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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소서 … 준비되었나이다 (눅 1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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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 준비되었나이다 (눅 14:16~24)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나면 반갑고 생각하면 만남이 감사한 사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만날까 두렵고 생각하면 짜증나는 사람이라면 … 얼마나 서글픕니까.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만나고 싶고 생각하면 감사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런 목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가요?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아이가 엄마한테 “엄마, 배 아파 아파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얘야, 그건 속이 비어서 그래 …”라고 하면서
밥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밥을 먹고 나니 괜찮아졌습니다.
저녁에 아빠가 퇴근해서 “머리 아파, 머리 아파 ~”라고 하자
아들이 아빠에게 말합니다.“아빠 그건 머리가 비어서 그래.”

우리가 가끔 가슴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가슴이 비어서 아픈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가슴이 되시기 바랍니다.
허전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높은 산에 살든, 거친 들에 살든, 왕궁에 살든, 천막에 살든 …
주님 모신 천국백성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슴이 비어서 가슴 아프다고 하지 않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잔치 …

교회는 예수를 알고 싶어 하고 예수를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를 <부르심을 받은 회중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표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초대해 주신 분의
부름에 응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죄가 주홍 같아도 눈과 같게 하시고
진홍 같아도 양털 같이 되게 하시어 천국 백성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온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요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초청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격하고 감사하여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주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아노라”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끼리 모였다가 흩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주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믿는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지금 예배의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벌여 놓고 사람들을 청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본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거부하는
유대 민족의 보편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큰 잔치를 베푸신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한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잔치로 표현된(비유된) 예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마9:15, 요3:29, 계19:7~9, 사 61:10, 62:5)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 곧 큰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이고
우리는 하나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초대를 받은 VIP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 VIP 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디에 가서 VIP 대접을 받아보셨습니까?
저는 가끔 VIP 대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색하지만 참 좋습니다. VIP 는 좋은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큰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은
오늘 우리들과 같이 응하지 않고 잔치에/초대에 거절했습니다.

팔래스틴 지역의 풍속에 따르면
잔치를 벌일 때는 잔치가 있기 전에
“언제쯤 우리 집에 잔치가 있으니 꼭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미리 연락합니다.
그러면 연락 받은 사람들은 “축하드립니다. 가겠습니다”라고 하든지
“미안합니다. 못갑니다”라고 하여 초대에 응하든지 거절하든지 합니다.
그리고 모든 잔치 준비가 끝나면
“이제 잔치가 다 준비되었으니 오십시오.”라고 하며
처음에 묵시적으로 초대에 응한 사람에게
다시 종을 보내어 손님을 모시고 옵니다(에 5:8, 사:14/잠9:1~5).

그런데 오늘 본문(눅14:17)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연락했는데 모두 거절했습니다.

아무래도 …

18절에 나오는 사람은“밭을 샀기 때문에”(I have just bought a field, ~)
땅을 살펴보기 위해 가봐야 한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래도”나는 그것을(땅을) 보러 가 보아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땅, 중요한 것입니다.
2000여 년 전 농경시대에 땅이 갖는 의미는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땅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생사가 땅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잔치에 갈 수 없고 땅에 가보아야 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표현으로는 나는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꼭” 땅에 가보아야겠습니다. (" … I must go and see it."- NIV)
가도 되고 안가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꼭 땅을 가봐야 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미 자기 소유로 만들어 놓은 땅인데
잔치에 초대된 지금 가보지 않으면 그 땅이 어디로 날아갑니까?
그 땅이 좁아지나요?
이 초청을 거절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새로 산 땅, 자기의 재산만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
하나님의 잔치 자리에 오지 않은 사람들 중에
땅 같은 것 때문에, 지킬 것 때문에, 먹고 사는 것 때문에 …
하나님의 잔치 자리에 참석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있을 부흥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땅 같은 것 때문에, 지킬 것 때문에, 먹고 사는 것 때문에 …
참석할 수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아무래도”, “나는 일터에 가봐야 할 것 같고,
내 땅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하며 거절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신앙생활 하십니까?

