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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훈련없이 쓰임없다 (신 3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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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없이 쓰임없다 (신 32:7-12)

국가가 젊은이를 나라지키는 군인으로 쓰려고 할 때에는 호된 훈련을 시킵니다. 목수가 기둥을 만들 때에는 통나무를 사정없이 도끼질하고, 톱질하고 대패질을 하여 다듬어서 사용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큰 일할 일군들은 호되게 훈련시키십니다. 그리고 적당히 사용하실 사람들은 적당히 훈련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지 않을 사람은 훈련도 시키지 않고 고생도 시키지 않으시고 편안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훈련도 안 받고 편안하게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지 않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적당히 훈련받고 적당히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 호되게 훈련받고 크게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미국 엘파소에서 이라크에 파병할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전쟁하다가 포로로 잡혀 땅속에 한 명씩 갇혀 있을 때를 가상하여 땅속에 파묻다 싶이 가두어 놓고 3일씩 물 한 모금 안 주고 살게 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죽을 지경의 훈련입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가면 강한 군사가 되어 승리하게 됩니다.

새중에 새는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는 새의 왕입니다. 새 중에 가장 강한 새는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를 이길 새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독수리가 그렇게 강한 새가 되는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최고의 새가 되는 비결은 어릴 때 강한 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시키는 방법을 성경은 이렇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위에 그 것을 업는 것같이>(11)

네 단어가 눈에 뜨입니다.
1.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시며
2.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3.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4. 그 날개위에 그 것을 업는 것같이
두 단어는 훈련이고 두 단어는 축복입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훈련시킬 때 두 가지 훈련을 시킵니다.

첫째 방법은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독수리는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일부러 보금자리를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새끼 독수리가 이제는 보금자리에만 안주하지 않고 날라 다니며 어엿한 독수리가 되게 합니다. 새끼 독수리는 보금자리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보금자리는 독수리 새끼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곳입니다. 알에서 깨어나 지금까지 안전하게 살던 그야말로 보금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시려고 할 때에는 우선 인간적으로 너무 의지하는 것을 끊어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를 부정하여야 다른 것을 긍정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분리하게 만드시는 것이 훈련의 첫 단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성격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 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값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프느니라>(출20;5-6)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쓰시려고 할 때에는 그것으로부터 분리시키시고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너무나 귀여워서 하나님도 잃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분리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분리되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결론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노라>(창22;1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쓰시려고 할 때 아브라함의 보금자리같은 아들 이삭과 분리시키는 작업을 먼저 하시고 아브라함을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쓰시려고 할 때도 바울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위대하게 쓰셨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순수 히브리인인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히브리인중에서 당당한 바리새인인 것에 자만심을 가졌습니다. 율법을 흠없이 지켰음을 굉장한 것을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과 분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에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함이니>(빌3;5-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금자리같은 애급에서 안주하지 않고 떳떳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려고 보금자리를 흩으러 뜨렸습니다.
그리고 황무지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광야없이 가나안 없고, 땀없이 성취없고, 서리없이 알곡 없고 밤없이 낮은 없고 모험없이 성취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은 하나님 다음으로 사랑하도록 분리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십니다.
  어떤 일행이 럭키산맥을 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폭설이 내려서 죽음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눈속에서 마른 가지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불을 붙일 쏘시게가 없었습니다. 그 때 일행중에 한 명이 제안하였습니다.
<우리 각자 가지고 있는 돈을 모아 그것으로 불쏘시게를 합시다.>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꺼낸 돈이 수북히 쌓였습니다. 그 돈들은 기분좋게 타올랐습니다. 계속 나무를 주워서 태웠습니다.
그들은 돈 한 푼 없어졌지만 구조대원이 올 때까지 따뜻하게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구조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돈이 없어졌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생명을 얻고 돈을 잃었습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포기하여야 더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 없으면 못 살 것같은 둥지를 없애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훈련 방법입니다.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안주하여 있는 보금자리는 무엇입니까? 허물어 버려야 할 보금자리는 무엇입니까? 배는 항구에 있으면 폭풍우를 만나 파선할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그라나 거친 파도를 만날 지언정 항구를 떠나야 합니다.
비행기는 비행장에 가만히 있으면 사고날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사고가 날 망정 하늘을 힘차게 날라야 합니다.
독수리가 강한 새가 되는 이유는 어미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보금자리를 버리는 룬련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훈련이 있습니다.

<그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새끼위에 너풀거린다는 말씀은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미가 새끼에게 날라가는 시범을 보이기 위하여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제 막 나르려고 애쓰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 옆을 떠나지 않고 날라다니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처음 나르는 새끼가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서 독수리는 도와 주지 않고 위에서 너풀거리기만 합니다.
힘들 때 힘들게 합니다. 그래야 강한 독수리가 됩니다.

충청도에 가면 백로들이 많이 모이는 섬이 있습니다.
한 조류연구가가 그 곳에 3년간 기거하면서 백로들을 연구하였습니다.
어미 백로는 새끼를 까놓고는 정성껏 사랑으로 기릅니다. 소낙비가 오면 자기 날개를 펴서 비가 그치기까지 날개를 접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다가도 일단 성장하고 나면 3일가량을 굶깁니다. 배고파서 둥지를 뛰쳐 나가려고 하면 못 나가게 부리로  쪼아댑니다. 먹을 달라고 보채면 몸을 심하게 쫍니다. 그리고 나서 둥지에서 떨어 뜨립니다. 만일 굶기는 고난없이 떨어뜨리면 날개에 기름기가 많아서 나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백로에게 고난은 나를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아직 굶는 고난을 당하지 아니 한 백로를 둥지에서 꺼내어 길러 보았더니 평생 날지를 못 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누에고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에는 자기 입에서 300m 명주실을 뽑아 자기 몸을 칭칭 감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잠을 자다가 나비가 됩니다. 그리고 번데기만 남게 됩니다. 그 때 자기가 감아 놓은 명주실을 뚫고 나오려고 애를 씁니다. 발버둥칩니다. 피눈물나는 처절한 노력입니다. 그런데 그 때 잠실업을 하는 사람이 안 스럽게 보면서 구멍을 뚫어 주어 보았습니다. 나비는 쉽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날개에 힘이 없어서 픽 쓰러져 일어나지 못 하고 날지 못하고 푸드득이다가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생하여야 강해집니다. 애를 써야 무엇이 됩니다.

