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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으라, 너는 알라, 기억하라 ! (신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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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너는 알라, 기억하라! (신명기 9:1-8)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만민 중에 특별히 선택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그들의 수효가 많아서 된 것이 아니었고, 신체적으로 뛰어났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선택하여 거룩한 백성을 삼으시고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셨다면 이집트나 앗수르, 바벨론 제국처럼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도 없이 거대한 민족들을 선택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작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들어가서 싸워 물리칠 가나안 사람들 보기에 턱 없이 왜소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 밖에 다른 어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이처럼 특별하고도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이 꼭 알아야 할 것 하나가 있었으니 사랑이신 하나님은 또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그 사랑에 감사하여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남편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하는 순결한 아내처럼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약속하신 그 땅에서 복된 삶을 살고 영원히 그 복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고 사랑을 베푸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신6:15)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너희에게 진노하여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렵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 이것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살게 될 이스라엘이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들어갈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하는 모세의 설교는 신명기에서 계속됩니다.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설교의 주제는 그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편안하게 살게 될 때 잊지 말고 조심해서 지켜야 할 또 한 가지가 있으니 곧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모세의 설교 중에 자주 반복하고 또 반복이 되는 내용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자주 반복하여 사용하는 용어가 있으니 그것은 ‘들으라’ ‘알라’ ‘잊지 말고 기억하라’ 는 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모세의 교육 방식은 오늘날 교육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하는 반복학습이었습니다.  잊을만하면 또 강조하고 다시 상기시켜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잊기를 잘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니, 듣기는 들어도 무관심하여 귓등으로 듣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교만함이 사람들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 새로운 목회자가 부임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부임한 첫 주일 첫 만남의 시간에 교우들은 새로운 목사님의 새로운 말씀에 신선한 은혜를 받고 마음이 흐뭇하여 돌아갔습니다.  다음 주일 교인들은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말씀을 전해줄까 기대하며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설교 제목과 본문과 내용이 지난 주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그대로 반복을 하였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첫 부임한 목사님인지라 뭐라고 항의하지는 못하고 다음 주일에는 다르리라 기대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주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설교는 지난 주일과 똑 같은 내용을 재탕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교인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였고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찾아와 항의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다른 설교는 할 줄 모릅니까?  아니면 설교준비를 하지 않고 전하시는 겁니까?  이런 식으로 설교하면서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하며 항의를 하였습니다. 

장로님들의 말을 다 듣고 난 목사님이 뭐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삶을 바꾸어 사는 사람이 없습니까?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삶에 도무지 변화가 없으니 변화될 때까지 또 다시 반복하여 설교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이번 주간에도 여전히 달라진 모습이 없다면 교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줄로 알고 다음 주일에도 똑같은 설교를 다시 하겠습니다’ 했답니다.  그 목사님의 심장이 꽤나 강심장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나 흉내 낼 방식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심정을 백 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님이 설교자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곳곳에서 ‘들으라’ ‘너는 알라’ ‘잊지 말고 기억하라’ ‘삼가 듣고 지켜 행하라’ 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왜 이런 경고의 말씀을 자주 반복하였을까요?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와 함께 광야를 여행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던 40년 동안 모세는 자기 동족 히브리인들의 고약한 습성을 너무도 훤하게 알고 있던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히 머리 들고 반항하며 원망하고 돌아서는 그 백성들을 달래고 책망하며 하나님의 진노로 진멸 당할 위기로부터 빼어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인 치명적인 약점 두 가지는 지난 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쉽게도 잘 잊는다는 것과 또 하나는 교만함이었습니다. 

신명기8장14절을 봅시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을까 하노라”  17절, 18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9장 6절에서 8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임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이것이 40년 광야여행 중에 모세가 본 이스라엘의 연약하고 또 고약한 습성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전력이 화려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갈 지 그들의 과거 습성을 통해 정확히 꿰뚫어 알고 있던 모세는 그들의 장래가 염려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갈 신세대들을 향해 이 설교를 하고 있는 모세는 가나안 땅을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그들과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들었던 사람입니다.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모세의 심정은 더욱 간절하고 애가 탑니다.  모세가 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입구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던가요?

