 되지요. ‘어디가 아픈가?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신앙이 흔들렸나?’ 한 주는 그냥 의아하며 넘어가는데 다음 주에도 안 보이면 목회자들의 기도시간에 묻습니다. “아무개 씨가 안 보이는데 알아봐주세요.” “그분이 최근에 유럽 출장을 갔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목사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말 할 것도 없구요.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여러분 서로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지난 주 동안 잘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도 건강합니다. 내 머리 빗은 모습을 보세요! 말끔히 단장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예배드리는 습관에 따라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안심하십시오.”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여러분 서로에게 얼굴을 보여 주는 시간입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얼굴을 보면 반갑고, ‘아, 저분은 잘 지내시는구나!’ ‘어, 우리 사랑방 식구가 안 보이네. 어떻게 된 거지?’하며 안부를 묻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대예배는 참 중요합니다. 대예배를 통해 큰 은혜와 새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교회에는 또한 중공동체가 있습니다. 성가대도 중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50여 대원들의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중그룹으로서 너무 큽니다. 중그룹은 50명 정도가 적당해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파트로 나누고 각 파트별 팀장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선교회도 중그룹입니다. 우리 교회에 200여 명의 권사님들이 함께 교제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몇 개의 중그룹으로 나눕니다. 50명 정도면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알고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일에 교회에 와서 인사를 나누는 성도들이 아마 평균 7-8명 정도 될 겁니다. 그것도 그저 인사하고 눈 마주치고 지나가는 정도지 서로 따뜻한 사랑을 느끼거나 함께 기도하기는 힘들지요. 대그룹과 중그룹으로서는 힘든 일입니다.

교회의 세 번째 그룹은 소그룹입니다. 소그룹에 들어가야 제대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고 사랑의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은 많은 신앙의 성장을 체험할 수 있는 그룹입니다. 최근에 저는 어느 젊은이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자매는 자기가 Sunday Christian이었다고 합니다. 주일 한번만 예배를 드리고 일주일간 사라졌다가 다시 주일에 나타나는 신앙생활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 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너, 소그룹 공동체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너무도 분명한 말씀이어서 청년부 소그룹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자기의 삶이 정말 달라졌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성도의 교제가 무엇인지, 성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는지를 소그룹에 들어가서 배우고, 지금 자기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일찍 들어갈 것을 그랬다는 내용입니다.

소그룹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킵니다. 소그룹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대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에서 오순절에 3천 명이 되었는데, 4장 4절에 가면 남자만 약 5천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자도 5천 명이 있을 것이고 그 아이들까지 합하면 2만 명가량이 되는 대형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에서도 “너희 집 안에 있는 교회에게 문안해 달라”고 합니다. 집에 가정교회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동네에 사랑방교회가 있을 뿐 아니라 가정 자체도 하나의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 소그룹을 통해서 우리가 많은 성장과 발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소그룹의 특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말씀을 배웁니다. 42절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시면 제 설교를 듣게 됩니다. 저는 이 설교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기도와 연구와 많은 노력을 들이게 되는데, 여러분은 설교를 듣고 나가시면 집에 가는 길 중간쯤에 벌써 오늘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2, 3일이 지나면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느 성도가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이 교회를 30년 동안 다녔는데 목사님께서 그동안 하신 설교를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요? 결혼생활은 얼마나 하셨어요?” “25년이요.” “그동안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다 기억하세요?”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합니까?” “무슨 음식인지 기억은 못해도 그 음식을 꾸준히 먹었으니 지금까지 살아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설교제목도, 내용도 잊어버렸지만 계속 영의 양식을 먹어왔으니 우리의 영이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콩나물을 키울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콩나물도 매일 물을 주면 물은 밑으로 다 빠져버립니다. 하지만 콩나물은 자랍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꾸준히 들으면 우리도 모르게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내면화는 사랑방에 모였을 때 일어납니다. 사랑방에서 설교 본문을 다시 읽고 주일 설교를 회상합니다. 여러분이 그 말씀을 통해 회개하고 격려와 새 힘을 얻었다면 그것을 나눕니다. 어느 남자가 30여 년 전에 아내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가 일흔이 넘어 늙고 병들어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자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염치가 없지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받아주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 마침 고린도전서 13장 설교를 듣고 “주여, 제가 받아주겠습니다”하고 그분을 받아주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은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계십니다. 예배 가운데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좀 더 구체화, 내면화하려면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서로의 경험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내 삶을 공개하여 기도제목을 찾아 서로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함께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모이면 먹어야 합니다. 먹으면서 교제와 사랑을 나누고 일체감을 쉽게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뗐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모일 때마다 맛있게 잡수십시오. 성도의 교제가 참 소중합니다. 음식을 위해 사용하는 돈은 주님의 몸을 세우는데 투자한 것입니다. 이런 교제는 대그룹이나 중그룹에서는 힘들고 소그룹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셋째로, 함께 기도합니다. 서로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가 가능한 것은 서로의 기도제목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소위원회에 참석했는데 모임 후 기도 시간에 저에게 종이 한 장을 주었어요. 위원들의 이름과 각자의 기도 제목들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 위원회는 만날 때마다 그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사랑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방 식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각자의 건강문제, 자녀들의 문제, 신앙 문제, 직장문제, 가정문제 등 자세한 기도 제목들을 찾아 함께 기도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무엇을 체험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두 주 전에 어떤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었습니다. 어제 기도했는데 오늘 바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기도가 응답 된 것을 사랑방에서 함께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면 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요, 우리 삶 속에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방과 여러분의 가족도 구체적인 기도로 능력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시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 우리 능력 밖의 일을 어떻게 이루겠습니까? 함께 기도할 때 기적과 표적을 베푸셔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대한 하나님인 것을 체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체험해야 예수 믿는 재미가 있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서로 알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미국에는 세계 중보기도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기도센터를 만들고 이메일을 통해서 전 세계의 기도 제목을 받아 그것을 다시 전국에 보내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그분들은 순전히 이 기도사역만 합니다. 그들은 한 동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도록 기도했는데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도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렸습니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 저 장벽이 무너지는군!”하고 그만입니다. 감격과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을 놓고 기도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소그룹으로 모이면 서로의 희로애락을 다 알고 세심하게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이 소그룹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많은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원합니다.