샀으매 …

19절에 보면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습니다.
(I have just bought give yoke of oxen, ~)
“겨리”라는 말은 짐승 두 마리를 짝하여
헤아리는 단위로 사용되었고, 다섯 겨리는 10마리를 뜻합니다.

그 소들을 살펴보기 위해 가봐야 한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성경에 “가니”(I'm on my way.)라는 표현은
“내 계획과 목적 때문에(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가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2000여 년 전 농경시대에 땅이 삶의 터전이라면
소는 그 삶의 터전을 일구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고 도구였습니다.
연장, 도구 중요한 것이지요.
요즘도 웬만한 시골에서는 소 한 마리는 중요한 재산입니다.
어떤 집은 소 한 마리가 그 집의 재산목록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공장의 기계, 가정의 자동차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옛날의 소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중요한 삶의 수단인 소를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
꼭 가야 한다(I must go~)는 필연을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할 일이 있다는 이유(I'm on my way.)를 들어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이미 가기로 했던 초대를
삶의 수단을 돌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당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소들을 시험해 보려고(to try them out) …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소들이 일을 잘 하는지, 돌보아야겠으니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 중에/우리들 중에는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도 소 같은 것 때문에 … 도구 때문에 …
일이 있어서(I'm on my way)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잔치에, 예배의 자리에 올 수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여러분의 일 때문에 … 계획 때문에 … 도구 때문에 …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로 정해진 날 …
말씀의 잔치에/하나님의 초대에 거절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장가들었으니 …

20절에 나오는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장가들었으니 …” (I just got married, ~)
이제 막 결혼하여 즐거운(행복한) 시간을 갖고 있는데
남의 잔치에 갈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뜻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 사람은 “가지 못하겠노라”라고 말했습니다.
(I just got married, so I can't come.)

결혼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4장 5절에
“결혼한 사람은 군대도 보내지 말고
일년 동안은 아내 곁에 있으며 즐겁게 지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쟁할 일이 있어도, 징벌 할 일이 있어도
결혼한 지 1년이 넘지 않은 사람은 아내 곁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막 결혼한 사람은 아내와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처음 인간 아담의 핑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제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피해 숨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여인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제게 먹게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아내와 남편을 … 부모와 자식을 …
하나님을 외면하는 방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남편, 아내 때문에/아이 때문에 … 친척 때문에/형제 때문에 …
즐거움 때문에 … 삶의 안정 때문에 …
“나는 못 간다.”고 핑계 대보신 적 있으셨나요?

영국의 주석가 매튜 핸리(Matthew Henry)는
“그 사람은 아내를 설득시켜 볼 수도 있었고 …
아내와 동행했어도 충분히 환영받을 수 있었는데 … ” 거절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러분, 먹는 것/편한 것/즐거운 것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먹고 살기 위해서/내 계획이 있어서/식구 때문에 …
하나님을 외면했던 기억은 없으신지요?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한 적은 없는지요?
잔치의 주인은, 청했던 자들의 거절로 인해 손님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오늘, 지금 …

오늘 우리는 초대 받은 손님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절했다면
하나님은 손님을 바꾸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 받았던 바울도
도리어 자기가 버림이 될까봐 두려워했습니다(고전9:27).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말씀의 잔치를 벌이는 것 …
주일을 지키고/예배를 드리고/성경을 공부하고/
부흥회를 열어 은혜를 받는 것 … 등 모두 “예수 잘 믿어”
하나님의 일을 잘 해 보고자 하는 열망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요6: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 ”(요6:28~29)