민수기 20장을 보면, 백성들이 가데스에서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자 모세와 아론에게 거세게 항의하며 원망하면서 물을 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을 모으고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명하면 물이 나올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모세는 백성들의 오만한 태도와 불신앙의 모습에 신물이 나고 지친 끝에 단단히 화가 나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난 마음으로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 내리치자 반석에서 물이 솟아 백성들과 짐승들이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심하게 진노하셨습니다. 

모세가 분노한 이유도 사실 따지고 보면 백성들의 완악함 때문이었지만 하나님은 지도자 모세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이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또 두려운 말씀입니까?  지도자가 자기 분노를 참지 못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성질을 울컥 드러낸 이 단 한 번의 실수로 모세와 아론은 오매불망하던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치가 얼마나 크시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을 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셨고 모세는 다만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반석을 향해 물을 내라고 지시만 하면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나온 날 수도 없이 원망하고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지 아니하며 불평하는 사람들을 지금까지 꾹 참고 참아왔던 분노가 그날에는 한 순간에 폭발하였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백성들을 향해 ‘패역한 너희는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해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는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그 온유함이 지상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칭찬을 들었던 모세였지만(민12:3) 이 순간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인간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수종드는 사환으로서 자기 분수를 지켜 겸손하게 일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분노하며 백성들을 미워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버렸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내가 너희를 인도하는 지도자인데 나를 업신여기고 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이런 분노와 섭섭함이 뒤엉킨 모세는 순간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마치 자기가 자신의 물을 주는 것처럼 반석을 내리치는 교만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권위를 존중히 여기시고 약속대로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세와 아론은 그 일로 인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기회를 상실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지나치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왔는데 그 한번의 일로 그런 징계를 하시는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순종하여 받들어 백성들에게 나타내야 할 지도자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과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가리울 때 하나님은 여지없이 책임을 물으시고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심부름하는 청지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거나 그 영광을 빙자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곧 하나님의 거룩함을 사람들에게 바로 나타내지 못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지만 백성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야 할 지도자들이 실수할 때는 더 엄한 기준으로 그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의 처리 방법입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둔 모세는 지금 이런 과거를 회상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자신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교만한 사람들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하여 알고 있는 모세였습니다.  마치 어린 자녀를 물가로 보내는 부모의 심정처럼 그 백성을 가나안으로 들여보내는 모세의 심정은 그들이 쉽게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을 떠날까 두렵고 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설교 중간중간마다 ‘들으라, 너는 알라, 잊지 말고 기억하라’ 는 말을 자주 반복합니다.
 
지난 주간에 세계전문인선교회가 주관하는 재영 한인 목회자 선교사 세미나에 참석하여 이틀간 귀한 은혜를 받고 왔습니다.  이번 세미나에 주 강사로 오신 목사님은 미국 필라델피아 안디옥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신데 시간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 목회자와 선교사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곳에서 얻은 은혜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교우들과도 틈틈이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그 목사님의 개인 간증 가운데 한 가지를 들으면서 마침 제가 이번 주일에 설교하려고 묵상하던 내용과 통하는 것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대단히 엄격한 보수신앙의 집안에서 모태 신앙으로 성장한 그 목사님이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고 자랐답니다.  그런데 16세가 되던 해부터 마음이 변하여 24세에 하나님께 다시 부름을 받을 때까지 8년간 완전히 신앙을 떠난 적이 있었답니다.  할아버지를 따라 4살 때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기도회를 나갔던 그분이 교회를 딱 끊고 그 8년간 그분이 심취했던 일은 낚시였답니다.  낚시를 엄청나게 좋아했던 그분이 틈만 나면 낚시도구를 챙겨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면서 그래도 그것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는데 그 중 한 가지는 미끼를 무는 물고기들의 습성에서 배운 교훈이랍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대로 붕어의 기억력이 얼마나 된다던가요?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닌 듯 한데 단지 3초 정도라고 하지요.  낚시를 하던 그분은 재미로 물고기를 낚는 일이라 잡으면 그 자리에 다시 놓아주곤 했답니다.  그런데 한 자리에서 계속하여 고기를 낚다 보면 똑 같은 놈이 자주 걸려드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붕어의 얼굴 모양을 보면 낯익은 놈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데 이 붕어란 녀석들이 기억력이 얼마나 엉망인지 미끼를 무는 놈이 또 물고 얼마 있다가 또다시 물려 올라온답니다. 