넷째로, 유무상통합니다. 내게 있는 것을 저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내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이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44-45절) 본문에는 물건이라고 했지만 사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물건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손재주를, 어떤 사람은 찬양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중보기도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미소를, 어떤 사람은 건강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무엇인가를 맡겨놓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적어도 하나씩은 맡겨놓으셨지요. 왜 그럴까요? 내게 있는 것으로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무상통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받으셨어요? 여러분이 받은 것 때문에 주위에 내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눈에 보입니까? 그때마다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이든 나누며 사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서로의 구체적인 필요가 우리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 보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가정은 가정예배로, 사랑방은 사랑방예배로 모여 말씀을 배우고 교제하고 서로 기도하고 유무상통하면 세 가지가 일어납니다. 첫째, 이런 삶이 축복임을 알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찬양합니다(47절). 참 좋으신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우리의 내면이 아름답게 변하여 칭찬받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칭찬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가정과 동네와 직장에서 꼭 칭찬 받는 사람이 되려면 내면이 성장해야 됩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말씨와 태도와 모습이 달라져야 됩니다. 어떻게 달라지나? 소그룹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 서로 기도하고 노력할 때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들로 변하여 밖의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 이 시간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내면이 아름다워지고 변해서 칭찬받는 사람들이 곳곳에 나타나는 영적 운동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칭찬을 받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나? 우리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아, 참 멋있다. 나도 저분처럼 되고 싶다. 저렇게 살고 싶다. 저분의 모습처럼 되고 싶다.’ 이렇게 됩니다. 제가 26살 된 젊은이를 만났는데 너무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참 탐나는 젊은이인데 아쉽게도 제 딸 셋이 모두 이미 시집을 갔어요. 그 젊은이를 제가 불러 “어떻게 예수 믿게 됐나?” “제 직장에 너무 멋있어 보이는 동료가 있어서 제가 ‘당신을 보니 뭔가 좋은 게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가요?’라고 살짝 물었지요.” 그 분은 “알고 싶으면 회사 끝나고 잠시 만나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5시에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요. 나는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삽니다. 아침 일찍부터 예수님을 만나고 하루 종일 예수님과 대화하고 예수님과 인생을 의논합니다. 예수님과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치지요.” 자기의 매력의 이유를 예수님께 돌리면서 “당신도 예수님을 믿으실래요?” 하더랍니다. 그 젊은이는 “그런 예수님이면 나도 믿고 싶습니다” 했다는 겁니다. 그 동료와 1년 동안 매일 직장에서 만나 기도하고 성경 읽는 법과 기도를 배웠다고 합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자기 혼자서 매일 아침 1시간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배운대로 조용히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가정에서나 개인적으로나 소그룹에서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고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고 유무상통하고 함께 예배드리면 우리가 아름다워집니다. 사랑방 소그룹을 통한 전도가 최선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 믿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우리 교회에는 500여 개의 사랑방이 있는데 280개 정도가 여자 사랑방이고 나머지는 남자 사랑방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사랑방에 속해있지 않다면 소그룹에 들어가서 여러분의 삶을 놓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장해서 아름다운 변화가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장로님이든지, 권사님이든지, 안수집사님이든지, 누구든 여러분 동네에서 최고의 신앙인을 사랑방장으로 뽑으세요. 그 사람을 세우면 사랑방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서 많은 변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역 최선의 영적 인물을 뽑아 세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삶의 변화를 통해서 아름다워지고,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놀라운 축복을 모두가 함께 누리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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