예수 잘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현대 크리스챤의 문제는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헤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옆에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흔들립니다.
왜 흔들리는 줄 아십니까? 자기를 자기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체성(identity)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극장에 몰래 갔다가 선생님들한테 들키면 정학을 당했습니다.
그 대신에 학교에서 봄, 가을에 한번씩 단체로 영화 관람을 했습니다.
수업을 하지 않고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정확히 언제 본 영화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루마니아의 작가인 비르질 게오르규라는 사람의 소설을 영화화한
<25시>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25시의 주인공인 <요한 모리츠>는 순박하고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그는 2차 대전이란 거센 물결 속에서 까닭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한때는 유태인으로 오해를 받아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며
멸시와 학대를 받았고 죽을 위기도 넘겼습니다.
그리고 또 한때는
세계 최고의 우수한 인종의 씨라는 평가로 찬양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연합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습니다.
재판관이 “너의 정말 신분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지만
요한 모리츠는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자기가 정말로 누구인지’자기 자신도 알 수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너무 고생스러워도 자기를 상실합니다.
너무 순탄하게 일이 잘 되기만 해도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너무 복잡해도 자기 분열을 가져옵니다.
너무 바빠도 참다운 자기를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도와 경쟁으로 표현되는 현대의 구조는 사람들이 쉽게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대로
“영생을 얻은 자”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identity)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대로
예수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천국 시민으로서의 자기”를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목자 없는 양처럼 두리번거리는 것입니다.
이단의 유혹에 빠집니다.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하면서
교회 밖의 공짜 성경공부를 쫓아다닙니다.
공짜 좋아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죽음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감사가 없고 투덜댑니다.
그래서 교회 밖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단자의 꼬임에 넘어갑니다.
이단은 가정과, 식구들과,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리시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이 아닌 것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교회를 흔들고, 말씀을 흔드는 것은 날마다 계속됩니다.
잘 들으세요.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짝퉁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명품은 짝퉁이 나옵니다. 명품에 대해서는 말도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의 진리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잡아 흔들려고 합니다.
사탄의 세력은 진리를 흔들어 댑니다.
그래서 성경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흔드는 것이 있기 때문에 견고하게 서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성경의 진리를 흔들고,
교회를 잡아 흔드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믿음의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개인이/가정 삶이/일이 … 기쁨이 되고 감사하며 살고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가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에 대해
명확한 사람은 마귀의 유혹에, 사탄의 유혹에, 이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명확하게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은 가정생활,
예수님 향기 풍기는 빛 되고 소금된 사명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
그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무디 목사님이 한 젊은이에게
“젊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나,
예배 시간에도 빠지고, 봉사도 안하나.”라고 하자
젊은이가 “목사님, 나이 먹고, 돈도 벌고, 여유가 생길 때 …
늙어서 잘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아예 시든 꽃 한 송이를 선물했습니다.
선물을 받은 젊은이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님이 “너도 시든 꽃이 싫은데 하나님은 좋으시겠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힘 있을 때, 젊을 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
그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나이 80에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았지만
여러분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젊을 때, 기억력이 총명할 때
그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언제까지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 기회이며, 이번이 기회입니다.
회개도, 용서도, 사랑도 지금 하십시오.
돈 많이 벌어놓고 하겠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돈 없을 때 화목하지 못한 가정은 돈이 생기면 더 불행합니다.
돈이 없어도,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가정이 될 때 거기에 참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한 살이라도 어리고 젊을 때, 기억력이 있을 때 … 지금 일해야 합니다.

저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하면 정확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첩에 기록하지 않고도
1년 약속 정도는 다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누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죄송한데, 제가 수첩을 좀 봐야 되겠습니다”하며 수첩의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목사가 주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하는데
요즘의 저는 수첩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첩을 보지 않으면 약속 잡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자기 물건 놓고 다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제가 두고 다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력 좋을 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힘 있을 때 …
지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도, 전도하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것도
가정이 화목한 것도, 행복하게 사는 것도 … 지금, 오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초청에 응하는 것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도 오늘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되기 위해 애쓸 뿐만 아니라
지금, 오늘 … 회개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은혜 받는 자리에 참석하여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를 불러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한 기쁨과 감사로 살되
힘 있을 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지혜로울 때, 총명할 때
더 몸이 약해지기 전에 … 더 나이 들기 전에 …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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