독수리는 자기 새끼 위에서 너풀거리며 날지 못 하고 땅으로 추락할 때까지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내버려 두십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힘들 때 힘들게 합니다.

이렇게 독수리는 자기 새끼를 강하게 훈련합니다. 보금자리를 헐어 버립니다. 떨어지면서 발버둥치는 새끼 위에서 도와 주지 않고 날개를 너플거리기만 합니다
그 후에 어머 독수리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힘이 없어 지쳐 떨어지는 새끼를 몸으로 받습니다. 지금까지는 새끼 위에서 너풀거리다가 새끼 밑으로 내려가서 몸으로 받고 업어 줍니다. 훈련받은 독수리 새끼에게는 보상이 다릅니다. 받아주고 업어 줍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32)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하는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파하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견디다 못 해 쓰러지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결코 우리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는 우겨싸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한 눈 팔지 않고 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끼 위에서 너풀대고 있기 때문에 새끼는 어미를 보지 못 합니다. 그러나 분명이 어미는 온통 신경을 새끼에게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긴장에 초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안 보이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속에 있어도 하나님은 초긴장을 하고 보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상실한 고통속에서도 잿더미에 앉아서 하나님은 안 보이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자기를 보고 계심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왼 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9-10)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일부러 없애버린 후에 날아가려고 애쓰는 새끼 독수리를 도와주지 않고 일부러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부러 역경을 주시고 일부러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 훈련단계가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서 성숙을 위하여서 입니다.

내가 시골의 어느 조그만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새벽에 아주 가나한 변 집사님이 700만원의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나는 놀라서 어떤 사연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딸만 셋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 아들을 날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내가 네번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들인지 딸인지 제일 먼저 확인하였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추가 쏙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들 하나 낳은 것 병신을 낳은 것같았습니다. 의사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염려할 것 없습니다. 수술하여 잡아 당기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어리니까 3살 정도 되면 수술하면 좋습니다.>
변집사는 3살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의사에게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수술비를 물어 보니 7만원 가량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변집사는 700만원을 2부 이자에 꾸었습니다. 수술을 하러 병원에 데리고 가려는 데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변집사님! 부흥회를 앞두고 입원하지 마십시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변집사는 부흥회가 끝나고 수술을 받으려고 2부 이자로 꾼 돈을 장농에 두었습니다. 부흥회중 자꾸만 성령님이 마음의 음성을 주셨습니다.
<변집사야! 너 그 돈을 수술비로 쓰지 말고 너희 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바치면 내가 칼도 안 대고 수술해 주리라.>
변집사는 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망설이다가 만일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2부 이자를 얻어도 된다라는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여 간절히 안수하였습니다. 그러나 낫지 않았습니다. 나는 실망하였습니다. 부흥회 끝나기까지 계속 안수하였으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기도하기로 하고 부흥회를 마치고 나는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변집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안 나와요> 실망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새벽기도도 못 하던 집사예요. 그러나 700만원을 드리고 나서 계속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와서는 아들 팬티를 매일 새벽 벗겨 봅니다. 그런데 안 나와요.> 나는 말했습니다.
<집사님! 농부가 씨를 심어 놓고 싹이 날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야지 매일 아침 나오나 안 나오나 파보면 안 나와요. 심어 놓고 기다려야 해요.>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세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첫 소리가 울렸습니다.
<목사님! 나왔어요>
그리고 변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왜 부흥회 때 안 나왔는 지 알았어요. 왜 한 달만에 안 나왔는 지 깨달았어요. 왜 3달만에 나왔는 지 놀라와요. 만일 일찍 나왔으면 나는 새벽기도를 안 했을 거예요. 한 달만에 나왔으면 나는 새벽기도를 하다가 중단하였을 거예요. 그러나 3달만에 나왔기에 나는 새벽기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집사가 되었어요. 기도응답을 늦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그는 얼마후 조롱박을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그 박위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기도응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날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지만 성숙을 위하여 일부러 방관하고 계십니다. 기도응답을 늦게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독수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새끼위에서 너풀대고 있을 지언정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버려 두는 것같지만 고통을 받은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어느 한 의사의 간증입니다. 그가 배를 타고 가는 데 강풍이 불었습니다. 배가 뒤집혀서 바다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생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온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그 때 돌풍이 불어 왔습니다. 자기를 땅으로 던졌습니다. 어지러웠습니다. 그는 봉천동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온전히 헌신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봉천동의 슈바이쳐>로 널리 알려 지게 되었습니다. 윤 주홍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달동네와 낙도에서 25년 동안 무료 진료를 하였습니다. 1989년 제1회 서울 시민대상 수상을 하였습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훈련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번 이 호문 목사님을 모신 부흥회가 우리 모두 강한 훈련받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금식으로 준비하시고 전도로 대집하여 1300석이 가득차야 합니다.
독수리 훈련이 가혹하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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