붕어가 왜 그렇게 기억력이 없는 물고기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어제 네이버 검색으로 찾아보았더니 붕어는 귀가 없고, 코는 있으나 마나, 뇌는 극소화 되어 있어 그 효용가치가 별로 없으며, 혀는 물론 없고, 눈은 색맹에다가 지독한 근시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어가 소리를 감지하고, 냄새를 맡으며, 맛을 느끼고 먹이를 찾아 내며, 위기에 대처하는 본능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붕어 몸통에 있는 옆줄이 모든 감각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붕어의 감각기관은 모두 옆줄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옆줄이 사람의 오감 기능을 다 하는 것입니다.  다만 붕어의 체세포에는 통점이 없어서 때리거나 바늘로 찔러도 아픔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낚시바늘에 걸려서 윗입술이 찢어져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붕어가 끝까지 힘을 써서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칠 때 낚시꾼들은 짜릿한 손맛을 느낀다는 겁니다. 

나중에 그분이 주님을 만나고 돌아온 후 신학을 공부하고 선교사와 목사가 되어 낚시 경험을 통해 소중한 교훈을 얻었답니다.  낚싯밥 주위를 맴도는 녀석들이 언젠가는 결국 걸려들기 마련인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은 언젠가 한 번은 사람을 낚는 어부에게 걸려들어 예수님 사람이 된다는 진리(?)를 터득했답니다.  그런 점에서 8년간의 방황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고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이었다고 하여 모두가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간증을 들으면서 기억력이 도대체 엉망인 붕어처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이 짧았고 지금 우리들이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과 홍해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경험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기적이 어디 한 두 가지였습니까?  세상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역사상 그들처럼 놀라운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데 붕어처럼 기억력이 짧은 그들은 광야를 여행하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수도 없이 하나님의 속을 뒤집어 놓았고 모세와 아론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붕어족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여 왕국을 이루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한심스런 행동에 혀를 찰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절대로 잊지 말라는 명령은 어쩌면 그렇게도 속히 잊어버립니까?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40일간 보이지 않자 조급해진 사람들은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신이라고 하며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면 절대로 그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같은 우상들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들어가 지낸 지 얼마 못되어 금방 그들과 혼합하여 우상을 섬기던 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솔로몬이 지은 하나님의 성전에까지 이방의 신들을 가지고 들어와 그 우상의 제단을 쌓고 분향하기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솔로몬이 생존에 있던 시대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속히 떠나 다른 신들을 따를 것이라는 모세의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이스라엘의 한심스런 모습입니다.  체세포에 통점이 없어서 조금 전에 낚시바늘에 꿰여 입술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못 느끼고 금방 또 미끼를 무는 무감각한 붕어처럼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무감각하여져 지난 날 쓰라린 고통과 수치를 금방 잊어버리고 또 다시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며 살았던 무감각한 영혼들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입장이었더라면 저런 족속들은 아예 역사에서 지워버려도 수백 번도 더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나를 바라보니 그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임을 발견하고 할말을 잃습니다.  그들만 붕어족들이 아니라 나도 역시 지난 날 여차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까맣게 잊고 기억하지 못하고 살면서 시시때때로 투덜거리며 사는 붕어족이라는 생각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8장 11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을 읽어봅시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결국 마음이 교만해지게 됩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잊고 살면 결국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모세는 강조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강조합니다.  ‘들으라, 너는 알라, 잊지 말고 기억하라!’ 이 한 주간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를 만민 중에 선택하시고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 내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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